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살수-191화 (191/314)

191화.

* * *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一紅)이라는데, 과연 문 대인은 다르려나?”

“공주마마께서 직접 행차하실 정도이니…….”

늦은 시각이지만, 축하객들은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내각대학사 여식의 혼례에 장공주가 직접 행차한 것은 물론 황제의 하사품까지 전달되었다.

그만큼 황실이 그에게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관리들로서는 그런 문종학의 눈에 들기 위해서 쉽사리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비쳐야 자신들을 기억할 거란 생각 때문이다.

“허허 천하의 지봉을 누가 데려가나 했는데, 신검이라니…….”

“과연 대단하구려.”

무림인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무림에 끼치는 제갈세가의 영향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무력만 본다면 제갈세가를 상회하는 무림세가가 여럿 존재한다.

그럼에도 제갈세가는 아직도 오대세가였다.

그건 그들의 지략이 부족한 무력을 상회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정파무림의 두뇌라고 불리는 그들이었다.

척을 져서 좋을 게 없었다.

친분을 쌓을 수 있다면 더더욱 좋은 일이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물론 무림에서 제법 콧방귀를 뀐다는 거물급도 여럿 참석할 정도였다.

“그런데 신랑은 어디에 있지? 벌써 신방으로 간 건가?”

“그건 아닌 것 같고… 아마 누이를 만나러 간 것 아니겠소?”

“아… 그럴 수 있겠군.”

그들의 생각이 맞았다.

이현성은 두 동생과 함께 있었다.

“그간 고생이 많았구나.”

“아니에요. 저야 사부님 덕분에 전혀 고생하지 않았는걸요.”

이현성은 진즉에 동생들과 자리를 갖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축하객만 수백 명이나 되었다.

그들의 의도는 다르겠으나 결국 자신들의 혼례를 축하하기 위해서 방문한 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나몰라라 하고 동생들을 만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돌아다니며 축하객들의 술잔에 술을 따라주느라, 늦은 시각에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다행이구나. 그분은 화산에 계시다고?”

“사조님께서 사부님께 두문령과 면벽수련을 명하셔서…….”

“나중에 찾아뵙고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겠구나. 화산에 기부도 좀 하고…….”

화산파는 도문이기에 따로 사업장을 운용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들의 재정은 대부분 기부된 재화로 감당한다.

화산 속가제자들의 기부와 부자들의 기부가 대부분이었다.

속가제자들은 본산의 영향력에 보호를 받고, 본산은 속가제자들의 기부로 운영되니 그야말로 공생관계라고 할 수 있었다.

부자들 역시 화산파와 좋은 관계를 맺어서 혹시 모를 위험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

아니면 자식을 화산파의 속가제자로 만들기 위해서 기부를 했다.

화산파만이 아니었다. 구대문파 모두 같은 실정이었다.

중앙상단은 물론 중앙상회와 신룡표국 등 여러 사업장은 운영하는 이가장이었다.

제법 생색을 낼 정도는 충분히 기부할 능력이 되었다.

화산파와 이옥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수록 곁에 있는 이현호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해갔다.

“그런데… ‘그’와 동행했더구나.”

“…네.”

‘그’는 바로 천검 한승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의 언급에 세 사람 표정이 좋지 않았다.

특히 이현호의 표정은 심각했다.

두 동생을 보며 이현성은 한숨이 나왔다.

“…현호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당장이라도 그를 죽이고 싶었다.”

“…….”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현호를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을 테니까.”

이현성의 말에 두 사람은 움찔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에 헤어졌으나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결코 빈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걸 증명하듯 이현성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그래. 그가 현호를 돌봐주었다고 해서 그의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아주 어린 시절의 일이고 16년이라는 오래전 일이었지만 그녀는 잊지 않았다.

아니,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너무도 충격적인 일이었고, 그녀의 인생을 뒤바꾼 큰일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도 이현호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배신감이 들었어도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사부였다.

16년간, 자신에게 보여준 애정은 분명 진심이었다.

그 애정이 그의 회한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하지만 누이가 겪은 일을 생각하면 차마 그의 편을 들 수 없었다.

“네 생각은 어떠냐?”

“…이제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정말 화가 났지만… 오라버니 말씀처럼 그가 아니었다면 현호를 다시 볼 수 없었을 테니까요.”

이현영은 당시의 충격과 분노보다 가족들을 만났다는 기쁨이 더 크기에 화가 많이 누그러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용서한 것도 아니었다.

이현성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단호하게 결정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섣부른 결정이 아우인 이현호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제일 괴로운 것은 바로 이현호일 테니까.

그걸 알기에 지금까지 참고 있는 것이다.

아니었다면 그 사실을 알자마자 바로 움직였을 테니까.

“네가 결정하거라. 용서하겠다면 네 뜻을 따라주고… 용서할 수 없다면 내 손으로 죽여주마.”

두 사람은 이현성의 말에 움찔했다.

그의 소문은 익히 들었다. 신검에 대해서.

허나 한승도 만만한 자가 아니었다.

천검이라고 불리는 것은 물론 무려 무림맹의 호법이었다.

문제는 그렇다고 한들 이현성은 주저할 사람이 아님 역시 잘 알았다.

이현성은 이현호를 바라봤다.

“네 마음을 알기에 지금까진 참았으나… 현영이의 결정을 따를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형님.”

이현호는 차마 이현성을 만류할 수도, 한승을 변호할 수도 없었다.

그에게 받은 애정을 부정할 순 없으나 누이가 입은 상처는 그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오라버니, 이야기는 내일 마저 하고, 이만 돌아가세요. 언니들이 많이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

“흠흠… 그러자꾸나.”

생각이 필요한 이현영은 이현성을 돌려보냈다.

이현성 역시 부인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단 것을 떠올리곤 급히 돌아갔다.

그 후 이현호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해요, 누이.”

“…현호야.”

이현호는 마음의 짐을 이현영에게 넘긴 것 같아서 미안하기만 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가는 그를 보며 이현영은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 * *

“폐하! 신(臣), 천위령주이옵니다!”

허락 없이도 황제와 독대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천위령주였다.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내각대학사 문종학조차 독대를 위해서 허락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해서 천위령주는 황제의 부름도 없이 먼저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런 그가 이렇게 늦은 밤, 불쑥 나타났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란 뜻이었다.

“령주, 무슨 일인가?”

“요녕과 산동의 군사들이 움직였다고 하옵니다. 그리고 수군이 천진을 상륙했사옵니다.”

“결국 그가 그런 결정을 내린 겐가?”

“…송구스럽습니다. 폐하.”

요녕성과 산동성은 오군도독부 중 좌군도독부에 속한다.

그리고 좌군도독이 바로 천진룡 대장군이었다.

그는 후군도독인 용불군 대장군과 함께 군부의 양대 산맥이라고 불리는 인물이었다.

황실 십대고수에 꼽히는 무위는 물론 지휘와 전술의 귀재(鬼才)라고 불리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천진룡 대장군이라도 함부로 군사를 움직일 순 없었다.

그것도 황도를 향해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의 힘이 강력하다고 하지만 후군도독이자 북부 총사령관인 용불군 대장군은 그에 못지않았다.

그가 움직이면 용불군 대장군 역시 움직인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움직였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천 도독이야, 어차피 용 도독의 발을 묶기 위한 패일 테고… 북궁 제독에게 아무도 황도를 넘지 못하라 전하게. 그리고 금의위, 동창 그리고 도찰원을 움직여서 태태감을 구속하게.”

“…신, 천위령주… 천명을 받드나이다.”

황제는 물론 천위령주 역시 알고 있었다.

천진룡 대장군을 움직인 것은 태태감의 사주라는 사실을.

그리고 천진룡 대장군의 목표는 황궁이 아님 역시 모를 리가 없었다.

이민족의 침입을 막는 북부의 중요성은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허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황제의 안위였다.

황실에 문제가 생기면 용불군 대장군은 황실로 달려오게 된다.

그런 그를 막기 위해서 천진룡 대장군이 선수를 친 것이다.

태태감의 명령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결국 천진룡 대장군은 태태감의 손을 잡았다는 뜻이었다.

천위령주가 사라진 후 황제는 나직하게 물었다.

“금의위 도독과 제독동창이 태태감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은가. 군장.”

“…폐하, 두 사람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나 어렵습니다. 성승이나 사존조차 장담할 수 없는 자입니다.”

황제의 앞에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인은 황제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어서 군례를 취할 뿐 부복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황제는 이를 질타하지 않았다.

그는 황제에게 부복하지 않을 자격을 부여받은 자이기 때문이다.

어림군장(御臨軍將).

겉으로는 별 볼 일 없는 어림군(御臨軍)의 수장이지만, 그건 위장된 모습일 뿐이었다.

황제가 숨겨둔 최강의 한 수가 바로 어림군이었기 때문이다.

명태조 홍무제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비밀호위대를 양성했다.

황실에도 알려지지 않은 비밀호위대, 신비각이 바로 그들이었다.

허나 신비각은 건문제의 최후와 함께 역사에서 사라졌다.

새롭게 황좌에 오른 영락제는 신비각을 대신할 집단을 양성했다.

그게 바로 어림군이었다.

물론 어림군은 그 이전에도 존재했다.

다만 과거에는 황제의 직속으로서 적의 칼로부터 시간을 끌기 위한 수준에 불과했다.

영락제는 신비각을 대신하기 위해서 어림군을 무공고수로 육성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자네가 합세한다면?”

“장담할 수 없습니다.”

어림군장의 대답에 황제의 눈이 커졌다.

그의 존재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기에 황실 십대고수에 꼽히지 못했을 뿐, 그의 실력은 태태감 다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와 금의위 도독, 제독동창으로도 장담할 수 없다니, 태태감이 얼마나 대단한 고수인지 다시금 알 수 있었다.

“허… 대단하군! 과연 태태감이야. 그러나 자네가 아니면 그를 막을 수 없지 않겠는가.”

“신이… 움직인다면 폐하의 안위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태태감이라면 이런 상황을 예상했을 겁니다. 폐하.”

“어림군과 구룡검주를 믿어보지.”

“…폐하의 명이시라면… 따르겠습니다.”

어림군장이 자리를 비웠다고 해도 어림군은 만만한 집단이 아니었다.

일개 군사가 일류고수이며, 네 명의 부군장들은 하나 같이 초절정고수였다.

무엇보다 구룡검의 맹약자들까지 있었다.

최악의 경우 시간을 벌어줄 것이다.

그럼에도 어림군장은 안심할 수 없었다.

태태감이 어떤 인물인지 알기 때문이다.

허나 황제의 천명에 불복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태태감… 그대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네.’

* * *

“귀왕, 무슨 용무요?”

문가장의 연회가 슬슬 마무리되어갈 때쯤, 암월을 찾아온 자가 있었다.

바로 귀왕(鬼王) 야래향이었다.

그녀를 대하는 암월의 태도는 무척이나 차가웠다.

허나 그녀는 달랐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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