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살수-153화 (153/314)

153화.

“…여기 차 한 잔 주게.”

“예! 대협님!”

무림맹의 비무대회는 의도대로 숨겨진 기인들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 * *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 장주, 오랜만일세.”

무림맹의 입구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현재는 초청장을 받은 자들만 무림맹 출입이 가능한 상황임에도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만약 제갈세가에서 미리 마중을 나오지 않았다면 꽤나 고생할 뻔했다. 무림맹 입성은 편할 수 있었으나 대신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제갈세가의 가주이자 제갈현지의 부친인 제갈인섭이었다.

그에게 지은 죄는 없으나 찔리는 구석이 있기 때문인지 당당하기가 힘들었다. 제갈세가의 금지옥엽을 2여 년이나 데리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지아는 잘 지내는가?”

“제갈 소저께선 잘 지내고 계십니다.”

“그럼 다행이군.”

두 사람 사이의 어색함은 어쩔 수 없었다. 초면만 아닐 뿐 친분이 있다고 할 정도로 왕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제갈현도의 혼사 때 잠깐 인사를 나눈 것이 전부였다.

일 년 전, 제갈현도는 한 여인의 지아비가 되었다.

그 여인이 검화(劍花) 남궁설지는 아니었다.

허나 그녀 못지않은 매력과 배경을 가진 여인이었다.

바로 북궁세가의 북궁연이었다.

그녀의 오라버니인 북궁무한과 하북팽가의 도화(刀花) 팽유화의 혼사에 참석한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를 안 제갈인섭의 추진으로 두 사람은 가정을 꾸렸다.

황실의 운명에 따라서 휩쓸릴 수 있는 관부의 가문인 것이 걸리지만, 그 외에는 최고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보다… 비무대회에는 참가하지 않을 생각인가?”

“예. 그럴 생각입니다.”

그의 대답에 제갈인섭은 안타까움을 금치 않았다.

부친께 직접 들은 것은 아니지만, 별동대를 뽑기 위한 비무대회의 개최 의도에 이현성에 대한 기회도 깔려 있음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비무대회의 부상이 만만치 않던데, 원하지 않는가?”

“귀한 보물들이지만, 번거로움을 감수할 정도는 아닙니다.”

“번거로움?”

“별동대에 들어갈 생각이 없단 뜻입니다.”

다른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기회로 삼는 별동대에 대해 번거로움을 표현하는 이현성을 보며 제갈인섭은 헛웃음이 나왔다.

‘허허. 게으른 것은 아닐 테고, 그릇이 다른 것인가?’

비무대회의 부상으로 나온 보물들과 별동대라는 명예를 무시할 수 있는 배짱을 가진 무림인은 흔치 않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현성은 정말 특이한 인물이었다.

“제 대신 유 국주를 참가시킬 생각입니다.”

“…신룡유가의 후예라는 친구 말인가?”

“예, 가주님.”

유백은 현재 이현성의 호위대장이란 직함으로 동행한 상황이었다.

지난 2년간 유백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이가장의 많은 고수 때문에 두각을 보일 수 없었을 뿐이었다.

그런 유백이라면 비무대회에서의 우승은 어려울지라도 좋은 성적을 낼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허나 제갈인섭은 아쉬운 표정이었다.

북궁세가는 결코 사돈으로 부족한 가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이는 법.

남궁세가와의 혼사가 무산된 것은 어쨌든 유백 때문이다. 검화 남궁설지가 유백과 가까워지자 남궁세가에서 정식으로 혼사를 거절했다.

사실 이현성이 유백을 이번 비무대회에 내세운 이유 중 하나였다. 비무대회에서 명성을 얻게 된다면 정식으로 남궁세가와 혼사를 맺을 수 있었다.

명성(名聲).

그게 현재 유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이가장의 일을 내가 왈가왈부할 순 없지. 커험… 그런데… 아, 아닐세.”

“예? 아 예…….”

제갈인섭은 자신의 딸은 어찌할 생각이냐는 말이 입 앞까지 나왔으나 꾹 참았다. 딸 가진 것이 죄라고, 괜히 딸이 밉보일까 봐 쉽게 일을 열 수 없었다. 장원에 제갈현지 말고 문교교가 있다는 것 역시 알기 때문이다.

“그보다… 형님께서 시간되면 한번 봤으면 한다고 하시더군.”

“형님이시라면… 천지신검(天地神劍) 제갈인겸 대협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제갈세가의 지략을 대표하는 인물이 제갈인섭이라면 검을 대표하는 인물은 바로 천지신검 제갈인겸이었다.

수년 전, 진주언가 전대 가주의 고희연에서 정체불명의 복면인에게 검을 강탈당한 이후, 불철주야 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런 제갈인겸이니 이현성에 대한 호기심이 갖는 것은 당연했다.

“예, 알겠습니다.”

“고맙네. 형님께서 기뻐하시겠군.”

제갈인섭은 차근차근 이현성과 제갈세가의 연을 이어갈 생각이었다.

제갈인겸과의 인연은 그런 맥락이었다.

“그럼 저는 이만…….”

“또 보세나.”

무림맹의 발족식이 하루를 앞둔 시각, 혈천은 은밀하게 움직였다.

* * *

“형님께서 별동대장이 되셔야 할 텐데…….”

중소문파들의 희망은 무림맹 비무대회에서 우승해 별동대장이 되는 것이다.

무림맹에서 공포한 별동대는 무려 셋.

즉, 비무대회의 4강에 올라야 한다는 뜻이었다.

수천 명이 참가한 비무대회에서 4강에 오른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할 수밖에 없었다.

별동대장 아니, 하다못해 별동대의 간부만 되어도 사문의 이름을 빛낼 수 있으니까.

“형님이라면 하실 수 있다. 본가의 희망이시니까.”

“크크크…… 비연검(飛燕劍) 따위가 희망이라니.”

비연검을 대신해서 가문을 지키고 있는 쌍연검(飛燕劍)은 본능적으로 두 자루의 검을 쥐었다.

허나 그의 행동은 너무 늦었다.

그 전에 이미 한 자루의 칼이 그의 심장을 파고들었으니까.

쌍연검은 자신의 심장에 박힌 칼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특히 자신의 심장에 칼을 박은 자의 얼굴을 보자 더욱 놀랐다.

“너, 너 같은 어린 녀석이 어떻게… 커억!”

“내 첫 실전이 고작 쌍연검이라니… 쳇!”

나름 절정고수로 이름을 알린 쌍연검이 제대로 방어조차 하지 못한 채 암살을 당하고 말았다.

그런 그를 암살한 자는 놀랍게도 이십 대의 청년이었다.

그는 혈살객(血殺客).

아직 출관하지 못한 혈살육관의 인재들을 제외한 오관 이하의 혈살객들이었다. 혈살육관의 혈살객들은 무림백대고수의 암살을 위해 양성된 이들이었다.

이번 목표는 각 현의 숨은 인재들의 암살인 만큼 오관 이하의 혈살객들만으로도 충분했다.

쌍연검만이 아니었다.

각파의 중견 고수 혹은 제법 이름난 기보(奇寶)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혈살객의 솜씨를 시험하는 동시에 중원무림의 정기를 훼손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허나 모든 작전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 * *

“매화도관(梅花道館)에 그게 숨겨져 있단 말이지?”

화산과 종남산에 가려졌으나 섬서에는 여산이나 소화산과 같은 명산이 여럿 존재했다.

특히 소화산은 화산에 비해 산세가 험하지 않고 정취가 빼어나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그런 소화산에 매화도관이라는 도문이 존재했다.

화산파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도문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교류를 하고 있었다.

다만 매화도관은 화산파와 달리, 무공과 연이 없기에 무림의 흥미를 끌 이유가 없었다.

그런 매화도관에 은밀히 발걸음을 한 자가 있었다.

“정보대로라면… 태상노군상의…….”

매화도관에는 하나의 신상(神像)이 있었다.

도가 최고의 신 중 하나인 태상노군(太上老君)의 신상이었다.

신상 자체만 본다면 큰 가치가 없었다.

어느 도관에서든 볼 수 있는 평범한 신상이었다.

허나 태상노군의 무릎에 올려진 두루마리는 조금 다르다.

도가 경전으로 알려졌으나 사실 조금 달랐다.

“저것이군. 독고구검의 진본이…….”

놀랍게도 태상노군상에 있는 경전은 무림의 전설적인 검학 독고구검(獨孤九劍)의 진본이었다.

최소한 정체불명의 인물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희열에 찬 상태로 태상노군상 아니, 독고구검의 진본에 다가가려던 찰나였다.

“거기까지! 신상에 더 가까이 간다면…….”

“칫! 역시 방해물…….”

괴한은 경고를 무시한 채 신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한 자루의 검이 찔러 들어왔다.

검을 간신히 피한 괴한은 놀라며 외쳤다.

“암향표(暗香飄)? 화산파! 화산파의 어린 계집이 이 정도 검을 휘두른다면… 검봉 화소군!”

“…물러서라.”

“네년이 화산파도 아닌 이곳에 왜…….”

괴한은 여인의 정체를 유추하고 낭패를 본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복면 때문에 그 표정을 여인에게 들키지는 않았다.

“칫, 아직 저년을 죽일 때가 아니거늘… 어쩔 수 없지.”

“감히!”

챙! 채챙! 챙챙!!

괴한은 강했다.

일개 도둑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실제로 괴한은 일개 도둑이 아니었다.

“큭! 한월마검(寒月魔劍)? 검봉이 어떻게 한천마녀의 검…….”

“…사부님은 마녀가 아니시다!!”

여인은 검봉 화소군이 아니었다.

한천마녀 화옥령의 제자 이현영이었다.

그녀의 검은 강했다.

허나 괴한의 검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한천마녀에게 제자가 있었던가? 칫, 그 말은 마녀가 근처에 있단 말이군. 어쩔 수 없지.’

한천마녀의 실력은 진짜였다.

아직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괴한은 그대로 도망을 쳤다.

허나 순순히 놔줄 이현영이 아니었다.

“어림없다!”

“칫! 귀찮게 구네!”

그 순간, 복면 너머로 붉은 빛이 번쩍였다.

그와 동시에 괴한의 기세 역시 바뀌었다.

그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이현영의 검세 역시 바뀌었다.

차갑고 예리한 한월검결.

이옥령의 한이 서린 검법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쾅!!

이현영의 검은 검봉 화소군의 아래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검에도 약점이 있었다.

바로 뒷받침할 내공이 적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자소단을 복용한 덕분에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심후한 내공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동배를 기준으로 했을 때였다.

절정고수 치고는 적은 편이었다.

덕분에 이현영은 이번 한 수에 밀리고 말았다.

“크크크… 죽… 컥!”

“감히 내 제자를 노려!”

어디선가 날아온 검이 괴한의 팔을 베었다.

그는 저항도 못 한 채 한쪽 팔을 잃고 말았다.

팔이 베인 강렬한 고통에 괴한은 몸부림을 쳤다.

“으아아악!!”

“네놈의 정체부터 밝혀… 음?”

“크크. 내가… 밝…힐…거…….”

순간 괴한이 녹아버리기 시작했다.

이현영은 괴한의 예상치 상황에 당황했다.

그러나 화옥령은 달랐다.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중얼거렸다.

“화골산(化骨酸)이라… 일개 살수론 보이지 않았는데… 도대체…….”

“사부님… 죄송합니다.”

“아니다. 네가 왜 죄송하더냐.”

사부가 조금만 늦었다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사부의 이름에 먹칠을 할 뻔한 셈이었다.

제법 강해졌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자존심은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났다.

그때, 사람들이 몰려왔다.

“무, 무슨 일입니까! 아… 화 여도우…….”

“침입자가 있었어요. 관주님.”

“침입자 말입니까? 침입자가 어디 있습니까?”

“저기…….”

화옥령이 가리킨 곳에는 무언가 녹은 흔적만 남아 있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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