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그런 자신들의 선택이 옳았음을 알려주듯 승기가 자신들에게 기울고 있었다.
‘젠장. 이놈들은 왜 이렇게 늦는 거야! 나중에 교육을 다시 시켜야겠어!’
북진무사는 애꿎은 북경 금의위 천호소의 천호들만 욕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고전 중이란 사실을 전혀 모른 채.
“과연 금의위 도독과 제독동창이로세.”
말만 들어본다면 칭찬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듣는 두 사람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말을 하는 자가 태태감이기 때문이다. 홀로 자신들을 상대하면서도 저런 농담을 할 정도의 여유라니.
‘크윽! 강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라니…….’
‘말도 안 돼! 같은 벽사검법을 익혔거늘… 이런 차이라니…….’
벽사검법(辟邪劍法).
전설의 규화보전(葵花寶典)이 소실된 지금 명실상부 동창제일의 무학이었다.
제독동창을 필두로 동창의 요직만 익힐 수 있으나 환관 서열 1위인 태태감 역시 익히고 있었다.
벽사검법은 규화보전에서 파생된 검법인 만큼 그 위력 역시 가공하다고 할 수 있었다. 동창이 무력으로도 금의위에게 밀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였다.
“유성간월(流星趕月), 유성비타(流星飛墮), 야화소천(野火燒天)!”
“…파황천극(破荒天極)!”
제독동창의 검과 도독의 칼에서 가공한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그 기세만으로 좌중을 압도할 정도였다.
허나 태태감의 얼굴에서 여유를 뺏을 수는 없었다.
“벽사검법과 파황도결이라… 좋은 무공이지.”
벽사검법과 파황도결은 모두 황실 십대신공에 속하는 절학들이었다. 동창의 전유물이라는 벽사검법과 달리 파황도결은 금의위의 독문절학이 아니었다.
당대 금의위 도독을 총애한 황제가 특별히 하사했다.
물론 황실 십대신공인 만큼 도독은 자식에게도 전수할 수 없었다.
이를 어긴다며 황명에 의해 멸족을 당할 것이다.
허락받은 자는 금의위 도독, 그 본인뿐이었다.
그러한 파황도결이었기에 벽사검법에도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태태감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강기를 보며 가볍게 손을 뻗었다. 그 결과는 경악스러웠다.
쾅! 콰쾅!
쾅! 콰콰쾅!
대지를 흔들 정도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흡사 포탄이 쏟아진 듯한 가공할 폭발이었다.
당연했다. 화경고수 셋이 충돌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우웩!”
“으윽… 어찌… 같은 벽사…검법이거늘… 으윽…….”
격돌의 충격으로 나가떨어진 금의위 도독, 제독동창과 달리 태태감은 옷이 조금 찢어진 것을 제외하곤 무사해 보였다.
이 절대적인 차이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제독동창의 한탄에 태태감은 조소를 지었다.
“같은 벽사검법? 어리석은 친구로세. 아직도 내가 벽사검법을 익혔다고 생각하다니 말이야. 아, 물론 벽사검법도 익혔지.”
“…!! 설…마…….”
태태감의 말에 제독동창의 눈이 커졌다. 그의 말뜻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경악하는 제독동창을 보며 태태감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소실…되었다 들었거늘… 아니었군. 규화보전을 빼돌렸군.”
“오해를 하는군. 내가 빼돌린 것이 아니야. 손에 넣은 것이지.”
이미 수십 년 전에 사라진 규화보전이 나타났다.
그것도 다름 아닌 태태감을 통해서. 그제야 그의 격이 다른 강함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벽사검법이 강하다고 하지만 그건 규화보전이 없을 때의 이야기였다. 익힌 경지의 차이가 크다면 몰라도 아닐 경우는 벽사검법으로는 넘어설 수 없었다.
그만큼 규화보전은 전설의 무학이었다. 제독동창은 자신이 태태감의 말뜻을 제대로 알아들은 것인지 의심했다.
규화보전이 태태감의 손에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허나 태태감은 더 이상 설명해줄 생각이 없었다.
이제 슬슬 움직일 때가 되어서였다.
“폐하께서 기다리실 테니, 더 이상은 놀아줄 수가 없군.”
“빌어먹을…….”
“빌어먹을이라니? 금의위 도독이란 자의 입이 어찌 그리도 거친고?”
언제든 죽일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태태감을 보며 금의위 도독은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는 여전히 강자였고, 자신은 여전히 약자였으니까.
그런데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여태껏 여유를 잃지 않았던 태태감이 처음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폐하께서 이런 선택을 하셨단 말인가?”
순간 태태감의 영문 모를 말에 금의위 도독과 제독동창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늘은 아직 그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대가 직접 움직였구려. …폐하의 곁을 떠나다니, 제정신이오 군장.”
“…오직 천명을 수행할 뿐이다. 태태감.”
황실 혈겁 (2)
“서둘러라! 반역자, 천진룡보다 먼저 도착해야 한다!!”
수천의 인마(人馬)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북방의 검은 용, 흑룡기병대(黑龍騎兵隊)를 위시한 북방의 기병대들이었다.
그들을 이끄는 인물은 북부 총사령관인 용불군 대장군이었다.
동부 총사령관인 천진룡 대장군이 군사를 일으켰다는 첩보에 그는 지체 없이 움직였다.
수만의 군사를 움직인 천진룡 대장군에 비해 용불군 대장군은 수천의 기병만 움직였다.
북부 이민족 때문에 대규모의 군사를 움직일 수 없었고, 무엇보다 군사들의 행군 속도로는 천진룡 대장군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북방의 정예 기병들만 차출해서 황도로 향했다.
천진룡보다 먼저 도착해야 각 위소(衛所)의 군사들이 합류할 시간을 벌어줄 수 있었다.
‘천진이 뚫리지만 않는다면… 늦지 않겠지만…….’
좌군도독부 소속인 요녕과 산동의 군사들이 하북성을 침범하고 있었다.
하북성의 군사들이 막고 있으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진룡 대장군이 이끄는 정예 군사들을 오래 막아내긴 어렵다.
허나 시간을 벌어줄 수는 있었다.
문제는 요녕과 산동의 군사가 아니었다.
천진을 통과하려는 좌군도독부의 수군이었다.
천진은 황도로 향하는 중요한 관문이었다.
영락제가 연왕 시절 황궁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천진을 통해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영락제는 자신이 만든 금의위 중 일부를 천진에 상주시켰다.
자신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고자 함이었다.
천진에 상주한 금의위라면 충분히 제몫을 하겠지만, 이를 모를 천진룡 대장군이 아니었다.
그만한 준비를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용불군 대장군은 자신할 수가 없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천 도독. 자네가 무슨 짓을 하든 나, 용불군이 파쇄하고 말겠네.’
* * *
“목숨으로 천진을 사수하라!!”
“반도들이 황도로 향하게 해선 안 된다!”
천진에 상주한 금의위는 수군의 배를 타고 상륙한 좌군도독부의 동부군을 상대로 분전을 하고 있었다.
머릿수의 차이는 없었다. 수군이 보유한 군함이 한정적이었다.
게다가 모든 군함을 움직인다면 사전에 발각될 수 있기에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군함과 군사의 수는 수천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금의위가 우세할 수밖에 없었다.
개개인이 일류 이상인 금의위사와 그들의 지휘를 받는 금위군 역시 최정예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금의위가 밀리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빨리 뚫어라!!”
“예! 대장군!”
놀랍게도 강소성에 있어야 할 천진룡 대장군이 이곳 천진에 있었다.
그는 유사시를 대비해 양성한 그림자를 강소성에 두고 은밀하게 움직였던 것이다.
황실 십대고수이자 화경고수인 천진룡 대장군과 천씨세가의 고수들이 합류했기에 천하의 금의위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허나 적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협력자들이 있었다.
“흐흐흐… 죽여라!”
“예! 방주님!”
분명 그들은 동부군의 군사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잔혹함과 강함은 인정할 만했다.
칠웅방(七雄幇).
천진의 검은 그림자, 천진 흑도를 평정한 칠웅방의 방도들이었다.
이현성으로 인해 처음으로 좌절한 칠웅방의 대방주 패웅(覇雄) 현휘군은 이를 악물고 수련을 했다.
그만이 아니었다. 휘하 방주들 역시 그때의 치욕을 잊지 않았다.
덕분에 다들 한층 강해졌다. 하지만 어디나 예외는 있는 법.
황도 흑도 정벌에 실패한 이후 이탈자가 나왔다.
흑룡방에 의해서 흑도에서 쫓겨나 구웅방에 합류했던 부방주들이었다.
아무리 흑룡방주를 쓰러트리지 못했다고 해도 현휘군은 만만한 자가 아니었다.
딴 생각을 먹은 그들에게 단호하게 손을 쓴 결과 구웅방은 다시 칠웅방으로 축소되었다.
허나 결속력은 더욱 단단해졌다. 그리고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웠다.
그러던 중 기회가 왔다.
천웅방 공략에 도와주는 조건으로 협력하라는 제안이었다.
역도와 손을 잡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하지만, 그 열매가 너무도 크기에 거부할 수 없었다.
“제법이군. 과연 어르신이시군.”
천진룡 대장군은 감탄했다.
칠웅방. 특히 대방주인 현휘군의 활약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처음 칠웅방이라는 흑도의 협조를 받으라는 태태감의 말에 내심 불쾌했다.
흑도 나부랭이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허나 상대는 태태감. 굳이 날을 세워서 좋을 것은 없었다.
마지못해서 합류시킨 칠웅방은 무림문파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강했다.
당연했다. 현휘군의 천잔마공은 한때 칠사(七邪)에 꼽혔던 천잔마왕의 독문마공이었다.
그리고 칠웅방 고수들 중에는 천웅방의 무공을 익힌 자들이 적지 않았다.
선친의 죽음으로 천웅방에서 도망칠 때, 현휘군이 빼돌렸던 무공들이었다.
복수를 위해서 현휘군은 수하들에게 그 무공을 가르쳤으나 아쉽게도 여전히 천웅방과 비교할 순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칠웅방은 강했다.
“음? 설마… 여기까지 예상했단 말인가.”
이미 승기를 잡았던 천진룡 대장군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이곳으로 향한 고수들의 기척을 느꼈기 때문이다.
용불군 대장군이 벌써 도착했을 리는 없고, 황도의 군사들이 움직였을 리도 없었다.
그럼에도 심상치 않은 기세였다.
“팽가의 협사들이여! 역도들을 처단하라!!”
“존명!!”
놀랍게도 그들은 하북팽가의 고수들이었다.
관과 무림은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그렇기에 관은 무림의 일에 직접적으로 관여해서 아니 되고, 무림 역시 관의 일에 관여해선 안 되다.
그런 묵계를 깨고 먼저 하북팽가가 움직였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을 이끈 자는 하북팽가의 태상가주인 도왕(刀王) 팽진천이었다.
십정(十正)이자 팔왕(八王)의 일인.
그가 이끄는 하북팽가 고수들의 등장은 현 상황에 반전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도독씩이나 되는 분이 어찌 반역에 몸을 담았소?”
“도왕…인가. 새 하늘이 열리는 것을 방해한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천위령은 곳곳에 존재했다.
도왕은 그런 천위령을 통해서 황명을 전해받았다.
황제의 마지막 한 수는 너무도 훌륭했다.
그렇게 황제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 * *
“불청객이군. 부군장, 목숨으로 폐하의 침전을 사수하게나.”
“신(臣), 태천광! 구룡검주님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주가려의 명령에 태천광을 위시한 어림군의 부군장들이 군례를 취했다.
그들은 황제의 침궁인 건청궁을 포위했다.
역도들로부터 황제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어림군장이 자리를 비운 이상 어림군의 지휘권은 부군장들에게 있었다.
허나 주가려는 황실수호검이라는 구룡검주.
유사시 황제를 제외한 그 누구도 그녀의 명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