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살수-204화 (204/314)

204화.

“본천의 대장로이시자 본교의 교주이신 혼세신마 님을 모시는 우사(右師)라고 합니다.”

“혼세교…! 설마 산동의……?!”

석대중은 의외로 아는 것이 많았다. 당연했다. 천하에 중원상단의 지부가 없는 곳이 없었다.

그리고 중원상단의 상단주가 바로 석대중이었다.

정보의 방대함만은 3대 정보 집단에 견줄 만하였다.

“혈천에선 본인을 지원하기로 결정하신 겁니까? 우사님.”

“안타깝게도 그건 아닙니다. 본천이라고 귀가의 수장을 마음대로 정할 순 없지 않습니까? 다만 본천의 대호법께서 독단으로 귀가의 소가주를 지원하는 듯하기에… 이를 안타깝게 여긴 본교의 교주께서 저를 보내셨습니다.”

혈천의 결정은 석가장의 금력을 흡수하는 것이었지만, 사실대로 알려줄 순 없었다.

그렇기에 우사는 달콤한 말로 그를 설득했다.

원래 이 역할은 혼세교의 좌사 모관형의 몫이었다.

허나 한쪽 팔을 잃은 이후 그의 성격이 너무 거칠어져서 이런 유형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결국 우사가 직접 나서게 되었다. 다만 상대는 석가장의 대장로인 석대중. 산전수전 다 겪은 그를 말로만 설득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의외로 석대중은 너무도 쉽게 넘어왔다.

“고맙소. 귀교의 교주께 이 석대중, 이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전해주시오. …필요하다면 귀교에 입교도 고려하겠소.”

“그대의 결단에 경의를 표합니다. 혁련세가는 본교가 상대할 테니, 걱정 마십시오.”

미끼를 물었다고 판단한 우사는 기분 좋게 돌아갔다.

만족스러워하던 석대중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나 석대중을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로 생각하는군. 우선 네놈들의 수작은 모른 척해주마. 하지만 순순히 당해줄 내가 아님을 곧 알려주마.’

석대중 그는 결코 만만한 자가 아니었다.

우사는 그의 위기를 이용해 달콤한 유혹을 했다.

허나 그는 그 속에 숨겨진 저의를 간파했을 뿐만 아니라 속아 넘어간 것 같은 연기까지 했다.

그 역시 상인이었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이용할 생각이었다. 수작을 부리는 그들의 힘조차도.

‘대비를 해야겠어. 여차하면 나와 본가를 빼낼 대비를…….’

* * *

“혁련세가는 벌써 중원전장에 대한 물밑작업을 끝냈다고 하는데, 본교는 왜 이렇게 진척이 느린가!”

혁련세가와 혼세교는 각기 석가장의 소가주와 대장로를 지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편에 서서 상대 진형의 요인을 협박하거나 필요하다면 암살까지 자행했다.

급기야 혁련세가의 고수와 혼세교의 고수가 충돌까지 했다. 허나 사전에 입을 맞춘 덕분에 실질적인 피해는 없이 석가장의 눈만 속이고 있었다.

그런 한편 진짜 임무인 석가장의 금력을 빼돌리고 있었다. 혁련세가는 소가주에게 전향한 종 노대라고 불리는 노가신에게 마수를 뻗었다.

그는 석가장 오대 주력사업 중 하나인 중원전장을 관리하는 인물이었다.

애초 중도파인 그가 소가주 파벌로 전향한 것도 혁련세가가 그의 손녀를 쥐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일갑자 넘게 석가장에 충성해온 그라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손녀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결국 중원전장의 지분 상당부분이 은밀하게 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장부상 완벽하게 조작해두었기에 석가장 본가에서도 이를 눈치채지 못한 상황이었다.

“중원상단은 석대중이 꽉 쥐고 있어서 쉽게 틈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사 어른.”

“그걸 말이라고 해!”

“죄, 죄송합니다. 우사 어른.”

말이 오대 주력사업이지, 중원상단만 손에 넣어도 나머지 넷과 견줄 수 있었다.

허나 그런 중원상단인 만큼 석대중이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으며,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어설프게 손을 썼다가는 오히려 일만 그르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중원상단 만큼은 입맛을 다시면서도 쉽게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보다 석대중의 눈치는 어떤가?”

“원로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일에 집중하면서…….”

“하면서?”

“내당주와 접촉하려고 합니다.”

수하의 보고에 우사는 살짝 눈이 커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너무 쉽다고 했어.”

석가장에는 전대 가주인 석대환이 은밀하게 양성한 삼당이 존재했다. 삼당은 총당주인 현무의 능력을 삼분해서 양성한 집단이었다.

은신과 경공을 주력으로 익힌 밀당, 외문무공과 실전무공을 익힌 외당. 그리고 내가고수로 구성된 내당.

삼당의 무학을 모두 익힌 존재가 바로 현무였다.

일반적인 방법으론 삼당의 무학은 한 사람이 모두 익히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석가장은 막대한 지원을 해서 한 명의 현무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그를 양성하는데 동원되는 비용이 천문학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삼당이 약한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석대환의 비밀무기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밀당은 석대환과 함께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 내당과 외당만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석대중은 그런 이당 중 내당에 손을 뻗으려고 했다.

“모르는 척했지만 사실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단 말이지?”

“손을 쓸까요?”

“아니. 지켜본다. 타초경사의 우를 범할 순 없지.”

석대중이 내당에 접촉한 사실을 자신이 안다면 그는 더욱 경계하고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허나 반대로 그 사실을 알고 있단 사실을 그가 모른다면 그만큼 방심하게 된다.

우사는 그 점을 노리려고 했다.

“잘만하면… 중원상단을 본교가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크크크…….”

* * *

“주천이 그놈이 외당을 어찌 알고!”

석대중은 머리가 아파왔다.

그는 석가장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된 후를 위해 은밀하게 내당주와 접촉 중이었다.

삼당은 전대 가주인 석대환이 금기를 깨고 만든 무력집단이었다. 그중 밀당은 석대환과 함께 사라졌지만, 아직 내당과 외당이 남은 상태였다.

그는 우선 내당을 끌어안은 후 외당 역시 손에 넣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청천벽력도 유분수지, 어찌 알았는지 석주천이 외당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삼당의 존재는 석가장에서도 거의 아는 사람이 없었다.

소가주라도 석주천의 영향력 정도로는 알 리가 없었기에 석대중은 방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 알았는지 외당의 위치를 수소문하다가 석대중의 귀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다행인 점은 아직 외당의 소재도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서둘러야 해. 저들이 언제 흑심을 드러낼지 모르니…….”

석가장에는 수많은 무인이 존재했다.

질에서 밀리니 양으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어서였다.

허나 그들만 믿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실제로 혼세교의 우사란 인물이 접근할 때, 수십의 무림인들이 지키고 있는 전각을 소리 소문 없이 들어오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석대중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석대환이 남긴 고수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가 손에 넣은 것은 내당고수들뿐이었다.

만약 외당을 석주천에게 빼앗기기라도 한다면 상황이 무척이나 곤란하였다.

게다가 양 파벌의 분쟁이 극대화되면서 석가장이 둘로 쪼개지기 직전까지 가게 되었다.

그 와중에 혁련세가와 혼세교는 그런 그들에게 협조하는 척하며 석가장의 금력을 빼돌리는데 열을 올렸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결국 잡히는 법. 석대중은 물론 석주천 역시 그들의 수작을 눈치챌 수 있었다.

* * *

“오랜만이다. 주천아.”

“…….”

석대중은 혁련세가와 혼세교의 눈을 피해서 석주천을 찾아왔다. 이미 양 파벌의 분쟁이 심화되어서 두 사람은 원수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양 파벌의 수장이 밀회를 가지는 것은 도박에 가깝다. 그럼에도 석대중은 강행했다. 더 이상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고 해도 난 네 숙부다. 주천아.”

“…오랜만에 뵙네요. 대숙.”

석주천은 마지못해서 석대중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대화를 나눌 최소한의 준비는 끝난 셈이었다.

석대중은 한숨을 쉬곤 나직하게 말했다.

“중원전장을 빼앗겼더구나.”

“그건!”

석주천은 움찔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중원전장은 석가장 오대 주력사업의 하나답게 그곳에서 창출되는 수익이 상당하였다.

승기가 석대중에게 기울고 있을 때, 중원전장을 맡은 종 노대가 석주천에게 손을 들어준 덕분에 다시 균형을 이룰 정도로 중원전장이 석가장에 끼치는 영향력은 컸다.

그런 중원전장이 혁련세가의 손에 넘어갔다. 이건 소가주 자리를 박탈당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었다.

물론 석대중 파벌의 사업 중에서도 혼세교 쪽으로 넘어간 것이 발견되었으나, 그래봤자 소소한 것들뿐이었다.

중원전장을 빼앗긴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물론! 나 역시 종 노대가 그들에게 굴복할 줄은 몰랐다. 허나! 그렇다고 한들 네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정하느냐?”

“…인정…합니다.”

얼굴이 어두워진 석주천은 마지못해 인정했다.

부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 그를 보며 석대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석대중이 제안을 해왔다.

“너도 알겠지만, 내 아들 주광이는 본가를 이끌 그릇이 못 된다. 소가주 자리는 물론 내 후계자로 널 지명하겠다. 그러니 이제 그만하자. 혈천 놈들만 좋을 일 만들지 말고.”

“그 말… 진심이십니까?”

석대중의 말에 석주천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의 입장에선 석대중의 제안을 거절하기 힘들었다.

물론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거절하고 싶었다.

석주천이 원하는 자리는 소가주가 아닌 가주였으니까.

하지만 가주의 자리를 얻는 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포기하는 순간 모든 것을 잃을 테니까.

그러는 차에 석대중이 소가주의 자리는 물론 그의 후계자로 지명해주겠다고 하니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거의 다 넘어왔군. 좋아… 그럼…….’

흔들리는 석주천을 보며 석대중은 승부수를 던졌다.

“네가 원한다면 문서로 남겨주마.”

“……!!”

상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계약이었다.

결국 돈과 신뢰를 증명하는 것이 바로 계약이고, 그 계약을 문서로 적은 것이 계약서였다. 자신들의 계약을 문서로 남겨주겠다고 하니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물론 석대중은 그걸 알기에 강수를 둔 것이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분쟁은 쉽게 마무리되지 않을 것이고, 그러는 사이 석가장은 혈천에 의해서 더욱 너덜너덜해질 게 분명했다.

“좋…습니다. 대숙. 계약서를 써주세요. 그럼… 대숙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당장 써주마!”

이로써 지저분한 그들의 싸움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물론 이 일이 알려진다면 석주천을 지지했던 자들은 난리를 칠 것이 뻔했다. 이미 양 파벌은 원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사이가 악화되었다.

권력이 석대중에게 넘어간다면 그의 파벌이 석주천의 파벌이었던 자들을 가만둘 리가 없었다.

하지만 석주천으로선 이게 최선이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결말을 원치 않는 자들이 더 있었다.

쾅!!

폭발과 함께 밀담을 나누고 있는 소가주 거처의 문이 박살났다.

“그건 곤란하지. 이대로 그만두는 것은 말이야. 안 그렇소? 혁련 가주.”

“물론이오. 우사.”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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