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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228화 (228/314)

228화.

악적들이 얼마나 잔혹한 짓을 벌인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발견되지 않은 시체가 제법 되었다.

그들은 대부분 당가의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독중지화라고 불리는 당령도 있었다.

자리를 비워서 화를 피한 것이면 다행이지만, 그런 낙관을 할 때가 아니었다. 그것을 알기에 당가인들은 차마 당자성을 막을 수 없었다.

“네놈은 지금부터 폐관수련에 들어간다! 만족스러운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 무기한 수련을 하라!”

“아, 아버님!”

“닥쳐!”

당자성에 말한 만족스러운 경지는 바로 초절정지경이었다. 말이 초절정지경이지, 십년폐관을 한다고 해서 오른다고 장담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당가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천재인 독종 당철영조차 불혹을 훌쩍 지나서 초절정고수가 되었다.

십 년. 어쩌면 이십 년 이상 세상 밖에 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허나 그는 몰랐다. 당자성이 그에게 이런 혹독한 벌을 내린 진정한 이유를.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제 막 시작이었다.

당자성은 사천당가의 맥이 끊이지 않게 폐관수련이라는 명목 하에 그만은 안전한 곳에 숨겨두려는 것이다.

‘사해련, 이 자식들…! 왜 당가에게 원한을 사면 안 되는지를 반드시 알려주마!’

회담

“허허… 잘 왔네, 사위.”

소림에서의 용무를 마친 이현성은 곧바로 호북성으로 넘어왔다.

최종 목적지인 운남성으로 향하는 길목이기도 했고, 무당파의 협조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허나 그는 곧바로 무당산으로 향하지 않았다.

처가인 제갈세가가 지척이었기에 들르지 않을 수 없었다.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부인도 함께 왔으면 좋았겠지만…….”

“알고 있네. 자네가 맹의 부탁을 받고 움직이는 중이라서 함께 오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야.”

이현성의 운남행은 기밀 사항이었다.

그럼에도 제갈세가주인 제갈인섭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개방의 일을 알게 된 제갈윤호가 본가로 서신을 보내서 이현성을 지원하라고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그럴 리는 없으나 무당파도 개방처럼 협정서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거부한다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비록 장왕(掌王) 홍무개의 이름이 적혔으나 개방의 이름으로 적힌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그렇기에 무당파도 비슷한 결정을 내릴 경우 구파일방에서는 소림과 점창파만 묘족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셈이었다.

하다못해 정파무림의 양대 산맥이라는 소림과 무당의 이름이 같이 적혀야 협정서의 무게가 확실하게 실리게 된다.

그만큼 소림과 무당의 이름은 무겁다.

“무당은 내일 나와 함께 가고, 오늘은 함께 한 잔 하세나.”

“그러시지요. 장인어른.”

화경에 오른 이현성의 신위를 본 이후 제갈인섭은 사위임에도 그를 편히 대할 수 없었다.

그 역시 무림인이기에 화경고수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있었다.

허나 그걸 느낀 이현성이 먼저 사위로서 제갈인섭에게 다가갔다.

그의 살가운 태도에 제갈인섭도 이현성을 마음 편히 사위로 대할 수 있었다.

그런 지금은 아들처럼 친근하게 대하게 되었다.

평소와 달리 제갈인섭은 무척 기뻐하며 술자리를 열었다.

물론 이현성의 방문은 대외적으로 알려지면 안 되었기에 외부 손님을 청하지는 않았다.

“형님, 조카사위에게 한 잔 따라주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뭘, 내 눈치를 보느냐. 즐거운 술자리거늘…….”

술자리에는 제갈세가의 장로들은 물론 소가주인 제갈현도 그리고 그와 같은 항렬의 직, 방계 기재들이 모두 모였다.

제갈세가의 다음 대를 이끌 인재들과 이현성이 좋은 인연을 이어가게 하기 위함이었다.

장로들은 이현성의 신위를 봤기에 무공으로 처숙부의 위엄을 세우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술이라도 이기겠다는 속셈이었다.

“아, 나도 한 잔 따라주지.”

“내 술을 빼먹었으면 섭섭할 뻔했어.”

그들의 속셈을 눈치챘으나 악의를 가진 것이 아님을 알기에 내색하지 않고 그들이 따라주는 술을 전부 받아 마셨다.

한 잔, 두잔… 한 병, 두 병이 되었음에도 이현성은 취하긴커녕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내공으로 취기를 날려버리지 않음에도 그러했다.

‘녀석들 마음은 알겠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어.’

장로 중 유일하게 제갈인겸만이 그들의 장난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때 이현성이 입을 떼었다.

“절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한 잔 따르고 싶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럼 그럼! 우리도 한 잔 주게나.”

장로들은 ‘한 잔쯤이야’ 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들의 수락에 이현성은 손을 뻗었다. 그러자 무언가가 그의 손에 빨려 들어갔다.

그건 술단지였다.

장로들은 이현성에게 제대로 술을 먹일 생각으로 술병들만이 아니라 술단지 채로 가져다 놨다.

술자리에 참여한 2, 30대 장한들은 허공섭물(虛空攝物)로 술단지를 움직인 이현성의 신위에 입을 쩍 벌렸다.

허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럼 한 잔 따르겠습니다.”

“아, 알겠…헉!”

순간 술단지에서 물줄기 아니, 술줄기가 치솟더니 장로들의 술잔 안을 가득 채웠다.

그야말로 신기였다.

자신들은 꿈도 꿀 수 없는 기예임을 알기에 당황했다. 그래서 눈치채지 못했다.

고작 술을 담았을 뿐인데 제법 묵직하다는 사실을.

“자, 잘 마시겠네.”

“고, 고맙네.”

그렇게 이현성의 술을 받아 마신 장로들의 눈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현성이 공력으로 술의 주정만 뽑아서 자신들의 술잔에 담았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다.

그 모습을 보며 제갈인섭은 헛웃음을 지었다.

“다들 취했나 보구나. 술자리는 이쯤 할 테니, 너희는 따로 한 잔들 하거라.”

“예. 아버님.”

제갈세가의 다음 대를 이끌 2, 30대 혈족들은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지 못했으나 자신들의 부친 혹은 숙부들이 이현성에게 장난을 치다가 도리어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들에겐 하늘같은 분들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자 헛웃음만 나왔다.

동시에 약간의 통쾌함(?)을 느끼게 되면서 이현성에게 호감이 더 커졌다.

덕분에 그들만의 술자리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 * *

“장인어른, 밤새 편안하셨습니까?”

“자넨 잘 잤는가.”

이현성은 제갈인섭에게 아침 문안인사를 했다.

그리곤 그와 함께 조찬을 즐겼다.

조찬 자리에는 두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제갈세가의 몇몇 직계혈족들 역시 함께 자리했다.

평소에도 이렇게 모여서 조찬을 하지는 않았으나 이현성과 조금이라도 인연을 쌓으라는 제갈인섭의 배려였다.

그런데 몇몇을 제외하곤 대부분 안색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현성과 함께 조찬을 즐기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전날의 과음이 문제였다.

특히 장로 몇몇은 이 자리에 참석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이현성을 골려주려다가 된통 당한 셈이었다.

“…다들 생각이 없나 보구나.”

식사를 잘 못하는 장로들과 조카들을 보며 제갈인섭이 한 소리를 했다.

술병이 난 것은 이해하지만 아침을 든든히 먹지 못하면 하루를 잘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들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억지로 한술을 떴다.

그렇게 간신히 조찬을 마친 제갈인섭은 장로들을 보며 말했다.

“잠시 자리를 비울 테니, 내 업무는… 너희에게 맡길 상황이 아니구나. …현도, 네가 소가주로서 처리하거라.”

“소, 소자가 말입니까!”

제갈현도는 부친이자 가주인 제갈인섭의 지목에 깜짝 놀랐다.

그의 업무를 대리하라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가주 대리로 임명받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

허나 제갈인섭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네 숙부들에게 맡길 상황이 아니지 않더냐. 물론 네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사안이 발생하면 장로들과 상의해서 결정해라. 어차피 며칠이면 되니 너무 부담 갖지는 말거라.”

“아, 알겠습니다.”

아무리 제갈현도가 소가주라고 해도 당장은 큰 영향력이 없었다.

무림세가의 특성상 혈족으로 구성되었고, 직위보다 항렬이 영향을 끼칠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물론 소가주인 제갈현도를 인정하지 않는 자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소가주의 권한이 막대한 것은 아니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며칠만이라지만 소가주로서 가주 대리 업무를 본다는 것은 무척이나 감격할 일이었다.

사실 제갈현도의 나이가 그리 어린 것도 아니니 슬슬 세가의 일에 관여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장로들 역시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 겹치면서 그에게 기회가 생긴 셈이었다.

“그럼 잠시 다녀오마. 세가를 잘 부탁한다. …아들아.”

* * *

“이야~ 우리가 살던 데랑은 완전히 다른데?”

풍족한 호남성의 성도답게 장사(长沙)는 모든 것이 넘쳐났다.

그만큼 활기찬 도시이기도 했다.

어느 촌구석에서 이제 막 나온 촌뜨기처럼 장사의 번영된 모습에 놀라워하는 자들이 있었다.

허나 누구도 그들을 비웃지 못했다.

행동은 가벼워 보이나 그들에게서 풍기는 기세가 범상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그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린 자가 있었다.

“그만하지 못해. 적 공자님의 체면이 상하시게 되면 너흰… 죽는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누님.”

조금 전까지만해도 한량과 같았던 사내들이 자신보다 예닐곱 살은 어려보이는 여인의 말에 쩔쩔맸다.

그 모습을 보며 동행중인 노인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히 한량들이 여인에게 쩔쩔매서가 아니었다.

노인으로선 그들의 정체를 알기에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과연 대군사님의 손녀답군. 저 거친 놈들이 그녀의 말에 쩔쩔매다니…….’

노인의 정체는 음풍귀조(陰風鬼爪). 사해련 사대봉공 중 한 명이었다.

사파사세 회담의 사해련 대표라는 중책을 맡은 것은 련주의 손자인 적천우였다.

아무리 련주의 손자라고 해도 아직 불혹도 되지 않은 자를 사해련을 대표로 세우는 것을 두고 모두 우려했다.

그렇기에 만약을 대비해 음풍귀조와 사해련 고수들을 호위 명목으로 동행시켰다.

젊은 혈기에 실수를 범한다면 이를 수습할 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허나 그건 대외적인 이유일 뿐 그가 동행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상대가 대군사님의 손녀라도, 약자에게 쩔쩔맬 녀석들이 아닌데…….’

음풍귀조는 사해련의 사대봉공인 동시에 또 하나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바로 혈천의 호법원 소속 호법이란 신분이었다.

그런 그와 달리 동행한 사해련 고수들은 사내들의 정체는 물론 혈천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그저 련주의 손자인 적천우의 호위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사해련의 대표인 적천후의 안위를 위해서 음풍귀조와 함께 차출된 사해련의 고수들이었다.

하나 같이 부대주급 이상의 실력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눈에 사내들의 가벼운 태도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결국 시비는 주먹다짐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박살이 난 쪽은 사해련 고수들이었다.

사해련의 부대주급이라고 하면 절정 혹은 그에 근접한 고수를 일컫는데도 그리되었다.

절정급 고수들조차 박살낸 사내들이 여인에게 쩔쩔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너무 구박하지 말게. 그리고 너희도 희매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고…….”

“무, 물론입니다. 대…공자님.”

사해련주의 손자인 적천우가 끼어들자 사내들은 살았다는 표정이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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