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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209화 (209/314)

209화.

그의 신호를 발견한 혼세교의 평교도들은 지체 없이 임무를 수행했다.

“뭐, 뭐야!!”

“불이야!!

갑작스러운 소란에 좌중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혁련용후 역시 비장의 패를 꺼냈다.

“커억!”

“으아악!!”

“살…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외원 쪽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석주천의 거처를 포위하고 있던 석가장 무인들이 죽어가는 소리였다.

“저, 적이다!”

“뭐하고 있나! 어서 막지 않고!!”

석가수호대는 물론 내외당의 고수들이 움직였으나 무의미했다.

연기로 인해 시아가 확보되지 않았기에 함부로 검을 휘두를 수 없었다.

자칫 적이 아닌 동료를 벨 수 있다.

그런데 적은 귀신같은 솜씨로 석가장의 무인들만 베었다.

시아를 방해하던 연기가 점점 흩어지면서 적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고작 열 명의 검객들이었다.

“저기에 있다!”

“죽여!!”

주변에 쓰러진 수십의 동료들을 보며 석가장 무인들은 눈이 뒤집어졌다.

시아가 확보된 이상 복수를 해줄 생각이었다.

푹!

서걱!

“컥!”

“으아악!”

고작 열 명에 불과하지만 그들은 격이 달랐다.

석가장 무인들이 휘두른 도검은 그들에게 닿지도 않았다.

오히려 베이는 것은 그들이었다.

정말 귀신같은 솜씨였다.

그들은 환마십검(幻魔十劍)으로 혈천의 대호법이자, 혁련세가의 태상가주인 혁련중광이 보내준 고수들이었다.

오욕칠정(五慾七情)을 제거당해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야말로 살인병기들이었다.

혁련중광의 비장의 패 중 하나이기도 했다.

때론 눈에 보이는 신검보다 눈에 보이지 않은 비수가 더 위협적인 법이었다.

그렇기에 혁련용후는 웬만해선 환마십검을 숨겨두려고 했다.

일을 그르치지만 않았다면 이번 역시 그들을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 선택지가 없었다.

그들을 본 우사는 심기가 뒤틀렸다.

‘젠장! 이런 놈들을 데려왔으면 진즉에 써먹을 것이지!’

우사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환마십검 서너 명이면 초절정고수의 발도 묶을 수 있었다.

그런 저들을 진즉에 움직였다면 일이 이 지경까지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혁련세가의 본가가 당해서 예전 같지 않다고 알고 있었기에 내심 깔보고 있던 우사로서는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마, 막아 컥!”

“안 돼! 도망치지 마라!!”

환마십검의 막강함에 석가장의 무인들은 감당하지 못한 채 피해만 입었다.

이미 혼세교의 마령대와 혁련세가의 고수들을 상대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던 그들이었다.

그 와중에 환마십검과 같은 괴물을 상대하니 석가수호대 내에서 이탈자가 발생했다.

돈으로 고용한 자들에게 목숨을 건 충성을 요구하는 것은 애초 무리였다.

“비켜라! 일검진천(一劍震天)!”

진천검(震天劍)이라고 불리는 석가수호대장은 자신의 성명절학을 펼쳤다.

저들을 베서 꺾여버린 사기를 되돌릴 생각이었다.

푹!

“잘 봐라! 이놈들도 인간… 컥!”

“괴, 괴물이다!!”

석가수호대장의 검이 환마십검 중 한 명의 가슴에 박혔다.

득의하던 그의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원래라면 그대로 쓰러져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그는 가슴에 검이 박힌 채로 석가수호대장의 목을 베었다.

검이 찔려도 죽지 않은 존재.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반전을 꾀하려다가 상황만 최악으로 만들고 말았다.

환마십검도 인간이었다.

목이 베이면 죽고, 심장이 멈추면 죽는다.

다만 일반적인 인간과 달리 오욕칠정이 제거당했기에 검에 찔리고도 무감각한 반응을 보이는 것뿐이었다.

혁련용후는 이 기세를 이용해서 끝을 보려고 했다.

“…이렇게 된 것 모두 …죽여주마!”

* * *

“본가를 대신해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왕야.”

석가장의 대총관인 석대산이 이현성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소가주인 석주천이 죽고, 대장로인 석대중이 사경을 헤매고 있는 지금 석가장의 책임자는 바로 대총관인 그였다.

“아니오. 나 역시 오로지 선의만은 아니었소. 귀가의 대장로와의 거래이기도 하고 말이오.”

“…대장로께서 깨어나셔야 하지만… 약조는 기필코 지키겠습니다.”

석가장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났다.

외원의 4할 가까이 불에 타거나 무너지면서 외원의 가솔 수십 명이 죽고 그 배가 넘는 인원들이 다쳤다.

그것만 해도 물적, 인적피해가 상당한데 내원은 그보다 더욱 심각했다.

혁련세가와 혼세교의 고수들에 의해서 석가수호대와 내외당 고수 이백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

게다가 석가장의 혈족도 이십여 명이 죽었다.

내원에 기거하는 혈족은 직계 방계 가릴 것 없이 석가장의 핵심 인물들이었다.

그중 이십여 명이나 죽었다는 것은 앞으로 석가장에서 운영하는 사업들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는 말이었다.

만약 이현성과 그의 일행들이 도착하지 못했다면 이것으로 그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귀가의 사정도 있으니 약조는 급히 이행하지 않아도 좋소. 그보다 귀가의 무사들이 많이 상했다고 들었는데, 앞으로 어쩔 생각이오?”

“왕야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 점은… 인근 문파들의 도움을 받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대장로님의 약조를 이행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습니다.”

석가장의 대장로인 석대중이 이현성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중원상단 하남지부들을 넘겨주는 조건을 내걸었다.

하남성 상계에 대한 석가장의 영향력을 잃는 중대한 일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다행이었다.

중원상단 하남지부들이 철수하면 그곳에 종사했던 상인들과 경비무사들 역시 총단으로 복귀해야 했다.

그중 경비무사들은 본가의 경비로 돌리면 되고, 상인들 역시 이번에 발생한 공백에 재배치하면 된다.

이번 일로 인해 석가장의 위세는 상당히 줄어들 수밖에 없겠지만, 그건 그들의 앞으로 해결할 과제였다.

“아, 그리고 포로들은 무림맹에 양도했으면 하는데… 괜찮겠소?”

“…부탁드리겠습니다.”

석가장 외원에서 소란을 일으켰던 혼세교의 평교도들은 도주를 하다가 때마침 도착한 이가장의 일행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게다가 석가장 무사들을 학살하던 환마십검은 제갈인겸과 제갈세가의 원로들 그리고 한승과 화산파 고수들에 의해서 전멸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제압하려고 했으나 그들은 제압될 정도로 가벼운 상대가 아니었다.

게다가 살인병기인 그들은 팔다리가 베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되레 달려드는 괴물들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전투불능 상태가 되었을 때는 금제가 발동되었는지 자결을 할 정도였다.

따라서 애초 살려서 제압이 불가능한 자들이었다.

눈이 뒤집어진 혁련용후는 규염을 뿌리치고는 뒤에 물러나 있던 이현성에게 달려들었다.

이현성은 천진룡에게 입은 내상 때문에 전투에 참가할 상태는 아니었다.

굳이 이현성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

그전에 독고혜에 의해서 막혔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규염까지 합류하자 혁련용후는 제대로 힘도 못쓰고 궁지에 몰렸다.

더 이상 치욕을 감내할 수 없었는지 혁련용후는 자결을 시도했으나 이를 두고 볼 독고혜가 아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우사는 항복하고 말았다.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인지했던 것이다.

‘후… 돌아가면 당분간은 외부활동은 자제해야겠어.’

고작 두 달 사이에 너무도 많은 싸움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것도 상당히 많았으나 그로 인해 얻은 정신적 피로도 보통이 아니었다.

허나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이가장을 향한 혈천의 마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 * *

“쳇! 고작 첫 임무가 빈집털이라니… 이딴 임무를 위해서 지옥과 같은 시간을 이겨낸 것이 아닌데 말이야…….”

스무 명쯤 되어 보이는 괴한들이 어느 장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내가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그들을 봤다면 미쳤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곳은 바로 정주제일세라는 이가장이었다.

이가장은 수백의 무사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곳이다.

그런 곳을 고작 스무 명 정도 되는 인원으로 무언가를 꾸미려고 했다.

결코 제정신으로 보일 수 없었다.

“그래도 상부의 명이니 완수해야겠지. 모두 정신 차려! 나 사공우명의 이름을 망치는 새끼는 모조리 죽여 버릴 테니까.”

사공우명. 무림에는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이름이었다.

허나 그가 혈천 이장로의 아들이자, 혈비살객(血飛殺客)임을 안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그들은 바로 혈살객이었다.

혈천 하남 비밀안가에 자리를 잡은 그들에게 상부의 밀명이 떨어졌다.

[정주 이가장을 지워라!]

사공우명은 불쾌했다.

진짜배기라고 할 수 있는 고수들이 전부 자리를 비운 이가장을 지우라는 말이 왠지 자신을 저평가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누군가. 혈살육관을 통과하고 혈천신단의 약효까지 이겨낸 혈비살객이었다.

그가 이끄는 혈살객들 역시 혈살사관 이상을 통과한 특급살수들이었다.

그런 자신들에게 걸맞은 임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틀린 말도 아니었다.

북경에 나가 있던 흑룡대가 복귀하면서 이가장은 사백 명의 무사들이 기거하고 있었다.

그러나 절반 이상이 이류무사고, 일류고수는 일백도 채 되지 않는다.

절정고수는 열이 넘지 못한 상황이었다.

하물며 암살이라면 스무 명의 혈살객들에게 이가장은 너무도 쉬운 임무였다.

“상부에 내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야겠어. 개미 새끼 하나도 남겨두지 마라.”

“존명.”

혈살칠객과 혈살객 간의 격차는 비교 불가였다.

그러다 보니 상명하복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혈살객들이 이가장의 담을 은밀하게 넘었음에도 이가장의 외곽 경비무사들은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자신의 심장에 차가운 비수가 꽂히는 순간까지도.

푹! 푸푹!

“……!”

“……!!”

수개월 전, 혁련세가의 습격 이후 이가장은 야간 경계가 강화되었다.

경비무사들 간의 거리를 좁혀서 육안(肉眼)으로 서로의 상황을 살필 수 있게 했다.

이를 위해서 이가장은 경비대원의 수를 배로 늘렸다.

잠룡대원 일백 명으로는 그 정도의 경계 상황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이가장은 상당한 지출을 감수해야 했으나 장원의 안전을 위해서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가장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드는 자들이 바로 혈살객이었다.

특급살수인 혈살객이라면 홀로 경비무사 한두 명을 소리 없이 제거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런 혈살객이 무려 스물이었다.

외곽 경비무사 스무명이 절명했음에도 누구도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그들의 암살능력은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혈천에서 십칠 년이나 투자해 양성한 비밀병기들다웠다.

이가장의 외곽을 경비하던 무사들을 제거한 혈살객들은 본격적으로 장원 안으로 침투했다.

외곽을 벗어나자 이번에는 수십 명의 무사들이 외원을 지키고 있었다.

‘수가 제법 되지만… 상관없지.’

외원의 경비무사는 외곽보다 더 많이 배치됐다.

하지만 혈살객들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실제로 그들은 조금 전에 외곽 경비무사들을 제거했던 것처럼 은밀하게 외원 경비무사들에게 접근했다.

그리곤 그들의 심장에 비수를 찔러 넣었다.

푹! 푸푹!

순간 가죽을 뚫는 소리가 들려왔다.

“……!”

“……!!”

그렇게 또다시 생명들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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