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그보다 여긴 어디에요? 의원인가요?”
“걱정하지 마. 성님의 장원이야.”
“예?”
의아해 하는 적묘를 보며 철우는 의형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그의 말을 들은 적묘는 기겁했다.
그에게 의형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을 뿐만 아니라, 그 정체 역시 몹시 놀라웠기 때문이다.
“대장의 의형께서 검신이라고요! 게다가 그가 혈무곡 출신이라니…….”
“쉿! 그건 비밀이야. 괜히 알려지면 성님만 곤란해질 수 있으니까.”
혈무곡은 돈을 주고 사거나 납치한 아이들을 혈살객 후보로 양성하는 훈련소 중 하나였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아이들만이 혈살동에 입동 할 수 있었다.
즉, 옥석을 가리기 위한 장소인 셈이다.
혈무곡 출신이라는 점이 딱히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무려 검신이다. 충분히 흠이 될 수가 있었다.
사람은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에게는 항상 질투를 하는 법이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깎아내리려는 종자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검신이 혈무곡 출신이라는 것은 그들에게 좋은 먹이가 될 수도 있었다.
“그보다… 다른 녀석들은… 어떻게 됐느냐 적묘.”
“…아마… 그럴… 거예요.”
그녀가 의식을 잃은 철우를 업고 신산각을 벗어난 직후 폭발이 일어났다.
그것만으로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그녀는 직접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철우 역시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녀의 모호한 말뜻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구나… 다 내 탓이다. 너희 말대로 명령을 무시하는 것인데…….”
“아니에요. 대장. 저희 때문인걸요.”
혈천은 결코 자비로운 집단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선 그 어떤 짓도 저지를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런 혈천이 항명에 대한 처벌에 관대할 리 없다.
척살대 파견은 물론 금제를 발동시켜서 그들을 죽이려고 할 것이 뻔하였다.
금제를 깬 철우에겐 상관없으나 그의 수하들은 달랐다. 금제에 의해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앞으론… 어쩌실 거예요. 대장. 설마 돌아가시는 것은 아니죠?”
“…의원께서 말씀하시길… 네 단전에 있는 금제를 풀지 않으면 완전한 치료를 할 수 없다고 하시더군. 다만 그분의 능력으론 금제를 풀려면 단전을 유지할 수 없다고 하신다.”
그의 말에 적묘는 얼굴이 굳어졌다.
무림인에게 무공은 목숨보다 중요하였다.
그런데 살기 위해선 단전을 포기해야 한다니…….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금제를 풀기 위해서 혈천에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자신 때문에 그가 혈천에 돌아가는 것이 싫었지만, 임무를 실패한 자신들을 도와줄 그들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았다.
애초 자신들을 귀하게 여겼다면 그딴 말도 안 되는 임무를 줄 리도 없었다.
철우는 혈천으로 돌아가는 것은 최악의 경우로 놔두었다.
“다행히 3대 신의라면 단전을 유지한 채 금제만 거둘 수 있을지 모른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네 몸이 조금 더 괜찮아지면 여산으로 갈 생각이다.”
“여산이라면 아…….”
적묘는 그가 무모한 결단을 내린 것이 아님에 안도할 수 있었다.
모두의 희생으로 겨우 그만은 구해냈다.
그런데 자신 때문에 그가 다시 위험을 자처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게 먼저 간 전우들에 대한 예의였으니까.
“그런 줄 알고… 넌 체력을 회복하는 것만 생각해라. 여산까진 쉽지 않을 테니까.”
“예… 대장.”
그때는 몰랐다.
여산 성수의가는 희망이 아니라 절망이라는 사실을.
* * *
“본인은 이 일을 좌시하지 않을 생각이오. 두 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어찌… 어찌! 아미타불…….”
“…무량수불…….”
사천무림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세 세력이 있다.
오대세가의 사천당가와 구파일방의 아미파 그리고 청성파가 그 주인공이었다.
사천삼세의 큰 어른들이 사천당가의 가주전에 모이게 되었다.
어느 한 명 그 무게감이 적지 않은 이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신군(神君)께선 생각이 다르신가 보오?”
“무량수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에 사해련과 마찰이 생긴다면 오히려 저들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닐까 우려했을 뿐입니다.”
사천당가주인 독종(毒宗) 당철영의 말에 청성파 전대장문인 대라신군(大羅神君)은 조심스럽게 우려를 표했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사해련 때문이다.
사해련에서 천웅방에 방문하기 위해서 사천성을 가로질러야 하니 괜한 오해는 말라고 연락해왔다.
겉보기에는 요청이었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이미 사해련의 사절단이 사천성 지척까지 도달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 구성원 역시 어마어마했다.
사해련 십대고수 중 셋과 그들의 친위대.
그리고 사해련을 대표하는 전투 집단인 광풍살인단 등 일천에 가까운 대인원이다.
오해를 안 할 수 없는 과한 인원이었다.
“신군, 우려는 무슨 우려입니까! 저들이 딴 생각이 없다면 감히 사천을 관통하겠단 생각을 하겠습니까!”
빠드득……!
아미파의 금정신니는 이를 갈면서 말을 이어갔다.
“게다가 색불 그놈이! 본니와 본파를 우롱할 생각이 아니라면 어찌 사천 땅을 밟으려고 한단 말입니까! 귀 파는 직접적인 악연이 없다고 너무 가볍게 생각하십니다. 신군.”
“신니, 말이 좀 지나치시오.”
“허나 신군. 본 가주와 신니를 자극할 생각이 아니라면 사해련이 폭마와 색불을 보냈을 리가 없소. 안 그렇소?”
당철영의 말에 대라신군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폭마와 색불은 사해련 십대고수이자, 사천당가와 아미파의 원수이기도 했다.
폭마의 정식 별호는 벽력마군(霹靂魔君). 수십 년 전 멸문한 산서 벽력당의 후예였다.
사천당가는 독과 암기로 유명한 가문이었지만, 화탄제조술 역시 보유했다.
그렇기에 최고라는 벽력탄 이상의 화탄을 만들고 싶었다.
오랜 시간의 연구 끝에 그들은 굉천뢰(轟天雷)라는 화탄을 완성시켰다.
제조비용이 벽력탄의 배 이상 든다는 단점이 있으나 위력은 3할을 앞섰다.
허나 그런 그들의 기쁨도 잠시, 벽력당에서 새로운 화탄을 세상에 공개했다.
그건 바로 진천뢰(震天雷). 소리만 요란한 굉천뢰보다 세 배 이상 강력한 최강의 화탄이었다.
천하는 경악했고 사천당가는 자존심을 구겼다.
사천당가는 진천뢰를 능가하는 화탄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수년간 막대한 비용을 들여 연구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던 중 벽력당이 의문의 폭발로 멸문되었다.
화탄 연구 중 실수로 인한 사고로 알려졌으나, 일설에는 사천당가의 소행이란 소문도 있었다.
실제로 벽력당이 사고를 당한지 수개월 후 사천당가는 광천뢰(狂天雷)라는 화탄을 탄생시켰다.
진천뢰를 능가하진 못했으나 근접했다고 평가를 받았다.
진천뢰가 사라진 지금 천하제일의 화탄은 바로 사천당가의 광천뢰가 되었다.
그리고 이십여 년 전 어느 날 밤. 사천당가의 본가에서 갑작스러운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로 본가는 반파되었고 혈족 이백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
폭발 원인은 놀랍게도 오래전에 사라진 벽력당의 진천뢰로 판명되었다.
그 후 사천당가와 벽력마군은 서로 원수가 되었다.
“맞습니다. 당가주님.”
“…….”
아미파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초들을 등쳐먹는 음양사(陰陽寺)라는 땡중 집단을 혼내준 적이 있었다.
이에 앙심을 품은 음양사주인 음양색불과 색승들이 아미산으로 향하는 아미파 제자들에게 음약을 먹인 후 간살을 했다.
그들 중에는 명가 출신의 속가제자들도 있었고, 본산 제자도 여럿 있었다.
무엇보다 금정신니의 제자도 있었다.
아미파는 대대적으로 음양사를 추적했으나 청해성으로 도망친 그들은 사해련의 품에 숨어버렸다.
아미파는 물러나지 않고 사해련에 그들의 신병을 인계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사해련은 묵살했다.
그렇다고 사해련과 싸울 수는 없었다.
사해련은 아미파만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거대세력이었다.
아미파의 원수인 음양색불과 사천당가의 원수인 벽력마군.
이 두 사람이 사천 땅을 지나가겠다는 인원에 포함되었다.
그러니 무엇보다 사천성을 가로지르겠단 것 자체가 시비를 걸겠다는 말과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대라신군은 평화적 합의를 제안할 수가 없었다.
“해서 두 분께 제안을 하외다. 사천무림이 합쳐서 사해련의 악행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
“사천…연합을 세우잔 말씀이십니까? 당가주님?”
사안이 너무 커졌다. 단순히 사해련의 대표단과 마찰이 아닌 사해련 전체와 적극적인 싸움을 벌이자는 말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무림맹 소속이었다.
사천연합을 세우자는 말은 무림맹과 결별하자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전 무림의 힘을 합칠 시기에 힘을 나누는 것은 위험한 행위였다.
자신들의 결정이 무림맹의 분열을 조장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림맹은 사파사세가 아니라 정체불명의 암류, 혈천으로 인해 결성된 만큼 혈천이 무너질 때까지는 존속되어야 했다.
“아… 물론 무림맹을 탈퇴하자는 말은 아니오. 다만 사파사세놈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지금 대륙 동쪽에 치우쳐 있는 무림맹에만 의지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 아니오?”
“으음…….”
“…….”
오만한 사천당가와 달리 청성파와 아미파는 구파일방이라는 강력한 결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당철영의 제안이 현명해 보인다고 한들 쉽게 결단을 내릴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이 주저하자 당철영은 강하게 나갔다.
“그럼 본가만 뜻이 맞는 사천무림의 형제들과 함께 하겠소. 혹시 귀파들이 사해련에 짓밟히면 무림맹의 증원만 기다리시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닙니다. 본파는 당가주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
예로부터 사천성은 세외나 마교의 침공에 가장 먼저 맞선 곳이었다.
그만큼 호전적이고 기인들이 많았다.
사천당가와 아미, 청성파만은 못하지만 명문이라고 불릴만한 문파나 무림세가가 수두룩하였다.
그런 그들이 사천당가를 필두로 사해련의 대표단과 충돌하면 분명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문제는 그 이후였다.
대표단이 무너진 후 가만히 있을 사해련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사해련과 사천무림의 전쟁이 발발하게 될 것이고, 비록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도 아미파와 청성파 역시 휘말릴 수밖에 없게 된다.
사천무림의 도움 없이 사해련과의 싸움에 휘말린다면 아무리 아미파와 청성파가 구파일방이라고 해도 힘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당철영의 말처럼 무림맹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버텨내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럴 바에는 사천무림에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했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금정신니와 달리 대라신군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결국 당철영은 최후의 통첩을 날렸다.
“청성이 함께 할 수 없다면 이만 돌아가 봐도 좋소.”
“…아닙니다. 본파도 한 손 거들겠습니다.”
그렇게 대라신군의 합류로 사천무림이 하나로 뭉치게 되었다.
* * *
쾅!
“도대체 무슨 생각을!”
사천에서 날아온 긴급 서신을 받은 제갈윤호는 기가 막혔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