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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200화 (200/314)

200화.

살수천자를 넘어서 자신이 진정한 살수제왕이 되겠다는 염원이 살왕을 살수지도(殺手之道)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 정점이 바로 당대 살왕이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현성의 검도 다르지 않았다.

허나 차이점이 있다면 이현성은 벗어난 것이 아니라 초월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과거의 망령이여! 이제 그만 사라져라!!”

살왕의 칼에는 끈적한 죽음의 기운이 서렸다.

삶을 부정하는 무척이나 불쾌한 기운이었다.

이현성은 고개를 저었다. 살왕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살수는 생과 사의 경계를 오가는 자들이었다.

죽음에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떤 경우든 반드시 정신을 붙잡고 있어야 했다.

살왕은 안타깝게도 생의 경계에서 벗어나서 사의 경계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무엇이 두렵기에 미몽(迷夢) 속에서 허우적대는가. 그만 돌아가거라.”

이현성은 안타까워하며 암천검을 휘둘렀다.

순간 살왕의 칼에 서렸던 죽음의 기운이 사라졌다.

직후 살왕은 칼을 쥔 채 쓰러졌다.

“크…크크크… 우웩…….”

역류한 피를 토하며 살왕은 괴로워했다.

하지만 의외로 그는 개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칼에 기댄 채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세…암천이시여… 어리석…은 종은… 이만…….”

“수고했다. 나의 어리석은 종이여. 이제 그만 쉬거라.”

살왕(殺王)은 죽는 순간 살백(殺伯)으로 돌아왔다.

이현성이 심연 속에서 무언가를 깨달았듯, 살왕 역시 그의 검을 통해서 무언가를 깨달았다.

살백.

살수제왕이라는 미몽 속에서 오히려 살수천자의 그림자만 쫓은 안타까운 자. 그를 사랑했고, 경외했기에 더욱더 살수천자와 같아지고 싶었던 자.

결국은 이세암천의 곁으로 돌아왔다.

순간 강인한 기운을 풍기던 살백도(殺伯刀)가 영기를 잃고 고철이 되어 버렸다.

스스로의 역할이 끝난 것이다.

“주군… 그자는…….”

“…좋은 곳에 묻어주게. 더 이상 구천을 헤매지 않게…….”

“존…명!”

이현성의 명을 받은 암월은 죽은 살백의 칼을 수거했다. 그런 그의 곁에 있는 야래향만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녀는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보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현성은 하늘을 지그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끝을 지어 볼까.”

마물의 최후

챙! 챙! 챙!

황제의 침소인 건청궁이 어울리지 않게 소란스러웠다.

도검을 쥔 수백의 종자들이 생사를 결하고 있었다.

“목숨으로 사수하라!”

“절대 폐하의 곁으로 가지 못하게 하라!”

어림군의 4대 부군장은 목소리가 터져라 소리치며 군사들을 독려했으나 쉽지 않았다.

살막은 살종이라고 불릴 정도로 여타 살문과는 비교를 불허했다.

개개인이 최소 일급살수이며, 특급살수 역시 상당히 많았다.

게다가 그들을 이끄는 부막주와 좌우호법은 무림에 알려지지 않은 절대살수들이었다.

그들의 힘은 어림군과 비교해서 절대 밀리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열 포졸 도둑 하나 못 잡는다’는 말처럼 살막 살수들을 막는 것이 목적인 어림군과 달리 살수들의 목적은 어림군이 아닌 황제였다.

어떡하든 어림군의 눈을 피해서 황제의 곁으로 다가가려는 살수들을 막아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젠장. 살막이 괜히 살막이 아니었군! 마마께서 합류하기 전까지는 무조건 막아야 해!’

태천광은 어림군 부군장들 중 유일하게 외부에 알려진 인물이었다.

허나 부군장들 중 가장 약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분명 초절정고수의 수는 어림군 측이 더 많았음에도 전혀 유리하지 못했다.

그는 안타깝게도 주가려가 이끄는 구룡검의 맹약자들이라면 충분히 살왕을 막아낼 거라 생각했다.

살왕이 화경고수이란 사실도 모른 채로.

그때였다.

콰쾅! 쾅! 쾅!

거대한 폭발과 함께 건청궁이 살짝 흔들렸다.

고수들에게 장애가 될 충격은 아니었지만, 순간적으로 움찔하게 만들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아, 안 돼! 막아!!”

“젠장! 어딜… 큭!”

결국은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외부의 폭발로 인한 어림군 백호(百戶)가 움찔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살막의 특급살수가 그 틈을 파고든 것이다.

인근 어림군사들이 막으려고 했으나 또 다른 살수들로 인해 발이 묶이고 말았다.

결국 그들은 살수 한명을 놓치고 만 셈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큭…….”

“감히 지엄하신 폐하의 침소에 허락지 않은 자가 어디 발을 들이려고 하느냐!”

그곳에는 늙은 내관들이 서 있었다.

그들의 정체는 동창? 아니었다.

그들은 평시에는 건청궁을 담당하는 내관이었지만, 진정한 신분은 천위령.

황제만의 눈과 귀인 그들은 주로 밀사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어디든 존재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의 존재 의미는 바로 황제의 안위였다.

유사시 황제의 마지막 방패가 되는 자들이었다.

황제의 침소에도 그들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림군을 도울 순 없었다.

그들의 최우선적인 임무는 어디까지나 황제의 안위.

자리를 비움으로써 황제의 안위를 위협되게 할 수는 없었다.

“막주께서 곧 오실 것이다! 황제의 목을 그분께 바쳐라!”

“건방진! 어디 감히 그런 불경스러운 말을 입에 담더냐!”

황제의 목을 노리는 살막의 살수.

그런 그들로부터 황제를 지키려는 어림군.

그 싸움은 치열하기 그지없었다.

작은 변수만으로 충분히 균형이 깨질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커억!”

“크윽!”

갑자기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균형을 무너트리는 변수가 발생한 셈이었다.

지원군이 도착한 것이다.

그게 살왕일지, 주가려를 필두로 한 맹약자일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리곤 곧 양측은 일희일비(一喜一悲)하게 되었다.

“마, 마마!!”

“구룡검주로서 명합니다! 역도들을 멸하십시오!”

“명!”

순간 가사(袈裟)나 도의(道衣)가 멀쩡하지 못한 승려와 도사들이 뛰어들었다.

그들은 구룡검의 맹약자인 구대문파의 수호자들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들 중 절반인 수호자 넷이 명을 달리했고, 소림의 공암대사는 한쪽 팔을 잃은 상태였다.

허나 그들의 합류는 팽팽했던 균형을 무너트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균형이 무너진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막주께서… 막주께서 쓰러지셨을 리가 없어!”

그들을 상대한 존재는 바로 살막의 막주인 살왕이었다.

그의 강함은 살막의 살수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저들이 건청궁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살왕이 건재하지 못하다는 뜻이었다.

그런 정신적 충격은 살막의 살수들을 너무도 쉽게 무너지게 만들었다.

‘살왕… 그리고 태태감을 잡아야 끝이 날 텐데…….’

* * *

챙! 채챙! 챙챙!

“컥!”

“크윽!”

“으아악!!”

가장 참혹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은 건청궁이 아니었다.

바로 태태감의 거처였다.

황제의 명을 받고 태태감을 체포하려는 무리와 태태감의 명에 따라서 이를 막으려는 자들의 충돌은 주변 일대를 피로 물들였다.

하지만 그보다 무서운 싸움은 네 명의 초인들의 격돌이었다.

“끄응…! 이게 진정 인간들의 무위란 말인가…….”

“허…! 우리도 명색이 황실 오대고수이거늘…….”

공식적인 명칭은 황실 십대고수였지만, 화경고수는 다섯뿐이었다.

북부의 총사령관 용불군, 동부의 총사령관 천진룡, 황제의 검 금의위 도독, 황제의 그림자 제독동창.

그리고 황실 제일고수 태태감.

이외 다섯은 화경에 한발 걸쳤을 뿐, 실제로 화경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십(十)이라는 완전한 수를 좋아하기에 일부러 열 명을 채운 것에 불과하였다.

그런 황실 오대고수들 사이에서도 격차가 너무도 컸다.

금의위 도독과 제독동창의 연수를 태태감은 너무도 쉽게 막아냈다.

만약 정체불명의 고수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진즉에 결판이 났을 것이다.

정체불명의 고수는 강했다.

일성일존(一聖一尊) 외에는 상대가 없다는 태태감을 막아내고 있었다.

허나 말 그대로 막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간신히.

“크윽!”

“과연…! 대단하군. 폐하의 마지막 한 수다워. 허나 어림군장. 아니, 무선(武仙). 그대는 내 상대가 아니오!”

“무, 무선!”

“어림군장께서 무선이셨을 줄이야…….”

태태감의 말에 금의위 도독과 제독독창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단독으로 태태감을 막아내고 있는 어림군장의 존재는 그들에게 놀람을 주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놀람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십정의 이선 중 한 명으로 어디서 왔고 어디로 사라졌는지, 사문은 어딘지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기인이었다.

무림에 활동한 기간조차 매우 짧아서 그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신비에 쌓인 그를 무선 혹은 신비무선이라고 칭했다.

그런 그가 황실고수였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놀라운 일이며, 자부심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런 무선조차 태태감을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콰쾅!!

“큭! 역시… 나 혼자는 무리인가…….”

일성일존 다음이라는 이선의 무선조차 태태감을 감당치 못했다.

그건 태태감의 강함도 강함이었지만, 그가 익힌 신비무학인 규화보전 역시 한몫했다.

음양조화를 이루는 가장 완벽한 신공이 바로 규화보전이었다.

거세한 내관만 익힐 수 있기에 음한지공이라고 알려졌다.

실제로 일정 경지까지 오를 때까지는 음한지기를 모으게 된다.

하지만 규화보전을 완성하기 위해선 음양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야 했다.

태태감은 혈천신단을 이용한 편법으로 음양의 조화를 이루었다.

그렇기에 길고 긴 침묵을 깨고 세상에 나온 것이다.

“파황천극(破荒天極)!”

“소탕군마(掃蕩群魔)!”

“이것들이 자꾸 귀찮게 하는구나!!”

무선이 밀리자 기회를 엿보고 있던 금의위 도독과 제독동창이 끼어들었다.

아무리 규화보전을 완성한 태태감이었지만, 무선에 이어서 화경고수인 두 사람까지 상대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어려운 것이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콰쾅!

“크윽!”

“커억!”

“으으…….”

금의위 도독과 제독동창은 태태감의 일격을 감당치 못하고 밀려났다.

허나 피해를 본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태태감의 입에서 처음으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역시 화경고수 셋을 감당하는 것은 어렵다는 증거였다.

규화보전의 최대 장점은 대해와 같은 심후한 내공과 빠른 회복력 그리고 파천황적인 거력이었다.

그러므로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것은 태태감이 아닌 저들이었다.

“약한 놈부터 정리하지.”

콰쾅! 쾅! 쾅!

“커어억!”

“제독동창!”

가장 먼저 수세에 몰린 자는 제독동창이었다.

금의위 도독과 그는 백중지세.

허나 태태감의 입장에서는 제독동창이 조금 더 손쉬운 상대였다.

그 역시 벽사검법을 익힌 만큼 공략하기 더 수월했다.

그렇게 제독동창이 나가떨어지자, 그 뒤를 금의위 도독이 따랐다.

두 사람 덕분에 약간의 여유를 되찾은 무선이었지만, 여전히 그 혼자는 버거운 상대였다.

그때였다.

―틈만 열어주십시오.

갑작스러운 전음에 놀랄 만도 하지만 무선은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무선의 소맷자락이 격렬하게 펄럭이더니, 이젠 그를 중심으로 기의 폭풍이 일어났다.

내공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는 증거였다.

이를 보며 태태감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목숨을 걸겠단 말이오, 무선. 좋소. 응해드리리다!”

태태감으로서도 결코 손해 볼 것이 없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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