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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174화 (174/314)

174화.

그렇기에 그녀는 화산의 제자로 인정받았음에도, 화산의 제자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네가 독고구검을 익히고 있다고 들었다.”

“금하신다면 익히지 않겠습니다.”

지레 겁먹은 이현영을 보며 화월천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자신을 무척이나 어려워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현영만이 아니었다.

화산파의 제자들 역시 큰 어른인 그를 무척 어려워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장문인으로서 화산을 지키기 위해 엄하게 다스렸기 때문이다.

하물며 이현영의 입장에서 그가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아니다. 그럴 필요가 없구나. 네게 닿은 인연을 어찌 내가 끊겠느냐. 허나 독고구검과 같은 절학을 홀로 익히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예. 소손…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있던 참입니다.”

“아니다. 네가 부족한 게 아니라 그만큼 대단한 검학이지.”

화월천의 말에 이현영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풍문으로 들은 화월천은 무척이나 엄하며, 상대에 대한 평가가 박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앞에 있는 그는 그렇지 않았다.

“독고구검의 검의(劍意)는 선발제인(先發制人)이다.”

“선발…제인입니까. 사조님.”

화월천의 말에 이현영은 귀가 쫑긋해졌다.

자하검제 화월천이 누군가.

무림맹주인 백의무제(白衣武帝) 백무강과 함께 오제(五帝)의 일인이었다.

검의 절대자였다.

그의 경지쯤 오른다면 익히지 않아도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물론 독고구검과 같은 절대검학을 한마디로 정의할 순 없었다.

허나 화월천이 느낀 독고구검의 검의는 그러했다.

“선발제인… 적이 움직이기 전에 적의 약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그만한 식견과 통찰력이 필요하지.”

“식견과 통찰력…….”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경험 많은 노고수들도 쉽게 입에 올릴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식견과 통찰력은 그만큼 많은 경험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어린 이현영에게 선발제인은 너무도 먼 무리(武理)였다.

“매화서고에 출입할 수 있게 해줄 테니, 식견을 쌓거라.”

“가, 감사합니다. 사조님!”

매화서고(梅花書庫)는 화산의 무학은 물론 무림에서 얻은 많은 비급이 보관된 화산파 최고의 서고였다.

물론 자하검보(紫霞劍譜) 등 몇몇 비전은 따로 보관 중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매화서고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매화서고는 화산 일대제자 이상 혹은 장로의 허락을 받은 이대제자만 출입이 가능했다.

이현영은 화옥령의 제자로서 화산파 이대제자와 항렬이 같으며, 화월천의 허락을 받았으니 자격은 충분했다.

화월천이 뒤로 돌며 나직하게 말했다.

“고맙구나. 네가 아니었다면 그 아이가 더 엇나갔을 것이다.”

“아니에요. 사부님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제가 엇나갔을 거예요. 사부님을 만날 것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무뚝뚝해도 화월천 역시 아비였다.

복수에 눈이 멀었던 화옥령의 분노가 그나마 누그러진 것이 제자인 이현영 때문임을 알았다.

그걸 알기에 화월천 역시 이현영에게 애정을 가질 수 있었다.

돌아가는 화월천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좋은 아이구나. 허허…….’

* * *

“사, 살아 있다고! 진정 그 아이가 살아 있단 말이더냐!”

3년 만에 다시 만난 동생 이현호를 본 이현성은 무척이나 기뻐했다.

이현호가 천중산장으로 돌아간 이후 연락이 끊겼다.

이가장의 일로 정신이 없던 이현성은 천중산장에 다녀올 수 없었다. 다행히 인재들이 늘어나면서 여력이 생기자, 이현성은 천중산장에 방문했다.

허나 안타깝게도 동생 이현호를 만날 수는 없었다.

그가 때마침 폐관수련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현호는 그의 사부인 한승과 함께 수시로 폐관수련을 하는데, 짧게는 열흘 길게는 수개월씩 수련동에서 지낸다고 했다.

하필이면 이현성이 천중산장에 도착한 전날에 폐관수련을 시작했기에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로 인해 이현호는 만날 수 없지만, 대신 한승의 여식이자 이현호가 누이로 모시는 한은설에게 융성한 대접을 받고 이가장으로 돌아왔었다.

덕분에 이현호를 만난 것은 근 3년 만인 셈이었다.

“…최소한 16년 전에는 죽지 않았다고 합니다. 형님…….”

“하… 하… 하하하!!”

이현성은 허탈한 동시에 무척이나 기뻤다.

잃었다고 생각했던 누이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은 그 어떤 것보다 그를 기쁘게 만들었다.

허나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렇다면 왜 현영이는 천중산장에 없던 것이더냐?”

“…….”

이현성의 물음에 이현호는 차마 입을 뗄 수 없었다.

그런 그의 반응에 이현성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게 설명할 수 없는 일이더냐?”

“…아닙니다. 형님.”

입술을 깨문 이현호는 결국 입을 열었다. 한승에게 들은 16년 전 그날의 전모를 밝히기 시작했다.

찌릿! 찌릿!

딸그닥! 딸그닥!

이현호는 피부가 찌릿찌릿 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현성의 분노, 그의 살기가 얼마나 강렬한지 주변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혀, 형님… 진정하십시오.”

“흡… 하… 후… 미안하구나… 내가 이성을 잃을 뻔했어.”

상청도량심결 덕분에 심마(心魔)로부터 자유로웠던 이현성이지만, 가족에 관한 일에선 그 역시 감정 조절이 쉽지 않았다. 어색한 미소를 짓는 이현호를 보며 이현성은 나직하게 말했다.

“하… 그를… 원망하느냐?”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얼굴을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최소한 지금은…….”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현호를 보며 이현성은 한숨이 나왔다.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의 정체를 눈치챘기 때문이다.

“난 그가 원망스럽구나. 허나 원망할 순 없다. …그에겐 그만한 사정이 있을 터인데, 나의 잣대로 그를 판단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반박하려는 이현호를 막은 이현성이 나직하게 말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너를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가 꼭 현영이를 그리고 너를 구해줘야 할 의무는 없었다. 가족인 나로선 분하지만 말이야.”

“형님…….”

얼굴이 그늘진 이현성의 모습에 이현호는 가슴이 저려왔다. 그 역시 알고 있었다.

자신을 지금까지 보호해주고 힘을 가질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그분을 원망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하지만 머리와 달리 심장은 그걸 외면하게 만들었다.

“넌 그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의지했던 그가… 네 마음을 배신했다고 느끼는 게지.”

“…….”

이현성은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말해서 이현호의 상처를 더 깊게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현호의 표정은 무척이나 복잡해 보였다.

“쉬거라. 네 마음이 좀 편해지면 그때 다시 이야기 하지구나.”

“…예 형님…….”

* * *

“오, 오랜만에 뵙네요. 장주님.”

이현호가 이가장에 온 후 며칠이 지나서 불청객이 찾아왔다.

며칠 전까지라면 귀한 손님이었겠지만, 지금은 무척이나 불편한 불청객에 불과한 자들이었다.

“…그렇구려, 한 소저. 종리 대협.”

불청객들의 정체는 바로 천중산장의 한은설과 종리우였다.

무림맹으로 떠난 부친을 대신해서 한은설은 가산을 정리해야 했다. 산장 자체야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기에 처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머진 정리해서 그간 정이 들었던 고용인들에게 나눠주어서 내보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을 대하는 이현성의 분위기에서 이미 ‘그’ 이야기를 들었음을 눈치챘다.

덕분에 그들 사이에는 어색함이 맴돌았다.

그러나 먼저 입을 뗀 사람은 이현성이었다.

“두 분이 본장에 방문하신 이유가 현호를 만나기 위함이오?”

“현이 아니, 현호를 만나기 위함이기도 하고…….”

“…당분간 장원에서 신세를 질 수 있을까 싶어서 왔습니다. 장주님.”

대답하던 한은설이 뒷말을 흘리자 곁에 있던 종리우가 말을 거들었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은 이현성의 눈치를 살폈다.

이현성과 이현호는 형제이다.

즉, 16년 전의 비사는 그에게도 깊은 관련이 있단 것을 의미했다.

이현호의 곁에 있기 위해선 우선 이현성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긴장이 되었다.

“좋소. 별채를 내어 드리리다. 원할 때까지 계셔도 좋소.”

“가, 감사합니다. 장주님!”

의외로 쉽게 수락한 이현성의 말에 한은설은 무척이나 기뻐했다. 허나 이현성은 쉽게 수락한 것이 아니었다.

솔직한 마음 같아선 그들에게 축객령을 내리고 싶었으나 차마 그럴 순 없었다.

한승의 지난 일로, 두 사람까지 내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현호의 중요한 시기에 곁에 있어주었던 이들이었다.

단칼에 잘라낼 수 있는 관계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현성은 고민 끝에 별채를 내어준 것이다.

“단, 현호에게 접근하지 마시오.”

“자, 장주님… 그건…….”

그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이현호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다가가지 말라는 이현성의 조건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당황하는 한은설을 봤음에도 그는 단호했다.

“그 녀석에게 베풀어준 은혜를 잊지는 않소. 허나 본인에게는 그대들보다 녀석이 더 중요하오. 그러니 이해해 주었으면 하오. …그 녀석이 그대들을 만나러 가기 전까진 본인의 뜻에 따라주셨으면 좋겠소. 그러실 수 있으시겠소?”

“…예 알겠습니다.”

“장주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그는 장주이기 이전에 이현호의 친형이었다.

때문에 그의 뜻을 거스를 순 없었다.

그나마 이현호가 먼저 만나러 올 때까지란 조건은 영원히 만나지 말라는 뜻은 아니었기에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좋소. 나가면 그대들이 지낼 별채를 안내해줄 것이오.”

“…그럼 신세를 지겠습니다.”

“…감사해요.”

밖으로 나간 두 사람은 예비 잠룡대원인 진한의 안내를 받아서 별채로 향했다.

집무실에 홀로 남은 이현성은 앞서 보던 서류를 덮었다. 가슴이 갑갑해져서 더 이상 서류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후… 나도 아직 멀었구나. 이대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것을 보니…….”

아무리 화경에 한발 걸친 이현성도 결국은 인간이었다.

혈육의 정 앞에선 그간의 수양도 무의미했다.

“현영아… 미안하구나. 네가 살아 있는지 알았다면 진즉에 찾았을 것을… 정말… 미안하구나. 이 못난 오라비를 용서치 말거라.”

* * *

“청룡당의 피해가 크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어찌 청룡당의 출병을 저희에게 언질도 없이 독단으로 하실 수 있소이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것이오?”

청룡당 출병 이후 이렇다고 할 공표를 하기도 이전에 수많은 말이 오고 갔다.

결국 무림맹주는 맹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장로와 호법들을 소집했다.

무림맹은 정파무림의 연합체답게 장로와 호법만 해도 수십여 명이나 되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만이 아니라 무림세가 및 거대문파의 대표들까지 그 직위를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만! 조용히 해주십시오! 맹주님께서 계신 자리에서 어찌 이리도 경망스럽소이까!”

움찔.

총군사인 제갈윤호의 호통에 좌중은 입을 다물었다.

그간 강압적안 태도를 보이지 않았으나 그는 제갈세가의 태상가주이자, 강호칠기의 일좌였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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