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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232화 (232/314)

232화.

그런 그의 눈이 어딘가로 향했다.

“쿨럭… 이제 나의 소명은 쿨럭… 끝이 난 것인가…….”

그곳에는 한 청년이 널브러져 있었다. 바로 이현성이었다. 그는 의식을 잃은 듯 쓰러져 있었다.

허나 노쇠한 태극검선에 비하면 너무도 온전한 모습이었다. 이현성의 무위가 태극검선을 넘어섰다는 말인가!

그때 누군가 두 사람만 있던 봉우리에 나타났다.

“…주군!!”

갑자기 나타난 자는 바로 암월이었다. 쓰러진 이현성을 발견한 암월은 놀라서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때였다.

“쿨럭… 그만! 그 아이를 쿨럭… 건드리지 말게.”

“태극…검…….”

쓰러진 이현성을 발견한 암월은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다. 호법으로서 그를 또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왔다.

그 분노는 태극검선에게 향했다.

평소의 태극검선이라면 암월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한다.

허나 지금의 그는 평소의 태극검선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어린아이조차 위협이 될 정도로 노쇠한 상태였다.

“사, 사숙……!”

“사…부님……!”

암월의 뒤를 쫓은 무당삼검성이 늦지 않게 도착했다.

그들은 심후한 내공을 잃고 죽어가는 태극검선을 보며 절규했다. 언제나 무당을 지켜줄 것만 같았던 그의 이 초라한 모습은 그들을 너무도 가슴 아프게 만들었다.

“나의… 마지막을 너희에게 쿨럭… 전하지 않음을 쿨럭… 서운치 마라…….”

“아닙니다. 사숙. 서운하지 않습니다. 말을… 말을 아끼십시오…….”

태극검선은 자신의 사질이자 전대 장문인인 적도진인을 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제 사형을 빼다 박은 사질을 보며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자신의 뒤를 맡길 존재들이 이리도 많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소명은 다했느니라.”

“사, 사숙…….”

태극검선의 기침이 점점 사라지고 그의 안색이 잠시 좋아졌다. 부상이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그저 회광반조(回光返照). 생명의 불길이 꺼지기 직전에 잠깐 불길이 살아난 것에 불과하였다.

그것을 알기에 무당삼검성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한껏 흥분했던 암월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증명하듯 이현성의 중심으로 태극문양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 기운을 느꼈는지 태극검선은 너무도 평온한 미소를 지었다.

“나의… 마지막… 짐을 떠넘긴 것은 미안하지만… 잘 부탁한다. 아이야…….”

“사, 사부님!!”

무당삼검성의 막내이자 태극검선의 제자인 적성진인은 영면에 든 사부를 보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사부 앞에선 그저 어린 제자일 뿐이었다.

“사제, 사숙을 모시고 먼저 돌아가게. 사숙께서 맡기신 마지막 소명은 내가 마무리 지을 테니까… 대사형께서도 먼저 돌아가셔도 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사형.”

적성진인은 사부인 태극검선을 조심스럽게 안고 힘없이 돌아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적도진인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적성진인의 뒤를 따랐다.

홀로 남은 적풍진인은 안타까운 눈으로 이현성을 바라봤다.

태극검선의 진전을 전해 받았다는 것은 분명 기연이었다. 허나 동시에 그의 소명 역시 전해 받은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앞으로의 시련 역시 감당해야 한다.

‘무량수불…! 도우여. 부디 사숙의 소명을 지켜주시오.’

* * *

쾅!

“사마염!”

사파사세의 회담은 벌써 4차례나 진행되면서 나름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허나 3차에 이어서 이번 4차 역시 한 사람 때문에 결정이 나지 않았다.

천사교 소교주 사마염. 첫날부터 협조적이지 못했던 그는 여전히 회담 분위기를 흐렸다.

“나백… 죽고 싶냐.”

빠드득……!

사마염의 태도에 나백이 이를 갈며 말했다.

“네놈이 정녕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리겠구나!”

사파사세 모두 사세연합에 대해서 우려와 동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문제는 연합방식이었다. 동맹을 통해 서로 협조 및 지원을 하자는 쪽과 사파연맹을 통해서 유기적으로 무림맹에 대응하자는 쪽으로 나뉘었다.

두 가지 방식 모두 장단점이 있는 만큼 어느 것이 낫다고 꼬집을 순 없었다. 문제는 후자를 선택할 경우 누가 사파연맹의 수장이 될 거냐는 것이다.

사파사세의 주인들 모두 그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후자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마염은 당연히 맹주는 자신의 조부라고 생각했다.

칠사의 수좌인 천사(天邪). 사파제일고수인 자신의 조부 외에는 맹주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머지 삼세의 대표는 무척이나 불쾌했다. 특히 지옥성의 소성주인 나백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옥성은 화경고수가 무려 둘이나 속한 세력이었다.

천사교주를 제외하곤 내세울 것 없는 천사교를 우위에 놓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 자존심 싸움이 간신히 이룬 회담에 금이 가게 만들었다.

“소, 소성주님 성주님께서 이런 결과를 원치 않으실 겁니다.”

“교주님의 뜻을 생각해서 부디 참아주십시오. 소교주님.”

두 사람이 충돌한다면 피를 보게 될 것이고, 이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정사대전을 원하는 독군과 환희요후는 다급히 그들을 달랬다.

두 사람의 만류에도 흥분한 그들의 분기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에 독군과 환희요후는 또 다른 소성주인 란희와 환요에게 눈짓을 보냈다.

독군은 독왕의 이복동생이고, 란희는 독왕의 수양딸이니 두 사람은 숙질지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내키지 않으나 숙부의 청도 있고, 란희 역시 더 이상의 분쟁은 원치 않았다.

“나 소성주님… 진정하시지요. 상대가 먼저 손을 쓴다면 몰라도 우리가 먼저 명분을 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 흠흠… 란 소성주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입을 다물고 있던 란희의 말에 나백은 그제야 진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환요는 자신의 풍만한 가슴에 사마염의 한쪽 팔을 끌어안으며 그를 달랬다.

이런 일이 자주 있었는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진정하셔요 소교주님. 소녀를 봐서라도요. 네~에~”

“흐흐… 좋다. 내 너를 봐서 한 번만 참으마.”

환요는 타고난 색기와 사내를 녹이는 기술까지 터득한 요녀였다.

그녀가 홀리지 못하는 사내는 없을 정도였다.

사마염은 그녀의 육탄공세에 화가 누그러졌다.

최악의 상황은 면한 셈이었다.

이를 지켜보는 사해련의 적천우는 못마땅했다.

‘저 머저리 때문에 일이 자꾸 꼬이는데… 죽일까.’

적천우는 잠깐이지만 사마염을 제거하는 것까지 고려했다. 하지만 그건 생각으로만 그쳤다.

죽일 자신은 있으나 자칫 일이 틀어질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었다.

간신히 두 사람의 충돌만은 막았으나 4차 회담 역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 * *

“고개를 드십시오. 이 도우.”

의식을 잃었던 이현성이 눈을 떴다.

그런 그는 충격적인 말을 전해 듣게 되었다.

태극검선께서 등선하셨다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에게 태극의 정수를 전하고 그리되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이현성은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은 사숙께서 결정하신 일입니다. 이 도우의 잘못이 아닙니다.”

“…….”

적도진인의 말에도 이현성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태극검선께서 등선한 것은 아닐지라도, 자신에게 태극의 정수를 전하고 등선을 하셨다. 생면부지인 자신에게. 그러니 무당파에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미안한 것은 본파입니다. 무량수불…! 본파의 제자들인 저희가 부족해서 사숙의 짐을 이 도우에게 짊어지게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

태극검선의 깨달음인 태극의 정수를 무당삼검성 혹은 무당칠자에게 전하는 것도 가능했다. 허나 가능할 뿐 그것을 소화하기에는 그들의 그릇이 너무도 작았다.

그렇기에 태극검선은 태극의 정수를 담을 커다란 그릇이 필요로 했다. 적임자가 바로 검신이라고 불리는 화경고수 이현성이었다.

태극검선이라고 어찌 무당의 제자에게 태극의 정수를 전해주고 싶지 않았겠는가. 평화로운 시기였다면 그는 다른 결정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허나 천기가 어지러운 것이 난세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고 있던 그로서는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난세평정을 위해서 태극의 정수가 필요할 것이고,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이가 현재 이현성뿐이었다.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이 도우… 부디 사숙의 소명을 이루어주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그분께 받은 선물을 무당에 돌려드리겠습니다.”

“무량수불…! 무량수불……!”

이현성의 말에 적도진인은 도호를 읊었다. 그날 이현성과 그의 일행들은 은밀하게 무당산을 빠져나갔다.

흡사 그들이 무당산에 오른 적이 없었다는 듯이…….

제갈인섭을 제외한 이현성의 일행은 운남성을 향해 빠르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허… 검선께서… 아미타불…….”

무당파는 태극검선의 등선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지금 같은 시기에 그의 등선이 정파무림에겐 혼란을, 사파무림에게는 헛된 바람을 넣을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등선을 눈치챈 자가 있었다.

“무엇이 그리 급하다고 먼저 가셨소. 이 늙은 중만 남기고…….”

무림의 살아 있는 전설, 성승은 천기를 보며 그의 죽음을 예측할 수 있었다.

성승과 태극검선은 동시대를 살아온 현 무림 최고의 어른들이었다. 그들과 동시대를 살아온 자들은 전 무림에서도 이제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미 한 갑자 반 이상을 살았으니까.

게다가 두 사람은 소림과 무당을 대표하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서 적지 않은 교분을 쌓았다. 그런 태극검선이 먼저 등선하자 안타까우면서 동시에 부러웠다.

“허허… 이 늙은 중은 언제나 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꼬…….”

그 역시 자신의 깨달음을 이현성과 공심대사에게 전해서 미래를 대비했다.

하지만 태극검선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아직 하늘이 그에게 내려준 소명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소명을 위해서 그는 아직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먼저 간 태극검선이 안타까우면서도 동시에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늘을 보는 성승의 표정은 더욱 어두웠다.

“얼마 남지 않았구나. 아미타불…….”

천기는 더욱 어지러워졌다. 난세가 얼마 남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그걸 알기에 성승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평생의 지기이자 짐을 나누어 짊어졌던 태극검선의 부재는 그를 더욱 힘겹게 만들었다.

“그때까지 그가 완성되어야 하거늘…….”

혈살성을 막기 위해서 천무성(天武星)이 완성되어야 한다. 천무성은 점점 그 빛이 더 영롱해지며 밝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혈살성의 검붉은 빛을 몰아낼 정도는 아니었다.

자칫 혈살성의 검붉은 빛에 천무성의 영롱한 빛이 가려질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태극검선은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 스스로 희생한 것이기도 하였다.

“혈살성이여, 이 늙은 중이 버티는 한 그대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는 없을 것이네.”

위장

“일이 무척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려.”

사파사세의 회담 연차가 늘어날수록 혈천 호법들의 밀담 역시 늘어났다.

천웅창제의 권역인 천웅방 내부에서 그들이 잦은 만남을 갖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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