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살수-175화 (175/314)

175화.

그의 무위나 영향력 그리고 배분을 상회하는 인물은 이 자리에도 몇 없을 정도였다.

경망이란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감히 따질 순 없었다. 그렇게 조용해지자 제갈윤호를 헛기침을 했다.

“허험… 말이 거칠었던 점, 먼저 사과드리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총군사님.”

“마, 맞습니다.”

제갈윤호의 사과에 다들 머쓱한 채 손사래를 쳤다.

대충 정리가 되었다고 판단한 제갈윤호가 나직하게 말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라면 본맹의 창설 이유가 무림의 정기를 수호하기 위함임을 잘 아실 겁니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암류의 존재 역시 눈치채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무림맹의 창설 목적은 무림맹의 무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었다.

허나 그 속에 담긴 진의까진 잘 모르고 있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그리고 눈치 빠른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암류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모른다는 것은 그만한 정보력과 영향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에 당혹감이 깃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암류의 정확한 정체를 알지 못하지만, 무림은 물론 상계 그리고 황실에까지 마수를 뻗치려는 거대한 세력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화, 황실까지…….”

“흐…음…….”

황실까지 마수를 뻗친다는 말은 웬만한 세력이 아니란 뜻이었다.

무림맹의 존재를 가장 신경 쓰는 곳은 마교나 세외가 아닌 바로 황실이다. 그들은 그제야 무림맹이 창설되었음에도 황실에서 이렇다 할 반대가 없었던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그들의 존재를 밝히지 않은 것은 확실한 물증이나 그들의 꼬리조차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은 물증이나 그들의 꼬리를 잡았다는 말씀이십니까? 혹시 그게 청룡당의 일과 연관이 있습니까? 총군사님.”

차분하게 묻는 상관세가주의 물음에 제갈윤호를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 호법께서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들이 암류의 한 줄기입니다.”

“그, 그런……! 어찌 그걸 이제야 말씀하십니까!”

“저희에게 말씀하지 않으신 부분이 더 있습니까?”

“그들이 암류인 것이 사실입니까? 어떻게 아시게 된 겁니까?”

제갈윤호의 대답에 다시 좌중은 시끄러워졌다.

하지만 조금 전과 달리 곧 조용해졌다.

그제야 제갈윤호는 그들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저희 신산각은 우연히 허창상단으로부터 수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조사과정에서 비밀장부를 손에 넣었습니다. 그 비밀장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결과 그들이 암류의 한 줄기인 혁련세가의 돈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왜 저희에게 알리지 않고 독단으로 청룡당을 움직이신 겁니까? 그러한 이유라면 저희가 반대할 이유가 없을 텐데 말입니다.”

제갈윤호는 이현성과 관련된 부분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가 표면적으로 나서길 꺼려함을 알기 때문이다.

상관세가주의 물음에 좌중은 고개를 끄덕여서 불만을 표시했다.

이에 제갈윤호는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허창상단의 비밀장부에 연루된 본맹의 맹우(盟友)들이 제법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흠흠… 그 말씀은 저흴 믿지 못하신단 말씀이십니까?”

분위기가 술렁거리자 제갈윤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본맹의 형제님들을 믿지 못한 것도, 적과 내통하고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이 어떤 방식이든 본맹에 기생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청룡당이 습격하기 전에 그 움직임을 전해듣고 도주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신중을 기했음에도 말입니다. 기분이 상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

제갈윤호의 사과에 그 누구도 입을 열 수 없었다.

불쾌하지만 실제로 정보가 새고 있었다고 하니 불쾌감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분위기가 점점 악화되자, 무당파의 원로가 화제를 돌렸다.

“무량수불… 청룡당이 출동했음에도 그 많은 피해를 입다니… 암류의 한 줄기에 불과한 자들이 그 정도로 강하다면… 본류는 얼마나 대단하단 말입니까?”

“그, 그러고 보니…….”

청룡당의 힘은 거대문파 몇 개를 합친 것보다 강했다.

초절정고수 전력을 제외하면 구파일방 중 말석인 공동파에 근접할 정도로 강력한 청룡당이었다.

그들이 총출동했음에도 그 정도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모두를 놀라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어진 제갈윤호의 말에 좌중은 경악하고 말았다.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만… 천검 한승 대협을 본맹의 호법으로 추대할 예정이었습니다.”

“천검 한승 대협이라면 혹시… 천중산의? 그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그들 역시 천중산에서 벌어진 일을 알기에 천검 한승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무림맹의 호법으로 추대해도 문제가 될 것은 없어 보였다. 다만 문제는 그러한 사실을 왜 지금 이 시점에 말하느냐였다.

“본맹의 호법으로 추대하기에 앞서 청룡당의 지원을 부탁했습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초절정고수가 여럿 존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 설마……!”

“초, 초절정고수가 두 분이나 계셨음에도 그런 피해를 입었단 뜻입니까!”

좌중이 경악하는 것도 당연했다.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이 초절정고수 혹은 그에 근접한 고수들이었다.

하지만 청룡당주는 소림삼신승 중 천수신승 공운대사였다. 그리고 천검 한승은 안휘마검과 대별노괴를 벤 것으로 유명한 고수였다.

그런 두 사람이 있음에도 청룡당이 그런 큰 피해를 입었단 말이었다. 암류의 한 줄기에 불과한 세력을 상대로.

이는 무척이나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과 같은 세력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열이 넘는다면 무림맹은 끝이었다.

허나 동시에 설마 그들과 같은 세력이 얼마나 되겠냐는 낙관적인 생각을 가진 자들도 있었다.

그때 감찰단을 맡고 있는 천왕신권(天王神拳) 황보관영이 나직하게 말했다.

“확실한 것은 아니나… 수년 전 태산혈사를 일으킨 자들의 정체가 혼세교란 사교집단임이 밝혀졌습니다. 저희는 그 혼세교 역시 암류의 한 줄기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는 없습니다.”

“헉! 그, 그게 정말입니까!”

“허… 도대체…….”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감찰단주가 누구인가. 태산혈사의 배후를 조사하느라 권왕이 아직 가주위를 물려주지 않았을 뿐 사실상 황보세가의 가주였다.

그런 그의 말에는 상당한 힘이 실릴 수밖에 없었다.

청룡당에 막대한 피해를 준 혁련세가에 이어서, 산동무림를 피로 물들게 만든 혼세교 역시 암류의 줄기라면 조금 더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 침묵하고 있던 무림맹주가 입을 열었다.

“본 맹주와 총군사는 이들과 같은 세력이 각 성에도 있지 않을까 우려를 하고 있소.”

“……!!”

“마, 말도 안 됩니다!”

“어,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맹주의 입에서 나온 말은 좌중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세력이 각 성마다 존재하다면 십여 개나 존재한단 뜻이었다.

그리되면 무림맹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모두 정숙해 주십시오! 맹주님의 말씀은 최악의 경우를 말씀하신 겁니다. 그렇기에 더 적극적으로 조사를 시행했으면 합니다. 최악의 경우는 사파사세와의 공조 역시…….”

“그건 아니 될 말씀이십니다! 사파사세라니요!”

“맞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어찌 그들과…….”

생각보다 반발은 거셌다.

허나 이미 이런 반응을 예상 못 할 제갈윤호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그들을 달랠 차례였다.

“본인이 여러분께 드린 말은 최악의 경우일 뿐, 무조건이 아닙니다. 그리고 암류가 정말 각 성에 존재할 정도라면? 황실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과연… 본맹만으로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언 호법께선 어찌 생각하십니까? 신창께서도 그리 생각하십니까?”

“…어렵겠지요.”

“…틀린 말씀이 아니십니다.”

진주언가와 신창양가는 제갈세가와 사이가 좋지 않은 대표적인 가문이기에 그들의 입부터 막아버렸다.

수년 전, 진주언가의 대공자인 언유광이 제갈현지를 겁탈하려고 했던 사건이 있었다.

당시에는 모른 척 넘겼으나 그냥 잊을 제갈현지 그리고 제갈세가가 아니었다.

그들은 신창양가를 이용해서 진주언가의 힘을 깎는 차도살인지계를 펼쳤다. 작은 마찰은 두 가문의 자존심 싸움이 되었다. 제갈세가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허나 두 가문은 분쟁의 시발점에 외부의 수작이 반영되었음을 눈치챘고, 결국 분쟁은 중단되었다.

제갈세가로서는 안타까운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조금 더 분쟁을 심화시킬 순 있었으나 무림맹 창설이란 대의 때문에 중단시킬 수밖에 없었다.

두 가문은 분쟁 시발점의 배후에 제갈세가를 지목했으나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이를 갈 뿐이었다. 그렇기에 제갈윤호의 말에는 무조건 반대하는 경향이 있었다.

“분명 본맹이 무림을 수호하는 입장이지만, 우리를 옳고 그 외는 악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

제갈윤호의 말을 인정하지 않으나 이 자리에서 반발하진 않았다. 그래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 다들 같은 생각을 했다. 자신들의 적은 정말 거대하며, 진정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후… 우선 한 고비는 넘긴 것인가…….’

천지신검

“헉… 헉… 헉…….”

한 청년이 대자로 누워서 거칠게 숨을 쉬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한 자루의 검이 널브러져 있는 것을 봐선 수련 중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허나 그건 수련이 아니었다. 발악이었다.

“젠장… 젠장!”

그는 이현호. 이현성의 친동생이었다.

이가장에 온 이후 한동안 거처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누구와도 만나지 않았다.

친형인 이현성조차도.

말 못 할 괴로움 때문에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의 마음을 존중했기에 이현성은 누구도 그의 거처에 가지 못하게 했다.

그런 그가 이제 밖으로 나왔다.

말이 밖이지, 전각에 딸려 있는 연공실에 왔을 뿐이다.

이현호는 검을 휘둘렀다.

천중산장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검을 쥐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마음이 심란하기 때문인지 그의 검술은 엉망진창이었다.

애초 검술이라고 칭할 수도 없었다.

마구잡이로 휘두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분풀이를 하듯 휘두른 만큼 엉망진창인 것은 당연했고, 수련이 되긴커녕 몸만 축날 뿐이었다.

“흑…흑…흑…….”

뭐가 그리도 서글픈지 이현호는 눈물을 흘리며 울음을 터트렸다.

이현호는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을 때까지 울었음에도 결코 속이 편해지지 않았다.

그만큼 마음에 담고 있는 감정이 깊었다.

이현호가 검을 지팡이 삼아서 일어났다.

너무도 격렬한 분풀이도 문제였지만, 며칠간 식음을 전폐하면서 몸이 상당히 상한 상태였다.

연공실을 나와 거처로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한 여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갈 소저셨지요? 제게 무슨 용무라도 있으십니까?”

“도련님께 인사드려요. 제갈세가의 현지예요.”

“도련…님이라니요? 혹시…….”

이현호는 마음이 혼란스러워서 주변이 보이지 않은 상태였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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