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다만 규염은 같은 강호칠기인 제갈윤호와 더 친했다.
하지만 제갈윤한과 사이가 나쁜 편도 아니었다.
“잘 있었는가? 듣자 하니 많이 다쳤다던데?”
“흠흠… 많이 다치긴… 그보다 너희 조심해라. 우리 장주 괴롭히다가 걸리면 국물도 없어.”
규염은 창피한지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그의 말에 제갈세가의 장로들은 불만이 많았다.
그간의 정이라는 것이 있는데, 자신들을 너무 타박한다고 생각했다.
“숙부님 너무하십니다.”
“이것들이! 너희를 위해서 하는 말이다. 나야 이 정도이지, 독고 할망구에게 걸리면 뼈도 못 추려.”
“헉!”
“그, 그러고 보니 칠현마금(七絃魔琴) 독고 선배께서 계셨지요.”
규염의 말에 그들은 서둘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독고혜의 악명은 워낙 대단하기 때문이다.
괜히 별호에 ‘마’가 붙은 것이 아니었다.
마공을 익힌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할망구는 북경에 있으니 그렇게 놀라지는 말고.”
“하… 괜히 겁주십니까. 숙부님.”
“흐흐흐… 그 할망구가 무섭기 무서운가 보구나.”
규염을 보며 제갈현지가 핀잔을 주었다.
“할아버지도 독고 장로님을 무서워하시면서, 숙부님들을 그만 놀리세요!”
“내, 내가 언제 그 할망구를 무서워했다고… 그러느냐.”
“그럼 장로님을 만나게 말씀드려 볼까요?”
“돼, 됐다! 요 녀석아!”
“하하하!!”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곤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덕분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내일은 떠날 것이니, 오늘은 푹 쉬게.”
* * *
“저희가 같이 가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사부님.”
“장주께서 직접 청하셨는데 뭘 그렇게 걱정을 하느냐, 은설아.”
며칠 전 이현성이 종리우를 찾아갔다.
그리곤 자신의 혼례에 참석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
예상치 못한 제안이었다.
의형의 일로 그가 자신들을 불편하게 여기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절하면 더 어색해질 수도 있기에 거절하지 않았다.
애초 이런 제안을 한다는 것이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지요?”
“그래. 다만… 장원 식솔이 몇몇 대동하지 않는데, 우리에게 동행을 제안할 줄은 몰랐다.”
장주인 이현성의 혼례는 이가장에 무척이나 큰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현성은 과감하게 몇 명만 동행하기로 했다.
수개월 전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습격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다수가 자리를 비우게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로 인해 동행자가 열이 넘지 않았다.
그중 둘이 자신들이니 더더욱 놀라웠다.
“그보다 현이랑 대화를 좀 했느냐?”
“…쉽지 않네요.”
한은설은 조심스러웠다.
그에게 미움을 받을까 봐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그래도 간혹 의원에 얼굴을 비추긴 했다.
이현호가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다는 증거였다.
“여린 녀석이라서 상처가 더 크겠지.”
“알아요. 그러니 더 아버지가 원망스러워요.”
“후… 형님께서 잘못하신 것은 맞다. 하지만 너까지 원망하지는 말거라. 가장 힘든 것은 형님이실 테니까.”
“왜… 모르겠어요. 하나 밖에 없는 딸인 제가… 하지만…….”
한은설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아버지께서 하신 행동을.
종리우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 누구보다 옳고 곧은 형님께서 그런 행동을 하셨다는 것이 그에게도 나름 충격이었다.
‘그 녀석은 언젠가는 형님을 용서할 겁니다. 그런 녀석이니까요. …형님, 그녀를 만나서 용서를 받으십시오. 현이를 위해서라도…….’
그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이현호는 조금씩 용서를 하려고 한다. 그렇기에 괴로웠다.
온전히 사부를 원망할 수 없기에…….
그에게 받은 사랑을 알기에 용서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자신이 느끼는 배신감, 그리고 형님과 누이가 느낄 원망을 알기에 쉽게 용서할 수가 없었다.
다음 날, 그들은 각자의 고민을 안고 북경으로 향했다.
* * *
“사매 진정해.”
이현성, 이현호의 소재를 알게 된 이현영은 곧바로 뛰쳐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화천기로 인해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의 하산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현영만 보낼 순 없었다.
고민 끝에 화천기는 그녀와 친한 화소군을 포함한 화산 일대제자를 몇몇 동행시켰다.
원래라면 장로급을 책임자로 붙여야 했다.
허나 무림맹의 호법인 한승이 호위를 자청했기에 굳이 많은 인원을 편성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움직인다면 동행했던 무림맹 주작당 고수들 역시 움직일 테니까.
사실 마음 같아선 이현영의 사부인 화옥령을 동행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내려진 두문령 때문에 보낼 수가 없었다.
“사저… 진정이 되지 않아요.”
“사매…….”
화소군은 이현영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섬서성 서쪽 끝에 위치한 화산에서 하남성 정주까지 보름이면 올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서두른 덕분에 열흘도 걸리지 않아서 정주 인근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정주, 그리고 이가장에 가까워질수록 이현영은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도저히 진정할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꿈에서도 그리던 그들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허나 그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후… 그 아이의 얼굴을 어찌 볼꼬… 아직 소저의 용서도 받지 못했는데…….’
말을 타고 마차를 호위하고 있는 한승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아직 이현영의 용서를 받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제자인 이현호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그를 볼 면목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직 이현영에게 용서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무림맹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호위를 자청한 것이다.
물론 그런 그의 결정은 주작당 호위무사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임무는 한승을 호위해서 화산파에 다녀오는 것이다.
그런데 무림맹에 복귀가 아닌 정주로 향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무림맹의 요인인 한승을 놔두고 자신들끼리 복귀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제갈윤호에게 서신을 보낸 후 한승과 동행했다.
몇 시진 후 그들은 정주에 도착했다.
“자, 장주님… 장주님의 존함이 이가 성에 현자 성자 되시는 것이 맞나요!”
“마, 맞습니다. 장주님의 존함이… 그런데 누구십니까?”
이가장의 정문을 지키고 있던 잠룡대원들은 당황스러웠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한 무리 때문이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자들이었다.
수개월 전 큰일을 치른 만큼 경계를 거둘 수가 없었다.
“아! 정말이었어!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소, 소저…….”
눈물을 흘리는 어여쁜 여인을 보며 잠룡대원들은 더욱 당황스러웠다. 특히 장주의 이름을 물은 후 눈물을 흘리니 혼란스러웠다.
혹시 알려지지 않은 장주의 또 다른 여인은 아닐까 하는 무엄한 오해를 할 정도였다.
허나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몸이 굳어지고 말았다.
“오라버니… 오라버니를 뵙고 싶어요!”
“예? 오, 오라버니요? 자, 장주님의 누이십니까?”
잠룡대원들은 혼란스러웠다.
분명 장주의 동생은 사내였다. 그런데 웬 여인이 나타나서 누이라고 하니 혼란스러운 것은 당연했다.
잠룡대원들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가장은 객을 박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찾아온 객이라면 객당으로 안내한다. 하지만 그들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대로 세워둔 채 책임자를 부르러 갔다.
잠시 후 거구의 중년 사내가 달려왔다.
그는 이현영을 보곤 흠칫 놀랐다.
“수하들의 보고를 받았습니다. 잠룡대장인 장무열이라고 합니다. …화산파의 선자님께서 장주님의 누이라고 주장하시는 분이 맞습니까?”
“맞아요. 오라버니를 뵙게 해주세요.”
잠룡대원들과 달리 대장인 장무열은 이현영의 도의(道衣)를 알아보고 선자라고 칭했다.
소매에 매화가 그려진 도문은 화산파뿐이기 때문이다.
허나 아무리 화산파의 제자라고 해도 그녀의 말만으로 장주의 누이란 것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주장’이란 표현을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지만 장무열은 조심스러웠다.
화산파의 제자가 장주의 누이라고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선자님께서 장주님의 누이라는 것을 증명하실 수 있으십니까?”
“그, 그러니까 오라버니를…….”
증명할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현성을 만나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 외에는.
이현영과 동행한 화산파의 제자들은 내색하지 않았으나 살짝 불쾌감이 들었다. 먼 길을 왔음에도 박대당하니 어찌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는가.
자신들이 화산파의 제자임을 몰랐다고 해도 언짢을 텐데, 자신들의 신분을 알면서도 이런 반응이니 불쾌감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허나 명문인 대 화산파의 제자로서 예를 잃을 순 없기에 내색하지 않았다.
이현영이 당황할 때, 한 중년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처음 뵙겠습니다. 천중산장의 한승이라고 합니다.”
“처, 천중산장이라시면 현호 도련님의?”
“맞습니다.”
한승의 말에 장무열의 태도가 달라졌다. 이현영의 존재는 불확실하지만, 한승의 존재는 확실하기 때문이다.
“소저께선 그 녀석의 누이가 맞습니다. 제가 보장하겠습니다.”
“소, 속하 장무열이 아가씨를 뵙습니다.”
“뵈, 뵙습니다.”
장주의 아우인 이현호의 사부가 그녀의 존재를 보장해주었다.
더 이상 의심은 무례가 될 수 있었다.
불쾌할 수 있으나 이현영은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그리운 이현성과 이현호를 만나는 일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오라버니… 그리고 현호를 만나게 해주세요.”
“저… 아가씨…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 왜요. 아직도 제가 오라버니의 누이란 것을 믿지 못하시나요?
“그, 그럴 리가요. 당치 않습니다. 그게… 장주님과 도련님께선 장원에 계시지 않습니다.”
장무열의 말에 이현영은 의아했다.
자리를 비웠으면 기다리면 그만인데, 자신에게 너무도 미안한 표정을 짓기 때문이다.
그만이 아니라 잠룡대원들까지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기다릴게요.”
“그게… 당분간 돌아오시기 어렵습니다. 황도인 북경에 가셨습니다.”
“부, 북경에요? 북경에는 왜… 언제쯤 돌아오시나요!”
“혼사 때문에 가셨습니다. 적어도 두 달은 더 걸리실 겁니다.”
“……!!”
처음에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어리둥절하던 이현영의 눈이 커졌다.
두 사람 모두 함께 북경에 갔다면 지인의 혼사가 아닐 수 있었다.
즉,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혼사일 가능성이 높았다.
“설마…….”
“맞습니다. 장주님의 혼사입니다.”
“……!!”
이현영은 물론 좌중도 당황했다.
먼 길을 와서 그를 만나지 못하는 것도 당황스러운데, 누이인 그녀도 모르게 장주의 혼사가 진행되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 오라버니… 그러니까 장주님의 혼사에 여러분들은…….”
“수개월 전, 장주님께서 자리를 비우셨을 때 장원이 습격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장원의 병력을 빼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하셔서 장주님께선 몇 분만 동행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
사랑하는 큰 오라버니의 혼례에도 참석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이현영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