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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214화 (214/314)

214화.

그들을 알아온 혁련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정보가 샜단 말인가. 귀찮게 됐군.”

* * *

“큭! 젠장! 뇌옥이나 갈 것이지!”

혁련후의 생각대로 정보가 샜다. 정확히는 정보를 넘겨줬다는 말이 옳았다. 범인은 바로 혈우살객(血牛殺客) 철우였다.

흑오와 수라검귀를 통해 자신들을 미끼로 삼아서 뇌옥을 습격하라고 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뇌옥 습격을 담당한 자가 혁련후라는 사실 역시 알게 되었다.

그 순간 철우는 좋은 생각이 났다. 그들의 계획을 역으로 이용하면 원수를 갚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림맹의 시선을 뇌옥으로 돌릴 수 있단 생각이었다.

제 손으로 혁련후를 직접 처단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계획대로라면 자신의 임무도 완수할 수 있고 원수도 갚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하지만 신산 제갈윤호는 만만한 자가 아니었다.

아무리 자신이 자리를 비웠다고 하지만 무림맹의 심처인 신산각에 누군가 서신을 남기고 갔다.

그럼에도 그러한 사실을 신산각의 고수들이 몰랐다.

그러므로 경각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하지만 서신의 내용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뇌옥은 물론 신산각 역시 함정을 판 것이다.

“뇌옥도 지금쯤 끝났을 것이다! 개죽음 당하고 싶지 않다면 그만 항복하라!”

“이것들이… 우릴 물로 보지 마라!”

철우는 자신들을 포위한 수십의 무림맹 고수들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무림맹에서 선별한 고수들답게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젠장. 어울리지 않게 머리를 쓰는 게 아닌데…….’

뇌옥으로 시선을 놀려서 신산각의 경계를 약화시키려고 했건만, 오히려 저들만 경계하게 만들었다.

그걸 깨달은 철우로서는 동료들에게 미안하기만 했다.

궁지에 몰렸건만 항복은커녕 살기를 드러내는 철우와 혈살객들을 보며 한 중년 사내가 무림맹 고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어리석은… 제압해!”

“명!”

그는 신산각에 지원을 나온 우문 호법이었다.

챙! 채챙! 챙! 챙!

“큭!”

“젠장! 살수 놈이!”

우문 호법이 이끌고 온 무림맹 고수들은 강했다.

하지만 한가지 착각을 하고 있었다. 살수들은 약하기에 암살 밖에 못한다는 착각을 하고 말았다.

분명 전면전보다 암살에 더 능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혈살객들은 혈살오관을 통과한 절정고수들이었다. 살수로서의 능력만이 아니라 무림인으로서 무위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주변을 포위한 무림맹의 일류고수들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뭣들 하는 거냐!”

무림맹 고수들을 지휘하던 우문 호법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총군사인 제갈윤호에게 점수 좀 따겠다고 자청해서 신산각에 지원을 왔는데, 되레 자신의 평가가 절하될 판이었다. 결국 우문 호법이 직접 나섰다.

“너희 선택이니 날 원망하지 마라!”

“헉!!”

우문 호법은 덩치에 어울리는 거대한 검을 다루었다. 그 기세(巨劍)가 너무도 묵직했다. 무림에서 그를 태검(太劍)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했다.

한창 싸우고 있던 적묘로서는 예상치 못한 암습으로 인해 낭패를 볼 참이었다. 이를 눈치챈 백경이 이를 악물고 끼어들었다. 그가 다루는 수극(手戟)은 일반적인 장극(長戟)에 비해 짧아서 한 손으로 다룰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위력이 약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비겁한 놈! 계집을 노리느… 컥!”

“백경아!!”

적묘를 대신 우문 호법의 거검을 막은 백경은 그 위력을 감당치 못하고 나가 떨어졌다.

백경 역시 한 힘 한다고 할 수 있지만, 무림맹은 아무에게나 호법을 주는 무른 곳이 아니었다. 명문 우문세가의 장로이자 초절정고수답게 백경을 압도했다.

그런 그건만 백경의 호통에 찔리는 점이 있었는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복면을 썼기에 계집인지 사내이니 알 수 없었던 그로서는 예기치 못한 모욕을 당한 셈이었다.

“이 천한 살수놈들이!!”

“누가 감히 내 아우들을 천하다고 하더냐!!”

순간 무시무시한 기운이 좌중을 압도했다.

살기와 광기 그리고 투기에 무림맹 고수들은 움찔하며 감히 다가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가 익힌 광룡마공의 공능 때문이다.

우문 호법도 순간적으로 움찔하긴 했으나 명색이 무림 백대고수답게 광룡마공의 기세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보며 철우는 만만치 않은 자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적묘와 독안은 백경을 보호해라. 저자는 내가 맡겠다!”

―무형(無形)아, 시선을 내가 잡아둘 테니 여차하면 녀석들과 탈출해라!

드러난 것은 살수 넷이었지만, 사실 그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단 한 명만은 아직도 은신 중이었다.

백경처럼 힘이 쎈 것도 아니고, 적묘처럼 민첩하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독안처럼 감이 뛰어난 것도 아닌 무형은 무인으로서의 재능 면에서는 제일 평범했다.

허나 그는 살수로서 가장 뛰어났다.

인내심이야말로 그의 재능이었다.

어떤 악조건에서도 인내할 줄 아는 그는 완벽한 살수였다. 혈살오관을 통과한 지금 혈살칠객을 제외하고 제일 뛰어난 혈살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쾅! 빠지직!

“놈! 살아서 나갈 수 없다!”

“흐흐흐… 과연… 그럴까!”

“헉!”

순간 철우의 거검에 강기가 어렸다. 놀란 우문 호법은 기겁했다. 만만치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살수 따위가 강기까지 발현할 줄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덕분에 조금 전까지의 여유를 잃고 말았다.

허나 그 역시 초절정고수였다. 간신히 강기를 발현해서 철우의 강기를 막아냈다.

콰쾅!!

―지금이다!

―대장… 조심하십시오.

강기와 강기가 충돌하면서 모든 시선이 그들 두 사람에게 쏠리게 되었다. 철우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기에 무형에게 아우들과 함께 도주를 지시했다.

푹! 서걱!!

“컥!”

“으아악!!”

“무, 무슨 일이야!”

혼란을 틈타 무형이 움직였다.

방심하던 무림맹 고수들은 무방비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혼란은 더욱 커졌다.

도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허나 그건 착각에 불과했다. 무림맹 그리고 신산각은 그리 물렁한 곳이 아니었다.

“그만!!”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좌중은 움찔했다.

모두 정신을 차렸을 때, 한 노인과 몇몇 중년 사내들을 볼 수 있었다.

신산각의 주인인 제갈윤호와 그를 호위하는 주작당의 고수들이었다.

게다가 그의 손에는 비수가 들려 있었다.

“투항하고 본맹에 협조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네.”

“누가!”

“불응한다면 자네만 아니라 동료들의 목숨은 없네.”

“헉! 너…희들…….”

철우는 기겁했다. 탈출했다고 생각했던 아우들이 그의 앞에 모두 쓰러져 있었다. 게다가 그들의 몸에는 비수가 꽂혀 있었다. 혼전 속에서 비수를 날렸다는 것은 예사 솜씨가 아니었다.

철우는 그게 누구의 솜씨인지 알 수 있었다.

제갈윤호가 강호칠기의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분명 신산이라고 불리는 뛰어난 지략 때문이다. 허나 이를 뒷받침할 무력이 없었다면 강호칠기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소리비도(小莉飛刀).

천하제일의 비도술이라고 불리는 소리비도는 제갈세가에서도 실전되었다고 알려진 절학이었다. 그런 소리비도가 제갈윤호의 손에서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네들을 보낸 자들 때문이라면 본맹에서 지켜주겠네. 원한다면 중용할 생각도 있네.”

“초, 총군사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찌 천한 살수놈들을…….”

예상치 못한 제갈윤호의 폭탄선언에 철우는 깜짝 놀랐다. 허나 그보다 더 기겁한 자가 있었다. 바로 우문 호법이었다. 철우를 상대하느라 혈살객들은 놓칠 뻔한 그로서는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했다.

그 이유로 제갈윤호의 제안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허나 그런 그의 반응은 제갈윤호를 자극하고 말았다.

“우문 호법. 난 본맹의 총군사일세. 내게 그 정도 권한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문 호법께선 총군사란 자리를 너무 하찮게 보는 듯 하구려?”

“그, 그게 아니라…! 죄, 죄송합니다. 아끼는 수하들을 잃어서 제가 너무 흥분한 것 같습니다.”

무림맹의 호법 중 한 명이자 우문세가의 장로인 그는 자신이 너무 흥분해서 총군사의 권위에 도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 권위를 내세우는 법이 없는 총군사였지만 그는 무림맹 서열 10위 안에 있으며, 오대세가이 하나인 제갈세가의 태상가주였다. 서열 50위권 밖에 있는 자신이 감히 눈을 부라릴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젠장. 저 늙은이에게 찍히면 곤란한데! 가주께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그의 기가 팍 꺾이자 더 이상 누구도 감히 총군사의 말을 거스르지 못했다.

그제야 총군사는 만족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마지막 제안일세. 이번에도 대답이 없다면 거절로 알고 자넬 죽일 수밖에 없네.”

“…나는… 그 제안을…….”

마음이 흔들렸는지 철우는 검을 늘어트렸다.

총군사는 그를 그냥 죽이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 저들은 분명 혁련세가와 혼세교의 상부에서 보낸 자들일 것이다.

게다가 저 정도 실력자라면 분명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다른 이들은 살수라고 무시하지만 총군사는 다르게 생각했다.

‘태검과 비견되는 실력을 가진 살수라니… 게다가 목소리도 의외로 젊었다. 만약 본맹 그리고 내 지시를 따른다면 분명 큰 힘이 될 거야.’

혈살객들을 포위한 수십의 고수들은 하나 같이 뛰어난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고작 살수 다섯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이 자리에서 죽이는 것은 너무도 아까웠다.

정보와 자신만의 비수. 두가지를 모두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를 총군사 제갈윤호는 그냥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흔들리는 살수를 보며 총군사의 입꼬리가 올랐을 때였다.

“…거절한다!”

“이, 이런!!”

총군사는 물론 무림맹 고수들은 철우가 투항을 거부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이 방심한 찰나를 이용해서 철우가 몸을 날렸다.

총군사를 인질로 삼아서 아우들을 탈출시키기 위함이었다.

그의 검이 총군사의 목에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쾅!

폭발과 함께 제갈윤호를 노리던 철우가 나가떨어졌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좌중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제갈 군사답지 않게 방심을 하셨소?”

“아… 맹주님…….”

“속하들이 맹주님을 뵙습니다!”

철우의 암습을 막아낸 자는 바로 무림맹주인 백무강이었다.

혁련세가와 혼세교의 배후가 무림맹을 노렸다면 1순위는 바로 맹주인 그였다.

그렇기에 맹주전 역시 경계를 강화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직접 움직였다. 무척이나 위험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허나 그가 누군가, 바로 백의무제였다.

그런 그가 일개 살수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었다.

“우문 호법 뭐하는가. 어서 제압하지 않고?”

“조, 존명!”

맹주의 신위에 넋 놓고 있던 우문 호법은 그의 명을 받고 허둥지둥거렸다.

정파무림의 명숙이자 무림맹 호법답지 않은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맹주는 질책하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는 우문세가의 장로로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만인이 있는 자리에서 창피를 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문 호법은 또다시 실수를 범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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