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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150화 (150/314)

150화.

초절정고수가 버티고 있으니 감히 시비를 걸지 못하는 것이다. 그 외의 사천왕은 비록 초절정지경에 오르지 못했을 뿐, 그에 근접할 정도로 강했다.

“그가 아무리 심기가 두텁다고 해도 나의 향기에서 벗어날 순 없지.”

“그렇지요… 사내라면 아니, 인간이라면…….”

여인의 눈에서 요사스러운 기운이 번들거렸다.

그럼에도 천박하지 않고 오히려 성스럽기까지 했다.

그런 여인을 보며 백우종은 식은땀을 흘렸다.

자신의 심장이 두근거림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늙지도 않는 괴물. 나도 조심해야 해. 천요(天妖)에게 잡아먹히면 끝장이야.’

여인은 보이는 것과 달리 상당히 나이가 많았다.

중년의 나이인 백우종보다 훨씬 위였다.

그럼에도 그녀가 백우종의 딸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은 꽃과 같은 싱그러운 용모 때문이었다.

그렇다.

놀랍게도 여인은 삼봉 중 의봉이라고 불리는 백인혜였다. 성수 백우종의 여식으로 알려졌으나 실상은 달랐다.

천요(天妖).

이현성의 손에 죽은 광요(狂妖), 환희요후의 손녀 환요(幻妖)와 함께 삼요(三妖)의 한 명이었다.

수십 년 전, 죽었다고 알려진 그녀가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은 물론,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 그녀도 모든 사내를 유혹하진 못했다. 과거 혈천주를 유혹하려고 시도했으나 되레 심령을 제압당했다. 그 후, 강제로 혈천십삼세의 한자리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만약이라는 것이 있으니 약물도 꾸준히 복용시키게.”

“물론입니다.”

사실 보은단의 고수들은 자의로 잔류한 것이 아니었다.

백우종의 약물과 백인혜의 선천적인 요기로 극대화된 섭혼술로 심령이 세뇌되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사술과 차원이 달랐다.

본인은 물론 불가의 고승, 도가의 진인조차 눈치챌 수 없도록 은밀히 심령을 잠식했다. 초절정 혹은 그에 육박한 사천왕까지 백인혜의 노예가 될 정도였다.

다만 조건이 까다롭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천천히 무의식 속에 녹아들어야 한다. 약한 곳을 통해서 그 효과가 극대화되기에 부상을 입은 상태가 좋다.

맹검이라고 불리는 위지천이라도 안심할 수 없었다.

그의 부상 수준을 생각하면 성수의가에 오랜 시간 의탁해야 했다. 그런 성수의가의 존재는 혈천 내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는 사항이었다. 즉, 전(前) 혈영살객인 이현성조차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맹검은 스스로 호굴에 들어온 셈이었다.

“호호호. 기필코 내 손에 넣겠어.”

허나 그녀의 호언장담과 달리 위지천은 쉽게 그녀의 손에 쥐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년 후

“…일점혈(一點血).”

사내가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허나 그가 휘두른 검의 속도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파공음이 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쾌검이었다.

허나 그의 검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천중비화(千重飛花).”

엄청난 쾌를 보여주었던 사내의 검은 수십, 수백 개로 분(分)했다. 그 모습이 흡사 수많은 꽃잎이 휘날리는 것 모양이었다.

암천살무의 천중비화였다. 강기를 기반으로 둔 검초인 천중비화이건만 검광이 번쩍일 뿐, 검강이 동반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 검은 강력했다. 검압에 의해서 대기가 진동할 정도였다. 이현성은 천중비화를 검강의 운용 없이 펼칠 수 있을 정도로 완숙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여의재천(如意在天).”

이현성의 손에 쥐어져 있던 검이 그의 손을 떠나 허공을 자유롭게 노닐었다.

그 모습이 흡사 한 마리의 용(龍)과 같았다.

허나 검은 한순간에 추락하고 말았다.

그것을 지켜본 이현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헉… 헉… 후. 역시… 이번에도 실패…인가.”

암천살무의 세 번째 초식인 여의재천.

의지와 내공의 힘으로 검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이기어검(以氣御劍)의 무리(武理)가 담긴 초식이었다.

다만 화경에 오르지 못한 이현성으로선 운용할 수 없는 검초이기도 했다. 지난 2년간 화경에 오르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했으나 아직은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초인지경이라는 화경에 오르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단순한 노력만으로 닿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무림 백대고수.

특히 상위의 고수들이 초절정의 끝자락에 도달했음에도 수십 년째 화경에 오르지 못한 이유였다.

이현성의 경우는 화경에 오르지 못했음에도 환골탈태한 특이한 경우였다.

그래서 어설프게나마 여의재천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허나 그야말로 흉내에 불과했다. 오래 운용하지 못하는 것은 둘째 치고, 범위나 위력이 형편없었다.

실전에서 사용하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과연 화경…에 오르지 않고는 완벽하게 펼칠 수가 없구나.”

검왕 남궁무백을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일점혈, 천중비화의 검이 대단한 위력을 가졌으나 화경고수에겐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렇다고 해도 암천살무는 강력하고 이현성은 강했다.

허나 혈천이 움직일 시기가 점점 가까워졌다.

수년 후 혈살객에 의해 무림고수들이 암살되는 것을 시작으로 혈천은 전면에 나서게 된다.

아니, 자신의 존재 때문인지 모든것이 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수년 후가 아닌 당장이라도 혈천이 움직일 수 있었다.

혈천은 거대했다.

초절정고수만 수십 명이며 화경고수 역시 여럿 존재했다. 혈영살객이었던 이현성조차 모르는 비밀병기들이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른다.

중원무림의 절대자인 십정(十正)과 칠사(七邪)만 믿고 있을 순 없었다.

그때는 분명 여의재천의 초식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을 아는 이현성은 검을 놓을 수가 없었다.

“후… 오늘은 이쯤 해야겠군.”

아직 더 수련을 하고 싶으나 곧 회의가 있기에 아쉽지만, 수련을 마무리 지었다.

연무장을 벗어나 집무실로 들어갔다.

* * *

“중앙상단이 정주 제일의 상단이 되었지만, 아직 거대상단과 비교하기에 부족함이 있으니 무리하진 말게.”

집무실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앉아있었다.

2년이란 시간은 이가장에 많은 변화를 준 시간이었다.

집무실에 자리 잡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은 중앙상단(中央商團)을 맡고 있는 만홍규였다.

북로상회는 이가장의 위세를 등에 업고 지난 2년간 정주의 중앙로 전체를 장악했다.

중앙로 전체를 장악하게 되었다고 해서 강제로 굴복시킨 것은 아니었다. 중앙 북로를 제외한 삼로(三路)를 관리하던 흑도 무리들이 삼대문으로 도망치거나 이가장에 자진해서 들어왔다.

이가장의 입장에선 흑도 무리를 거둘 필요는 없으나, 여러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선 사람이 필요했다.

이에 이가장은 흑도 무리를 정신개조를 통해 개과천선 시키고 관리했다. 중앙상회로 명칭을 바꾼 북로상회는 이가장의 뜻에 따라서 중앙로까지만 영역을 구축했다.

기존 세력의 밥줄을 완전히 끊어버린다면 그 역시 또 다른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 장주님. 거대상단과 마찰을 일으킬 일은 사전에 차단했으니 걱정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상회와 연계를 하되, 선은 지키게.”

“물론입니다.”

중앙상단은 중앙상회에서 분리된 이가장만의 상단이었다. 중앙상회는 정주 중앙로 백여 명의 상인(점주)들의 조합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가장의 힘이 절대적이라 해도, 온전히 이가장만의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중앙상회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중앙상단을 따로 발족시켰다.

둘로 나뉘었으나 중앙상회는 아직 이가장의 힘을 상당히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이가장의 위세 아래 보호를 받는 것은 물론, 중앙상단을 통해 비교적 싸고 안정적인 물량을 공급받았다. 중앙상단 역시 중앙상회 상인들이라는 안정적인 수요처 덕분에 쉽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허나 아직 삼대 상단으로 뽑히는 거대상단만큼의 힘은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수년 안에 삼대 상단은 어렵더라도 십대 상단의 말석을 차지하는 것이 목표였다.

“유 국주. 금룡표국(擒龍鏢局)과의 마찰은 잘 해결되었나?”

“예. 능 국주님께서 양해해주셔서 별 문제없이 해결되었습니다.”

위지천의 호위를 위해 섬서 여산으로 떠났던 신룡대가 이가장으로 복귀했다.

성수의가에서 내상 치료를 하던 위지천이 갑작스럽게 이가장과 결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에 놀란 이현성이 직접 성수의가에 방문했으나 위지천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이현성은 그의 뜻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위지천은 그의 의형이지, 수하가 아니었다.

이현성은 돌아온 유백을 비롯한 신룡대에게 새로운 사업장을 맡겼다.

바로 신룡표국(神龍鏢局)이었다.

안정적인 수익 창출 및 무인 양성의 일환으로 표국을 준비했다. 그와 동시에 차후 유백이 가문을 세울 기틀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신룡표국은 어느새 정주 제일표국이라는 금룡표국의 뒤꿈치까지 따라잡을 정도가 되었다.

“소림과의 관계도 있으니 왕 상회주는 일거리를 금룡표국에도 나눠주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주님.”

금룡표국은 소림 속가제자인 금룡수 능광이 운영하는 표국이었다.

이현성 본인도 정주에서 손꼽히는 고수였지만, 무엇보다 소림 본산에서 나름 애정을 보이는 속가제자인 만큼 척을 져서 좋을 것이 없었다.

그게 아니라도 신룡표국은 홀로 중앙상회의 모든 의뢰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일부 떼어줘서 손해가 되는 것은 없었다. 만홍규가 중앙상단을 본격적으로 맡으면서 공석이 된 중앙상회주의 자리는 이가객잔의 총관이었던 왕유가 이어 받았다.

중앙상회주의 자리를 탐내는 자들이 몇몇 있었다.

하지만 이가장과의 연이 멀어지면 중앙상회 자체가 흔들리는 것을 알기에 그들 스스로 왕유를 추대했다.

이가장 입장에선 손해 볼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흔쾌히 왕유를 새로운 중앙상회주로 세웠다.

2년 동안 이룬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제갈 소저, 흠흠…! 풍운각주(風雲閣主), 보고할 만한 일이 있소?”

“조만간 정식으로 선포될 것 같은데, 석달 후 무림맹이 정식으로 발족할 예정입니다.”

이가장의 총관 노릇을 하던 제갈현지는 총관 자리를 문교교에게 넘겨주고 정보집단인 풍운각을 맡았다.

한두 달이면 떠날 줄 알았던 문교교는 이가장의 행정업무에 끼어들었다. 그로 인해 제갈현지와 문교교는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갈현지는 이현성에게 건의하여 풍운각을 만들었다.

그 이후 두 사람은 오히려 친자매처럼 가까워졌다.

그들 사이에 모종의 협의가 있었으나 이현성은 세한 것까진 알 수 없었다.

중앙상회, 상단 및 쾌활림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풍운각의 정보력은 아직 정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정보망 구축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중앙상단의 지부와 고급기루인 쾌활림의 분점을 준비하고 있으니 정보망은 점점 넓어질 예정이었다.

“무림맹이라… 슬슬 그럴 때가 되었지.”

“본장에도 초대장이 발부될 예정이라고 하니, 이번에는 참석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부요청을 거절했으니 이번에도 거절하면 본장만이 아니라 어르신들께서 난감하실 수 있겠지.”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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