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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178화 (178/314)

178화.

“아니에요. 오히려 감사의 말씀을 드리기 위함이니 당황하지 않으셔도 되어요.”

“네? 네…….”

한은설은 여전히 긴장했다.

자신은 이곳에서 결국 불청객이란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읽었는지 제갈현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리곤 나직하게 말했다.

“해서 말인데… 앞으로도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치료…말인가요?”

조심스럽게 되묻는 한은설을 보며 제갈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혁련세가의 습격으로 가솔들 특히, 무인들의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당연히 세밀한 치료가 필요한 시기였다.

게다가 더 이상 이런 치욕을 겪지 않기 위해서 다들 이를 악물고 수련에 임하고 있었다.

무리를 한다면 결국 탈이 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들을 위해서 전담해줄 의원이 필요했다.

이가장의 재력이라면 의원 몇몇을 고용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가장이 원하는 수준에 도달한 의원이 얼마 없었다.

그들을 이가장이 모두 독점할 수도 없었다.

그럴 때 한은설과 종리우가 나타났다.

한은설은 둘째고, 종리우의 경우는 의독선생(醫毒先生)이라고 불릴 정도로 의술이 뛰어났다.

두 사람이 적극적으로 장원을 도와준다면 부담이 많이 줄어들 수 있었다.

“그분… 장주님께 좋은 인상을 심어줄 기회이니, 한 소저에게도 나쁜 제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가 남도 아니잖아요?”

“그, 그건…….”

“알고 있어요. 우리 도련님을 동생으로만 생각하지 않는 것.”

“…….”

제갈현지의 말에 한은설은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런 그녀의 반응이 귀여운지 제갈현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럼 부탁해도 될까요? 한 소저 아니, 동생.”

“…예. 언니.”

한은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제갈현지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녀의 말이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며칠째 별채에서만 지냈더니 심심하기도 했다. 이가장의 가솔들을 치료해준 것도 그런 이유가 없지 않았다.

‘동생 힘내세요. 이 집안 사내들은 여인에게 적극적이지 못하니까요.’

불청객

“이제 마음이 좀 후련해졌느냐?”

“조금은… 그렇습니다. 형님.”

이현성을 찾아온 이현호의 얼굴이 조금은 개운해 보였다. 그간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지 얼굴이 많이 상해보였다. 그러나 잘 이겨낸 듯하니 이현성은 오히려 대견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은설 누이와 종리 숙부께서 장원에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본장에 신세를 지고 싶다고 찾아왔는데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어찌되었든 널 오랜 시간 돌봐준 이들이 아니더냐. …네가 불편하다면 그들에게 새로운 거처를 마련해주마.”

“아닙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그들이 이가장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지 보름이나 지났으나 이현호는 알지 못했다.

일부러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나 그들이 무슨 생각인지 대놓고 의술을 베풀면서 모르려야 모를 수 없게 되었다.

제 딴에는 좋은 인상을 주려는 듯싶었고, 장원에도 도움이 되기에 이현성은 묵인해주었다.

“만나볼 생각이더냐?”

“…아직…….”

“강요할 생각은 없다. 결정은 네 몫이니까.”

“…….”

마음의 괴로움을 많이 떨쳤으나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물론 한은설과 종리우의 잘못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을 보면 그가 떠오를 것 같아서 차마 만날 수가 없었다. 그에게 배운 천중검법이나 천검비록조차 수련하지 못할 정도이니 어찌 그들을 마음 편하게 만날 수 있겠는가.

“나는 네 형이다. 원하는 게 있었다면 언제든 말하거라.”

“…아직은 없습니다. 형님. …그런데 영이 누이는…….”

“…알아보고 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풍운각의 정보력은 아직 하남성조차 완벽하게 아우르지 못한 상황이었다. 만약 이현영이 하남성 외의 지역에 있다면 풍운각으로선 그녀를 찾아낼 수 없었다.

그렇기에 하오문을 통해서 청부를 넣은 상황이었다.

완전히 신용할 수 있는 집단은 아니지만, 정보력에 관해서는 믿어 의심치 않는 집단이었다.

게다가 현재 그의 입장에선 또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하오문에 청부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는 이현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현성은 한숨이 나왔다.

너무 커버린 동생의 모습이 그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오랜 기억 속 어린 동생처럼 자신에게 의지해주었으면 좋으련만, 이제 의지하려고 하지 않는 성숙한 동생이 야속하면서도 안타까웠다.

“홀로 짐을 지려고 하지 말거라. 나는 항상 너의 편이란다. 동생아.”

* * *

“시일은 내가 문 대인과 조율할 테니, 그런 줄 알게.”

“예, 알겠습니다. 처백부님.”

제갈세가를 대표해서 이가장에 방문했던 제갈인겸은 용무를 마쳤는지 다시 떠나기 위해서 이가장을 나왔다.

그는 제갈세가로 돌아가기 위해서 이가장을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의 새로운 목적지는 바로 북경.

정확히는 내각대학사의 문가장이었다.

이현성의 또 다른 장인이 될 문종학 내각대학사와 세 사람의 혼사에 대해서 논의하기 위함이었다.

수고스러울 수 있건만, 제갈인겸이 직접 움직여주었다.

이현성의 입장에선 감사할 따름이었다.

다만 아직 여동생 이현영을 찾지 못한 상황이라서 한편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현지야 질서를 잘 보필하여라.”

“…예. 백부님.”

제갈인겸의 말에 제갈현지는 얼굴을 붉혔다.

그런 조카를 보며 제갈인겸은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렇게 그가 떠나자 이현성이 나직하게 말했다.

“이제 들어갑시다.”

“예… 장주님.”

그렇게 귀한 손님이 떠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새로운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불청객을.

* * *

“저깁니다. 공자님.”

중년 사내는 한 장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건장한 체구와 얼굴에 남겨진 흉터 그리고 손에 쥐어진 칼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그와 동행한 사내들 역시 하나 같이 범상치 않았다.

“앞장서게.”

“예. 공자님.”

장한의 말에 중년 사내들은 지체 없이 장원을 향해 걸어갔다. 정체불명의 사내들이 다가오자 장원의 경비무사들은 일단 앞을 막았다. 적습을 받은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만큼 외부인의 접근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은 이가장의 장원입니다. 무슨 용무이십니까?”

“장주를 만나야겠으니 나와서 영접하라고 전하라!”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호통을 치는 중년 사내를 보며 장원의 경비무사들은 움찔했다.

허나 평소 교육을 잘 받았는지 경비무사들은 물러나지 않고 물었다.

“용무를 말씀해주신다면 장주님께 전해드리겠습니다. 정확한 용무를 알려주십시…….”

“이놈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경비무사의 태도는 무척 정중했으나 중년 사내들의 입장에선 전혀 그렇지 않았는지 얼굴이 굳어지거나 붉어졌다.

결국 분노를 터트리려고 했다. 덕분에 경비무사들은 각자 무기를 꽉 쥐곤 돌발 상황에 대처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되었네. …장주께 천운현이 뵙자 한다고 전하게. 그런데 이곳에 계속 서 있어야 하는가?”

“아, 아닙니다… 객당으로 모시겠습니다.”

경비무사들도 눈치가 있기에 장한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깨닫고 쩔쩔맸다. 장한의 정체는 바로 천운현.

그는 천진룡 대장군의 차남이었다.

문교교와 혼사를 치를 뻔했던 이였다.

감히 자신을 거절했다는 것에 불쾌감을 느낀 그는 근무지를 박차고 나와 이곳으로 향했다.

호위장수들만 이끌고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이가장의 안으로 들어온 그들은 객당에서 장주인 이현성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청년이 객당 안으로 들어왔다.

천운현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가 바로 이현성이라는 사실을.

“이가장를 맡고 있는 이현성이라고 합니다. 천 공자님이라 들었습니다.”

“맞소. 내가 천운현이오. 장주.”

이현성은 초면이기도 했고 상대가 상대인 만큼 말을 높였다.

그에 반해 천진룡 대장군의 아들로서 떠받들기만 당했던 천운현은 말을 완전히 내리지 않을 뿐 동등한 입장으로 대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 눈빛은 무척이나 불쾌감을 일으켰다.

허나 이 정도로 울컥할 이현성이 아니었다.

“절 찾아오신 용무가 어떻게 되십니까? 작은 장원이지만 제 손을 거쳐야 하는 것이 많아서 말입니다. 천 공자님.”

“감히!”

이현성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중년의 호위장수들이 발끈했다. 그들은 천씨 대장군가라고 불리는 천씨세가 출신이자 하나 같이 전장을 누비었던 장수였다.

실전에서 터득한 살기는 무척이나 섬뜩했다.

허나 그들의 살기에도 이현성은 전혀 안중에도 없는지 천운현만 바라봤다. 호위장수들이 하나 같이 범상치 않은 실력자들이었으나 이미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이현성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었다.

“용무가 없으시면 그만 나가주셨으면 합니다. 천 공자님.”

“건방진 놈! 버릇을… 크큭!”

도파를 쥔 호위장수는 당장이라도 칼을 뽑아서 휘두를 것 같았다. 무례한 행동이지만 천운현은 저지하지 않고 지켜봤다.

그 역시 이현성의 태도에 불쾌감이 들던 차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호위장수는 칼을 휘두르지 못했다. 그럴 뿐만 아니라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으며 주저앉았다.

이에 놀란 다른 호위장수들 역시 칼을 뽑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들 역시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과는 격이 다른 살기였다.

“공자님의 호위들이 하나 같이 건강이 좋지 못한 듯싶군요. 좋은 의원을 소개시켜드릴까요?”

“아니 되었소. 자네들은 그만 물러나게.”

“끄응… 예… 공자님.”

언제 그랬냐는 듯 그들을 압박하던 살기가 사라졌다.

호위장수들은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했다.

하지만 눈앞의 청년이 자신들과 격이 다른 고수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한들 자신들은 천씨세가의 미래를 호위하는 장수들이었다. 상대가 강하다고 물러날 순 없었다.

하지만 천씨세가의 미래인 천운현의 명을 거부할 수 없기에 일단은 뒤로 물러났다.

“이제 용무를 말씀해주십시오.”

“장주가 보고 싶었을 뿐이오. 문 소저의 혼약자라는 장주가 어떤 사람인지…….”

“그렇습니까? 어떻습니까? 공자님께서 보신 저는…….”

“건방지군. 제법 강하듯 싶으나 일개 무부(武夫) 따위가 너무 건방져.”

처음으로 적의를 드러내는 천운현을 보며 오히려 호위장수들이 긴장했다. 이현성이 자신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천운현에게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 달리 이현성은 천운현에게 살기를 뿜어내지 않았다.

“제가 건방졌다면 죄송합니다. 그런데… 대장군께선 자식 교육에는 관심이 없으신가 봅니다. 공자님께서는 초면인 사람에게 ‘건방지다’ ‘일개 무부 따위’란 말을 면전에서 하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네놈이 감히! 아버님을 모욕해!!”

이현성의 말에 천운현은 불같이 화를 냈다.

그리고 뒤에 있던 호위장수들은 분노를 넘어서 사색이 되었다. 아무리 건방지다고 해도 감히 천진룡 대장군을 모욕하는 미친놈이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제야 이현성 역시 호통을 쳤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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