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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172화 (172/314)

172화.

그런 제갈윤호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았으나 모든 석등을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외원의 석등들을 부수는 사이 내원의 석등들에 불을 붙였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몽혼혈라진이 발동되었다.

물론 일부의 석등이 망가진지라 불완전한 상태였다.

몽혼혈라진이 몽혼혈등에서 피어난 환각제의 연기와 접목되면서 진법의 내외가 분리되었다.

그곳에 갇히면 정신을 빼앗기며 점점 죽음에 빠져들지만, 그건 생로(生路)를 모를 때의 이야기다.

“이런! 청룡오대부터 십대는 적을 제압하고, 나머진 진법이 파해(破解) 되는 대로 진입할 준비를 하시오! 제갈 시주!”

“명!”

몽혼혈라진이 발동된 곳은 혁련세가 장원의 내원 부분이었다. 즉, 외원에 있던 혁련세가의 무인 및 가솔들은 그대로 남아 있단 뜻이다.

이에 공운대사는 청룡당의 여섯 대를 움직여서 제압하게 한 후 나머지 네 개의 대로 내원에 돌입할 준비를 시켰다.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서 대동한 제갈세가의 장로에게 몽혼혈라진의 파해(破解)를 부탁했다.

문제는 제갈세가의 장로가 아니라 신산 제갈윤호가 온다고 해도 쉽게 파해할 수 없는 고등 기문진법이 바로 몽혼혈라진이라는 점이었다.

“제, 젠장! 적을 말살하라!”

“죽어라!!”

순순히 제압될 혁련세가의 무인들이 아니었다.

비록 내원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본가에서 인정받은 자들이었다. 따라서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챙! 채챙! 콰쾅!!

환영십이검(幻影十二劍), 환살검법(幻殺劍法), 귀명환검(鬼鳴幻劍) 등 혁련세가를 대표하는 검법들이 쏟아져 나왔다. 수백 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구파일방은 무림의 대부분의 무학을 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기인이 모래알만큼 많다는 무림이다.

구파일방이라고 모든 무학을 알 순 없었다.

그렇다고 한들, 저들의 검학을 하나도 모른다는 것은 놀라운 따름이었다. 덕분에 청룡당도 초반에는 허둥지둥거릴 수밖에 없었다.

“모두 침착하게 대응하라!”

“생소할 뿐, 우리가 감당치 못할 정도는 아니다!”

가장 먼저 평정심을 되찾은 사람은 각대의 대주들이었다. 대주들의 외침에 그제야 평정심을 되찾은 청룡당 고수들이 차근차근 혁련세가의 고수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청룡당 고수들이 혁련세가 외원 고수들을 상대하며, 내원에 출입할 방법을 찾고 있을 때 혁련세가의 내원에선 빠르게 빠져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빠드득… 내 이놈들을!”

가신들은 분노를 터트렸다.

대를 거쳐서 힘들게 지금의 혁련세가를 만들어 왔다.

그런데 그 공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판이었다.

그러니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장이라도 몽혼혈라진 밖으로 뛰쳐나가서 저들을 찢어죽이고 싶었다. 허나 그럴 수가 없었다.

무림맹 청룡당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지만, 문젠 그 이후 무림맹의 지원군이라도 도착한다면 낭패였다.

그렇게 씩씩거리는 가신들과 달리 세가 원로들의 반응은 좀 달랐다.

“그래도 가주께서 미리 손을 써서 이만하게 그친 것이 어디오?”

“하긴 근래 가주답지 않게 실수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가주답소.”

변화나 성장보단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세가의 원로들은 혁련용후의 대처에 멀어졌던 마음을 돌렸다.

혁련세가로선 청천벽력과 같은 상황이지만, 혁련용후로서는 전화위복인 셈이었다.

허나 안심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미리 재화 일부를 처분해서 전표로 바꿔뒀다고 하지만 그 외에도 챙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가의 비전이 담긴 비급들은 물론 중요한 보물들까지 버리고 갈 순 없었다.

혁련세가를 다시 키우려면 꼭 필요한 물건들이다.

그러다 보니 미리 작업 중이었던 외원무사들은 물론 내원의 고수들까지 동원해서 비밀통로로 옮기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쾅!

“으아악!!”

“웬 놈이냐!!”

갑작스러운 소란에 혁련용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서둘러도 시원찮을 판에 소란이 났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잠혼, 무슨 일인지 알아보게.”

“존명!”

혁련용후의 명령을 받은 잠혼이 소란의 근원지로 향했다. 그곳에는 십여 명의 고수들이 내원고수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잠혼은 그들이 무림맹 고수들임을 간파했다.

몽혼혈라진으로 그들의 출입을 막았다고 생각했으나 아쉽게도 전부는 아니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들은 고작 십여 명에 불과한데, 서너 배나 많은 내원고수들이 막아내질 못했다. 무림맹 고수들이 워낙 강해 압도적인 수의 차이에도 오히려 밀릴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그들 중 한 중년고수 때문이다.

“천중압산(天中壓山)!”

“으아악!!”

호쾌하면서도 중후한 천중검법을 막기에 혁련세가 내원고수들은 역부족이었다. 정확히는 중년 고수가 차원이 다른 신위를 보여주었다는 말이 옳았다. 중년 고수는 바로 천검 한승이었다.

내원고수로는 초절정고수인 한승을 감당할 수 없었다.

비록 천검만 못하지만, 천중검법 역시 절학이라고 불리기에 부족하지 않은 뛰어난 검학이었다.

내원고수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내가 길을 뚫을 테니, 여러분은 기회를 놓치지 마시오.

―예! 호법님.

그와 함께 대동한 자들은 주작당의 고수들이었다.

정확히는 신산각 및 제갈윤호의 호위를 맡고 있는 자들이었다.

주작당은 나머지 삼신당과 달리 특수한 임무를 맡았다.

맹주전, 신산각, 장로원 등 무림맹 중처의 경비 및 요인호위가 바로 주작당의 임무였다.

한승이 아직 정식으로 호법(護法)의 지위를 받은 것이 아니었기에 그의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서 신산각 담당 주작당 고수들 일부를 그에게 붙여준 것이다.

‘천검(天劍) 한승!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자가 아니구나!’

천중산에 파견되었던 혁련세가 고수들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된 한승의 그림이 본가에 전해졌다.

덕분에 잠혼은 한승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잠혼도 뛰어난 고수였지만, 한승을 감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가주님! 무림맹 고수 십여 명이 잠입했습니다.”

“고작 십여 명 때문에 아직도 소란스러운가.”

“문제는 그들을 이끌고 있는 자가 천검입니다!”

“천검? 그자가 왜!”

잠혼의 보고에 혁련용후는 당황했다.

그가 알기로 한승은 무림맹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허나 지금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이곳에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초절정고수는 오직 초절정고수만 상대할 수 있는 법.

혁련용후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직접 움직이려고 했다.

“어쩔 수 없지. 그자는 내가 상대할 테니, 잠혼 자넨 탈출 준비를…….”

“아닐세. 그놈들은 우리가 상대하겠네. 가주께선 일을 마무리 짓게나.”

“원로님들께서 말이십니까? …알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혁련세가의 원로인 혁련중한의 말에 다른 원로 셋이 고개를 끄덕였다.

혁련중한은 혁련세가의 초절정고수 중에선 제일 약하지만, 명색이 초절정고수였다.

그리고 그에 근접한 원로 셋이 함께라면 말이 다르다.

혁련용후라도 그들 넷을 감당할 수 없었다.

한승의 검에 안휘마검과 대별노괴가 명을 다했다고 하지만, 당시에는 두 사람 모두 이미 지친 상태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혁련세가의 원로 넷이라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원로님 가능하면 제압해주십시오. 어려우시면 시체라도 수거해주십시오.

―노력해보지.

심령을 제압하는 방법도 있고, 고독에 중독시켜서 부리는 방법도 있었다.

설사 죽는다고 해도 명색이 초절정고수의 시체였다.

따라서 상위 강시의 제련도 이용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이현성과 암월이 복귀한 이가장에서 혁련중호를 구출하는 것은 어려운 이상 한승이라도 써먹을 수 있다면 써먹어야 할 판이었다.

‘본가는 이렇게 무너지지 않는다. 결코!’

* * *

쾅! 쾅! 콰쾅!!

“과연 무림맹일세. 감히 나 폭풍참격도(暴風斬擊刀) 형추의 칼을 막아내다니 말이야.”

네 노인의 등장에 상황이 역전되었다.

주작당의 고수들 역시 뛰어났지만, 혁련세가의 원로들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초절정에 오르지 못했을 뿐, 그들 개개인이 순찰호법인 풍마참도 육태언보다 고수였다.

신산각은 맹주전에 버금갈 정도로 중요한 중처이기에 그곳에 파견된 주작당 고수들은 정예라고 할 수 있었다.

한승과 대동한 십여 고수들 역시 개개인이 초일류 혹은 절정지경에 오른 고수들이었다.

그럼에도 혁련세가의 원로인 폭풍참격도 형추를 감당하는 것은 버거웠다. 이미 위태위태할 지경이었다.

한승이 혁련세가의 원로 셋을 맡아주지 않았다면, 주작당 고수들은 이미 모두 목숨을 잃었을지 모른다.

“허나 얼마나 버틸 수 있나 보자구나!”

“큭!”

“으윽!!”

혁련세가는 검가(劍家)다.

검 외의 무기를 쥐고도 원로의 지위를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대단한 고수란 뜻이었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형추의 폭풍참격도는 너무도 강력한 도법이었다. 그 강력한 충격에 주작당 고수 네 명이 나가떨어졌다.

“빈자리를 채워라!”

“큭! 명!”

형추에 비해 약함에도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주작당 고수들이 검진 운용에 능숙해서였다.

부족한 힘을 검진을 통해서 메운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으나, 부상자가 늘면서 검진을 유지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버텼다.

자신들이 쓰러지면 한승이 노괴물 넷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승은 주작당 고수들보다 더욱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혈화만개(血花滿開)!”

“환뢰(幻雷)!”

몰아치는 혁련세가 원로들의 검격에 한승은 막아내는데 급급해서 반격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강기는 강기만이 대적할 수 있다고 하지만 강기를 운용할 시간조차 없었다.

한명 한명이 경험 많은 노련한 노고수였으니, 그러한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론 안 돼. 내가 더 시간을 끌면 무림맹 분들은 더 위험해져.’

한승은 이 와중에도 주작당 고수들을 걱정했다.

결국 한승은 모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천검출… 큭!”

“이런 이런! 안 되지.”

한승은 천검으로 한명이라도 줄여서 상황의 반전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이를 눈치챈 자가 있었다. 초절정고수인 혁련중한이었다.

혁련세가의 혈족임에도 환검보다 쾌검을 익힌 그의 검은 점창파도 놀랄 정도로 빨랐다.

허나 그만큼 가벼울 수밖에 없었다.

한승은 혁련중한의 검에 찔렸음에도 억지로 검초를 완성했다.

“…출세!”

“미친! 커억!!”

콰콰쾅!!

검강이 실린 천검출세는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 대신 검을 쥔 오른팔은 피로 범벅되었다.

천검을 무리하게 펼친 덕분에 혁련중한에게 찔린 상처가 더욱 벌어졌다. 그로 인해 출혈이 상당했다.

그렇게라도 초절정고수 한 명을 제거했으면 다행이지만, 안타깝게도 원하는 결과를 이루지 못했다.

“혁련 원로님! 괜찮습니까!”

“크윽… 괜찮소.”

위급한 순간 호신강기가 발현되어서 최악은 막을 수 있었다. 한승의 입장에선 최악의 상황인 셈이었다.

허나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난 아직 용서를 구하지 못했다. 아직 죽을 수 없어…….’

그가 무림맹 호법 자리를 받아들인 이유는 무림맹의 정보망을 통해서 이현영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용서를 구할 생각이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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