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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226화 (226/314)

226화.

* * *

“설마… 아니겠지?”

무림맹주의 호출을 받은 백호당주와 감찰단주가 맹주전으로 왔다.

두 사람은 제갈윤호의 설명을 듣고는 흔쾌히 협정서에 이름을 적었다.

아무래도 강북 출신이기에 묘족과 직접적인 마찰이 없었던 만큼 그들에게 자치구를 인정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었다.

게다가 그들이 지옥성과 결별한다면 그만큼 정파무림에겐 부담감이 덜어지는 일이니 협조를 못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협정서에는 백무강과 제갈윤호에 이어서 팽홍원과 황보관영의 이름이 적히게 되었다.

협정서는 이현성에게 전해졌고, 소림으로 떠나려던 차에 무림맹주인 백무강이 제안을 해왔다.

가볍게 비무를 나누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백무강으로서는 살왕을 베고, 천진룡을 죽음까지 몰아넣은 검신 이현성의 무위가 궁금했다.

물론 이현성 역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목숨을 건 생사결이 아닌 가벼운 비무였던 만큼 끝을 보지 않았으나 백무강의 우세로 마무리 되었다.

그러던 중 이현성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백무강의 모습에서 누군가가 겹쳐보였다.

“주군, 무슨 일이십니까?”

“아, 아닐세.”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이현성을 보며 그와 동행한 암월이 물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하던 것을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꺼냈다는 것을 깨닫고 당황했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그의 위치상 홀로 움직이는 것은 언어도단이었다.

그렇다고 다수를 움직일 순 없었다.

그렇기에 암월 호법과 귀혼급 이상의 호위 몇몇만 동행했다.

의제들의 소재가 파악된 만큼 더 이상 혈천의 비밀안가를 조사할 필요가 없기에 복귀한 상황이었다.

그들 중 일부를 차출하는 것은 귀림으로서도 부담될 일은 아니었다.

‘아니겠지. 설마… 철우와 맹주님이… 아닐 거야.’

이현성은 무림맹주 백무강의 모습에서 철우의 모습을 엿봤다.

백무강을 처음 만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게서 철우의 모습을 엿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린 시절의 철우와 성인이 된 철우는 많이 달랐다.

성장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으니 당연했다.

성인이 된 철우를 못 봤다면 백무강과 닮은 점을 발견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

허나 이현성은 애써 가능성을 부정했다. 무림맹주와 고아 출신의 혈살객을 관련짓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설사 맞아도 곤란한 것이 무림맹에 침입한 철우의 아우들을 죽인 자가 무림맹주였다.

그러니 자신의 착각은 착각으로 그쳐야 한다.

“주군, 곧 산문에 도착합니다. 저흰 여기서 대기하겠습니다.”

“아니, 모두 함께 간다. …걱정하지 마라. 너희는 더 이상 살수가 아니라 나 이현성의 가솔들이다.”

중원무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소림. 정파무림의 성지와 같은 곳이었다. 그런 소림에 살수들이 들어간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귀림의 호위들은 자진해서 산문 아래에서 대기하려고 했다.

허나 이현성의 생각은 달랐다. 귀림은 더 이상 삼대 살종이 아닌 이가장의 호위집단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떳떳하지 못 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의 말에 귀림의 호위들은 가슴속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어디든 따르겠습니다. 주군.”

그들의 변화를 느꼈는지 이현성은 살짝 웃었다.

이것을 노린 것은 아니지만, 좋은 변화인 만큼 나쁠 것은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정파무림의 중심인 소림의 산문에 도착했다.

“아미타불… 소승은 일현이라고 합니다. 시주님께선 어인 일로 본사를 방문하셨습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일현 스님. 이현성이라고 합니다. 방장님을 뵙기 위해서 방문했습니다.”

소림의 산문을 지키고 있는 30대 승려들은 소림 사대제자들로, 현 장문인의 사질뻘이었다.

소림방장을 만나러 왔다는 이현성의 말에 그들은 흠칫 놀랐다. 잠시 놀란 듯싶었으나 곧 당황한 기색을 거두고 평정심을 회복했다.

과연 소림은 소림이었다.

“죄송합니다만 방장 사백은 어인 일로 뵈려는지 여쭐 수 있겠습니까?”

“제 용무는 소림방장께서만 아셔야 합니다. 혹시 무림맹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까?”

“무림맹이라시면… 서, 설마! 검신! 아, 아미타불… 죄송합니다. 소승이 너무 놀라서… 아미타불…….”

그들은 이현성의 이름을 듣고도 그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검신에 대해서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들, 이렇게 젊은 사내가 검신이라고 어찌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소림의 제자들조차 당황하는 것은 당연하였다.

“안내하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스님.”

그렇게 이현성은 처음으로 소림의 산문을 넘게 되었다.

“아미타불… 오랜만에 뵙습니다. 시주님.”

소림방장은 이현성을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두 사람은 초면이 아니었다.

수년 전, 성승 료굉대사가 이가장 아니, 태가장에 방문했을 당시 그와 동행했던 인물이 바로 현 소림방장인 범천대사였다.

당시 두 사람은 깊은 교분을 나눈 것은 아니지만, 분명 인연이라면 인연이라고 할 수 있었다.

“소림의 방장이 되셨음을 진즉에 들었으나 경황이 없어서 이제야 인사를 드리는군요.”

“감사합니다. 시주께선 과거에도 강하셨는데 이제는… 빈승이 감히 바라볼 수 없을 정도이군요. 아미타불…….”

“운이 좋았습니다.”

소림의 방장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듯 그의 수양은 대단해 보였다.

수년 전 이현성과 공암대사의 비무를 보며 호승심을 느끼던 무승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벼운 인사말을 나눈 이현성은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일의 중대함 때문에 제가 방문한 진짜 이유는 모르실 거라 생각합니다.”

“아미타불… 그렇습니다.”

워낙 중대한 사항이기에 이현성의 방문 외에는 사전에 연락해둔 것이 없었다. 덕분에 범천대사조차 협정서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아, 그런데 개방의 태상호법께서 소림에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분께서도 아셔야 하는 일인데… 불러주실 수 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시주님.”

범천대사는 소림방장을 수호하는 팔대호원의 수좌인 감원에게 전음입밀의 수법으로 뜻을 전했다.

그리고 잠시 후 노화자(老化子 : 늙은 거지)가 방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누더기를 입고 있으나 결코 추레한 느낌을 주지 않는 노인이었다.

게다가 그 기세가 이현성의 아래가 아니었다.

“이 늙은 거지를 찾았다고?”

“무림 말학이, 개방의 태상호법이신 홍무개 노선배님을 뵙습니다.”

그는 개방제일고수인 장왕(掌王) 홍무개였다. 개방의 용두방주가 아님에도 항룡십팔장을 허락받은 인물이었다.

그 덕분에 개방은 장왕 홍무개라는 수호신을 얻게 된 셈이었다.

“말학은 무슨, 검신이 말학이면 아닌 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예. 노선배님.”

홍무개는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호탕한 성격이었다.

덕분에 이현성도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허나 사안이 사안인 만큼 조심스럽게 무림맹주의 전언을 전했다.

그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은 무척이나 놀랐다.

그들이 예상한 것 이상으로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걸… 맹주님과 총군사께서 제안하셨단 말인가?”

“하북팽가주님과 황보세가의 소가주께서도 협정서에 이름을 넣어주셨습니다.”

“허허… 그들이 말인가?”

화경고수이자 무림맹의 수좌가 제안했고, 오대세가 중 셋이 동의했다.

덕분에 두 사람도 부담감이 조금 줄어들 수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한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홍무개는 슬쩍 범천대사에게 물었다.

“방장께서는 어떡하시겠소?”

“아미타불… 많은 희생을 줄이기 위함이기도 하고… 비록 한족이 아니라고 해도 그들 역시 인간이거늘 어찌 그들을 탄압할 수 있겠습니다. 빈승 역시 협조하겠습니다.”

“으음… 이 늙은이는 본방의 방주가 아니기에 독단으로 본방의 이름을 거론할 수는 없네.”

다행히도 범천대사는 협조해주었다.

이로써 오대세가의 셋과 함께 구파일방 역시 동조하게 된 것이다.

허나 처음 예상과 달리 홍무개는 제안을 거절했다.

아무리 그가 개방에 끼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도 개방의 용두방주가 아니었다.

그런 그가 개방의 어른이라고 중요한 일을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

“대신 나 홍무개 개인의 입장으로는 협조하겠네.”

“감사합니다. 노선배님.”

개방의 협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아쉬운 상황이었다. 허나 개방의 큰 어른이자 화경고수인 홍무개의 이름값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그의 이름이 협정서에 적히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하… 이건 예상치 못했는데… 설마 무당과 점창도 협조해주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

점창파야 자신들의 안위를 생각해서 거절할 거라 생각하지 않으나, 무당파는 변수가 될 수 있었다.

개방의 거절도 예상 못 한 일인데, 무당파라고 무작정 협조해준다고 낙관할 수는 없었다.

무당파는 소림과 함께 정파무림의 양대 산맥이라고 불린다. 그런 무당파까지 거절한다면 상당히 난항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자네는 이제 떠날 생각인가?”

“운남은 제법 머니까요.”

“자넬 보고 싶어 하는 늙은이들이 많은데, 시간 좀 내게.”

홍무개가 언급한 늙은이들은 바로 장생원의 원로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년 전까지는 소림의 방장과 장로들이기도 했다.

그들을 만나 뵙는 일이라면 이현성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이현성은 소림의 중지 중 하나인 장생원에 방문할 수 있었다.

“소림의 원로님들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말학 이현성이라고 합니다.”

“아미타불… 한 번쯤 뵙고 싶었는데 이리 만나서 반갑구려, 시주.”

장생원의 원로들은 그를 환대해주었다.

철혼대마력의 마공서를 소림에 양도한 것도 있지만, 무림의 전설이자 소림의 큰 어른인 성승이 그를 좋게 평가했다는 점 때문이다.

“천하가 혼란한 이런 시기에 시주와 같은 동량이 나온 것은 무림의 흥복이외다.”

“원로님들의 말씀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혈기왕성한 젊은 나이에 무위까지 대단하니 오만할 만도 한데, 이리 겸손하니 장생원의 원로들은 이현성에게 더욱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허나 이렇게 그를 부른 것은 단순히 덕담을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렇게 이 시주를 청한 것은 뵙기를 원하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이오.”

천하의 소림원로들이 ‘분’이라고 칭하는 존재는 천하에 몇몇 존재하지 않았다. 이현성은 본능적으로 그들이 누굴 지칭하는지 알 수 있었다.

허나 틀릴 수도 있기에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그는 소림삼신승의 수좌이자 전(前) 소림방장인 공심대사를 따라 어딘가로 향했다.

그들이 향한 곳은 숭산의 수많은 봉우리 중 한 곳이었다. 높고 험하다고 한들 화경고수들인 두 사람을 지치게 만들진 못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작고 허름한 암자가 있었다. 암자 앞에 도착한 공심대사는 가사와 승복을 가다듬었다.

그 행동에서 암자 안에 있는 누군가를 향한 공경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사부님, 제자 공심이옵니다. 말씀하신 이 시주를 모셔왔습니다.”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그와 함께 들어오너라.”

“예. 사부님.”

공심대사의 사부는 전전대 소림방장이자 무림의 살아 있는 전설, 성승 료굉대사였다.

이현성은 다시 한번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를 만나는 것이 두 번째였지만, 성승을 만난다는 것은 몇 번이라도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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