247화.
“한 놈도… 단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건곤신군이라는 막강한 적이 사라졌으나 아직 청성파라는 버거운 적이 남은 상황이었다.
문인주희를 필두로 사해련의 고수들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죽을 순 없었다.
하늘은 그런 그들을 버리지 않았다.
“죽어…컥!”
“누…구냐!!”
어디선가 날아온 한 자루의 칼이 청성파 고수의 가슴에 꽂혔다. 그 직후 한 무리가 장내에 나타났다.
정체를 알 수는 없으나 결코 청성파에 호의적인 집단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청성의 말코들을 하나도 남기지 마라!”
“예! 대방주님!”
족히 삼백은 훌쩍 넘어 보이는 자들이었다.
그들의 등장으로 전세는 완전히 바뀌었다.
머릿수도 머릿수였지만 하나 같이 뛰어난 실력자들이었다. 게다가 실전경험도 상당해 보였다.
청성파 최정예 고수들이 대라신군과 함께 감숙성으로 나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들만으로 정체불명의 무리를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적천우를 추적하던 청성파 고수들이 모조리 전멸하고 말았다.
“…누구십니까?”
“그대가 문인 부대주인가보군.”
비록 청성파를 전멸시킨 자들이었지만, 문인주희는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정체가 확인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자신의 성까지 알고 있으니 더욱 경계심이 들었다.
―부천주께서 보내셨다. 난 천(天)의 신임 순찰령주다.
―부천주께서… 본천에 순찰령주란 직위는 없습니다만…….
순찰령주라고 주장하는 자의 전음에 문인주희는 흠칫 놀랐다. 부천주에 대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허나 혈천에는 순찰령이라는 집단이 없으니 당연히 순찰령주란 직위도 없었다.
그런데 스스로 순찰령주라고 하니 수긍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신임 순찰령주라고 했을 텐데? 아, 대군사께 받은 령패(令牌)가 있긴 한데… 본천을 모르는 자들이 있는 이 자리에서 보려주랴?
―…….
그의 말이 맞았다. 자신과 혈룡대 조장들은 몰라도 사해련 고수들은 혈천에 대해서 모른다.
그 상황에서 령패를 꺼낸다면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아직은 사해련과 혈천의 관계가 드러나지 않는 편이 나았다.
“나는 련주님의 명을 받고 왔다. 사천을 벗어날 때까지 호위할 테니, 떠날 준비를 하라!”
“…….”
혈룡대 조장들과 사해련 고수들은 모두 문인주희를 바라봤다. 암묵적으로 그들을 이끄는 자는 그녀였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순찰령주를 완전히 믿을 수 없었으나 그들의 호위를 받아들었다.
‘듣던 것보다 까칠한 계집이군. 허나 내 걸로 만든다면 대군사의 힘도 얻을 수 있겠지.’
혈천에서 새롭게 창설된 순찰령의 정체는 바로 칠웅방.
천씨세가와 함께 혈천에 온 그들이었다.
순찰령주는 칠웅방의 대방주인 패웅 현휘군이었다.
일천이 넘는 흑도 대방파로서 천진의 밤을 지배하던 칠웅방이 거사의 실패로 7할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도망쳐야 했다. 그렇다고 한들 칠웅방의 전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패웅 현휘군을 필두로 흑도집단 답지 않게 제법 고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허나 석가장을 대신할 혈천십삼세에 앉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오당팔각 혹은 혈천삼십육대로 편입시키는 것 역시 적합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순찰령이라는 새로운 조직을 창설해서 그들에게 맡긴 것이다.
다행히 큰 반발은 없었다. 신임 령주인 현휘군이 초절정고수라는 점 덕분이었다.
‘이참에 확실하게 보여주마. 나 현휘군이 어떤 놈인지를.’
그 시각 감숙성에 나가 있는 사천무림인들은 발칵 뒤집어졌다.
* * *
쾅!
“젠장! 도대체 무슨 꿍꿍인가 했더니!”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가 당했습니다!”
“당장이라도 돌아가야 합니다!”
“맞습니다!”
사해련 고수들을 막기 위해서 감숙으로 넘어온 사천무림인들은 청천벽력과 같은 급보를 받게 되었다.
호남 천웅방에 있어야 할 적천우가 사천성에서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반나절 거리에 있는 사해련 고수들은 적천우를 호위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미끼였다는 것을 이제 눈치챈 그들은 분개했다.
“제때 도착할 수 있겠습니까? 처음 발견된 곳이 관현이라고 하던데…….”
“그렇다고 두고만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합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관현에서 처음 발견되었다면 청성파가 추적하고 있을 테니, 어쩌면 추살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꿈에도 몰랐다.
이미 청성파가 대패했을 뿐만 아니라 청성의 원로인 건곤신군마저 타계했다는 사실을.
“그보다 누구였을까요? 사해련 십대고수인 음풍귀조를 쓰러트린 분이…….”
“안타깝습니다. 그런 분이 계신 줄 진즉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급보에 함께 적혀 있는 내용 중에는 음풍귀조가 쓰러졌다는 것도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음풍귀조와 격돌한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엄청난 전투 흔적과 죽은 노인의 시체가 발견되었다고 했다.
여러 정황을 종합했을 때, 죽은 노인을 음풍귀조를 쓰러트린 기인으로 추정하게 되었다.
초절정고수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사천무림의 명숙들은 노인의 존재에 환호했고, 노인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그런 그들과는 다른 이유로 당황하는 인물이 있었다.
‘설마… 숙부님은 아니겠지?’
당자성은 자신에게 암기술을 전수해주었던 숙부 당철기를 떠올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무리 기인이 많은 무림이라도 초절정고수는 흔치 않았다.
지난 십여 년간 사천당가는 물론 천북운가, 금양문주 등의 전대 기인들이 여러 이유로 타계하면서 세대교체를 이룬 사천무림이었다.
청성의 대라신군, 건곤신군 그리고 아미의 금정신니 등 전대 기인들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덕분에 사천무림은 전반적으로 주춤한 시기였다.
그런 지금 음풍귀조를 쓰러트린 초절정고수가 뜬금없이 튀어나올 리가 없었다.
‘아니야. 음풍귀조가 사해련 사대봉공이라지만, 숙부님을 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알려지지 않았을 뿐 숙부의 실력은 선친에 밀리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당자성이었다. 그런 숙부가 음풍귀조에게 죽임을 당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예감이 좋지 않았다.
“가주,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시오?”
“아, 아닙니다. 진인.”
“가주 생각은 어떻소?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시오?”
대라신군의 말에 좌중의 시선은 당자성에게 꽂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천무림을 이끄는 인물은 암군 당자성,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그는 조금 전과 달리 평정심을 되찾고는 입을 열었다.
“아직 늦지 않았을 겁…….”
“크, 큰일 났습니다!!”
당자성이 막 결정을 내리려는 순간 한 청년이 천막을 거칠게 열며 들어왔다.
그런 그를 보며 대라신군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를 본 청성파의 장로가 청년을 보며 호통을 쳤다.
“무슨 일인데! 이리 경거망동하더냐! 본파의 미래라는 녀석이!”
“죄, 죄송합니다! 사부님!”
청년은 청성칠우라고 불리는 청성파 후기지수 중 한 명으로, 청성파 장로의 제자이기도 했다.
사천무림의 명숙들은 물론 사백인 대라신군까지 있는 자리에서 이런 모습을 보였으니 청성파 장로는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런 그를 보며 대라신군이 다독였다.
“되었다. 그보다 무슨 일이더냐?”
“죄, 죄송합니다. 사해련이 움직였습니다!”
“뭐, 뭐라고!”
그가 충분히 당황할 만했다.
반나절 거리에 있는 사해련의 일천고수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속셈은 뻔했다.
적천우가 사천성을 벗어날 때까지 자신들의 발을 묶으려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가주!”
“둘로 나누겠습니다! 제가… 아니, 진인께서 일천 명만 이끌고 놈을 추적해주십시오! 저희가 사해련 놈들을 따끔하게 혼내주겠습니다!”
“알겠소, 가주. 그렇게 하겠소!”
불길한 예감이 든 당자성은 먼저 사천성에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독과 암기는 소수보다 다수와의 싸움에서 빛이 나는 법이었다.
몇몇 되지 않는 적천우를 잡기 위해서 자신이 움직이는 것보다는 일천의 사해련 고수들을 상대하는 것이 낫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적천우는 대라신군과 청성파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당가와 아미파는 폭마와 색불에게 빚이 있으니 이번에야말로 빚을 꼭 갚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몰랐다. 적천우의 곁에 혈천의 순찰령이 된 칠웅방이 있다는 사실을.
* * *
“불나방 같은 것들!”
“죽어라!!”
적천우 일행은 하루에도 몇 번씩 공격을 당했다.
이미 사천성 전 지역에 천라지망이 펼쳐진 상황이었다.
쓰러진 적천우와 지친 사해련 십여 명만으로는 버티기 버거운 상황이었다. 허나 그들의 곁에 새롭게 합류한 삼백여 고수들이 있었다. 순찰령주인 현휘군을 필두로 한 순찰령의 고수들이었다.
칠웅방이 흑도집단이었지만, 그들이 익힌 무공은 사파사세인 천웅방에서 빼돌린 절학들이었다. 특히 현휘군이 익힌 천잔마공은 칠사(七邪)의 마공들과 견줄 수 있었다.
현휘군의 부친인 천잔마왕이 천웅창제에게 죽임을 당하기 전에 칠사의 일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이끄는 순찰령을 상대로 사천무림인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사천무림의 핵심고수 삼천이 감숙으로 떠난 것이 너무도 컸다.
“이, 이 천벌 받을… 컥!”
“천벌은 개뿔! 네놈들은 성자처럼 산 줄 아나 퉷!”
삼천의 고수들이 감숙으로 갔다고 사천무림에 고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단합되지 않고 중구난방으로 달려드니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적천우가 사천성에서 발견된 것은 갑작스러운 일이었기에 사천무림의 힘을 모아서 지휘할 사람이 없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무리 혈천의 순찰령이 강하다고 한들 이렇게까지 일방적인 싸움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휘익~ 제법인데?”
“그러게 말이야.”
전투는 순찰령에게 일임하고, 문인주희와 사해련 고수들은 적천우의 호위를 했다. 음풍귀조의 일은 너무도 안타까웠다. 당연히 문책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적천우까지 죽는다면 상당한 수위의 문책을 받게 될 것이니 적천우를 더욱 철저히 호위했다.
적천우의 직속인 혈룡대 조장들은 순찰령의 싸움을 보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혈천의 미래라는 혈룡대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은 전력이었다.
“특히 저자는 대…공자님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공자님만큼은 아니지. 하지만 대단하긴 하네.”
순찰령도 강했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자는 령주였다. 그의 손을 피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손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사천무림인 한두 명씩은 꼭 죽음을 맞이했다. 죽음의 무학이라는 천잔마공다웠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공자님의 호위에 집중 못 하나.”
“죄, 죄송합니다!”
잡담을 하던 혈룡대 조장들은 문인주희의 싸늘한 목소리에 움찔했다. 그녀는 직위는 물론 무위 역시 그들보다 위였다. 과거 그녀가 여인이라고 가볍게 봤다가 낭패를 본 자가 여럿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낭패 본 자들 대부분이 그 후 오히려 그녀의 열혈한 지지자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이곳에는 없지만 문인주희를 따르는 두 명의 조장 중 한 명도 그런 경우였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