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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237화 (237/314)

237화.

그의 심정을 알려주듯 사마염의 눈빛에서 살광이 번들거렸다.

당연하였다. 빚을 지고 그냥 넘어갈 그가 아니었다.

“해서 자네에게 부탁이 있네.”

“하명하십시오. 방주님.”

무려 천웅방주의 부탁이었다. 뭔지 알 수는 없으나 거절할 수는 없었다.

허나 이어진 천웅방주의 말은 너무도 뜻밖이었다.

“귀교로 돌아가 주게.”

“…! …그 말씀은…….”

사마염은 순간적으로 천웅방주의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와중에 돌아가라니 이 말을 어찌 해석해야 한단 말인가.

“저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면 당황해서 예상치 못한 틈을 보일 걸세. 틈은 우리에게 명분을 만들어 주겠지 않겠나. 내 부탁을 들어줄 텐가?”

“…방주님의 뜻이 그러시다면 따르겠습니다.”

“고맙네. 그리고 의식을 잃은 자들은 내가 돌아간 후 깨어날 걸세.”

그 말만 남기고 천웅방주가 사라졌다. 처음부터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홀로 남은 사마염의 눈빛에 광기가 번들거렸다.

“감히 나와 본교를 우롱해? 오냐, 그 요망한 생각을 모조리 부숴주마.”

* * *

“건방진 새끼! 우리도 돌아가겠다!”

천사교로 돌아가겠다는 사마염의 선언에 지옥성의 소성주인 나백은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간 쌓였던 사마염에 대한 악감정이 한 번에 터지고 말았다.

그런 그의 선언에 또 다른 소성주인 란희는 살짝 당황했다.

그녀라고 제멋대로인 사마염이 좋게 보이지는 않았으나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일 기겁한 자는 그녀가 아니라 독군이었다.

“나 소성주,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인가?”

“더 이상 제멋대로인 천사교와는 못 어울리겠소.”

“하지만…….”

“우리 대 지옥성이 언제부터 천사교의 눈치를 봤단 말이오! 독군께서는 분하지도 않으시오?”

“그야…….”

나백이 지옥성의 자존심을 내세우니 독군도 선뜻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어설프게 변명을 했다가는 스스로 지옥성의 자존심을 짓밟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 역시 오독문주로서 지옥성의 요직을 맡고 있는 이상 지옥성의 자존심을 구길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백의 선언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제멋대로인 것은 사마염 하나로 충분하였다.

독군은 눈빛으로 란희 소성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녀는 내키지 않으나 양부의 이복동생인 독군의 부탁을 외면할 수 없는지 입을 열었다.

“소성주님, 진정하십시오. 너무 흥분하신 것 같습니다.”

“이게 지금 흥분하지 않을 일이오? 란 소성주?”

“…….”

평소의 그와는 다른 반응에 독군은 물론 란희 역시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흥분했어도 란희의 말에는 따라주었던 나백이었다.

그런데 평소와 다르게 단호하게 말했다.

“나 나백은 대 지옥성의 제일 소성주로서 선언하겠소. 우린 본성으로 돌아가겠소! 이의는 결코 용납하지 않겠소!”

“…제일 소성주님의 뜻이 그러시다면… 따르지요.”

“아, 알겠소. 소성주.”

아무리 독군의 부탁이라지만, 이렇게까지 단호한 나백을 보며 란희는 더 이상 설득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백의 선언에 제이 소성주인 란희가 동의하자 독군은 반대할 힘을 잃고 말았다.

연배나 배분은 독군이 더 높을지 모르지만, 지옥성에서의 지위는 소성주인 그들이 더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회담의 대표 역시 그들이니 결정권 역시 독군에게는 없었다.

꼬여가는 상황에 독군은 짜증만 났다.

‘젠장. 이게 아닌데…….’

천사교에 이어서 지옥성 역시 돌아갈 것을 선언하자 사실상 사파사세의 회담은 여기서 중단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연맹은 물론 동맹조차 확실하게 결론을 짓지 못한 상황에서 그리되었다.

그럼에도 회담의 주최 측이라고 할 수 있는 천웅방에서도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 천사교와 지옥성이 돌아갈 준비를 하자 유일하게 결정을 내지 못한 자들은 사해련뿐이었다.

* * *

“부르셨습니까, 방주님.”

“앉게.”

천웅방주의 공식적인 부름을 받고 사해련의 대표인 적천우가 그의 집무실로 왔다.

천웅방주가 자리를 권하자 적천우가 자리에 앉았다.

“천사교의 소교주와 지옥성의 소성주들은 돌아가겠다고 찾아왔네. 자넨 어쩔 생각인가?”

“…으음…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저희 역시 본련으로 돌아가야겠군요.”

적천우는 화경고수인 천웅창제와 독대를 하면서도 묘하게 여유로웠다.

천웅창제의 네 제자들은 물론 팔패조차 그의 앞에서 긴장하는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반응이었다.

덕분에 천웅창제는 적천우에게 묘한 흥미가 생겼다.

“그렇군, 알겠네. 자네가 원한다면 본방의 고수들을 지원해주겠네.”

“말씀은 감사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천웅창제는 자신의 호의를 거절한 적천우에게 불쾌감이 아닌 묘한 느낌을 받았다.

부친인 독종을 잃고 독이 바짝 오른 암군이었다.

그런 그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적천우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천웅창제는 자신의 도움을 거절하는 적천우의 배포가 싫지 않았다.

다만 그게 허세라면 자신의 호의를 받을 자격조차 없었다.

‘따로 믿는 구석이 있단 말이군. 뭐, 거절한 이상 내가 관여할 필요는 없지.’

현재 적천우 일행의 전력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웬만한 중소문파는 반 시진도 채 걸리지 않아서 무너트릴 수 있을 정도였다.

허나 그를 노리는 자는 사천당가의 신임 가주인 암군 당자성이었다.

사천당가가 태양마종을 위시한 사해련 고수들에 의해 많은 피해를 입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사천당가는 여전히 사천무림의 패자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사천당가만 아니라 사천무림 전체가 사해련에 이를 갈고 있는 상태였다.

적천우 일행을 노리는 곳은 사천당가만 아니라 사천무림 전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지금이야 천웅방의 권역 안에 있기에 안전하지만, 호남성을 벗어나는 즉시 사천무림의 습격을 받게 될 것이다.

사천성을 지나가지 않고, 섬서성과 감숙성을 통해서 이동할 지라도 그리 될 것이다.

원래라면 타문파의 세력권 내에서 피를 흘리는 것은 그 문파를 무시하는 행위였다.

감히 화산파와 종남파가 있는 섬서성에서 그런 무지한 짓을 벌일 수는 없었다.

허나 복수에 눈이 먼 당자성이라면 그조차 무시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였다.

‘은혜는 열 배, 복수는 백 배’를 가훈으로 삼는 사천당가이기 때문이다.

“알겠네. 자네 뜻대로 하게.”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방주님.”

“그만 돌아가 봐도 좋네.”

적천우는 천웅창제의 축객령에 예를 다한 후 돌아갔다.

그런 그가 나간 문을 바라보며 천웅창제가 피식거렸다.

그리고 누군가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네 상대는 사마염과 나백이 아니라 저 녀석이 될 것 같구나. 부디 날 실망시키지 말거라.”

* * *

“감히 본파를 뭐로 보고!”

노인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버럭 화를 냈다.

그런 그를 보며 비슷한 연배의 또 다른 노인이 달랬듯 말했다.

“사제, 진노를 풀게나.”

“흠흠… 소제가 너무 흥분해서 장문 사형께 못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닐세. 나 역시 화가 나네. 허나 이 일은 감정만으로 결정하면 안 되는 일일세.”

두 사람은 구파일방의 하나인 공동파를 대표하는 인물들이었다.

정확히는 공동파의 장문인과 대장로였다.

허나 당대 공동파를 이끄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령이었다.

그건 다른 구파일방과 달리 공동파는 아직도 전대 인물들이 일선에서 물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숙성은 사해련의 총단이 있는 청해성과 인접해 있었다.

그리고 장문인 자리를 물려줄 만한 인재가 없기 때문에 두 사람이 아직 일선에서 물러나지 못했다.

물론 공동파에 인재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현 장문인인 복마검성(伏魔劍星)의 눈에 차는 제자가 없다는 뜻이었다.

사파와 달리 정파는 꼭 그 문파의 최고수가 장문인을 맡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초절정지경에 오르지 않은 자에게 장문인 자리를 물려줄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일흔이 넘은 고령임에도 그들은 일선에서 물러날 수 없었다.

“장문 사형 그 말씀은… 설마 사해련 그 망종들의 억지를 들어주자는 것은 아니겠지요?”

“사제, 이성적으로 판단하게. 치욕스러우나 본파는 사해련을 막을 힘이 없네.”

복마검성의 사제인 자전도성(紫電刀星)이 이렇게 분개하는 것은 한 통의 서신 때문이다.

천웅방에 있는 사해련주의 손자를 호위하기 위해서 고수들을 파견할 예정이니, 양해해달라는 사해련주의 요구였다.

서신의 내용만 본다면 문제될 것은 없었다.

감숙의 패자인 공동파에게 사전에 허락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그 속을 본다면 결코 쉽게 넘어갈 수 없었다.

일천이 넘는 대규모 병력이며, 초절정고수들 역시 여럿 포함되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청을 들어준다면 세간에는 공동파가 사해련을 두려워서 길을 열어주었다는 오명을 받게 된다.

물론 실제로 그렇기에 오명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장문 사형, 본파는 약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감숙에는 본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난주사가와 감숙칠숙이 있지 않습니까?”

“물론 감숙무림의 힘을 모은다면 이번에는 막을 수도 있겠지. 그 다음은 어쩔 텐가?”

감숙성하면 공동파만 떠올리지만, 명문세가들과 뛰어난 고수들 역시 즐비했다.

그 대표격이 난주사가(蘭州四家)와 감숙칠숙(甘肅七叔)이었다.

감숙성의 성도인 난주의 동서남북에 위치한 난주사가는 서역으로 오가는 무역을 토대로 막강한 부와 권력을 가진 무림세가였다.

그리고 공동파를 제외하고 가장 강한 칠인의 명숙인 감숙칠숙.

최소한 감숙성에서는 법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공동파의 뒤를 받쳐주기에 감숙은 변방취급을 받으면서도 굳건히 버틸 수 있었다.

“그, 그야… 사천과 섬서에서 지원이 온다면… 해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이 사달이 난 것이 사천 때문인 것을 모르는가? 그들이 끼면 감숙은 피로 물들 걸세! 그리고 섬서 아니, 자하검제께서 당도할 때까지 사망도제를 막지 못한다면 어쩔 텐가?”

“…….”

사해련의 문제로 사천무림에 도움을 청한다면 그들은 분명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눈이 시뻘개져서 사해련에게 달려들 것이 뻔하였다.

그렇게 된다면 적당한 선에서 물러날 수 없고, 끝을 봐야 한다.

사해련이 무너지든지 사천과 감숙무림이 무너지든지.

사파사세에서도 가장 머릿수가 많은 사해련이었다.

머릿수만 믿고 사해련과 싸우는 것은 결코 현명한 생각이 아니었다.

사실 사해련주의 손자를 호위하기 위한 고수들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 정도는 감숙무림의 힘만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걱정하는 것은 사해련주인 사망도제 때문이다.

그는 화경고수였다. 그것도 오제의 일인이었다.

안타깝게도 공동파는 물론 감숙무림에는 사망도제를 감당할 화경고수가 없었다.

결국 사망도제를 막기 위해서는 화산파 자하검제의 도움이 필요하였다.

과연 그가 도착할 때까지 사망도제를 막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불가능하였다. 그걸 알기에 자전도성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 사형도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이 가슴 아프다는 것을 이해해주게나. 사제.”

“…죄송합니다. 소제보다 더 가슴 아플 분이 장문 사형이실 터인데…….”

결국 공동파는 치욕을 감수하며 감숙성을 가로지르는 사해련의 행보를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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