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살수-210화 (210/314)

210화.

챙! 채챙!!

“누구냐!”

“적이다! 모두 경계하라!!”

순식간에 이십여 명이 죽음을 맞이했다.

허나 죽은 이십여 명 중 일부는 외원 경비무사들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혈살객들의 비수를 막거나 피한 경비무사들이 있었고, 몇몇은 오히려 혈살객을 베기까지 했다.

절대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덕분에 혈살객들은 당황하고 말았다.

혈살객이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외곽 경비무사들과 달리 외원 경비무사들은 전원이 잠룡대 소속의 경비무사들은 아니었다.

설사 잠룡대의 경비무사들이 아니라고 해도 믿기 힘든 일이었다.

내원을 담당하는 흑룡대와 묵룡대 고수들이라도 특급살수의 암습을 눈치채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이렇게 다수가 대처했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일이었다.

“어이없군. 이가장의 쓰레기들이 내 수하들을 죽이다니 말이야.”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애송아.”

예상치 못한 결과에 그들의 수장인 사공우명은 어이가 없었다.

순간 노인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한 사람은 이가장의 호법인 적양신장(赤陽神掌) 구연청이었다.

허나 사공우명에게 애송이를 운운한 자는 그가 아니었다.

“애송이? 죽고 싶나 보지 늙은이!”

“…구 호법, 저 애송이는 본인이 맡아도 되겠소?”

“장로님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양보하지요.”

놀랍게도 구연청은 그에게 장로라고 칭했다.

이가장의 이대 장로인 장강어옹 규염과 칠현마금 독고혜는 현재 이현성과 동행중이었다.

그렇기에 장원 내에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구연청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노인은 이가장의 또 다른 장로이기 때문이다.

“애송아 장주님을 제외하고 그 나이에 초절정지경에 오른 것은 대단하나, 나 귀백을 상대하려면 10년은 이르다.”

“큭! 젠장!”

혈비살객 사공우명은 강했다. 하지만 귀백은 더욱 강했다.

혈천신단의 힘을 이용해서 초절정지경에 오른 그와 달리 귀백은 순수하게 일갑자 이상 수련을 통해서 벽을 넘은 자였다.

게다가 초절정지경에 오른 지도 십여 년이 된 그가 어찌 사공우명과 같을 수 있겠는가.

물론 귀백 역시 내심 놀라고 있었다.

‘편법을 통해서 강해진 것이겠지만 그렇다 해도 저리 어린 사내가 이 정도 무위라니… 역시 천하는 넓구나.’

귀백이니 그를 감당한 것이지, 웬만한 고수는 당해내지 못할 정도로 강했다.

귀림 총단의 호위들을 이끌고 먼저 떠났던 귀백이 오늘 정주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이가장은 큰 욕을 봤을지도 모른다.

특히 눈앞의 사내는 현재 장원 내 최고수인 구연청조차 버거운 강적이었다.

게다가 사내가 대동한 살수들 역시 하나 같이 예사롭지 않았다.

‘허나 우리 젊은 것들도 만만치 않지.’

이가장에는 무사들만 사백에 가솔들까지 합치면 오백이 넘는다.

그러한 상황에서 귀림의 호위 이백이 갑작스럽게 합류했다.

따라서 증편한 잠룡대를 수용할 전각이 필요했다.

덕분에 장원을 확장할 수밖에 없었고, 새롭게 전각들을 더 짓고 있었다.

그중 완성된 전각을 귀림에게 임시로 내주었다.

다만 이백 명을 전부 수용할 정도로 큰 전각은 아니었다.

때문에 귀백이 구연청과 상의해서 내놓은 궁여지책이 귀림의 호위들 역시 야간 경비근무에 동참시키는 것이다.

장원의 경계 수준도 높이고 귀림의 호위들 역시 돌아가며 수면을 취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외원 경비근무에 참여한 귀림의 호위들 덕분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귀림 형제들에게만 맡길 생각이더냐!”

“묵룡대는 주변을 포위해서 쥐새끼들이 도주하지 못하게 하라!”

흑룡대는 과거 귀림의 귀목들과 함께 훈련을 받은 경험이 있었기에 어색함 없이 합류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묵룡대는 귀림의 호위들이 부담스러웠는지 적의 퇴로를 차단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쯤 되니 궁지에 몰린 쪽은 오히려 혈살객들이 되었다.

전원이 특급살수인 그들이었지만, 수의 차이가 너무 극심했다.

게다가 귀림의 호위 중에서 특급살수로 분류되는 귀림팔령(鬼林八靈)과 귀림이십사혼(鬼林二十四魂) 중 절반이 이곳에 있었다.

양만 아니라 질에서도 혈살객들에게 밀리지 않았다.

덕분에 초조해지는 것은 사공우명의 몫이 되었다.

‘칫! 분위기를 바꾸려면 이 늙은이를 무조건 죽여야 해!’

전력의 차이가 클 때 승리하기 위해선 지휘관을 죽이는 것보다 효과적인 것이 없었다.

사공우명이 귀백을 죽이지 못한다면 오늘 이 자리가 혈살객들의 무덤이 된다는 것을 모를 수 없었다.

문제는 귀백이 결코 만만한 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경험은 물론 무위 역시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사공우명은 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죽어라! 만천혈우(滿天血雨)!”

순간 수십 수백의 비수가 귀백에게 몰아쳤다.

오대세가의 하나인 사천당가의 비기 만천화우를 연상케 하는 무시무시한 비도술이었다.

내공 소모가 극심하였기에 사공우명으로서도 모험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위력은 막강했다.

귀백이 순간적으로 움찔할 정도로 공우명의 만천혈우는 위협적이었다.

챙! 채챙! 챙챙!

서걱! 푹! 푹! 푸푹!!

귀백은 수백의 비수를 쳐냈다.

하지만 말이 수백이지, 모든 비수를 쳐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크윽!”

“흐흐흐… 하하하!”

만천혈우는 무시무시했다.

비수들을 쳐낸다고 쳐냈음에도 귀백은 모든 비수를 막아내지는 못했다.

결국 수많은 비수로 인해 귀백은 벌집이 되었다.

사공우명의 모험이 성공했다. 기분이 좋아진 그는 파안대소를 했다.

하지만 그건 너무도 섣부른 판단이었다.

“흐흐흐 늙은이가 감히 누구에게… 컥!”

“…애송아, 내가 분명히 말했지. 아직 10년은 이르다고.”

사공우명의 이마에 한 자루의 비수가 꽂혀 있었다.

놀랍게도 비수를 던진 자는 바로 벌집이 된 귀백이었다.

그는 수백의 비수가 꽂혔음에도 목숨을 잃지 않았다.

금강불괴지신이라도 된단 말인가?

“하…! 정말 대단한 애송이였어. 설마 천잠보의와 귀문강신술조차 깨질 줄이야. 나도 늙긴 늙었나 보구나.”

귀림은 수백 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삼대 살종이었다.

그간 쌓은 부(富)는 어마어마했다.

전대 귀왕의 죽음으로 휘청하던 귀림이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한 저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많은 의뢰를 수행하다 보면 대가 혹은 전리품으로 보물을 얻게 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귀백이 입고 있는 흑의 역시 그런 기물 중 하나였다.

천잠보의(天蠶寶衣).

천잠사로 짠 보의로, 도검수화 불침이라는 엄청난 가치를 가진 보물이었다. 그런 천잠보의가 더 이상 쓸 수 없을 정도로 곳곳이 찢겼다.

사공우명의 만천혈우에 의해 생긴 일이었다.

허나 천잠보의만 엉망이 되었다면 귀백이 이처럼 씁쓸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귀문강신술(鬼門降神術) 역시 깨졌기 때문이다.

이름과 달리 실제로 귀신을 받아들이는 술법은 아니었다. 잠력을 끌어올려서 몸을 보호하는 괴공이었다.

천잠보의와 귀문강신술이라면 목숨을 한번 구할 수 있다고 자부했었는데, 애송이에게 깨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귀백이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한탄은 나중에 하고, 서둘러 저놈들부터 정리해야겠어.”

비정무림 (1)

“허… 일이 어렵게 되었구려.”

“…….”

“…….”

부천주의 말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상황이 무척이나 곤란하게 되었다.

흡정혈왕 석대환의 죽음으로 석가장은 더 이상 혈천십삼세의 한 자리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혈천 수뇌부는 석가장의 퇴출을 결정했다.

단, 그들의 금력만은 흡수할 생각이었다.

그 임무를 맡은 곳이 대장로의 혼세교와 대호법의 혁련세가였다.

산동의 혼세교와 하남의 혁련세가가 석가장 본가가 위치한 하북성과 근접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그들의 뜻대로 흘러갔다.

석대환과 현무가 없는 석가장은 그들에게 대항할 저력이 없었다.

그렇게 석가장을 집어삼키기 직전에 그만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나타났다.

석가장의 막대한 금력을 빼앗는데 실패한 것도 곤란한데, 그 과정에서 두 세력이 입은 피해가 너무도 컸다.

“무림맹에 끌려간 자들이 만약 입을 연다면…….”

“…그럴 리 없소.”

“물론 그러길 바라오, 대장로. 허나 만에 하나 입을 잘못 놀린다면… 본천은 물론 귀교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겠소?”

“…….”

부천주의 말에 대장로는 이를 악물뿐 반박할 수가 없었다.

무림맹으로 압송된 포로들은 대부분 평교도들이었기에 혼세교의 기밀은커녕 혈천의 존재도 모른다.

문제는 혼세교의 이인자인 우사 역시 잡혔다는 점이었다.

이는 단순히 혼세교 내의 일만이 아니었다.

혈천에 대해서도 상당부분 알고 있었기에 그가 입을 연다면 일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대장로께서 마무리를 짓지 못하겠다면… 혈살객을 보낼 수밖에 없소. 괜찮겠소?”

“…….”

부천주는 대장로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었다.

허나 대장로의 입에선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동의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반대할 수도 없었다.

임무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니 분명 반대할 수는 없었다.

허나 우사는 혼세교를 대표하는 초절정고수였다.

그의 부재는 대장로인 혼세신마의 전력 약화로 이어진다.

부천주, 대호법과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고 있는 그로서는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부천주는 고개를 돌려서 대호법에게 물었다.

“대호법께선 어찌 생각하시오?”

“…사자무언(死者無言). …지당한 말씀이외다.”

“……!!”

대호법인 혁련중광의 말에 좌중은 눈이 커졌다.

무림맹에 압송된 자들은 혼세교도만이 아니었다.

혁련세가의 가주인 혁련용후 역시 압송되었다.

혁련용후가 누군가. 혁련세가의 가주일 뿐만 아니라 혁련중광의 외아들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입을 막는 일에 너무도 쉽게 허락했다.

그것이 죽인다는 의미임을 모를 리가 없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의 아들을 제거하는데 동의하는 혁련중광을 보며 좌중은 소름이 돋았다.

권력과 명분을 위해서 자식조차 버릴 수 있는 자가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그가 반대한다면 이를 빌미로 궁지에 몰 생각이었던 부천주는 내심 아쉽기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혁련중광은 한술 더 떴다.

“하남 비밀안가에 나가 있던 혈비살객이 이끄는 혈살객이 전멸했다고 하니, 안휘 비밀안가에 있는 혈검살객에게 지시를 내리시지요.”

“……!!”

그의 말에 좌중은 눈이 커졌다. 이번에는 부천주조차 당황했다.

“…혈검살객이라면 대호법의… 손자 아니오?”

“…명색이 본가의 가주인데, 남의 손을 빌릴 수는 없지 않소이까?”

다들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아비로서 아들을 제거하는 것을 동의한 것도 어이가 없었는데, 이제 손자의 손으로 그의 아비를 침묵시키라니…….

인간이라면 결코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다.

그의 지독함에 좌중은 섬뜩할 정도였다.

그때 대군사 문인윤걸은 좌중과 달리 냉정하게 물었다.

“혈살객의 실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오나… 무림맹 총단의 뇌옥입니다. 그들이 경계를 소홀하게 했을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경계를 소홀하게 만들면 되지 않겠소. 대군사.”

대호법의 말에 대군사는 살짝 눈을 빛냈다.

무려 무림맹 총단 안에 있는 뇌옥이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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