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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227화 (227/314)

227화.

천하의 검신 이현성에게도 그러했다.

그렇기에 그 역시 옷을 단정하게 정리했다.

암자의 안은 외부에서 보이는 것처럼 작고 아담했다.

무림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의 거처로 보기에는 너무 허름했다. 그런 이현성의 생각을 읽었는지 료굉대사는 인자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이 늙은 중이 홀로 지내기에 차고 넘치는 공간이지만, 젊은 자네에게는 갑갑할 수도 있겠구나.”

“아, 아닙니다. 료굉 할아버지.”

정곡을 찔렸는지 이현성은 당황했다. 허나 당황한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함께 료굉대사의 암자로 들어온 공심대사도 내심 당황스러웠다.

이현성의 입에서 할아버지라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놀랄 것 없단다, 공심아. 그와 도왕 팽시주가 조손처럼 지내기에 나의 존대가 불편하였다고 하더구나.”

“아미타불…….”

료굉대사의 말에 공심대사는 불호를 읊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대수롭지 않은 일에 당황한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평생을 소림의 승려로 살아온 료굉대사에게 손자가 있다는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친손자가 아니라도 그의 나이라면 아니, 자신의 나이라도 할아버지라 불릴 수 있다는 것을.

수양이 얕지 않은 그였지만, 사부의 곁에선 언제나 어린 제자일 뿐이었다.

“내 너를 이리 부른 것은 한 가지를 말해주기 위함이란다.”

“경청하겠습니다.”

료굉대사의 진중한 말에 이현성은 들을 준비를 했다.

천하의 성승이 자신을 부를 정도라면 결코 가벼운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30년 전, 하늘에서 밝게 빛나던 별 하나가 빛을 잃고 사라진 일이 있었다.”

그의 입에선 뜬금없는 말이 나왔다. 허나 그 뜬금없는 말도 성승의 입에서 나왔다면 무게가 다르다.

그렇기에 이현성은 당황스러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료굉대사의 말에 집중했다.

“그리고 10년쯤 지났을 때 사라졌던 별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허나 예전과는 달랐다. 밝고 아름다운 빛을 내던 이전과 달리 붉고 어두운… 무척이나 불길한 빛을 내기 시작했단다. 그 별은 20년 동안 점점 강성해지더니 언제부터인지 주변 별들의 빛을 빼앗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하늘의 수많은 별이 점점 빛을 잃고 사라졌지.”

점점 료굉대사의 말은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도대체 그가 무엇을 전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경청했다.

“다행인 점은 그 불길한 별을 견제해주는 별들이 있었기에 모든 별이 빛을 잃는 최악은 면할 수 있었지. 허나 견제하던 별들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눈치를 챘겠지만, 빛을 잃어가는 별 중 하나가 나의 별이란다.”

“사, 사부님!”

“하, 할아버지!”

료굉대사의 말에 잠자코 듣고 있던 공심대사와 이현성은 깜짝 놀랐다. 빛을 잃어간다는 것은 그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은유적인 표현이다.

당황하는 두 사람을 보며 료굉대사는 자비로운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 태어나 부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천하 만물의 이치이거늘… 무엇을 그리 당황하느냐. 공심아. 현성아.”

“하, 하지만…….”

“물론 지금 당장 부처님의 품으로 간다는 말이 아니란다. 다행히 아직 시간은 남았단다. 다만… 그리 길지는 않구나.”

그는 자신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한 셈이었다. 공심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그에게 료굉대사는 사부 이상의 존재였다.

“사라졌던 별이 다시 하늘에 떠올라 불길한 빛을 내서 눈치채지 못했으나 나의 별 옆에 작은 빛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만 해도 작고 희미한 빛을 내는 너무도 보잘 것 없는 별이었기에 알아차리지 못했지.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별은 점점 밝고 영롱한 빛을 내기 시작했단다.”

료굉대사는 두 사람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눈을 맞추었다.

“처음에는 그 별이 네 별이라고 생각했단다. 공심아. 나의 별 곁에 늘 있으며 그 빛이 어느새 나의 별 못지않게 빛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료굉대사의 곁에 있으며, 그의 무위에 그나마 근접한 인물은 오직 공심대사뿐이었다. 그렇기에 료굉대사가 공심대사를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허나 널 보는 순간 알았다. 그 별은 공심이 아닌 네 별이라는 것을.”

이현성은 당황스러웠다. 공심대사가 곁에 있는 자리에서 비록 별 이야기지만 자신을 그의 후계자인 것처럼 말하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공심대사는 불쾌해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러나 아직 네 별은 그 별에 미치지 못한다. 해서 너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단다. 소림의 무학은 아니지만, 그간의 깨달음이란다. 현성이만 아니라 공심이, 너도 잘 듣거라.”

“예. 사부님.”

깨달음을 전하겠다는 갑작스러운 말에 이현성은 당황했다. 아무리 소림의 무학이 아닐지라도 료굉대사의 깨달음이라면 소림의 무학과 무관할 수 없었다.

이는 자칫 문제의 소지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외인에게 사부의 깨달음을 전한다는 말에도 동요하지 않는 공심대사를 보며 이현성은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시작하여…….”

료굉대사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뜬구름 잡는 말 같았다.

허나 고승의 일생을 담은 깨달음이 어찌 이해하기 쉽겠는가.

물론 공심대사 역시 쉽게 이해되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료굉대사의 금과옥조와 같은 말을 하나라도 더 기억하기 위해서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지금 전한 나의 깨달음이 너희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어주었으면 좋겠구나. 이제 그만 나가봐도 좋단다.”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사부님.”

“강녕하십시오. 할아버지.”

자신이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한 료굉대사는 두 사람에 축객령을 내렸다. 그렇게 두 사람이 돌아가고 암자에 홀로 남은 료굉대사는 합장을 하며 불호를 읊었다.

“아미타불… 어찌 자미성(紫微星)이 혈살성(血殺星)으로 변할 수 있단 말인가…? 아미타불…….”

* * *

“방주님. 사해련주님의 손자이신 적천우 공자님께서 이제 막 호남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

사천무림과 사해련 대표단의 일로 중원이 소란스러운 지금 놀랍게도 사해련주의 손자가 호남성에 도착했다.

천웅방에서 열리는 사파사세의 회담 때문이다.

사천성의 일로 사파사세의 회담은 무산되었다고 생각했다. 허나 사해련주는 대담하게도 자신의 손자를 대신 보냈다.

“태양마종의 일조차 시선을 돌리기 위한 사해련주의 잔꾀였단 말인가… 과연 방심할 수 없는 놈이군.”

사천무림이 눈이 시뻘개져서 경계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사해련주의 손자가 이미 호남성에 도착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애초 그는 사천성을 통해 이동하지 않았다.

감숙성, 섬서성 그리고 호북성을 통해서 이곳 호남성에 도달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우회해서 이동을 한다면 사천성을 관통한 것보다 시일이 3할 이상 오래 걸린다.

그럼에도 사해련주의 손자는 예정보다 늦지 않았다.

즉, 회담을 제의하는 동시에 손자를 먼저 움직였다는 의미다.

“지 할애비를 닮아서 대담한 놈이군.”

감숙성은 물론 정파의 힘이 강성한 섬서성과 호북성을 경유했음에도 이렇다 할 소란이 없었다는 것은 사해련의 정보교란 능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많은 인원이 움직였다면 아무리 정보를 교란하고 통제했다고 한들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인 즉, 사해련주의 손자는 소수정예만 이끌고 왔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무리 조부인 사해련주의 명령이라고 해도 이 시국에 소수정예만 이끌고 사선을 넘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의 존재가 알려진다면 눈이 시뻘게진 사천무림. 특히 사천당가가 목숨을 걸고 달려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제 호남에 도착했다면… 열흘 후면 그 잘난 얼굴을 볼 수 있겠군. 나머지는 확인되었나?”

“지옥성의 소성주들께선 삼강을 지나고 계시니 내일쯤에는 호남에 도착하실 것이고, 천사교 소교주께선 아직 강서성을 지나고 계시지만 일정에는 늦지 않으실 겁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회담 대표들이 전부 사파삼세의 후계자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천웅방주 역시 직접 나설 수 없는 입장이었다.

삼세의 후계자들을 상대로 대(大) 천웅방주가 직접 나선다면 모양새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다들 열흘 후에나 도착하겠군. …첫째는 어떻게 되었느냐?”

“늦지 않게 마무리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삼세의 대표가 후계자들이라면 천웅방 역시 격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천웅방주 역시 후계자를 내세우고자 했다.

정확히는 후계자 후보 중 한 사람이었다. 천웅방주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대신 네 명의 제자가 있었다.

누가 그의 후계자가 되어도 손색이 없는 뛰어난 기재들이었다. 허나 은연중에 사람들은 천웅방주의 첫째 제자를 후계자로 보고 있었다.

나이는 물론 천웅방주의 제자가 된 지 가장 오래 되었으며, 무엇보다 제자들 중 유일하게 초절정고수였다.

게다가 나머지 셋은 천웅방주의 후계자가 되기에는 약점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둘째 제자는 천웅방주의 제자임에도 창이 아닌 권법을 주로 익혔다.

셋째 제자는 첫째 제자 다음으로 강하지만 여인이었다.

남성우월주의가 팽배한 무림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그리고 막내 제자는 네 명 중 가장 약하였다.

강자존의 법칙을 생각하면 사파무림에서 약한 것은 죄악이었다.

“으음… 그럼 괜히 책잡힐 일 없게 하게.”

“예. 방주님.”

그렇게 사파사세의 회담은 예정대로 진행되게 되었다.

* * *

“크윽! 아버님!!”

암군 당자성을 위시한 무림맹에 파견되었던 수백의 사천무림인이 사천성에 돌아왔다. 그들은 사천성에 도착하자마자 각자의 사문으로 흩어졌다.

그중 가장 많은 인원이 사천당가로 향했다.

그런 그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여기저기 불에 탄 당가타와 아직 복구 중인 본가의 대장원이었다.

그들은 분노했다. 흔적만으로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허나 가장 그들을 분노케 한 것은 바로 누군가의 관이었다.

당가인들의 자존심. 독종 당철영.

바로 그의 관이었다.

“너희들은 아버님을 어찌 보좌했기에!”

“…면목이 없습니다. 소가주님.”

“…….”

당자성의 호통에 당가팔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물론 당자성 역시 알고 있었다. 그들의 힘으로는 부친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는 분노로 인해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부친을 잃은 자식으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한 사내가 다가왔다. 사천당가의 대공자이자 당자성의 아들인 당천수였다.

“…아버…큭!”

짜―악!

당자성의 손에 뺨을 맞은 당천수의 입술이 터졌다.

짜―악!

당자성의 손이 다시 한번 당천수의 뺨을 후려쳤다.

그럼에도 당천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네 어미가 죽고, 여동생이 사라졌다. 너는 도대체 무얼 하였느냐!”

“…….”

당철영의 명을 받은 이백의 고수들이 본가에 도착했을 때, 이미 수많은 시체를 볼 수 있었다.

그중 여인들의 시체는 너무도 처참했다. 차라리 고통 없이 깔끔하게 베인 거라면 그나마 다행일진데, 그녀들의 시체에선 간살 된 흔적들이 발견되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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