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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203화 (203/314)

203화.

인근 군영에서 출동한 군사들이었다.

금군을 벤다는 것은 황실에 대한 도전으로 비출 수 있었다. 하물며 그 수가 수백에 해당되니 그 죄는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을 잔혹하게 베어야만 했다.

“아무리 상황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감히 나에게 창을 겨눠? 언젠가 네놈들을 기필코 죽여주마!”

“주군, 떠나셔야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웅이라고 불렸으나 지금은 역적이 된 천진룡.

천진을 통해서 황도를 장악하려던 계획이 예상치 못한 하북팽가와 도왕의 등장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그 사이 기대했던 태태감은 황실을 장악하긴커녕 죽었다는 비보만 전해 듣게 되었다.

결국 그는 금의위와 하북팽가를 뿌리친 채 산동성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대계가 실패한 이상 황실이 자신을 가만둘 리 없었다.

그렇기에 천진룡은 동부군의 힘을 모아서 버틸 생각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황제라도 타협을 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동부군을 버린다면 나라 자체가 흔들릴 수 있었다.

그건 황제도 결코 원하는 바가 아니다.

“도대체… 어디로 간단 말인가!”

“주군……!”

북쪽에선 용불군 대장군이 남하하고 있고, 서쪽에선 자신을 형님으로 받들던 중군도독이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싶어 오히려 창을 겨누고 있었다.

그러는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자신들을 마중 나온 줄 알았던 동부군이 갑작스레 공격을 했다.

동부군의 장군들이 배신을 한 것이다.

아니, 황명에 따라서 역적을 잡으려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천진룡의 사병이 아닌 명(明)의 군사들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역적이 되었다고 화경에 오른 그의 힘이 사리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와 천씨세가의 힘만으로 천하와 싸워야 할 판이었다.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천진룡은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일가가 몰락하게 생겼으니 당장이라도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여기서 그냥 죽을 생각이오! 나는 그럴 수 없소!”

“감히 네놈이…….”

“되었네. 그래서 어쩌자는 겐가?”

“배라도 탈취해서 세외라도 갑시다. 제기를 해야 하지 않겠소?”

천진에서 도망친 것은 천진룡의 수족들만이 아니었다. 태태감의 제안을 받아들였던 칠웅방의 무리도 함께였다.

그러므로 그들로서는 선택지가 없었다.

항복해봤자 역적으로서 참수당할 것이고, 운이 좋아야 평생 노역을 하다가 죽을 것이 뻔하니까.

결국은 천진룡과 함께 남하할 수밖에 없었다.

“세외라… 방법이 그것밖에 없는 것인가…….”

“그렇다고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소.”

동부군이 보유한 군선을 탈취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허나 군선만 탈취한다고 끝이 아니었다.

항해할 동안 버틸 물과 식량 등도 함께 옮겨야 했다.

설사 해낸다고 해도 바로 동부군의 함대가 따라붙게 될 텐데, 바다에선 화경의 힘이 통하지 않는다.

즉, 배를 통해서 세외로 간다는 것은 도박인 셈이었다.

허나 그들의 입장에선 도박을 하지 않을 안전한 방법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음…? 누구냐!”

천진룡의 외침에 그의 수하들이 각자의 무기를 쥔 채 주변을 경계했다.

비록 도망치고 있으나 정예군사들다웠다. 그때 한 사내가 나타났다. 그리곤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부천주님의 전언을 가지고 왔습니다. 대장군께서 허락하신다면 긴히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모두 자리를 비켜주게.”

“주군!”

정체불명인 사내의 등장에 경계하고 있던 천씨세가와 칠웅방의 고수들은 천진룡의 말에 당황했다.

허나 그의 말을 거부할 수 없기에 물러났다.

그러자 괴한은 다시 한번 포권을 취하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대장군.”

“치사 따위를 듣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혈천의 사자가 내게 무슨 용무인가?”

과연 천진룡이었다. 그는 혈천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천진룡이 태태감만 믿고 거사를 따를 리가 없었다.

태태감에게 혈천이라는 든든한 우군이 있음을 알았기에 그도 거사에 합류하기로 결심할 수 있었다.

“부천주께선… 대장군께서 본천과 함께 하시길 원하십니다.”

“혈천이라… 그냥 이런 제안을 할 리는 없고… 부천주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천진룡의 말에 괴한은 씨익 웃었다.

귀찮은 설명이 필요 없기에 바로 부천주의 조건을 꺼냈다.

“이현성의 목을 가져다주신다면, 본천까지 오시는 동안의 안전은 물론 대장군께 어울릴 만한 자리를 드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이현성? 설마…! 거사를 방해했다는 그 애송이를 말하는 겐가!”

도망치는 도중에도 귀를 열어두었는지 이현성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천진룡은 이현성의 이름이 언급되자 즉시 살기를 드러냈다.

그 역시 이현성을 가만둘 생각이 없었다.

“제안을 받아들이지.”

“부천주께서 기뻐…….”

천진룡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허나 아무리 자신이 불리한 상황이라고 해도 순순히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는 부천주의 사자의 말을 끊고 조건을 제시했다.

“그 전에, 내 수하들부터 귀천에 안전하게 들이게. 나는 놈의 목을 베고 합류하지.”

“그건… 알겠습니다. 대장군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부천주의 제안을 임의로 조정할 수 없는 일이나, 사전에 그만한 권한을 부여받았는지 부천주의 사자는 천진룡의 조건을 바로 받아들였다.

부천주의 사자가 고지식하게 거절했다면 협상을 결렬하려고 했으나 의외로 쉽게 받아들이자 천진룡이 오히려 얼떨떨했다.

“그럼 저는 대장군의 수하들이 안전히 떠날 수 있게 조치를 해두겠습니다.”

부천주의 사자가 떠난 후 천진룡의 부관이자 심복인 사내가 다가왔다. 천진룡은 부천주의 사자와 협의한 사항을 밝힌 후 뒷일을 맡겼다.

그러나 그는 처음으로 불복했다.

“불가(不可)! 어찌 주군만 보낼 수 있겠습니까! 신(臣) 역시 동행하겠습니다!”

“자넨 내 대신 본가를 안전하게 이동시켜야지!”

“제겐 가문보다 주군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애송이에게 당하실 주군이 아님을 모르지 않으나 그가 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닐 겁니다. 다른 놈들이 주군을 방해하지 못하게 지킬 자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으음… 좋네. 본가는 집사장에게 맡기지. 자네만 동행하게.”

“감사합니다! 주군!”

부천주의 선택은 바로 천진룡이었다.

오제(五帝)급 강자인 그라면 이현성의 목을 분명 취할 것이고, 천씨세가라면 석가장의 무력을 대체하고도 남는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이며,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었다.

‘오늘의 수모… 결코 잊지 않겠다!’

* * *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대장로님.”

“맞습니다. 형님. 발악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과합니다.”

석가장의 대장로 파벌은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정통성과 연륜을 내세운 분쟁에서 연륜을 내세운 대장로 쪽으로 승기가 기울고 있었다.

애초 석가장은 장자우선원칙을 고수한 가문이 아니었다. 능력을 우선시하는데, 다만 대체적으로 장자가 가주를 계승해왔을 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대장로 석대중은 가주의 자리에 앉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석가장의 중추라 할 수 있는 중원상단을 이끌며 그 능력을 증명했다.

그에 반해 소가주는 비중이 많이 떨어지는 중원표국을 맡고 있었다. 아직 연륜이 부족하다는 점도 있으나 표사들을 잘만 육성한다면 쓸 만한 수족이 될 수 있기에 죽은 석대환이 그에게 중원표국을 맡긴 것이다.

석가장 오대 주력사업 중 하나이자 비밀사업인 밀염을 담당하고 있는 가신이 소가주를 지지하고 있기에 그나마 버티고 있으나 곧 굴복할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분위기가 바뀌고 있었다.

“개념 없는 대완이 그 자식은 몰라도 종 노대(老大)의 변절은 너무나 이상합니다.”

석대완은 석가장의 혈족으로, 중원마장을 관리하는 인물이었다. 말이란 고래부터 고가로 거래되는 짐승이었다.

특히 군마(軍馬)의 경우는 조련이 힘들어서 문제이지, 잘만 키운다면 부르는 것이 값이었다.

물론 그만큼 거래가 쉽지는 않았다. 가격이 만만치 않은 만큼 구매자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운용할 가치가 충분한 사업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한들 중원마장이 석가장의 사업 중에서는 그리 비중 있는 편은 아니었다.

그것을 항상 불만 갖고 있는 석대완이니, 소가주가 좋은 제안을 했다면 얼마든지 갈아탈 녀석이었다.

하지만 석가장의 노(老)가신인 종 노대는 다르다.

“맞습니다. 종 노대가 누구입니까. 돌아가신 백부님에 이어서 큰형님까지 중원전장을 맡긴 분이 아닙니까? 그런 분이 어찌 엉덩이가 이리 가벼울 수 있습니까?”

“그게 나도 이상하단 말이야.”

중원전장은 중원상단만은 못하지만, 석가장의 주력 오대사업 중 하나였다. 그런 중원전장을 맡길 정도로 종 노대의 능력과 인품은 믿을 만했다.

몇 안 되는 중도파의 수장인 그가 소가주를 지지한 것은 대장로 파벌에게 큰 충격 및 타격을 주었다.

“대광이 넌, 우리 쪽 사람들이 흔들리지 않게 잘 다독이고… 자네들은 아직 넘어가지 않은 중도파를 끌어들여 보게. 소가주 쪽 이들 중 흔들 수 있는 자가 있으면 흔들어보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장로님.”

“알겠습니다. 형님.”

대장로 파벌의 핵심인물들이 돌아간 후 석대중은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혈천에서 주천이를 택한 것은 아니겠지?”

혈천의 존재. 그리고 그들과 석가장의 관계는 석대환과 그의 심복들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상계는 무림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 석가장의 이념이었다. 상인이 칼을 쥐어서 패망한 일이 고래부터 많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석가장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할 무력을 돈으로 살 뿐 직접 칼을 잡지는 않았다.

유일한 예외가 장주의 수신호위인 현무였다.

그런데 죽은 석대환은 삼당을 비밀리에 양성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흡정마공까지 익혔다.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외부세력인 혈천의 구성원이 되었다.

이 일이 알려진다면 석대환은 원로들과 가신들에게 질타 받을 만한 중대한 위반사항이었다.

심하면 탄핵도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석대환은 천하라는 거대한 야망 때문에 선을 넘었다.

석대중은 석가장의 이인자인만큼 그러한 비밀을 알고 있었다. 지금의 이 이상 현상이 혈천의 짓이라면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석대환조차 일개 간부였던 혈천이라면.

“호… 역시 감이 좋은 분입니다.”

“누구냐!”

석대중은 깜짝 놀랐다. 그의 거처 밖에는 수십의 무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에게 걸리지 않고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으니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석대중의 외침에 노인은 피식거렸다.

“그렇게 크게 소리쳐도 아무도 들어오지 못합니다.”

“…….”

석대중은 단지 놀라서 소리친 것이 아니었다.

밖을 지키는 무사들에게 신호를 주려는 것이다.

석대중, 그는 역시 만만한 자가 아니었다.

행동 하나하나에도 숨겨진 의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석대중의 움직임을 노인은 모두 꿰뚫어보고 있었다.

“날… 제거하려는 것이오?”

“이런. 오해를 하셨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반대…란 말이오?”

노인의 대답에 석대중의 눈빛이 바뀌었다.

전화위복. 위기가 기회로 바뀌는 순간임을 느꼈다.

눈치가 빠른 석대중을 보며 노인은 입꼬리가 올라갔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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