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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157화 (157/314)

157화.

그러다 보니 이현성도 파해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두렵거나 하진 않았다. 스스로를 믿기 때문이다.

‘쉽진 않겠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아.’

이현성은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곤 삼라만상을 운용했다. 기문진법이란 공부가 심오한 학문임은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자연의 이치를 담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삼라만상도 다르지 않다.

허나 악명 높은 몽혼혈라진인 만큼 쉽게 파악되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음? 변진(變陣)… 아닌 것 같고…….’

이현성은 진법의 미세한 변화를 느끼곤 긴장했다.

몽혼혈라진과 같은 고위진법에 변화를 줄 정도라면 엄청난 대가가 주변에 있단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변진은 아니었다.

‘누군가… 들어왔단 것이지.’

진법의 미세한 변화는 불청객의 등장으로 인한 것임을 깨달은 이현성은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진법보다 상대하기 수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 둘… 넷?”

어느 순간 이현성의 기감에 누군가가 걸려들었다.

적은 네 명이라는 작은 숫자였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한 실력을 가진 고수들이라는 것이다.

사방환위. 원가의 절정고수들이 들이닥쳤다.

“설마 했는데, 정말 침입자가 있었군.”

“빨리 처리하고 나가세.”

심상치 않은 기세를 드러내는 고수들이었다.

허나 이현성은 긴장하지 않았다.

이런 일로 일희일비할 정도로 그는 약하지 않았다.

무위와 정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황하지 않고 검을 쥔 이현성을 본 사방환위들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했다.

“좀 건방져 보이는데? 기분 나쁘게 말이야!”

사방환위 중 장검을 다루는 동환위(東幻衛)가 먼저 달려들었다. 장검의 이점을 잘 활용한 호쾌하면서도 날카로운 검격이었다.

챙!

“제법… 컥!”

“하나…….”

“미, 미친!”

동환위의 검격은 무척이나 호쾌한 것이 그의 실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 호쾌함에 짓눌려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것이다.

허나 상대가 이현성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이현성은 그의 검을 막는 반동을 역이용해서 동환위의 심장을 찔렀다. 동환위로서는 어처구니없는 죽음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경악한 쌍검수(雙劍手) 남환위와 대검수(大劍手) 북환위 그리고 단검수(短劍手) 서환위가 뒤늦게 달려들었다. 허나 동환위의 죽음으로 사방검진의 묘리는 무산된 상황이었다.

챙! 채앵! 채챙!!

현란하고 강하고 은밀함을 자랑하는 삼인의 무위는 대단했다. 그러나 중심이 되는 동환위의 죽음으로 더 이상 초절정고수도 위협하는 막강한 사방검진을 이룰 수 없었다.

“컥!”

“으윽!”

“말…도…….”

허창상단의 숨겨진 한 수라는 사방환위(四方幻衛).

그들에 걸맞지 않은 너무도 허무한 죽음이었다.

이현성은 검을 거두고 진법의 중심으로 향했다.

그리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 파(破)!”

몽혼혈라진의 올바른 해진 방법은 모른다.

허나 이현성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기운이 모이는 중심부를 파쇄하면 몽혼혈라진이 깨져버린다는 것을.

우웅~!

콰지직! 콰쾅!!

이현성의 검이 꽂히는 순간, 엄청난 기운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곧 몽혼혈라진에 균열이 일어났다.

“이런 천중비화(千重飛花)!”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이현성은 급히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주변에 반투명한 막이 형성되었다.

천중비화를 응용해서 검벽(劍壁)을 만든 것이다.

몽혼혈라진이 깨지면서 생긴 충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그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는지 주변 일대가 완벽히 초토화 되었다. 건물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질 정도로 강렬한 충격이었다.

“곤란하게 되었네. 비밀장부만 챙길… 음?”

허창상단의 뒤처리는 어디까지나 무림맹의 몫이었다.

그렇기에 이현성은 조용히 비밀장부만 챙길 생각이었다. 헌데 의도하지 않았으나 이런 소란을 피웠으니 골치가 아팠다. 그러던 중 제법 단단해 보이는 시커먼 한 철곽(鐵槨)이 보였다.

“이건!”

철곽 안에는 낡은 장부가 들어 있었다. 그가 찾고 있던 허창상단의 비밀장부임을 알 수 있었다.

장부를 품에 넣었을 때였다.

“이놈!!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헉!”

저 비대한 몸으로 어떻게 저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을까. 육중한 몸과 상반되는 새처럼 빠른 움직임을 보인 중년 사내가 보였다. 이현성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콰쾅!!

언제 다가왔는지 비대한 중년 사내가 조금 전 이현성이 있던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비대한 몸에 어울리는 무게감을 증명하듯 바닥이 거미줄처럼 쩍쩍 갈라졌다.

중년 사내는 죽은 사방환위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병신 같은 것들! 오냐오냐해줬더니 정신 못 차리고 뒤져버렸군. 그보다… 너는 누구냐? 감히 본 상단을 침입하다니!”

“평범한 상단은 아닐 줄 알았는데… 혈천이었나?”

“네, 네놈… 누구냐!”

이현성의 말에 비대한 중년 사내 원표는 경악하고 말았다. 절대 외부인의 입에서 나와선 안 되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절대 살려 보내선 안 된다.

“네놈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그만 죽어줘야겠다.”

“그럼 안 죽일 생각이었나?”

그 순간, 원표가 움직였다.

조금 전에는 당황했기에 피하기만 했다. 허나 이번에는 다르다는 생각으로 이현성은 검을 움직였다.

퍽!

이현성의 검은 움직인 순간 이미 원표의 복부에 닿았다. 예상과 달리 그의 검은 원표의 복부를 뚫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동으로 이현성이 밀려났다.

그런 그를 보며 원표는 히죽거렸다.

“흐흐흐. 고작 그런 꼬챙이로 내 몸에 상처라고 낼 수 있을 것 같나?”

“……!”

이현성은 깜짝 놀랐다. 비록 검강을 발현하지 않았다 해도 보검인 암천으로 찔렀다. 그런데 피육(皮肉)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복부를 뚫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일이었다.

‘외공(外功)……?!’

검이 육신에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는 것은 상대가 외공을 익혔다는 뜻이었다. 허나 평범한 외공과는 달랐다.

일반적인 외공을 익혔다면, 저런 육중한 육체를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때, 이현성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설마… 유가…밀공(踰跏密功)인가.”

“호오? 유가밀공을 알아? 흐흐. 그렇다면 그깟 꼬챙이가 내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겠지?”

유가밀공은 중원의 무학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

천축의 공부이기 때문이다. 원표의 저 육중한 몸도 사실 유가밀공으로 인해 다듬어진(?) 육체였다.

육중함에도 불구하고 빠르고 유연하며, 극한에 오른 탄력으로 도검이 통하지 않는다. 중원무학과는 그 궤가 달라 유가밀공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았다. 그 덕에 원표는 유가밀공을 익히고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쉽진 않겠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지.”

“검강이라… 초절정고수였단 말인지. 오냐! 오늘 유가밀공의 위대함을 보여주마!!”

이현성의 검에서 유형화된 빛이 발현되었다.

원표는 그것이 검강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모를 리가 없었다. 비록 그가 익힌 공부와 다르다고 해도, 언제 상대할지 모를 초절정고수에 대해서 대비를 해야 했다. 살짝 우려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으나 유가밀공의 위대함을 믿기로 했다.

“일점혈(一點血).”

“어림…없다!”

검강을 실은 일점혈은 엄청난 속도와 함께 그 관통력 역시 인정할 만했다. 실제로 유가밀공을 익힌 원표의 육신에 상처를 낼 수 있었다. 허나 상처가 생각보다 옅었다. 일점혈의 위력이 신통치 않은 것인지, 유가밀공이 그만큼 가공한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허나 원표의 입장에선 달랐다.

“개 같은! 죽여 버리겠어!!”

유가밀공으로 어느 수준에 오른 이후 자신의 피를 본 적이 없던 원표였다.

그런 피를 수십 년 만에 보자 원표는 눈이 뒤집혔다.

무인에게 흥분은 무척 경계해야 할 일이지만, 원표는 천축의 무학을 익힌 상인이었다.

실전에 익숙하지 않기에 저질러 버린 실수였다.

푹! 푹! 푸푹!!

흥분한 원표는 더 빠르고 위협적인 공격을 가했으나 틈이 더 많아져서 일점혈의 먹이가 되었다.

“컥! 컥! 죽여! 죽여… 커억!!”

“여의…재천(如意在天).”

이현성의 손을 떠난 암천이 허공을 가르더니 원표의 머리에 꽂혔다. 화경고수의 이기어검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지난 2년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얼추 흉내를 내는데 성공했다.

“으윽! 역시… 실전에 써먹긴 힘들겠네.”

이기어검술의 무리를 담고 있는 여의재천을 펼친 부작용으로 이현성은 기의 역류를 느꼈다.

여의재천이란 초식 자체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이현성의 문제였다.

다행히 급히 내공을 진정시켜서 내상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사실 이현성으로서는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여의재천을 펼친 그의 암천이 원표를 죽이지 못했다면 오히려 내상을 입고 수세로 몰렸을 것이다.

그는 다시 한번 화경의 높은 벽을 뼈저리게 느꼈다.

“후… 난리가 나겠군. 뭐… 알아서 수습해주시겠지.”

이현성은 몰려드는 기척을 느끼며 자리를 피했다.

소란을 피운 것에 대한 수습을 떠넘긴 것은 미안하지만, 그만한 일이었으니 미안해도 어쩔 수 없었다.

허창상단은 무려 혈천과 연관된 상단이었으니까.

* * *

“허허… 일 하나 맡겼더니 너무 화려하게 처리했군.”

“그러게 말입니다. 맹주님.”

부탁대로 이현성은 허창상단의 비밀장부를 찾아냈다.

하지만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허창상단을 완전히 박살내고 상단주까지 죽였다.

물론 그 과정을 보고 받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했다. 그럼에도 백무강은 한숨이 나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허나 한숨이 나올 일은 이것 말고도 또 있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뿌리가 깊을 수도 있겠어.”

“예. 은밀하게 내사도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반발이 만만치 않을 텐데, 가능하겠는가. 제갈 군사.”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맹주님.”

그들은 무림맹에도 은밀하게 마수를 뻗은 미지의 세력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왔다.

“반발은 내가 막아줄 테니, 제갈 군사는 신경 쓰지 말고 진행해주게.”

“결단… 감사합니다. 맹주님.”

아무리 백무강이 오제라고 하지만 뒷받침할 대단한 세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맹주로서 기반은 약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맹주의 권위를 깎아내리려는 자들이 많았다.

맹주의 권위가 깎일수록 이득을 볼 수 있는 자는 수두룩했다. 내부 감사는 그들에게 빌미를 제공하는 꼴이었다. 그럼에도 백무강은 이를 감수할 생각이었다.

“무형의 적을 앞에 두고 우리끼리 다툼이라니… 안타깝군.”

혈살객

“무림맹의 소행이겠지.”

“증거는 없으나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가주님.”

허창상단의 일은 곧바로 혁련용후의 귀에 들어갔다.

지척에서 벌어진 일이니, 그들이 모를 수가 없었다.

혁련용후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이번 일을 뒤에서 주도한 것은 그였지만, 일을 이렇게까지 키울 생각은 없었다.

원표의 기를 꺾어서 가신들을 길들이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허창상단은 완전히 풍비박살 났으며 상단주인 원표는 죽음을 당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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