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살수-193화 (193/314)

193화.

황실 혈겁 (1)

“우웩!”

피를 토하는 복면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한 사내를 바라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상대는 자신의 절반도 살지 않은 너무나 젊은 청년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장로님.”

“괘, 괜찮네. 장주.”

젊은 청년의 정체는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자 새신랑인 이현성이었다.

괜찮다는 대답과 달리 몸 상태가 좋지 않은지 장강어옹 규염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런 그를 보며 이현성은 미안한 기색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사실 이현성은 살수들의 존재를 진즉에 눈치챘다.

그럼에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곁에 있는 부인들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나마 제갈현지는 제 한 몸 지킬 능력이 있으나, 문교교까지 지켜주는 것은 어려웠다.

살수란 자신보다 뛰어난 고수조차 죽일 수 있는 종자들이었으니까.

다행히 독고혜 장로가 너무 늦지 않게 와주었기에 그가 움직일 수 있었다.

“이자는 제가 맡을 테니 장로님께선 다른 분들을 도와주십시오. …무리하지 마시고요.”

“…고맙네.”

규염은 이현성이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게 단어 선택에 신중했음을 알아차렸다.

그런 그의 배려를 받아들여서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규염이 물러나자 이현성은 차가운 얼굴로 복면인을 바라봤다.

복면인은 이현성의 차가운 눈빛에 움찔했으나 고작 눈빛에 자신이 반응했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

“…기습으로 득을 봤다고, 좋아하지 마라…….”

“살수 주제에 자존심을 챙기려 하다니… 유령곡 수준이 많이 떨어졌군. 안 그런가. 유령살군.”

“…!! 어, 어떻게……?!”

놀랍게도 이현성은 복면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삼대 살종인 유령곡이라지만 초절정고수인 규염을 이 정도까지 몰아붙일 사람은 흔치 않았다.

게다가 그의 솜씨가 눈에 익었다.

그렇기에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수년 전에 진주언가에서 손속을 나눈 유령살군이라는 사실을.

물론 유령살군은 당시 자신을 방해했던 자가 이현성임을 모르고 있었다.

“내가 너의 정체를 아는 것이 중요한가? 곧 죽을 텐데?”

빠드득.

“감히……!”

“이제 충분히 기다린 것 같은데…? 얼마나 더 기다려줘야 하지?”

속내를 들킨 유령살군은 움찔했다. 동시에 자존심이 상했다.

“건방진 놈… 죽여주마!”

“오라!”

유령살군의 손에 강기가 어려 있었다.

곧이어 일곱 개의 강기가 이현성에게 쇄도했다.

“칠살유령수(七殺幽靈手)!!”

“…천중비화(千重飛花).”

유령곡의 비전인 칠살유령수는 분명 뛰어난 절기였다.

스치기만 해도 치명적인 일곱 사혈을 동시에 노리는 절기 중의 절기였다.

허나 유령살군의 칠살유령수는 이현성에겐 닿지 못했다.

일천 강기의 꽃잎에 막혔기 때문이다.

허나 여기서 주춤할 유령살군이 아니었다.

“유령지(幽靈指)! 유령지! 유령…….”

퍽! 퍼퍽! 퍽퍽! 퍽퍽!

유령살군은 유령지를 마구 쏘아서 천중비화를 무력화시켰다.

지법은 장법에 비해 익히기 힘들고 위력이 떨어지지만, 반대로 내공 소모가 상당히 효율적인 무학이었다.

특히 지금의 경우는 천중비화를 뚫겠다는 생각보단 틈을 만들겠다는 생각인 만큼 유령살군은 최선의 선택을 한 셈이었다.

애초 칠살유령수와 유령지는 한순간을 위한 장치에 불과했다.

‘지금이다!’

순간 그의 손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쥐어져 있었다.

“…유령사(幽靈死)!

“일점… 큭!”

챙!!

유령지로 인해 천중비화의 틈이 만들어진 순간 유령살군의 손에서 무언가가 날아왔다.

정확히는 무언가가 날아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육감에 불과하지만 이현성은 이를 무시하지 않고 절대쾌검인 일점혈을 펼쳤다.

긴박하게 펼친 만큼 검에 힘이 완벽하게 실리지 못했다.

그 때문인지 자칫 검을 놓칠 뻔했다.

정체를 알 수는 없으나 무언가 그의 검에 강한 충격을 남겼고, 검은 놓치지 않았으나 그 충격으로 뒷걸음질을 했다.

이를 본 유령살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새끼 운도 좋군. 허나…….”

유령살군은 또다시 무언가를 손에 쥐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현성은 잔뜩 경계했다.

보이지 않으나 분명 공격이 심상치 않아서였다.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으윽!”

“쳇! 이번에는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령살군의 암수를 막지 못했다.

다행히 스치는 것으로 그쳤기에 피해가 크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스친 부근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그 위력을 또 다시 증명했다.

“이번에야말로 죽여주마! 유령사!”

“커억!

눈에 보이지 않고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암수를 대응하기 위해선 육감밖에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육감으로도 이번만은 피하지 못했다.

그 증거로 이현성의 가슴에 무언가가 꽂혀 있었다.

그건 바로 비수였다.

그제야 유령살군은 음험한 웃음을 흘렸다.

“흐흐 그럼 그렇… 컥! 미…친…….”

“으… 간신히 성공했군.”

유령살군의 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의 가슴에도 검이 꽂혀 있기 때문이다.

유령살군의 가슴에 꽂힌 것은 바로 암천(暗天). 이현성의 검이었다.

이현성은 위험을 감수하고 승부수를 던졌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란 생각으로 검을 날렸다.

정확히는 암천살무의 여의재천을 펼친 것이다.

화경에 오르지 못한 상태에서 이기어검술의 무리가 담긴 여의재천을 펼치는 것은 그야말로 도박이었다.

유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 전 비수에 스쳤던 것이 그를 방심하게 만들었다.

그게 유령살군의 가장 큰 실책인 셈이었다.

“조금만 강했으면 가슴이 뚫렸을지도 모르겠어.”

유령살군처럼 깊숙이는 아니었지만, 이현성 역시 가슴에 비수가 꽂혀 있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는 생각으로 유령상군의 암수(비수)를 몸으로 받아냈다.

그건 도박이었지만, 그만한 대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혹시나 싶어서 익힌 묵룡수(墨龍手)인데,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하지만 이번에는 운이 좋다고 해야겠지.”

이현성이 이런 위험한 수를 쓸 수 있었던 것은 묵룡수를 익혔기 때문이다.

마교의 절세마공인 철혼대마력의 비급을 소림에 양도한 대가로 받은 무공이 바로 묵룡수였다.

묵룡수는 소림 장경각주인 공공대사가 마교의 묵룡혼원공을 파해하는 과정에서 대력금강수와 접목시켜 창안한 외문무공이자 외가기공이었다.

군 출신인 이가장 무인들을 위한 외문무공이었기에 이현성은 당시에는 익히지 않았다.

허나 그는 무공의 답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이 익힌 무공들을 탐독했다.

그러다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묵룡수 역시 연구했다.

그러던 과정에서 묵룡수를 익히게 되었다.

환골탈태한 육신 덕분에 묵룡수를 보다 빠르게 그리고 완벽하게 익힐 수 있었다.

그 결과 금강불괴지신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제법 근접한 경지까지 오를 수 있었다.

아니었다면 여의재천을 펼치기 위해서 유령살군의 암수를 몸으로 받아내는 위험한 결단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수? 으음… 유령(幽靈)이라… 보통 기물이 아닌가 보구나.”

비수에는 유령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부곡주인 유령살군이 소지했고, 유령이라 적혀 있는 것을 봐선 유령곡의 보물임을 알 수 있었다.

이현성은 모르지만 그건 유령삼보(幽靈三寶)의 하나인 유령비였다.

유령사라는 운용법이자 초식을 펼치면 투명해지는 기물이었다.

비수에 찔리기 전까지 유령살수의 암수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혼원신검의 대가로 석대환에게 받은 유령비는 유령왕에게까지 비밀로 하고 있었다.

그가 유령곡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였다.

그런 비장의 패를 사용하고도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이했으니 그는 저승에 가서도 한탄하고 있을 것이다.

유령비를 품에 넣은 이현성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상황을 정리해볼… 후… 또 뭐야?”

* * *

어두운 밤이건만 곳곳에 횃불이 밝혀져 있었다.

그리고 횃불을 중심으로 병사들이 번을 서고 있었다.

그들은 일반 병사가 아닌 황실 금의위 소속 금의위사였다.

“음…? 누구냐!”

누군가의 외침에 번을 서고 있던 병사들이 각기 검을 쥐었다.

이곳은 함부로 출입해선 안 되는 곳이었다.

그때 나타난 한 무리를 보며 병사들이 기겁하며 검을 거두었다.

“추, 충! 도, 도독님께서 이곳에는 어일 일로…….”

“수고들 많군. 폐하의 황명일세. 물러들 나게.”

“그, 그게…….”

나타난 무리의 수장은 바로 금의위의 수장인 도독으로, 황실 십대고수의 일좌를 차지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황명을 받아서 나타났다.

따라서 항명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병사들은 주저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금의위사들의 반응에 금의위 도독은 물론 그와 함께 나타난 금의위 백호급 위사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금의위는 황제의 검으로써 자신들의 수장인 금의위 도독과 황제의 명만 따라야 했다.

그런데 감히 금의위 도독께서 친히 황명을 수행하는데 주저했다는 것은 죽어 마땅하였다.

아무리 그들이 지키는 전각의 주인이 대단한 거물이라도 마찬가지였다.

도독을 대신해서 북진무사가 동행한 백호급 금의위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이놈들! 감히 폐하의 황명을 수행하시는 도독님의 명에 불복해! 그러고도 자랑스러운 금의위라고 할 수 있더냐! 당장 저 불충한 것들을 제압하라! 저항한다면 죽여도 좋다!”

“명!”

“그, 그게 아니라… 컥!”

“사, 살려주십… 큭!”

황궁의 외궁은 금위군이 수호하고 있으나 내궁의 주요 전각 및 황족 호위는 금의위가 맡고 있었다.

이곳 전각을 수호하고 있는 위사들 역시 금의위에서도 선별된 자들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한들 백호급 위사들로 구성된 그들의 상대는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불복한 자들은 일각도 채 되기 전에 전부 제압되었다.

“황명을 수행하는데 불복하는 것은 반역과 다를 것이 없다! 저들을 모두 뇌옥에 가두어라!”

“존명!”

끌려가는 금의위사들을 보며 도독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금의위사인 저들의 마음까지 태태감이 가져갔다.

그가 가진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감도 오지 않을 정도였다.

아무리 자신이 황실 십대고수이자 금의위 도독이라지만, 단독으로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태태감은… 그런 자였다.

그때 두 무리가 나타났다.

“먼저 오셨구려, 도독.”

“잘 오셨소. 제독동창, 좌도어사.”

금의위 도독에게 말을 건 사람은 동창의 수장인 제독동창이었다.

그리고 다른 방향에서 온 자는 도찰원의 좌도어사였다.

두 사람 모두 황실십대고수에 속했다.

다만 제독동창은 금의위 도독과 함께 황실 십대고수의 상위에 속한 화경고수라면, 도찰원의 좌도어사는 화경에 한발 걸친 상황이었다.

사실 중원무림을 의식해서 황실 십대고수를 선정한 것이지, 실제로 화경고수는 다섯뿐이었다.

그리고 좌도어사를 포함한 나머지 다섯은 화경에 오르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당대 황실의 저력은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적아의 구분을 할 수 없을 뿐이었다.

“태태감 아니, 사례감장인태감(司禮監掌印太監)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구려.”

“무조건 감당해야 하오. 그게 바로 폐하의 의지이시니 말이오.”

“…….”

황실 십대고수 셋과 그들이 맡고 있는 세 기관의 정예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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