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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190화 (190/314)

190화.

적지 않은 양이기에 야래향은 오랜 시간을 살펴봤음에도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이곳에 없나?”

암월의 말이 아니라도 귀왕으로서 귀림의 뿌리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조사를 했으나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니 너무도 아쉬웠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비역 한쪽 벽에 작은 흠집을 발견했다. 얼핏 봐서는 도저히 알아차리기 힘들뿐더러, 자세히 봐도 특이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둥근 흔적이 귀왕인의 수련 중에서 생겨난 것 같기 때문이다.

이곳은 귀역. 오직 귀왕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런 흔적은 당연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또 다르다.

“혹시…….”

야래향은 자신의 손에 끼고 있던 귀왕인을 빼서 둥근 흔적에 끼워 넣었다.

귀왕인으로 인한 흔적이 맞는지 딱 맞았다.

허나 기대했던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

그녀는 실망하며 귀왕인을 꺼내려고 할 때였다.

드르륵.

“아닌가? 헉!”

기이한 소리와 함께 벽에 작은 금이 갔다.

정확히는 일종의 문이 되었다.

문을 열자 작은 공간이 존재했고, 하나의 철권(鐵卷)만 놓여져 있었다.

야래향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철권을 꺼냈다. 얼마나 중요한 내용을 적었기에 죽간도 아닌 철권으로 만들었을까 싶었다.

실제로 철권을 펼치자 빼곡히 글이 적혀 있었다.

글을 읽어 내리던 그녀는 경악했다. 귀왕의 탄생부터 귀림의 시작 그리고 비사들이 적혀 있었다.

“이게… 정말 사실이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그자의 이름이… 암월이었지. 그랬구나. 그래서…….”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철권에 적혀 있는 내용이 사실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허나 무려 귀왕인으로 꺼낸 귀중한 철권이었다.

이렇게 공을 들여서 거짓을 남겨둘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인정을 하자, 암월 호법의 차가운 태도 역시 이해할 수 있었다.

“잠깐 그런데 그와 장주님의 관계는 도대체…….”

* * *

“대인 축하드립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혼례날이 되자 수많은 사람이 문가장을 찾아왔다.

하나 같이 북경에서 힘 좀 준다는 거물들이었다.

평소 그들을 멀리하던 문종학이었지만, 오늘만큼은 그들의 축하를 감사히 받았다.

사심을 가지고 왔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허나 그만큼 좋은 날이었기에 평소와 같은 단호함을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이유야 어쨌든 여식의 혼례를 축하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총군사님 정말 기쁘시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가주님.”

문가장을 찾은 자들은 관리들만이 아니었다.

무림의 명숙들 역시 혼례를 축하하기 위해서 찾아왔다.

그들은 문종학보다 오대세가인 제갈세가의 제갈윤호와 제갈인섭에게 축하 인사를 했다.

많은 관리가 참석할 것을 알기에 제갈세가는 굳이 많은 곳에 연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명숙들이 참석해주었다.

무림맹 총군사인 제갈윤호와 세가주인 제갈인섭의 영향력이 어떤지 알 수 있었다.

허나 무엇보다 혼례의 주인공들은 따로 있었다.

이미 후기지수란 말이 무색한 강자. 다음 대 무림이 아닌 당대에서도 인정받는 고수. 천하제일고수의 후보 등 여러 수식을 가진 신검(神劍) 이현성.

무림삼봉(武林三鳳)의 한 명이자, 제갈세가의 보물이라는 지봉(智鳳) 제갈현지.

내각대학사의 여식이자 웬만한 학사들과 대화를 해도 밀리지 않는다는 재녀(才女) 문교교.

그들의 혼례는 주목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 혼례가 시작되니 모두 정숙해주시기 바랍니다.”

문가장 집사의 외침에 모두 세 사람을 축하해줄 준비를 했다.

그때 갑자기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내각대학사 여식의 혼례이자 제갈세가주 여식의 혼례였다. 그 중요한 시기에 소란을 피운다는 것은 욕을 먹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감히 욕을 할 수가 없었다.

“제가… 방해를 한 게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대학사님.”

“아닙니다. 마마. 부족한 여식의 혼례에 마마께서 몸소 방문해주시다니… 영광이옵니다.”

무림 명숙들이나 관리들 일부는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허나 문종학이 직접 인사를 하는 것은 물론 그의 말에 그들은 사색이 되었다.

황족 모욕이 얼마나 무서운 죄며, 그 형벌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잘 알기 때문이다.

“황제 폐하께서 세 사람의 혼례를 축하하면서 보내셨습니다. 대학사께서 축하선물을 받지 않으려고 하지만 받으셨으면 좋겠군요.”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아무리 축하선물을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감히 황제의 하사품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좌중은 다시 한번 문종학에 대한 황제의 총애를 느낄 수 있었다.

고관의 자식이 혼례를 하면 황실에서 선물을 보내지만, 이렇게 공주가 직접 황제의 하사품을 전달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니 문종학에게 질투심이 났으나 동시에 그에게 잘 보여야겠단 생각을 했다.

다만 의외로 황제의 하사품이 대단치 않았다.

최고급 붓과 벼루 그리고 귀한 고문서 등과 황실에나 납품되는 비단 등이었다.

그 가치가 결코 낮지 않았으나 내각대학사 여식의 혼례를 축하하는 하사품 치고는 대단하다고 할 순 없었다.

허나 황제에게 충성심이 대단한 문종학은 하사품을 받고 진심으로 감사해했다. 그 순간 장공주인 주가려와 신랑 이현성의 눈빛이 닿았다.

‘축하해요. 이 대협.’

‘감사합니다. 공주마마.’

황제의 하사품을 처음 받은 것이 아니었기에 이현성은 큰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눈빛에 담긴 그녀의 축하인사는 감사히 받아들였다.

주가려는 최상석으로 향했다. 황족인 그녀보다 더 귀한 존재가 이 자리에 없기에 당연했다.

그렇게 다시 혼례가 진행되었다.

“…세 사람의 혼례에…….”

웅성웅성.

혼례가 진행되고 있을 때, 다시 한번 소란이 났다.

장공주까지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혼례가 중단되었다. 태자가 온 게 아니라면 문책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게.”

“예. 집사님.”

집사의 말에 문가장의 식솔이 급히 알아보기 위해서 움직이려는 순간 한 무리가 들이닥쳤다.

그중에는 장원의 경비를 맡고 있던 금의위사도 있었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그들 무리 중 뛰어난 미색을 가진 여인이 울먹이고 있단 점이었다.

“오, 오라버니… 현성 오라버니…….”

“누구지?”

“신랑에게 숨겨둔 여인이 또 있었던 거야?”

아름다운 신부가 둘이나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못지않은 미색의 여인이 울며 신랑을 부르니 오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눈썰미가 좋은 이들은 깜짝 놀랐다.

“화산파? 화산파의 제자가 왜…….”

“저자는 한 호법이 아닌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여인의 도의를 알아본 자들이 있었다.

화산파를 상징하는 매화가 그려진 도의는 그녀만 아니라 몇몇이 입고 있었다. 그리고 제갈윤호와 함께 무림맹에서 온 고수들은 저들 중 한승을 알아봤다.

혁련세가를 습격하면서 혁혁한 공을 세운 그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더 가관인 것은 신랑의 반응이었다. 부들부들 떠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그런 이 상황을 지켜보는 문가장과 제갈세가 식솔들의 표정은 상당히 굳어졌다.

그런데 의외로 신부들의 반응은 담담했다.

신랑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그때 신랑의 입이 열렸다.

“너… 영이가 맞느냐…? 정말 현영이가 맞느냐!”

“아…!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이현성을 보며 여인은 결국 눈물을 터트리며 감사의 말을 쏟아냈다.

덕분에 좌중의 궁금증은 점점 커졌다. 결국 신랑 이현성이 뛰쳐나가서 여인을 감싸 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좌중은 경악했다. 전대미문의 일이 벌어졌다.

신랑이 혼례 중에 신부가 아닌 다른 여인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때 또 다른 소란이 일어났다.

“누, 누이… 정말! 현영 누이요!!”

“아…! 현호야!”

또 다른 사내가 뛰쳐나가서 두 사람과 얼싸 안고 눈물을 흘렸다.

바로 신랑의 남동생이었다. 다들 놀라긴 했으나 눈치 빠른 자들은 그녀의 존재를 깨달았다.

특히 문종학은 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서 설명했다.

“신랑이자 저희의 사위는 어린 시절 가족들과 헤어졌습니다. 그에겐 동생이 둘이 있는데, 아우와 달리 누이는 최근까지 찾지 못했습니다. 그의 혼례소식을 듣고 지금 찾아온 듯싶습니다.”

“아… 그런…….”

“그렇군. 허… 그런 일이…….”

문종학의 말에 좌중은 놀라면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이현성이 얼마나 동생을 찾고 있었는지 알고 있던 신부들은 눈물을 흘리며 그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훌쩍… 오라버니… 훌쩍… 저는 현호랑 있을 테니 훌쩍… 언니들에게 가보세요.”

“그래… 조금 있다가 보자구나. 현호야.”

“예. 형님…….”

한참 울던 이현영은 지금 이 순간이 이현성에게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지 알기에 그를 놓아주었다.

이현호가 그녀를 부축하며 옆으로 빠지자 이현성은 신부들에게 다가갔다.

“미안하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가가.”

“맞아요. 그리 찾으시던 아가씨를 찾게 되어서 축하드려요.”

“고맙소. 부인들…….”

피에 물든 문가장

“이게 사실입니까! 귀왕!”

야래향이 건넨 철권을 읽은 귀백은 경악했다.

당대 귀림의 가장 큰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그조차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애초 그가 귀백이며, 전대 귀왕의 사제라고 하지만 귀왕야가의 혈족은 아니었다.

아니, 귀왕 야가의 혈족인 아래향도 모르던 사실이었다.

그러니 그가 모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철권의 존재는 물론 비사 역시 구전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의 뿌리에 대해서 알게 된 지금 경악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럼 그자 아니, 그분이 당대 암월이란 뜻이군요.”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 반응도… 설명할 수 있고요.”

암월에 대한 호칭이 바뀌었다.

당연했다. 그가 진정 암천회 사대호법의 후예라면 귀왕도 동급으로 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허나 문제는 아무리 자신들의 뿌리가 암천회라고 해도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다.

암천회를 인정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이미 사라진 암천회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다.

귀림은 귀림일 뿐이니까.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글쎄요… 암천회가 아직까지 존재할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설사 존재한다고 한들…….”

야래향은 뒷말을 흐렸다.

암천회가 귀림의 뿌리라고 한들, 이미 남남이라 할 수 있었다.

그만큼 긴 세월이 지났다. 바뀔 것은 없었다.

귀백 역시 생각이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을 다시 한번 뵙긴 해야 할 것 같아요. 어쨌든 시조님과 연이 있는 분이니까요.”

“귀왕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

귀백은 굳이 만류할 생각은 없었다.

결자해지(結者解之).

시조의 일은 후예인 당대 귀왕이 푸는 것이 맞을 테니까.

야래향은 늦은 시각이었지만, 암월을 만나러 갈 생각이었다.

어차피 그녀의 입장에선 낮에 만나러 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 시각 문가장은 아직도 곳곳에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연회는 아직도 한창이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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