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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201화 (201/314)

201화.

무선만 정리한다면 더 이상 그를 방해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림군장인 무선이 이곳에 있음에도 이렇다 할 연락이 없는 살왕이 신경 쓰였기에 더 이상 시간을 끌 수가 없었다.

화경(化境).

그 지고한 경지에 올랐음에도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두 초인.

그런 두 사람이 극한으로 내공을 끌어올리자 대기가 흔들렸다.

그제야 주변에서 정신없이 싸우고 있던 도찰원 좌도어사를 위시한 황제 파벌과 우도어사를 위시한 태태감 파벌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차 하는 순간 적의 검에 목숨을 잃을 수 있었기에 쉽게 몸을 뺄 수도 없었다.

그러던 차에 결국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만 사라져…….”

콰쾅! 쾅쾅! 쾅! 쾅! 쾅!!

그 거대한 폭발에 지척에 있던 수십여 명이 휩쓸리고 말았다.

그들은 단말마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소멸되었고, 주변 전각들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수십 대의 포탄이 집중 포격되었더라도 이보다는 못할 것이 확실했다.

그야말로 인간을 벗어난 자들의 전력다웠다.

“우웩!”

“무…선께서… 패…하신 건가.”

“폐하를… 폐하를 지켜야…….”

금의위 도독과 제독동창 역시 후폭풍에 휩쓸렸으나 다행히 목숨은 건사할 수 있었다.

허나 그전에 태태감에게 당한 부상 때문에 그들 역시 무사하다고 말할 순 없었다.

그런 그들은 곧 절망했다.

피를 토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는 무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때 죽어가는 누군가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도…대체… 내…가… 모르…고 있던 자…가… 쿨럭 쿨럭… 우웩!”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처참한 꼴로 죽어가는 자가 있었다.

양다리는 물론 한쪽 팔이 사라져 있었으며, 가슴에는 검이 박혀 있었다.

이미 살아도 산 거라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산송장이었다.

화경고수를 셋이나 감당했던 태태감답지 않은 꼴이었다.

“키키… 쿨럭… 너무… 좋아하지… 쿨럭… 마라…….”

“살왕과 살막이라면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요.”

“……!!”

태태감은 눈을 부릅떴다.

살왕과 살막은 그가 준비한 최강의 패였다.

절대 실패할 수 없다고 자신했다.

문제가 될 어림군장조차 이곳에 있으니 더더욱 그렇게 여겼다.

그런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과 같은 말인가!

그런 그의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령곡과 석가장이라는 선물은 너무도 잘 받았소. 덕분에 나 역시 죽을 뻔했으니…. 물론 그 덕분에 벽을 깰 수 있었지만…….

“네… 네놈! 커억!”

이현성은 태태감의 가슴에 박힌 자신의 검을 회수했다.

그러자 얼마 남지 않은 태태감의 생명의 불길 역시 급격하게 사그라졌다.

무선과 태태감의 격돌이 극에 달했을 때, 이기어검에 의한 암습을 한 자가 있었다.

바로 이현성이었다.

살왕을 벤 그는 태태감에게 향했다.

황실로 오는 도중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진정한 적은 바로 태태감.

그를 쓰러트리지 못한다면 이 싸움은 마무리 지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태감, 그는 역시 강했다. 이야기로 들은 것 이상으로.

‘저분을 방패 삼아서 기습하지 않았다면…….’

화경에 올랐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팔왕의 하나인 살왕조차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리고 눈앞의 태태감은 설사 목숨을 걸었다고 한들, 지금의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폐…하…께선…….”

“무사하십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노선배님.”

이현성의 대답에 무선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평온했다.

황제의 숨겨진 수호신이자, 무림의 전설 신비무선.

태태감과 함께 그 역시 그렇게 역사의 한편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 * *

“역적의 수괴가 죽었다고 한들! 반역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역적 도찰원 전(前) 우도어사…….”

태태감의 죽음으로 역천을 꿈꾸던 무리는 너무도 쉽게 무너졌다.

사기가 곤두박질쳤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수뇌급인 도찰원 우도어사와 동창 좌첩형이 도주를 꾀했다.

허나 구문제독부의 군사들과 황궁 밖에 주둔한 금의위 천호소 군사들에 의해 퇴로가 막히고 말았다.

수뇌들이 도망쳤으니 그들을 따르던 무리 역시 지리멸렬하더니 곧 자멸하고 말았다.

“…구족을 멸하고! 연루된 황족들은 평생 구금을 명한다!”

황제라고 무작정 구족을 멸족시키진 않았다.

그러기에 연루된 자들이 너무도 많았다.

수뇌급 반역자들을 제외하곤 죄질에 따라서 재산 몰수 및 태형, 강제노역 등으로 선처를 해주었다.

명령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동조한 군사들까지 모두 멸족시킨다면 나라 자체를 건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주한 역적 천진룡을 체포하되, 생사는 불문하겠다!”

“천명을 받들겠나이다!”

벌이 있다면 상도 있어야 하는 법.

반역을 막은 이들에게는 그만한 포상이 이루어졌다.

작게는 상금이, 크게는 승급이 이루어졌다.

특히 제독동창의 경우 사례감장인태감에 오르게 되면서 최고의 혜택을 받게 되었다.

금의위 도독의 경우 어림군장의 자리를 맡게 되면서 권력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황제의 수호신이라는 최고의 명예를 얻은 만큼 절대 실망하지 않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가장 득을 본 사람은 바로 황제였다.

비록 황실의 힘이 많이 깎였으나 가장 위협이 되었던 태태감과 그의 무리가 사라졌다.

이제 어느 누가 감히 황제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겠는가.

황제는 이번 기회를 통해서 보다 강력한 황권을 확립시킬 생각이었다.

그걸 알기에 대신들은 혹시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몸을 사리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아쉬운 점이 있었다.

‘아쉽군. 비어버린 어림군장의 자리를 그가 맡아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림군장의 자리에 금의위 전(前) 도독을 앉혔으나 내심 이현성에게 맡기고 싶었다.

하나 황실에 뜻이 없는 그를 황명으로 강제로 앉힐 수도 없었다.

그리고 태태감의 죽음이 끝이 아니었다.

아직 중원무림은 더욱 큰 위험을 안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태태감조차 두려워하던 자가 존재하다니…….’

혈천(血天). 그리고 혈천주(血天主).

그의 존재를 알기에 황제는 이현성을 무작정 황실의 품에 안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을 막지 못한다면 황실 역시 또 다른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그걸 알기에 황제는 황권의 강화는 물론 또 다른 위험에 대비해야 했다.

* * *

천하는 술렁거렸다.

황실이 피로 물들었다는 것에 첫 번째로 놀랐고.

살왕이 역도와 손을 잡고 황제를 노렸다는 것에 두 번째로 놀랐으며.

그가 화경에 올랐다는 것에 세 번째로 놀랐다.

하지만 천하가 술렁거린 가장 큰 이유는…….

검신(劍神) 이현성.

살왕을 베고 황제를 구한 한 사내 때문이다.

황제는 그의 공을 높이 사 ‘검신’이라는 별호를 직접 내려주었다.

‘검신이라니…! 고작 화경 초입에 불과한 나에게…….’

황제가 직접 하사한 별호이니 거부할 수 없었으나 스스로 당치 않다는 것을 잘 알았다.

오제에도 미치지 못한 자신의 무위가 팔왕에 견줄 정도임을 알기에 이현성은 민망할 따름이었다.

그는 황제의 노림수를 알고 있었다.

반역으로 인해 황실과 천하의 정세가 혼란스러웠다.

때문에 영웅을 탄생시켜서 시선을 돌리려는 것이 바로 황제의 노림수였다.

‘그래도 얻은 것이 많으니까.’

황제가 이현성에게 하사한 것이 고작 별호만은 아니었다.

반역을 제외하곤 그 어떤 죄도 사면해준다는 사면령(赦免令).

실질적인 권한은 없으나 황실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명예 왕작(王爵).

그리고 이가장과 그 주변 일대를 봉토(封土)로 만들어주었다.

그 외에도 명예 왕작으로서 크고 작은 혜택이 주어졌다.

덕분에 더 이상 승선포정사사 등의 방해를 받지 않아도 되었다.

그의 권위가 이미 고위관리들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문제는 쓸데없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는 건데…….’

단일 세력으로 봤을 때, 이가장은 절대 빠지는 편이 아니었다.

이현성을 제외해도 초절정고수만 셋이며 그에 근접한 고수가 한 명.

여러 사업장에 흩어진 인원까지 포함하면 일천에 가까운 무인을 휘하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한 세력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기에 쓸데없이 견제를 받으면 귀찮아질 수밖에 없었다.

‘골치 아프군. 더 이상 덩치를 불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고수를 양성해야 하는데… 과연 그럴 시간이 있을까.’

분명 질만큼 양도 중요했다.

하지만 무림의 전쟁에선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하였다.

일반적으로 한 손이 열 손을 당해내지 못한다지만, 한 손이 능히 열 손을 감당해내는 곳이 바로 무림이었다.

‘유령곡과 석가장은 정예급만 움직였고, 무림명숙들도 있었기에 막아냈지만… 다음에도 이번과 같으리라고 생각하면 안 돼.’

애초 유령곡과 석가장이 문가장을 습격한 이유는 북경 금의위의 시선을 돌리기 위함이었다.

그게 아닌 문가장의 전멸을 위해서 전력을 다했다면 그 자리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이현성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때 암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군, 귀왕과 귀백이 찾아왔습니다.”

“…들라 하게.”

황실과 무림을 떠나서 많은 자들이 문가장을 기웃거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각대학사인 문종학에게 어떡하든 얼굴 도장 찍기 위함이었다면, 지금은 검신 이현성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었다.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받지 못했다고 해도 황실명부에 이름을 올린 명예 왕족이었다.

게다가 무려 황제의 목숨을 구한 인물이었다.

인맥의 중요함을 너무도 잘 아는 중앙관리로선 그에게 눈도장을 찍으려는 것은 당연했다.

무림명숙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화경고수로 확인된 살왕을 벤 신성.

내각대학사와 제갈세가의 사위.

그러니 그를 만나기 위한 발걸음이 끊일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현성은 이가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은 물론 의도치 않게 칩거 중이었다.

모든 손님을 거부했던 그였지만, 야래향과 귀백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은공.”

“잘 지내지 못할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두 분께선 어인 일이십니까?”

“저… 그게…….”

이현성은 그들을 보며 의아했다.

과거 그들의 태도도 정중했으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정중을 넘어서 조심스럽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딱히 귀림에 해를 끼친 적도 없고, 악감정을 가진 적도 없었다.

그러니 그들의 이런 반응은 이해되지 않았다.

야래향이 머뭇거리자 결국 귀백이 대신 대답했다.

“은공께서, 초대 귀왕이 몸담으셨던… 암천회의 후계자이신 줄은 몰랐습니다.”

“으음… 제가 암천회주이셨던 살수천자님의 진전을 잇기는 했지만, 암천회가 이어진 것은 아닙니다.”

암천검의 주인으로서 원 주인인 살수천자의 진전을 계승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자신과 암천회는 무관했다.

애초 이미 사라진 암천회에 연연할 이유가 없었다.

“은공께선… 다시 암천회를 부활시키실… 의향이 있으신 겁니까?”

“없습니다.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귀백의 물음에 이현성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를 곁에서 들은 암월은 내심 아쉬웠으나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암천검의 주인인 이현성을 따르는 것은 암월로서의 맹약이기도 하지만, 그가 그만한 자격이 있어서였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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