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그럼에도 그들은 안심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이런, 귀한 분들이 이 늦은 시간에 어인 일이시오?”
“사례감장인태감, 순순히 황명을 받으시오!”
그는 바로 사례감장인태감이었다.
오랜 칩거를 깬 그의 전신에서 흐르는 여유는 좌중을 긴장시키게 만들었다.
차원이 다른 존재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만들었다.
허나 이대로 기가 꺾여선 아니 된다.
그렇기에 금의위 도독이 황명을 받으라고 외쳤다.
하지만 태태감은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황명이라… 폐하의 신하로서 그분의 명을 어겨선 아니 되지. 허나……!”
우려와 달리 태태감은 순순히 황명을 받으려 했다.
그제야 긴장하던 세 기관의 정예들은 안도했다.
하지만 태태감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허나 내가 황명을 듣지 못했다면 소용없지?”
“태태감! 감히 황명을 불복하겠단 말이오!”
태태감의 불충스러운 태도에 좌도어사는 버럭 화를 냈다. 그런 그를 보며 태태감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사자무언(死者無言)이라고 했지… 본관은 아직 황명을 듣지 못했소. 아니 그렇소?”
“예. 태태감 어른.”
“물론이십니다.”
태태감의 말에 누군가 대답을 했다. 그와 동시에 수백여 명이 주변을 포위했다.
너무도 잘 아는 이들의 모습에 좌중은 경악했다.
“남진무사, 자네가!”
“어찌… 좌첩형… 그대가…….”
“우도어사, 설마했는데…….”
금의위 도독을 보좌하는 두 명의 진무사(鎭撫司)가 있다.
그중 한 명인 남진무사가 휘하 금의위사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다른 한쪽에는 동창의 두 첩형(貼刑) 중 한 명인 좌첩형이 마찬가지로 동창 고수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태태감의 수족인 전임 좌첩형이 물러난 후 제독동창이 자신의 사람을 세웠다.
어느새 태태감이 손을 쓴 것인지, 아니면 그는 처음부터 태태감의 사람이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미 그의 편에 서 있었다.
도찰원의 또 다른 수장인 우도어사는 천진룡 대장군과 사돈관계인 만큼 그가 태태감에게 붙었을 것은 이미 예상하던 바였다.
문제는 저들의 수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그때 금의위 도독이 독려하기 위해서 외쳤다.
“곧 황궁 밖 금의위사들이 합류할 것이다! 그때까지만 버텨라!”
“도독의 말씀대로다! 무리할 필요 없다! 반역자들은 모두 처형될 것이다!!”
금의위 도독의 말에 제독동창이 맞장구를 쳤다.
황궁에 거주한 금의위사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금의위 천호소는 북경과 남경 그리고 천진에 상주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금의위 천호소는 북경에 있었다.
북경 천호소의 금의위사들이 합류한다면 적도의 수를 몇 배 상회하게 될 것이니, 그들의 말은 옳았다.
하지만 그걸 모를 태태감이 아니었다.
태태감은 그들을 보며 차갑게 말을 꺼냈다.
“글쎄? 그들이 제때 연락을 받아서 올 수 있을까?”
* * *
“전(全) 위사는 대인들을 구하라!”
족히 수백은 될 듯한 군사들이 물밀듯이 달려왔다.
그들은 평범한 군사들이 아닌 듯 한 명 한명의 기세가 범상치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바로 금의위였다
황도인 북경에는 금의위 천호소가 몇 개 존재했다.
저들은 그런 북경 금의위 천호소 중 한 곳에 속한 위사들이었다. 내각대학사 문종학의 장원에서 그의 여식의 혼례가 치러졌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서 수많은 관리가 모인 상태였다.
물론 그중에 고관들 역시 수두룩했다.
그러므로 금의위는 만약을 대비해 문가장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다만 고관들이 불편해할 수 있기에 접근은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문가장 안에서 사달이 났다는 것을 깨닫고 즉시 출동했다.
“서둘러라 당장……!”
“부, 부천호(副千戶)……!”
금의위가 문가장에 들이닥치려는 순간 그들을 지휘하던 부천호의 목이 날아갔다.
그의 곁에 있던 백호급 위사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때 복면을 쓴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도 이곳을 지날 수 없다.”
어조에 고저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감정 역시 담겨 있지 않았다. 듣는 이로 하여금 섬뜩하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허나 금의위가 누군가, 그들은 황제의 검이었다.
이 정도로 주눅이 들 자들이 아니었다.
“모두 정신 차려라! 적은 고작 한 명이다! 죽여라! 폐하의 검인 우리 금의위를 벤 저자는 역적이다!”
“명!”
현재 최선임인 또 다른 백호급 금의위사의 외침에 모든 위사는 전의를 불태웠다.
동료를 벤 역전을 베기 위해서 금의위사들 중 수십이 움직였다. 허나 그들의 분노와 달리 상대는 너무 강했다.
“크윽!”
“커억!”
“말도 안… 으아악!!”
하나 같이 고수라고 할 수 있는 수십의 금의위사들이 복면인에 의해서 허무하게 죽어갔다.
그 절대적 강함에 금의위사들은 경악하고 말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강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 장군님을 모셔 와라!”
“조, 존명!”
분명 금의위는 강하다. 그런 그들을 이끄는 천호(장군)는 더 강하다. 그가 온다면 분명 상황을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 백호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곧 깨지고 말았다.
복면인의 말 때문이다.
“모두… 죽여라.”
“존…명!”
“뭐, 뭐야!”
“헉! 미친!!”
복면인의 말에 수십의 복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백의 금의위사들이 그들의 존재를 이제야 알아차렸다.
그건 그들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로 그들은 너무나 강했다.
“지, 진정하라! 우린 적들보다 수배 많… 큭! 이놈! 내가 거저 백호(百戶)가 되었는지 아느냐!!”
“흐흐흐… 그래서?”
챙! 챙챙!
개개인의 무력 차이가 나긴 했으나 격이 다를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머릿수는 금의위가 수배나 많았다.
처음에는 속수무책으로 밀렸으나 백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자 제법 할 만해졌다.
‘저자… 저자가 움직이기 전에 승기를 잡아야… 젠장!’
백호만 아니라 위사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복면인들에게 명령을 한 자가 움직이면 끝장이라는 것을.
한줄기의 희망은 깨져버렸다.
그토록 바라지 않던 그가 드디어 움직였다.
“컥!”
“사, 살려… 으아악!!”
고작 한 사람. 단 한 사람이 합류했을 뿐인데 전세는 급격히 기울어졌다.
간신히 균형을 맞추었는데 허사가 되어버렸다.
“젠장… 끝인가.”
누군가의 중얼거림. 허나 모두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채워갔다.
모두 절망했다. 대(大) 금의위사들이…….
허나 하늘은 아직 그들을 버리지 않았는지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노―옴!! 감히 본장(本將)의 수하들을 학살하다니! 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려주마!”
“자, 장군님!!”
그때 수백의 금의위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특히 선두에 있는 사내를 보며 모두 꺼져버린 희망의 불길이 되살아났다.
그는 금의위에서도 단 14명뿐인 천호(千戶), 그리고 초절정지경에 오른 강자였다.
그것을 증명하듯 그의 칼에선 위사들과 차원이 다른 기운이 솟구쳤다.
“초절정고수인가… 뭐 상관없지.”
천호의 등장에도 복면인은 개의치 않는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그의 검에서도 천호 못지않은, 그보다 더욱 선명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쾅!!
두 사람의 강기가 충돌하자 그들의 주변에서 전투 중인 양측의 고수들이 튕겨났다.
직접적인 충격이 아닌 고작 여파로 인한 충격에 벌어진 일이었다.
여파만으로 고수들을 튕겨냈는데, 직접 충돌한 두 사람이라고 충격이 없을 리가 없었다.
그 충격으로 인해 두 사람 역시 뒤로 밀려났다.
허나 여기서 두 사람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고작 두 걸음 물러난 복면인과 달리 금의위 천호는 다섯 걸음이나 물러났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그걸 알기에 천호는 얼굴이 시뻘게졌다.
‘빌어먹을…! 도대체 어떤 놈이기에 이렇게 강하단 말인가!’
고작 일검이지만 알 수 있었다. 복면인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금의위 천호라면 그 무력이 황실 백대고수에 든다고 할 수 있었다.
자신이 그중 중하위에 속했다고 하지만 결코 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 자신이건만 이렇게 힘을 차이를 느낄 정도라면 이 일이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라고 해야 했다.
하지만 희망은 있었다.
북경 금의위 천호는 자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행히 하늘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무슨 일이오! 호 장군!”
“아… 유 장군… 조 장군님!”
그는 바로 안도했다. 그리고 어깨에 빠졌던 힘이 다시 들어갔다.
북경의 또 다른 금의위 천호소가 지원을 온 것이다.
특히 유 장군과 조 장군은 자신과 같은 금의위 천호.
두 사람 모두 자신과 백중지세의 고수들이었다.
눈앞의 괴한이 아무리 강해도 자신들 셋을 감당할 수는 없다고 확신했다.
“유 장군, 조 장군님. 본장과 함께 저자를 상대해주십시오.”
“뭐, 뭐라고? 호 장군, 무슨 농담을…….”
“부끄럽소만… 본인이 홀로 감당할 수 없소.”
그제야 그의 말이 농담이 아님을 깨달은 두 사람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초절정고수 셋에, 적들보다 숫자적인 우위가 최소 30배.
이 절대적인 격차는 승패를 미리 알려주었다.
그럼에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느껴졌다.
이 상황에서도 묘하게 여유로운 복면인의 태도 때문이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이었다.
“총당주, 한 놈을 맡게. 둘은 내가 맡지.”
“존명.”
그때 또 다른 복면인이 나타났다.
그의 존재를 금의위 천호들 중 어느 한명도 눈치채지 못했다.
순간 다시 한번 등골이 오싹했다.
‘흐흐흐… 나 석대환이 어떤 분인지를 직접 알려주마.’
* * *
“곧 동료들이 합류할 것이다! 모두 정신 차려라!!”
황궁 밖 천호소의 금의위사들이 문가장에 발이 묶여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북진무사는 아군을 독려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언제 준비했는지 머릿수에서부터 밀리고 있었다.
허나 그러한 문제는 북경 천호소 금의위사들이 합류하면 해결될 일이었다.
그들의 합류가 늦어지고 있는 것이 불안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태태감을 상대하고 있는 금의위 도독과 제독동창이었다.
황실을 대표하는 두 고수.
무려 화경에 오른 그야말로 전설들이었다.
그러한 전설들이 태태감을 제압하지 못하고 있었다.
“감히 날 상대하면서 딴 짓을 해!”
“큭! 배신자 놈! 대(大) 금의위의 남진무사란 놈이 역적에게 붙어서 동료를 핍박하다니!”
“…네놈은 언제나 그랬지. 후배 놈이 선배를 무시하며 제 놈만 잘난 줄 알지!”
남진무사가 태태감의 손을 잡은 이유였다. 같은 진무사였지만, 북진무사를 남진무사의 위로 보는 경향이 많았다. 실권을 북진무사가 쥐었기 때문이다.
그런 북진무사의 자리를 아래 기수의 후배가 차지했다.
그 이후 남진무사인 자신이 아랫사람 취급을 받았다.
선배인 그로서는 그 점이 무척이나 불쾌하고 참을 수가 없었다.
동창의 좌첩형과 도찰원 우도어사가 태태감의 손을 잡은 이유는 금의위 남진무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자리보전을 못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현재의 위치에 대한 불만이 그를 지금의 길로 이끌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