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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180화 (180/314)

180화.

하지만 이가장에 대한 백성들의 존경이 한층 더 높아졌으니 꼭 수고라고만 말할 수도 없었다.

“예, 예 선녀님. 감사합니다.”

“호호호… 저는 선녀가 아니에요. 의술을 조금 배웠을 뿐인걸요.”

아름다운 외모와 환자들에 대한 살가운 태도 그리고 뛰어난 의술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한은설은 선녀라는 별명이 생겼다.

천중산장 시절에도 의선녀란 별명이 있었고, 듣기 나쁜 별명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까르르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이가장의 가솔들이나 정주 사내들은 심장이 떨려왔다.

하지만 감히 수작을 부리는 자는 없었다.

정주 만인에게 존경받는 이가장의 귀한 손님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딜 가든 천둥벌거숭이와 같은 자들은 항상 있었다.

“공자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지금 날 저치들처럼 줄 서란 말이야! 나 누군지 몰라!”

“고, 공자님!”

몇몇 호위를 대동한 청년은 무척이나 안하무인처럼 굴었다. 척 봐도 귀한 집안의 자제로 보였다.

이가장의 경비대원도 그러한 사실을 알기에 쉽게 저지할 수도 없었다. 치료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던 민초들은 괜히 불똥이 튈까봐 옆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우월감에 찬 청년은 경비대원을 밀치고 앞으로 갔다. 정확히는 한은설의 앞으로 갔다.

“소문보다 더하군. 본가로 가자. 이곳에서 주는 돈보다 두 배를 주지.”

“거절하겠어요. 지금 치료하느라 바쁘니 비켜주시겠어요?”

아픈 환자들에게야 상냥하지, 한은설은 원래 한 성격했다. 철부지 도련님의 멍청한 소리에 놀아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예상치 못한 말에 청년은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태어나서 하고 싶은 것은 뭐든 하고, 갖고 싶은 것은 뭐든 가졌던 그에게 너무도 신선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의 성격은 그리 너그럽지 않았다.

“허… 내가 누구인지 모르나…….”

“시끄럽군요. 관심 없으니 그만 나가주세요!”

한은설의 거친 거절에 청년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거렸다. 민초들은 이러다가 그녀가 경을 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하지만 차마 끼어들 용기는 없었기에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만 볼 뿐이었다.

“이, 이년이! 뭐해! 끌고 가지 않고!”

“예! 공자님.”

청년의 뒤에 있던 호위들이 한은설을 끌고 가기 위해서 움직였다. 일개 계집을 힘으로 끌고 가는 것은 창피한 일이었지만, 물주인 청년의 명령을 거부할 순 없었다.

물론 청년보다 그의 부친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허나 호락호락하게 당할 한은설이 아니었다.

침술을 펼치던 침을 몇 개 쥐었다.

“물러나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거예요.”

“괜히 앙탈부리다가 예쁜 얼굴이 상처… 큭!”

험상궂은 얼굴로 협박을 하던 사내는 한은설이 던진 침을 맞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녀는 침을 그냥 던진 것이 아니라 비침술을 펼친 것이다.

비침술은 암기술의 일종인 만큼 만만히 본다면 큰일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미, 미친! 보통 계집이 아니다! 모두 조심해라!”

“망할 년!”

사내들이 각기 도검을 뽑자 분위기는 점점 흉흉해졌다.

덕분에 민초들은 더욱 사색이 되었다.

‘하필 사부님께서 약재 때문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후… 나 혼자 제압할 수 있을까?’

환자들이 워낙 많이 방문하니 약초를 잘 건조해서 보관하는 것도 일이었다.

아직 의원이 완전히 자리 잡기 이전이었기에 약재창고 관리도 한은설과 종리우의 몫이었다.

약재창고에 아무나 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종리우가 잠깐 자릴 비우는 사이에 일이 벌어졌으니 참으로 운이 좋지 않은 셈이었다.

퍽! 퍼퍽!!

퍽! 퍽!

“큭!”

“커억!”

“누, 누가… 으악!!”

호위들은 비명과 함께 하나같이 쓰러졌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들의 앞에는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쓰레기 같은 놈들, 꺼져라! 여긴 너희 같은 자들이 발들일 곳이 아니다. 깨닫지 못한다면 몸으로 깨닫게 만들어주마.”

“가, 감히 내가 누구인줄 알고! 그딴 같잖은 협박질이야!”

“네놈이 누구인지가 중요한가?”

“이놈! 내 아버님께서 호조참정(戶曹參政)이시다! 알았으면 당장 무릎을 꿇지 않… 컥!”

각 성(省)의 행정을 관할하는 기관이 바로 승선포정사사(丞宣布正使司)였다. 수장인 승선포정사를 보좌하며 성의 인사, 재정, 각종 행사 및 교육, 군정, 사법, 공사를 관장하는 부서가 바로 육조(六曹)다.

황실의 육부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호조참정은 육조 중 호조의 수장이었다.

종3품의 고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부친을 둔 청년이니 기고만장할 수 있었다.

허나 그런 호조참정 아들의 얼굴이 시뻘겋게 부어올랐다. 갑자기 나타난 청년의 주먹에 맞았기 때문이다.

“미, 미친놈아! 아, 아버님께서 네놈을 가만둘 것 같아!”

“호조참정쯤 되는 분이 민초들에게 윽박지르고, 아녀자를 강제로 납치하려는 네놈을 두둔할 리가 없지.”

“이, 이놈이!!”

자신의 신분 아니, 아비의 신분을 들먹거리며 협박했으나 청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물론 내심 걱정은 되었다.

자신이야 상관없으나 이 일로 형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은 접었다.

형이라고 이런 일에 모른 척하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빠드득.

“오냐, 네놈이 지금 누굴 건드린 것인지 확실하게 깨닫게 해주마! 겁나지 않는다면 정체를 밝혀라!”

“내 이름은 이현호… 그것으로 부족한가?”

“이현호… 오냐! 후회하게 될 것이다!”

호조참정의 아들은 이를 박박 갈며 돌아갔다.

부친에게 고해서 뼈저리게 후회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현아… 나, 나는…….”

“다친 곳은 없으시오?”

“어, 없어. 그보다 현아…….”

“그럼 되었소.”

오랜만에 본 이현호의 모습에 한은설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이현호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무사함만 확인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냥 떠났다.

그녀는 차마 이현호를 붙잡지 못했다. 붙잡을 수가 없었다.

자신들의 심신의 거리가 벌어진 이유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저 그의 이름을 나직하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현아…….”

오만의 대가

쾅!

“감히 내 아들이 맞고 들어와! 어느 미친놈이 감히! 나 우양의 아들을!!”

호랑이가 개를 낳지 않는 법.

호랑이인 척한 개였기에 자식 역시 개인 것이다.

하남성에서 어깨에 힘을 준다는 호조참정 우양.

하남성의 재정을 한 손에 주무르는 인물답게 그가 가진 영향력은 대단했다. 물론 뒤로 빼돌린 것도 많았고, 그로 인해 부릴 수 있는 힘도 어마어마한 인물이었다.

지금이야 하남성에 있으나 언젠가는 중앙에 오를 야망까지 가진 자였다. 그런 그의 자식이 맞았다는 것은 자신이 무시를 당했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호조참정 우양은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런 그를 보며 우양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부관이 쩔쩔매며 대답했다.

“이현호라는 일개 무부입니다.”

“일개 야인 따위가 감히 내 아들에게 손찌검을 했단 말인가!”

아무리 관과 무림이 불가침 관계라고 해도 일개 무림인이 감히 고관의 자식에게 손을 댄 것은 조용히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그러기엔 우양의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했다.

“혹시 몰라서 알아보니… 이가장주의 친아우라고 합니다. 대인.”

“뭐, 뭐라고! 이가장주의!”

부관의 보고에 우양은 미간을 찌푸렸다. 무림인을 무시하는 그라도 이가장주는 조금 신경이 쓰였다.

수년 사이에 급격히 성장한 이가장은 무림과 상계는 물론 정주 관계(官界)에도 막대한 영향을 떨치고 있었다.

특히 하남성의 군정기관인 도지휘사사 쪽에서 이가장을 신경 쓴다.

정확히는 정천호와 그 윗선쯤이었지만, 우양의 눈에는 도휘사와의 친분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한들 그냥 꼬리를 말 순 없었다.

“병조참정께 내가 대접하고 싶다고 전해라!”

“예. 대인!”

호조참정의 말에 부관은 물러났다.

홀로 남은 호조참정의 얼굴에 비웃음이 어렸다.

‘아무리 도지휘사사가 군권을 가지고 있어도 출정권은 우리에게 있으니까.’

호조참정은 군사 출동 명령권을 가지고 있는 병조참정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그럼 도지휘사사라도 자신을 방해할 수 없을 거란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자신이 지금 감히 누굴 건드리려고 했는지를.

“하하 좋구나 좋아.”

병조참정은 가인이 따라주는 미주를 마시며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정주의 수많은 기루가 존재하지만, 쾌활림만은 못했다.

웬만한 신분으론 쾌활림의 문을 두들길 수 없으며, 무엇보다 황도인 북경과 이곳 정주만 존재하는 만큼 더욱 특별했다.

“내 우 대인 덕분에 호강을 다합니다. 그려.”

“하하하 표 대인께서 이리 기뻐하실 줄 알았으면 진즉에 자리를 마련할 걸 그랬습니다.”

돈과 여자 그리고 미주를 거절하는 사내가 어디에 있겠는가.

병조참정 표염춘은 특히 심했다. 그 비싸다는 쾌활림을 공짜로 즐길 수 있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허나 세상에 공짜보다 비싼 것은 없었다.

분위기가 점점 물이 오르자 우양은 쾌활림의 가인들은 밖으로 내보냈다.

한창 분위기가 좋아졌는데, 갑자기 가인들을 물리자 살짝 짜증이 났다.

하지만 그도 골패로 병조참정이 된 것은 아니었다.

우양이 이런 자리를 마련했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그의 초대에 응했다.

“…표 대인께서 하남의 군권을 한 손에 쥐고 계신 분이 아닙니까?”

“흠흠… 군권이라니요. 도지휘사 어른께서 계신데 어찌…….”

“아무리 도지휘사 어른이라도 표 대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어찌 마음대로 군사를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아니 그렇습니까? 병조참정.”

“그야 뭐…….”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표염춘은 어깨가 으쓱해졌다.

품계야 정2품인 도지휘사가 높으나 군사 출동 명령권은 병조 그리고 그 병조의 수장인 표염춘이 쥐고 있었다.

그래서 나름 자부심을 가질 만했다.

“군사의 움직임을 좀 막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표염춘의 되물음에 우양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들의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표염춘은 자신의 아들이 맞은 것처럼 분개했다.

감히 무림의 야인 따위가 관리 그것도 고관의 자식에게 해를 끼친 것은 황실에 대한 도전이라고 소리칠 정도였다. 하지만 끝까지 호응할 순 없었다.

“…이가장주의… 아우라고요.”

“예, 그놈이 제 형을 믿고… 왜 그러십니까? 표 대인.”

이현성의 이름이 거론되자 표염춘의 얼굴이 굳었다.

기관은 다르지만 하남 군권을 담당하는 병조의 수장답게 도지휘사사의 무관들이 이가장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모를 수가 없었다.

이가장의 묵룡대와 잠룡대는 물론 그 외의 무인들 중에서도 퇴역한 군사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중에는 하남의 무관 및 군사들도 제법 포함되었다.

하남의 무관과 군사들 중 이가장에 줄을 대려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만약 이가장을 압박하려고 한다면 그들의 반발이 심각할 수 있었다.

그걸 막는 것은 병조참정인 표염춘일지라도 상당히 부담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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