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살수-245화 (245/314)

245화.

“결정을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하…! 공자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따르는 것이 도리겠지요.”

“감사합니다. 봉공님.”

사해련 사대봉공인 음풍귀조의 수긍으로 그들은 최단 경로를 따라서 이동하게 되었다. 음풍귀조를 비롯한 사해련 고수들의 우려와 달리 성도를 무사히 지날 수 있었다.

적천우의 외형에 대한 정보가 알려진 것도 아니고, 설마 사천성을 그들이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허나 성도를 지나서 관현에 도착했을 때였다.

“오늘은 이곳에서 묵기로 하지요.”

“이곳은…….”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충분했다. 그렇기에 서두른다면 다음 마을에서 묵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적천우는 관현에서 하루를 묵으려고 하니 음풍귀조로서는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관현의 서남쪽에 청성산이 있기 때문이다.

즉, 이곳은 청성파의 앞마당이라고 할 수 있다.

성도는 무사히 넘어갔으나 이곳까지 아무 일이 없을 거란 보장이 없었다. 위험을 최대한 제거하는 것이 음풍귀조가 적천우와 동행한 이유이기도 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음풍귀조의 물음에 적천우는 자신의 칼을 쥐었다. 그리곤 칼날을 보여주었다.

한 눈에 봐도 보도(寶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 칼이 좀 상한 것 같습니다. 손질 좀 하려고요.”

“으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쉽게 상할 칼이 아니었다. 실제로 상했다고 할 정도로 칼 상태가 나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그렇다는데 부정할 수가 없었다. 허나 그의 이상한 행동이 짐작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저 소리 때문인가?’

음풍귀조의 귀에 누군가의 망치질 소리가 들렸다.

워낙 미세해서 그들 중에서 이를 알아차린 사람은 초절정지경에 오른 음풍귀조와 적천우 정도였다.

고작 망치질 소리였지만, 귀에 거슬리는 것이 아니라 흡사 악사가 연주하듯 기분 좋은 소리였다.

실력 없는 야장의 망치질 소리는 듣기 싫은 소음이지만, 뛰어난 야장의 망치질 소리는 맑고 경쾌했다.

그런데 기분이 좋아질 정도라면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가진 야장이란 말인가.

적천우가 흥미를 가진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사천당가도 아니고, 관현에 이런 실력자가 있다니…….’

‘내 착각이었나?’

객잔의 별채를 빌린 후 적천우는 직속 수하들만 이끌고 대장간으로 향했다. 허나 곧 실망하고 말았다.

대장간 곳곳에 있는 물건들은 낫이나 호미와 같은 농기구 정도만 있을 뿐 도검과 같은 무기는 하나도 없었다.

농기구는 무기에 비해서 제련이 쉽다.

다르게 말하면 도검을 제련할 능력이 없는 야장 혹은 도제(徒弟)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대…공자님, 다른 곳으로 가시죠. 농기구 따위나 만드는 곳에서 공자님의 칼을 손질할 능력이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공자님.”

“아니, 이곳에 맡긴다.”

“예?”

적천우의 말에 수하들은 당황스러웠다.

그의 칼은 한철에 현철을 섞어서 제련한 보도 중의 보도였다. 웬만한 야장은 한철이나 현철을 다루지 못한다.

하물며 농기구 따위나 만드는 삼류 야장이 손을 댈 물건은 아니었다. 그러한 사실을 적천우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칼을 이곳에 맡긴다고 하니 수하들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그들과 달리 문인주희는 뭔가 눈치챘는지 적천우 대신 말했다.

“저 낫을 잘 봐라. 균형이 완벽하지.”

“어? 그, 그렇군요. 허나 저렇게 무뎌서 풀이나 제대로 벨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말에 적천우는 피식 웃고는 낫을 쥐었다.

그리곤 머리카락 하나를 뽑아서 낫의 위에 올려놓고 살짝 눌렀다.

서걱.

놀랍게도 얇고 가벼운 머리카락이 낫의 날에 잘렸다.

큰 힘을 주지도 않는데도 그리되었다.

“어, 어떻게…….”

“이건 무딘 것이 아니라 최대한 절제한 것이다. 농부들이 풀만 벨 수 있게. 허나 절제한다고 한 것이 이 정도라면 최선을 다했을 때는 어떨 것 같으냐.”

오싹!

그들은 적천우의 말에 소름이 돋았다.

적천우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곳의 야장은 그냥 뛰어난 정도가 아니라 전설의 야장 구야자의 현신이라도 된다는 뜻이었다. 덕분에 그들 역시 욕심이 생겼다.

무림인에게 뛰어난 절학만큼이나 보검 역시 탐이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때 늙은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농기구 따위나 만드는 곳이오. 댁들과 같은 무림인이 찾을 만한 물건은 없으니 그만 나가시구려.”

“저희는…….”

“이봐 늙은이 누굴 눈 먼 장님으로 아나… 어디 하나 부러지기 전에 내놓는 것이 좋을 거야.”

문인주희가 예의를 차리려고 할 때, 혈룡대 조장 중 한 명이 평소처럼 거친 언사로 말했다.

순간 문인주희는 물론 적천우까지 얼굴이 굳어졌다.

무림인은 강자를 존중한다. 혈천은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일반적인 야장에 대한 대우가 높다고 할 수는 없었다. 허나 이 정도 제련을 할 수 있는 자라면 기인이라 할 수 있었다. 따라서 무력을 떠나서 존중받아야 마땅했다.

그런데 그의 수하는 명검에 눈이 멀어서 급한 성질부터 보여주었다.

수하들을 아끼는 적천우가 불쾌감이 들 정도였다.

“없다면 없는 걸로 아시고, 그만들 가시오. 이 늙은이는 이만…….”

“늙어서 귀가 멀었나… 좋은 말로 할 때… 큭!”

“매, 맹광!”

위협을 가하던 사내, 맹광은 예상치 못한 기습을 받고 신음을 흘렸다.

덕분에 나머지 세 조장들은 각자 무기를 뽑았다.

그럼에도 노인은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이 근방 놈들은 아닌 것 같고… 경고는 한 번뿐이다. 저놈 데리고 꺼져.”

“감히!”

“그만! 물러나라.”

“대, 대주님… 며, 명!”

노인의 경고에 조장들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그때 적천우가 그들을 막았다. 조장들은 불복하려 했으나 적천우의 싸늘한 눈빛에 움찔하곤 물러났다.

평소 자신들을 아껴서 웬만해선 넘어가주는 적천우였지만, 저런 눈빛을 했을 때는 사달이 나곤했다.

그걸 알기에 그들은 적천우의 명령대로 바로 물러났다.

“설마 했는데… 대단한 기인이셨군요. 당가의 노고수께서 무슨 연유로 이곳에 계신 겁니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적천우의 말에 조장들은 움찔했다.

그의 말대로 사천당가의 노고수라면 자신들이 큰 실수를 한 셈이었다. 사천성의 한가운데였다. 이곳에서 사천당가의 노고수와 싸운다면 일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사천성을 벗어날 때까지 수많은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적천우를 호위하기 위해 함께 혈천에서 나온 그들의 입장에서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일을 자신들이 스스로 만들었으니 당황하는 것은 당연했다.

“당가인이라면 누구나 용독술이나 암기술을 할 줄 안다고 들었습니다. 허나 맹광과 같은 절정고수를 위협할 정도의 암기술을 익힌 자는 흔치 않겠지요.”

“암기술은 무슨, 그냥 던진 것에 불과하니 과한 망상은 하지 말게.”

“과연… 그럴까요?”

노인의 변명 아닌 변명에 적천우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순간 적천우가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곤 벼락같이 칼을 휘둘렀다.

쾅!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일개 유엽도가 적천우의 칼을 튕겨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건만 눈앞에서 벌어졌다.

덕분에 조장들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유엽도에 강기를 실어서 던지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당가주도 이 정도는 아니라고 들었는데… 도대체 누구십니까?”

“네놈… 사해련주와 어떤 관계더냐?”

강기를 유지한 채 암기를 던지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게 가능하기 위해선 그저 강기를 발현 가능한 수준이 아니라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초절정고수인 암군 당자성도 암기에 강기를 담아서 던질 수 있으나 유지하지는 못한다.

허나 눈앞의 노인은 그게 가능했다.

게다가 노인 역시 적천우의 정체를 눈치채고 말았다.

단순한 일격만으로도.

“어리석은 말을 했군. 사망도법을 익혔다는 것은 그의 후계자란 뜻이거늘… 소문의 그놈이었군.”

“사해련의 적천우입니다. 어르신은 누구십니까?”

“…망령일 뿐이다. 난 너희는 물론 무림에 얽히기 싫다. 그러니 이제 그만 떠나라.”

노인은 정체를 밝히기 싫은지 여전히 숨겼다. 그러나 이미 사천당가 출신의 노고수임을 눈치챈 적천우였다.

따라서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이런 고수가 사천당가에 있다는 것은 언젠가 큰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회가 될 때, 그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그의 생각을 읽은 노인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애송아…! 정말 죽고 싶더냐. 사망도제라면 몰라도 넌 내 상대가 아니다.”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지요.”

쾅! 쾅!

“젠장!”

노인은 강했다. 상상 그 이상이었다.

초절정지경에 오른 적천우조차 노인의 암기를 막아내는 것에 급급해서 제대로 된 반격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다.

문인주희와 조장들은 어떡하든 적천우를 돕고 싶었으나, 그들이 끼어들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절정고수들이라도 강기를 감당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끼어든다면 자신들의 목숨은 물론 적천우까지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공자! 무슨 일이오!”

“아…! 오셨습니까. 봉공님! 공자님을 도와주십시오!”

조장 중 한 명이 객잔으로 가서 음풍귀조를 불렀다.

그들이야 적천우를 도울 힘이 없었지만, 사해련의 사대봉공이자 초절정고수인 음풍귀조는 다르다.

“헉! 저자는 누구냐!”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사천당가의 노고수 같습니다. 봉공님.”

“왜 하필…! 알겠네. 내가 공자를 도울 테니 자네들은 물러나게.”

“예!”

무림인들의 싸움에 제삼자가 끼어드는 것은 결코 용납 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허나 그건 비무나 명예를 건 싸움에나 해당되는 일이었다.

이건 적을 죽이거나 내가 죽어야 끝나는 혈전이었다.

그러므로 무림의 불문율 따위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쾅!

“웬 놈이더냐!”

“몸은 괜찮소, 적 공자.”

“아…! 오셨습니까, 봉공님.”

굳었던 적천우의 얼굴이 펴졌다. 반대로 노인은 음풍귀조를 알아봤는지 얼굴이 굳어졌다.

음풍귀조는 사해련의 십대고수였다. 그중에서도 사대봉공이었다. 즉 호법보다 강자란 뜻이었다.

노인은 이제 초절정고수를 둘이나 상대해야 할 판이란 뜻이기도 했다.

아무리 노인이 강해도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표정을 굳힌 노인은 품에서 암기를 꺼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허… 오늘따라 녀석이 더 보고 싶구나.”

뒤통수

“놈들이 도망친다! 쫓아라!!”

“죽여라!”

무림인들은 눈이 뻘게져서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천웅방에 있다는 사해련주의 손자가 놀랍게도 사천성에서 발견되었다.

그것도 청성파의 지척인 관현에서 발견되었다. 이에 청성파는 물론 사천무림인들이 그들의 추적을 시작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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