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왜 그가 점창의 자존심인지를 알 수 있었다.
허나 이현성은 검신이었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보여줄 생각이었다.
“잘 봤습니다. 그럼 저도 보여드리겠습니다.”
“흐음…….”
순간 이현성 역시 기세가 바뀌었다.
그 기세만으로도 관일창군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지금까지는 관일창군의 실력을 보기 위해서 무위를 낮추었다.
채챙! 챙! 챙! 챙!
이현성의 검이 관일창군의 창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급증한 기세와 달리 검에 실린 내공은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관일창군은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신창합일의 경지에 도달한 것은 관일창군만이 아니었다.
간신히 신창합일의 상태에 도달한 관일창군과 달리 이현성은 마음먹으면 언제든 신검합일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것이 벽을 넘은 자와 넘지 못한 자의 차이였다.
초절정지경이 인간으로서 끝에 도달한 것이라면, 화경은 인간을 초월한 경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화경을 초인지경(超人之境)이라고 부르는 것이기도 하였다.
쾅!!
관일창군은 이현성의 검을 막아냈으나 다섯 보나 밀려났다.
이게 바로 두 사람의 격차였다.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관일창군은 포기하지 않았다.
“하…하합!!”
관일창군의 창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그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기에 더 이상 이현성과 격차를 줄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오히려 이현성은 전력을 다하지 않은 상태이니 그 격차가 더 벌어진다면 몰라도.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관일창군의 창이 다시 점점 강렬해지기 시작했다.
이미 벽에 도달한 그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위험해!’
이현성은 관일창군을 보며 위험을 감지했다.
그의 창이 자신을 위협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위험해 보이는 것은 오히려 관일창군, 본인이었다.
몸과 창이 하나가 되는 신창합일을 넘어서 관일창군의 정신이 창에 빠져버린 듯싶었다.
그의 창이 정신을 홀리는 마물은 아니었다.
허나 강해지고 싶다는 너무도 강렬한 염원에 의해 그의 정신이 창에 매료되어 버린 것이다.
흔치 않은 경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전혀 없는 일도 아니었다.
예로부터 무림에서 검귀(劍鬼)과 광마(狂魔)라고 불리는 자들 중 일부는 이와 같은 경우였다.
사술이나 마공을 익힌 것이 아니더라도 너무도 순수하게 무(武)에 빠진다면 스스로를 잃는 경우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현성은 관일창군에게서 그 흔적을 엿보게 되었다.
‘안 돼. 관일창군께서 창귀가 되어버리는 일만은 막아야 해!’
관일창군은 점창제일 고수이자, 운남무림의 정신적인 지주였다.
그가 창귀가 되어버린다면 운남무림의 사기는 곤두박질치고 만다.
물론 사일신군이 있다고 하지만 그와 관일창군은 별개나 마찬가지였다.
이현성은 어떡하든 그가 창귀가 되는 것은 막고 싶었다.
‘강제로 의식을 끊어야 하나…….’
아직 완전히 자아를 잃은 것은 아니었다.
허나 점점 스스로를 잃고 창에 빠져버리고 있었다.
힘의 우위를 이용해서 관일창군으로부터 창을 떼어내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최선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극심한 후유증에 빠지게 될 수도 있었다.
정신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고, 간혹 광기를 보일 수도 있었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 다른 방법이 없는 걸까?’
점점 창에 빠져드는 관일창군을 보며 이현성은 고민이 되었다.
허나 고민할 시간이 얼마 없었다.
이제 자신을 향해서 살기까지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미 창귀의 전조가 보이게 되었다.
결국 이현성은 검을 꽉 쥐었다.
관일창군의 마지막을 악인으로 만들 수 없었다.
쾅! 쾅! 쾅!
관일창군이 창에 빠져들었다고 하지만 이현성은 검신이었다.
본격적인 무위를 발휘하자 관일창군은 다시 밀리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순간 이현성의 검에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기운이 모여들었다.
그러다니 검 끝에 동그란 고리가 되었다.
검환(劍環). 검강이 초절정고수의 상징이라면 검환은 화경고수의 상징이었다.
검환이라면 창에 홀린 관일창군에게서 창을 떼어낼 수 있겠지만, 그로 인한 내상도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헉! 뭐야!”
암천의 검 끝에 형성된 고리가 태극문양으로 변해버렸다.
태극검선이 그에게 전한 태극의 정수가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암천의 검 끝에 발현된 태극문양은 점점 커졌다.
허나 태극검선이 펼쳤을 때에 비해서는 아직도 부족했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태극의 정수는 단순히 태극혜검의 깨달음이 아니었다.
그보다 근본적인 태극 그 자체였다.
태극은 이현성이 익힌 혼원신공의 혼원(混元)과 다른 의미로 만물의 근원이었다.
태극검선이 자신에게 그랬듯이 관일창군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줄지도 모른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는지 관일창군이 물러나려고 했다.
허나 이현성은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태극문양이 관일창군을 덮쳤다.
콰쾅!!
“사, 사형! 비켜라!”
“신군, 주군을 믿으시오! 그분께서 창군을 해할 리가 없지 않소!”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사일신군은 본능적으로 달려가려고 했다.
허나 암월에 의해서 저지되었다.
일갑자 동안 함께 살아온 사형의 일이었기에 사일신군은 눈이 뒤집어질 뻔했다.
하지만 암월의 호통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하, 하지만… 오! 원시천존이시여…….”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의식을 잃은 관일창군의 전신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주름진 사일신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관일창군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관일창군은 창에 빠져든 정신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고대하던 벽을 넘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화경에 접어들려 하고 있었다.
허나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관일창군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이현성에게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거대한 태극문양이 형성되더니 기의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단순히 태극의 정수로 인해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혼원신공과 하나가 된 상청도량심결이 태극의 정수에 의해서 반응하게 되었다.
상청도량심결은 혼원과 태극을 포용하기 시작했다.
만약 이를 성공한다면 이현성의 무위는 크게 진보하게 될 것이다.
‘주군, 당신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 * *
“형님을 기다리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철우 형님.”
“그랬으면 좋겠으나 적묘의 상태가 좋지 않아.”
이현성이 자리를 비운지도 두어 달이 지났다.
장원 밖을 나갈 수 없는 철우에게 좋은 동생이 생겼다. 바로 이현호였다.
친형인 이현성의 의제라는 철우에게 호기심이 생긴 이현호가 먼저 그를 찾아갔다.
처음에는 어색했으나 이현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두 사람은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덕분에 철우는 장원 밖을 나가지 못했으나 답답하지는 않았다.
그러는 사이 적묘의 체력은 점점 좋아졌다. 허나 그러던 중 문제가 생겼다.
금제로 인해 적묘의 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종리우와 한은설 덕분에 진정이 되었으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그럼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현호 동생, 자네까지 수고할 필요는 없네.”
“아닙니다. 가는 길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현호는 대략적으로 철우와 적묘의 숨겨진 과거를 눈치챘다.
그렇기에 두 사람만 보내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자리를 비운 이현성을 이제까지 기다린 이유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형님도 자리를 비우셨는데, 자네까지 장원을 비우는 것은…….”
“어차피 장원은 형수님들께서 계시니 상관없습니다.”
“아니, 내가 대신 갈게.”
그때 문 밖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무척이나 익숙했다.
문이 열리고 한 여인이 들어왔다.
“현영 누이, 여긴 어인 일이오?”
“철우 오라버니가 여산에 가신다는 것 때문에 왔어요.”
철우의 방을 찾아온 여인은 이현성과 이현호의 누이인 이현영이었다.
이현호만큼은 아니었지만 이현영도 철우와 인연을 맺었다.
이현성의 의제라면 자신에게도 오라버니였기 때문이다.
“누이까지 갈 필요는 없어.”
“아니에요. 안 그래도 본산에 다녀올까 싶어서요. 그리고 현호 넌, 요즘 숙부님께 다시 천검을 배우고 있잖아.”
“그야… 뭐…….”
이현호는 최근 한승에게 다시 천검을 배우고 있었다.
마음 속 상처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옅어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현영이 그를 용서하면서 그들의 관계를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물론 이현영이라고 해서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 때문에 이현호까지 계속 이런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게 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녀의 결단이 그들에게 많은 변화를 주었다.
“누이의 말이 맞네. 이 중요한 시기를 놓치는 것은 옳지 않아.”
“으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천검의 구결과 초식은 수년 전에 전수받았다.
허나 마음의 상처로 인해 천검을 놓은 지 제법 되었다.
그로 인해 그의 검에 쓸데없는 습관이 붙어 버렸다.
이현호는 한승의 가르침 하에 다시 천검을 익히는 중이었다.
“언니들에게는 제가 말해둘게요.”
“부탁하지.”
이현성이 없는 동안 장원의 책임자는 장주 부인인 제갈현지와 문교교였다.
그렇기에 장기간 출타하기 위해서는 그녀들에게 언질을 해둘 필요가 있었다.
허나 그들은 아직 몰랐다.
성지로 불리는 여산 성수의가가 사실은 호굴(虎窟)이라는 것을…….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