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살수-168화 (168/314)

168화.

* * *

“큭!”

“역시 대단하십니다. 구 형님. 그걸 피하시다니…….”

“자네…! 도대체… 왜!”

풍마참도 육태언은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 단숨에 구연청의 목을 벨 생각이었다.

고통도 느끼지 않게 수면 중인 그를 죽이려고 했다.

허나 그건 불가능했다. 참마도의 일종인 양손대도로 암습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구연청 역시 완벽하게 피하지 못하고 어깨를 베였다. 팔이 떨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당장 왼손을 쓰기 어려울 정도였다. 문제는 한손으로 상대하기에 육태언은 만만한 고수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배신이라 생각하지 마시오.”

“설마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이런……!”

쾅!

늙은 생강이 맵다고 했던가.

사천당가의 칠대빈객으로 있으며 별의별 꼴을 다 봤다.

덕분에 남다른 눈치가 생겼다.

구연청은 무림맹의 비무 대회 이후, 육태언이 자신에게 접근한 것과 이가장의 호법 제안을 받아들인 것까지 계획된 일이란 것을 눈치챘다. 그런 치밀한 계획으로 인한 이가장의 잠입하다니 구연천은 분노가 일었다.

나아가 육태언이 자신을 암살하려고 했다.

하필 장주가 자리를 비운 지금 상황에서.

그리고 깨달았다. 그는 혼자가 아니며, 표적이 된 사람이 자신만이 아니란 것을.

“구 형님께선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살아서는… 더더욱…….”

“이놈! 날 너무 띄엄띄엄 보는구나!”

구연청의 퇴로를 막아버린 육태언을 보며 그는 호통을 쳤다. 그런 그의 오른손은 붉게 불타고 있었다.

구연청의 성명절학인 적양신장이었다.

이에 육태언의 참마도 역시 밝은 빛을 내고 있었다.

그 순간, 구연청의 얼굴이 굳어졌다.

육태언의 참마도의 도기가 실처럼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도…사(刀絲)?”

도기를 압축해서 도기의 실을 만드는 기예가 바로 도사였다. 압축한 만큼 도기 이상의 위력을 발휘한다.

검사보다 도사는 훨씬 더 구사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칼은 검보다 훨씬 패도적인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육태언이 도사를 구사했다는 것은 그의 무위가 알려진 것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럼 이제 아셨소? 구 형님이 살아나갈 수 없다는 것을…….”

“하하하!!”

그때 구연청은 파안대소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괴행에 육태언은 의아했다.

한참 웃던 구연청의 웃음이 그쳤다.

“자넨 내가 왜 이가장의 호법이 된 줄 아는가?”

“…….”

“사천당가에 대한 실망과 유 국주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세.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닐세.”

“……!!”

이번에는 육태언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구연청의 손에 어린 기운이 변했기 때문이다.

“유 국주와의 비무 후에 깨달은 것이 있었다네. 이가장이라면 내가 포기한 꿈을 다시 꿀 수 있게 도와줄 거라는 것을 말일세.”

“강기라니… 초절정지경에 오른 것이오? 어떻게……?”

놀랍게도 구연청의 손에는 유형화된 장강이 발현되어 있었다. 허나 구연청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일세. 허나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걸세.”

“…….”

일반적으로 강기는 초절정지경에 오른 깨달음을 통해서 깨닫게 된다. 허나 그와 달리 초절정지경에 오르지 못한 상태에서도 강기를 발현하는 경우가 있다.

막대한 내공을 강제로 압축하거나 특별한 초식을 통한 강기 발현이었다. 이 경우는 초절정고수의 강기보다 위력이 다소 약하며, 내공소모 역시 더 크다.

그렇다고 해도 강기는 강기였다.

“아직은 불완전한 깨달음 때문에 반푼이에 불과하지만… 자넬 실망시키진 않을 걸세. 각오하게.”

그렇게 혁련세가의 계산에 차질을 주는 변수가 발생했다.

* * *

“막아! 목숨을 걸고 막아라!!”

챙! 채챙!!

이가장은 너무 쉽게 내원까지 적의 침입을 허용했다.

예상치 못한 변절자로 인해 아무런 대항 없이 외원이 뚫렸기 때문이다. 이가장의 내원을 책임지고 있던 묵룡대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다.

허나 묵룡대주 허정의 빠른 대처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 묵룡대원들은 근 3년간 혹독한 수련으로 묵룡수를 일정 수준까지 익힐 수 있었다.

“본장 제일의 자리를 흑룡대에게 내줄 생각이 아니라면!”

“무조건! 막아내겠습니다!!”

묵룡대가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은 흑룡대의 존재가 한몫했다.

이현성이 이가장을 세우기 전에 만든 무력대인 흑룡대.

이가장주가 된 후 처음으로 인정한 무력대인 묵룡대.

서로가 서로를 신경 쓰이는 것은 당연했다.

덕분에 신룡대, 패룡대 등 여러 무력집단이 만들어졌음에도 이가장 제일의 자리는 흑룡대와 묵룡대의 차지였다.

사실 입장이 조금 달랐다. 흑룡대는 이가장 최강의 창이라면 묵룡대는 최고의 방패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한들 최고의 자리는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두 집단이 서로 의식하고 경쟁하는 것은 당연했다.

“큭!”

“창호야!”

“우철이를 구해!”

외문무공이면서 외가기공인 묵룡수는 절학이라 할 수 있는 무공이었다.

그렇지만 근 3년 만에 대성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묵룡대 대부분이 혹독한 수련 덕분에 도검불침의 경지에는 올랐다.

하지만 검기를 감당할 수 있는 자는 대주인 허정을 포함해서 몇 명 되지 않았다. 습격자들은 혁련세가의 비밀고수들로,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자들이었다.

수십 년씩 무공을 익힌 그들이 약할 리가 없었다.

흑룡대를 들먹이며 묵룡대의 사기를 자극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허정은 마지막 수로 그들의 심장을 움직였다.

“모두 정신 차려! 우리가 죽는다고 해도 우리의 가족들은 가주님께서 책임져주실 것이다. 허나 본장이 오늘 무너지면…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번쩍!

그 순간, 묵룡대원들의 눈빛이 변했다. 잠룡대원들의 목표가 괜히 묵룡대와 흑룡대가 아니었다.

그들이 받고 있는 돈과 권한 때문만이 아니었다.

임무 중 부상을 입을 경우 최고 수준의 위로금이 지급되며, 순직할 경우 장원에서 가족들을 책임져준다.

어느 무림세가나 대문파에서도 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걸 이가장은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묵룡대를 비롯한 이가장 소속 무인들은 누구도 몸을 사리지 않는다.

그런 이가장이 무너진다면?

가족들을 지켜줄 그늘이 사라지게 된다.

허정의 말에 묵룡대원들은 오늘 죽음을 각오했다.

그게 가족을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큭… 목숨으로… 장원을 수호…….”

“커억! 혼자 죽지…않는다!”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며 동귀어진의 수법을 펼친 덕분에 혁련세가의 비밀고수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

허나 실력 차이를 완전히 없앨 순 없었다.

“신룡복마(神龍伏魔)!”

“커억!!”

“으악!!”

“유 국주님!”

그때였다.

예상치 못한 기습에 혁련세가의 고수들이 대응하지 못한 채 절명하고 말았다. 신룡표국을 맡고 있던 유백의 검은 혁련세가의 비밀고수들을 유린했다.

그 직후 수십의 표사들이 들이닥쳤다.

허나 그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패룡대는 본장을 수호하라!”

“곽 대주!”

허정은 습격을 당한 직후 신호탄을 쏘아 보냈다.

이를 본 신룡표국과 중앙상단의 패룡대 고수 일부가 이가장으로 지원을 온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고수들로 인해 혁련세가 비밀고수들은 당황스러웠다.

허나 그들만 이가장에 합류한 것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오!”

“능 표국주님! 오셨습니다!”

소림 속가제자인 능광과 그가 이끄는 금룡표국의 표사들이 이가장을 도와주기 위해서 달려왔다.

중앙상회의 의뢰 일부를 금룡표국에 지원해주며 관계를 돈독히 유지한 덕분이었다. 그들은 기꺼이 이런 위급한 상황에 도움을 주러 와주었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철기보의 제자들은 이가장의 형제들을 구하라!!”

“백귀는 뭐하느냐!! 철기보에게 선수를 빼앗길 셈이더냐!!”

“밤이야말로 우리 야도문의 영역이지!”

철기보, 야도문, 귀문 등 정주 삼대문을 대표하는 세력들 역시 한 손을 거들기 위해서 나타났다.

이가장이 정주 중앙로까지만 세력을 넓혀서 그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주었다.

이후 그들은 이가장의 눈치를 보며 꼬리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정주무림은 이가장의 손에 움직이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무림맹 정주지부를 맡고 있는 정주하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이를 부정할 능력이 없었다.

“워~ 아니 이게 무슨 일이오?”

“부천호님! 그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수백의 인마까지 나타났다.

그들은 인근 천호소의 군사들이었다.

이가장에서 문제가 생기자 그들이 출동한 것이다.

이가장은 무림만 아니라 군부까지 반응할 정도로 방대한 영향력을 가진 세력이 되었단 증거였다.

순식간에 일천에 가까운 인력이 모여 들었다.

“미, 미친! 이런 정보는 없었는데!”

“죽어라!!”

이미 묵룡대원 수십을 벤 혁련세가의 비밀고수들은 승기를 잡았다.

이대로라면 임무는 차질 없이 완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급변하고 말았다.

정보에는 없었던 고수들이 물밀 듯이 들이닥쳤다.

수십여 명밖에 되지 않는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다.

―조금만 버텨라! 곧 원로님과 순찰호법께서 합류하시면 저놈들 따윈!

콰쾅!!

혁련세가 비밀고수들의 수장은 수하들을 독려했다.

지금 상황이 불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반전의 기회는 분명 있었다.

초절정고수와 그에 근접한 고수만 합류한다면 얼마든지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

아무리 혁련세가가 혈천 대호법의 가문이라도 초절정고수가 넘쳐나는 것은 아니었다.

혁련용후는 자신을 매우 아끼는 원로에게 직접 고개를 숙이며 부탁해서 이 임무에 투입시켰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외부 공작 임무를 수행 중인 순찰호법 중 한명인 육태언까지 이가장에 심었다.

이가장을 무너트리는 것이 그 어떤 임무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초절정지경의 원로와 그에 근접한 순찰호법. 그들이라면 맡은 임무를 완수하고 합류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폭음과 함께 혁련세가의 원로 고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허나 그들이 기대했던 모습은 아니었다.

원로 고수가 문을 뚫고 나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네놈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나 규염을 너무 무시하는구나!”

“으… 으…….”

장강어옹 규염.

그는 강호칠기의 자리를 골패로 딴것이 아님을 알려주듯 엄청난 신위였다.

물론 그라고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이마와 상의는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것이 그의 호기로운 외침과 달리 고전을 면치 못했음을 알려주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그는 강호칠기의 명성을 지켰다.

“워, 원로님!”

“제, 젠장!”

믿었던 그의 패배는 혁련세가 비밀고수들에게 희망을 뺏어갔다.

초절정고수인 그가 합류해도 쉽지 않은데, 오히려 적들 속에 초절정고수가 합류했다.

이 상황을 어찌 반전할 수가 있겠는가.

그때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각주님! 무사하셨군요!”

“유 국주님, 곽 대주님 뭐하십니까! 어서 저들을 제압하세요!”

“조, 존명!”

풍운각주인 제갈현지가 귀매를 부축하며 나타나서 강력한 위엄을 발휘했다.

그녀의 지시에 누구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그녀의 직위가 대주보다 높으며, 이미 장주 부인으로 내정되었단 것을 다들 알기 때문이다.

“헉! 이런! 마, 막아!!”

“흐흐흐. 컥!”

이가장 고수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여인이 등장했다.

혁련세가 비밀고수들은 눈을 빛냈다.

살 길을 발견한 것이다. 그녀를 인질로 삼는다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허나 그들은 크나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녀를 인질로 삼으려고 그들의 동료들이 풍운각에 잠입했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지금 이곳에 나타났다.

즉, 그녀들에 의해 동료들이 제거되었단 뜻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제갈현지의 검은 달려드는 혁련세가의 비밀고수들을 무참히 베어버렸다.

천지호연검법(天地浩然劍法). 제갈세가의 비전검학이 그녀의 검을 통해서 발현되었다.

좌중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지봉 제갈현지. 그녀가 삼봉에 속한 것은 뛰어난 지략 때문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동시에 그런 장주 부인을 모시게 되었으니 후대까지 안심이란 생각이 들었다.

“큭!”

“으윽!”

“이런!”

그때였다. 복면을 쓴 괴한들이 하나같이 쓰러졌다.

임무 실패는 물론 포로가 될 상황이 되자 입안에 감춰둔 독단을 문 것이다.

챙!

“어림없다! 이놈아!”

“크윽!!”

혁련세가 비밀고수들의 수장은 자결하기 전에 쓰러진 원로를 죽이려고 했다. 그가 포로가 되어서 정보를 유출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허나 이미 눈치를 챈 규염에 의해서 실패하고 말았다.

“제압하세요!! 심문해야 하니, 살릴 수 있는 놈들은 살리세요!”

“예! 각주님!”

“손이 비는 분들은 피해상황 파악과 부상자들의 치료에 집중하세요!”

“예! 각주님!”

제갈현지의 명령에 이가장 소속 고수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도와주러 온 철기보 등의 무림세력들과 부천호는 머쓱하게 상황을 지켜봤다.

이에 제갈현지가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이가장의 제갈현지가 여러분들께 인사드립니다. 본장의 사건 때문에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장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하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날이 밝는 대로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귀장이 잘 대처하셨는데, 소장이 괜히 소란을 피운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럴 리가요. 부천호님의 배려, 장주님께 꼭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만… 저희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부천호는 과거 정주안가를 소탕할 때 지휘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가장주의 입김이 정주에만 닿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내각대학사의 여식도 이가장에서 지내고 있었다.

잘 보여서 나쁠 것이 없었다.

정천호의 자리를 목표로 삼은 그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부천호를 시작으로 철기보, 귀문, 야도문 역시 인사를 나눈 후 돌아갔다.

제갈현지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누가 벌인 짓인지 모르지만… 결코 좌시하지 않겠어.”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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