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어찌 자네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감숙무림의 힘으로 저들을 막지 못해서 모른 척했다고 생각하는가? 본파와 우리 난주사가. 그리고 감숙무림의 힘을 모은다면 분명 막아낼 수 있네. 그럼에도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그 이후 때문일세.”
“그 이후라시면…….”
아직도 감을 잡지 못하는 그들을 보며 탕마장주는 한심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 다음은 어쩔 생각인가? 사망도제가 웃으며 넘길 것 같은가? 그가 직접 움직인다면 그땐 끝일세. 맹룡도객? 그가 사망도제는커녕 사대봉공이나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어림도 없는 소릴세.”
“그렇긴 하지만… 자하검제께서 분명 도와주실 겁니다.”
비록 감숙무림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으나 섬서성이 바로 지척이었다. 섬서성에는 화산의 자하검제가 있다. 사망도제가 움직인다면 자하검제가 두고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검제께서 오실 때까지 사망도제는 기다려준다고 하던가? 그때까지 우리가 버틸 수 있다면 자네들의 말에 찬성하겠네.”
“그야… 뭐…….”
그들은 탕마장주의 말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당연했다. 구파일방인 공동파조차 버틸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었기에 사해련의 협조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니까. 탕마장주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뿐인가. 사해련은 정식으로 협조를 요청한 상황이네. 그 상황에서 사천무림과 함께 그들을 공격하면 과연 무림에서 우릴 뭐라고 하겠는가. 사해련의 요청을 무시하고 그들을 공격했던 사천무림이 이미 질타를 받고 있음을 모르는가?”
“…….”
탕마장주의 말에 사실이었기에 그들은 반박할 수 없었다. 덕분에 이제라도 사천무림을 돕자는 말이 입 속으로 쏙 들어갔다. 정파로서 자존심과 대(代)를 걸쳐 쌓은 민심을 지키려다가 자신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판이었다.
자존심과 명예가 중요한 정파라 할지라도 목숨보다 우선시할 수는 없었다. 그들 역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럼…….”
“무슨 그럼인가. 우린 잘 버티다가 폭풍이 지나가면 뒷수습만 잘 하면 되지.”
결국 감숙무림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공동파와 난주사가는 잠시 비를 피하기로 결정했다.
그런 그들의 결정이 앞으로 일어날 많은 일들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음을 그때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 * *
“놈들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적의 동태를 살핀 수하의 보고에 당자성과 사천무림의 명숙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사해련주의 손자를 호위하겠다며 감숙성으로 넘어온 사해련의 고수들이었다.
그들을 막기 위해서 움직인 사천무림의 고수들과 불과 반나절 거리에서 멈춘 후 다시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
“그러게 말입니다.”
사천무림의 명숙들은 저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말이 일천 명이지, 그들이 소비하는 물자는 상상을 초월한다.
시간을 끌수록 사해련의 고수들은 보급에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사천무림이 세 배나 많기는 하지만 사천과 감숙에서 물자를 보급받기에 지장이 없었다.
게다가 변수가 될 수 있는 감숙무림이 변심해서 사천무림과 합류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공동파와 난주사가의 문도 두들기고 있는 중이었다. 그걸 모를 사해련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움직이지 않은 채 시간을 끄니 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답답해서 안 되겠소! 차라리 우리가 먼저 치십시다!”
“그게 낫지 않겠습니까? 놈들이 겁을 먹은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만약 함정이라면 어쩔 거요? 곳곳에 벽력탄이라도 심어뒀다면 큰일 아니오?”
“맞소, 지금 우린 신중할 필요가 있소. 싸운다면 당연히 우리가 이기겠지만, 희생을 최소한으로 해야 하지 않겠소?”
차라리 선제공격을 하자는 의견과 신중하게 움직이자는 의견으로 나뉘어서 첨예하게 대립했다. 어느 한쪽이 맞고, 틀린 것이 아닌 만큼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만큼 사해련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가주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결국 명숙들의 시선은 당자성에게 쏠렸다.
누가 뭐라 해도 사천무림의 수장은 당자성이었다. 그의 결정으로 인해 앞으로 사천무림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었다. 그걸 알기에 당자성은 신중을 기해서 입을 열었다.
“무작정 저들의 동태만 살피는 것이 능사는 아니오.”
“맞습니다. 답이 보이지 않을 때는 선제공격이 답입니다!”
당자성은 선제공격하자는 의견에 손을 들어주었다.
덕분에 신중하게 움직이자는 의견을 지지하는 명숙들이 실망했다.
“허나 놈들의 수작에 놀아날 수도 없소.”
“그럼 어쩌자는 말씀이십니까?”
“우선 본가의 고수들을 움직여서 함정인지 아닌지 확인해보겠소. 함정이라면 이를 대비하고, 아니라면 바로 총공세를 합시다.”
당자성은 나름 최선의 절충안을 내놨다.
어느 한쪽이 만족스러울 만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반대로 불만족스러운 제안도 아니었다.
두 의견을 어느 정도씩 수용한 절충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천당가의 고수들이 직접 움직인다고 하니 그들로서는 손해 볼 일도 아니었다.
덕분에 특별한 반발 없이 결정이 났다.
‘도대체 무슨 수작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통하지 않는다!’
* * *
“공동파의 동태는 어떤가?”
“흐흐흐… 꼬투리 잡힐까 봐 문을 완전히 걸어 잠갔다고 합니다. 마옹.”
동태를 살피는 것은 사천무림만이 아니었다. 사해련의 고수들 역시 주변의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계획대로 진행하기 위해선 변수를 최대한 없애야 했다.
다행히 현재까지는 모든 것이 계산대로였다.
“마옹, 사천놈들이 지척에 있는데 기다리고만 계실 생각입니까?”
“색불께선 본인을 못 믿나 보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어인 연유로 움직이시지 않는지 궁금해서 여쭌 겁니다. 한시라도 빨리 적 공자님을 모셔야 할 테니 말입니다.”
적천우를 호위하기 위해서 움직인 사해련 고수들의 총책임자는 사대봉공의 한 명인 흑천마옹이었다.
그렇기에 모든 권한과 책임 역시 흑천마옹의 몫이었다.
그렇지만 만약 문제가 발생한다면 사해련의 십대고수인 자신들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실제로 태양마종의 죽음에 대한 책임으로 음양색불과 벽력마군이 이번에도 참전하게 된 것이 아니던가.
그러니 음양색불로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적 공자님에 대해선 걱정들 안 해도 되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가 사천놈들의 발을 묶어주는 것이 적 공자님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 것 아니겠소?”
“그 말씀은 설마……!”
흑천마옹의 말에 음양색불과 벽력마군의 눈이 커졌다.
그들은 이번 임무의 숨겨진 의도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과 달리 육참도부는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이를 의아하게 생각한 음양색불이 육참도부에게 물었다.
“…도부께선 이미 알고 계셨소?”
“몰랐네.”
예상과 달리 육참도부 역시 자신들처럼 모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들과 달리 놀라지 않으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헌데 어찌 놀라지 않으시오?”
“그게 놀랄 일인가? 이번 임무의 총책임자는 마옹이시네. 마옹께서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 뭘 그러게 생각이 많나? 생각이 많으면 실수도 많아지는데 말이야.”
음양색불과 벽력마군은 기가 막혔다.
말이야 그럴 듯하지만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다. 누가 단순무식한 자가 아니랄까 봐 육참도부는 너무 생각이 없었다.
허나 그렇다고 한들 그를 무시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비록 육참도부가 직위상 사대봉공의 아래인 호법이었지만, 그들과 견줄 정도로 강했다. 순수한 무위를 본다면 음양색불이나 벽력마군보다 위였다.
“하하하… 도부께서 이 늙은이를 그리 믿어주니 고맙소.”
“아니오, 마옹. 당연한 일이외다.”
음양색불과 벽력마군은 육참도부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 동시에 칼(刀)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신경조차 쓰지 않고 수련을 하니 저렇게 강할 수 있다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때였다.
“흑천마옹 님, 드디어 놈들이 움직였습니다.”
“…!! 벌써? 생각보다 인내심이 없는 놈들이었군.”
며칠은 더 고민할 줄 알았는데, 고작 이틀이 지나기 전에 사천무림이 움직였다고 하니 흑천마옹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흑천마옹 등이 사해련을 나선 이유는 적천우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허나 그의 안전을 도모하는 방법이 조금 달랐다.
직접 그를 호위하기 위해 움직이는 척하며 천하의 눈과 사천무림의 발을 자신들에게 묶으려고 하였다.
아무리 사파라도 사해련쯤 되는 거대한 집단이라면 명분이 중요했다.
명분에서 밀린다면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 전체가 움직인 것은 아니고, 당가놈들로 추정되는 자들 일부만 먼저 움직인 것 같습니다.”
“정찰대라… 좋군. 아직은 의심을 품고 있다는 뜻이니까. 놈들이 계속 의심할 수 있게 만들어라.”
“존명!”
자신들을 향한 사천무림의 의심이 커질수록 그들은 섣불리 움직일 수 없고, 오랫동안 감숙성에 발이 묶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적천우에 대해서 신경 쓰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사천성을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로.
* * *
“적 공자, 정말 성도를 지날 생각이오?”
“안 될 것이 있습니까?”
적천우 일행은 사해련에서 보낸 호위단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천웅방을 떠났다.
그렇게 호남성을 벗어난 적천우 일행은 놀랍게도 사천성으로 향했다. 서너 달 전의 일로 사해련이라면 자다가도 이를 가는 사천성을 향한 행보였다.
등하불명이라고 누구도 그들이 사천성을 통해서 청해 사해련으로 향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할 테니 오히려 허를 찌른 계책인 셈이었다.
게다가 사천무림의 고수들이 그들의 호위단을 막기 위해 감숙성으로 떠난 후인 만큼 금상첨화였다.
그렇다고 하지만 사천성의 성도인 성도(成都)였다.
무엇보다 사천당가의 본가가 있는 지역이기도 했다.
아무리 사천당가의 고수들이 다수 자리를 비웠다고 한들 너무 위험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허나…….”
“우려하신 점은 알고 있습니다. 허나 그렇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더 빨리 청해로 돌아갈 수 있는 경로가 없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소만…….”
음풍귀조로서는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그의 말이 틀린 점이 없어서였다.
다만 적천우가 말한 경로를 따라 움직인다면 사천당가의 권역인 성도는 물론 구파일방인 청성파의 청성산 역시 지나야 한다.
만에 하나 정체를 들키게 된다면 일이 커지게 된다. 물론 현재 적천우 일행도 결코 만만한 전력이 아니었다.
무려 초절정고수만 둘에, 절정 혹은 근접한 고수만 십여 명이나 되었다. 허나 고수도 인간이었다. 홀로 수백 수천 명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사천무림의 고수들이 삼천이나 자리를 비웠다고 하지만 수만 명의 무림인들이 있었다.
그만큼 위험도가 너무 크다는 뜻이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