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이를 말리던 섬풍각의 고수는 연자흠의 주먹을 맞고 나가떨어졌다.
“뭐하느냐! 내 손에 죽고 싶더냐!”
“조, 존명.”
섬풍각의 무인들은 연자흠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묵계보다 연자흠의 손에 먼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추적을 멈추었던 섬풍각이 다시 움직이자 신룡대는 기겁했다.
“미, 미친!”
“다. 달려!”
여산에 도달했으나 아직 산의 초입에 불과했다.
성수의가의 본장이 위치한 곳은 산의 중턱이었다.
아직은 갈길이 멀었다.
설상가상으로 말과 마차를 끌고 오를 수 있는 곳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말과 마차를 버린다! 부장주님을 모셔라!”
“젠장! 다 와서 이게 무슨 꼴이람!”
절정고수인 신룡대주 유백과 귀매가 곁에 있었다면 그나마 수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신룡대만으로는 어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살기 위해선 발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신룡대원 중 한 명이 위지천을 들어 업었다.
나머지 대원들은 그 주위를 포위하듯 에워싸며 달렸다.
“날 두고 가거라.”
“아, 안 됩니다. 부장주님!”
고작 한 달이지만,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는지 자신을 두고 도망치라는 위지천의 말에 신룡대는 고개를 저었다.
“마, 맞습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합니다!!”
위지천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두 눈을 잃으면서 감성 역시 잃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신룡대의 의리에 코끝이 시큰해졌다.
동시에 스스로에게 분노했다.
‘빌어먹을! 천하의 맹검이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란 말이더냐!’
신룡대는 최선을 다해 산을 올랐으나 섬풍각의 추적을 뿌리치지 못했다.
“칫! 먼저 가라!”
“옥 형! 젠장 너희들 먼저 가게!”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 생각인지, 신룡대원이 제자리에 섰다.
호흡은 거칠었지만, 눈빛은 살아 있었다.
허나 섬풍각은 섬서에서 제법 위명이 알려진 방파였다.
특히 섬풍각주인 연자흠은 절정고수였다.
그만해도 신룡대원 두 사람으로는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챙!
“컥!”
“으아악!!”
“흐흐흐… 죽어라!”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이었다.
연자흠의 칼질 한 번에 신룡대원인 옥효는 나가떨어졌다.
심지어 여송은 한쪽 팔까지 잃었다.
연자흠은 나아가 그들의 목숨까지 취하려고 했다.
도주하는 와중에 그 모습을 본 신룡대원들은 절규를 했다.
“아, 안 돼!!”
“헉!”
피융!
연자흠의 칼은 여송의 목을 베지 못했다.
어디선가 날아온 하나의 화살 덕분이었다.
기겁한 연자흠은 자신의 심장을 노린 화살을 쳐냈다.
하지만 화살은 그가 휘두른 칼의 도면(刀面)에 튕겨져 나와, 그의 어깨에 꽂혔다.
우연이라면 재수가 없는 것이고 노린 것이라면 신기에 가까운 솜씨인 셈이었다.
“누, 누구냐!!”
“감히… 여산에서 피를 보다니… 네놈이 죽고 싶은 게로구나!”
그곳에는 한 자루의 활을 쥔 중년 사내가 서 있었다.
그 모습이 흡사 사냥꾼과 다를 바가 없었다. 허나 평범한 사냥꾼이 아니었다.
그를 본 연자흠의 눈이 커졌다.
“추, 추혼엽사(追魂獵師)!”
“내가 누군지 알았으니 네가 왜 죽어야 하는지도 알겠군.”
활(弓)이란 사냥꾼의 무기란 인식이 강해서 무림에선 기피하는 편이었다.
게다가 활의 특성상 몸을 숨긴 채 멀리서 화살을 쏜다.
그런 점을 비겁하다 여기며 암기와 함께 저급하게 평가되는 것이 활이었다.
허나 활은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무기이며, 뛰어난 살상력을 가진 무서운 무기였다.
추혼엽사는 그런 활로 경지에 오른 고수였다.
과거에는 활을 폄하하며 그에게 시비를 거는 자가 많았다.
그로 인해 많은 분쟁에 휘말려 곤란을 겪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악명까지 얻게 되었다.
그런 그가 지금은 새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성수의가의 사천왕으로서.
“사, 살려주시오.”
“목숨이 아까웠다면 여산을 더럽히지 말았어야지.”
“그만! 그만하게. 그분께서 원치 않으시네. 돌려보내게.”
“칫! 운이 좋은 놈들이군. 꺼져라! 다음엔 기필코 죽여주마!”
뒤늦게 나타난 창수(槍手) 덕분에 목숨을 건진 연자흠은 섬풍각의 무인들을 이끌고 꽁지 빠지게 도망쳤다.
그의 정체는 추혼엽사와 함께 성수의가를 수호하는 사천왕 중 한 명인 천라창영(天羅槍影)이었다.
성수의가에 은혜를 입은 무림고수들 중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 잔류한 자들이 있었다.
허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
뜻은 좋았으나 서로 맞지 않은 무림고수들이 모이니 오히려 분쟁이 일어났다.
그때 네 명의 고수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
그들이 바로 사천왕이었다.
사천왕은 은혜 갚길 원하는 고수들을 규합해서 보은단(報恩團)이란 집단을 세워 성수의가를 수호했다.
삼십 명으로 시작한 보은단은 현재 이백 명까지 늘어난 상황이었다. 성수의가가 무림성지로 불리며 여산 내에 분쟁을 금하게 만든 것도 사실 보은단의 공이었다.
“이런! 오른팔을 잃었군.”
“여, 여 형!”
신룡대원인 여송은 하필이면 오른팔을 베이고 말았다.
우수검(右手劍)을 익힌 여송은 무인으로서의 삶을 잃게 된 셈이었다. 같은 무인으로서 천라검영은 안타까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서두르게. 어쩌면 가능할지 모르니…….”
“후… 아무리 그분이라도…….”
고통에 몸부림치는 여송은 물론, 곁에 있던 옥효는 천라검영과 추혼엽사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허나 얼마 후 옥효와 여송를 포함한 신룡대 모두는 깨닫게 되었다.
성수(聖手) 백우종이 왜 신의(神醫)라고 불리는지를.
* * *
“허! 나 역시 멀었군. 아직 멀었어.”
50대 쯤 되어 보이는 중년 사내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문밖으로 나왔다. 그의 부정적인 말에 신룡대는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들을 대표해서 유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수 님. 여 대원의 상태가 많이 좋지 않습니까?”
“허허. 나의 말에 다들 오해를 했군. 베어진 팔을 봉합하는데 성공했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와!!”
사내는 바로 천하 삼대 신의 중 한 명인 성수 백우종이었다. 과연 신의라고 불릴만했다.
베어진 팔을 잇는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보여주었다.
신룡대가 환호하는 것도 당연했다.
허나 성수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치료만 잘 받는다면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을 걸세.”
“예? 일상생활이라시면…….”
그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든 유백이 되물었다.
이에 성수는 안타깝다는 듯 나직이 말했다.
“베인 상처가 너무 지저분해서 완벽하게 봉합할 순 없었네. 아무래도 검을 쥐는 것은 어려울 듯싶네.”
“그, 그런…….”
사실 잃었던 팔을 되찾은 것만 해도 평생 감사하며 살아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사람 욕심은 끝이 없었다.
검을 쥘 수 없다는 말에 실망하는 것을 보면.
성수도 아쉬움이 남아 살짝 고개를 숙였다.
‘차라리 깔끔하게 베였다면 봉합하는데 수월했을 텐데…….’
섬풍각주 연자흠의 도법에 의해서 근육과 힘줄 등 베인 상처가 너무 너저분했다.
때문에 절단 부위를 완벽하게 봉합할 수 없었다.
그래도 대주인 유백이 가장 먼저 감정을 추슬렀다.
“…감사합니다. 성수 님. 비록 제 동료가 더 이상 검을 쥘 수 없게 되었지만, 일상생활이라도 할 수 있으니 다행이지 않겠습니까.”
“미안하네. 내 의술이 아직 미흡한 것이 안타깝네.”
성수 백우종은 베인 팔을 이어주는 경이로운 일을 해냈음에도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며 스스로를 낮췄다.
그를 보며 유백과 신룡대는 그가 왜 성스러운 손이라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다른 환자의 치료를 위해 백우종이 떠나자 유백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여 무사가 충격 받지 않게 잘 위로해주세요.”
* * *
“교, 교교야!”
북경에서 손님이 왔다는 말에 객당으로 향한 이현성은 크게 놀랐다. 객당에 있던 손님은 바로 내각대학사 문종학의 여식인 문교교였다. 북경에 있어야 할 그녀가 정주인 이곳에 와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 오라버니! 그간 잘 지내셨나요.”
“나는… 잘 지냈단다. 어떻게 왔느냐. 이 먼 곳까지…….”
그의 말에 문교교는 덜컥 겁이 났다.
이현성이 자신을 반가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버님께서 허락해주셔서… 그리고 북궁세가의 분들이 도와주셔서…….”
“북궁세가의 분들이셨군요. 이가장주인 이현성입니다. 제 누이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현성이 문교교를 호위한 이들에게 감사인사를 건넸다.
문종학은 이현성을 만나러 가고 싶어 하는 문교교의 고집을 꺾지 못했고 결국 허락했다.
허나 아녀자인 문교교를 홀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금의위사들에게 호위를 부탁할 수도 없었다.
문가장에 파견된 금의위사와 금위군은 장원과 문종학의 안위를 위한 황제의 배려였다.
그것을 사사로이 부린다면 도리에 맞지 않았다.
그때 제법 가까워진 북궁세가의 북궁연이 도움을 주었다. 부친에게 청해서 세가의 고수 몇몇을 호위로 붙여준 것이다. 북궁세가주로서도 내각대학사에게 호의를 베풀어 나쁠 것이 없었다.
“신검(神劍) 이 대협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북경에 있을 당시에도 이현성의 명성은 사람들 사이에 자자했다. 북경을 떠난 이후에는 더 대단했다.
아무리 북궁세가가 황실에 투신했다 해도, 무인으로서 고수인 이현성에게 경외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거처를 마련해둘 터이니, 계시는 동안 평안하게 지내십시오.”
“이 대협의 배려에 감사합니다. 하루만 신세를 지고 내일 돌아가겠습니다.”
“예? 그렇게 빨리 말입니까? 그럼 교교는…….”
내일 바로 떠난다는 북궁세가 고수들의 말에 이현성은 당황했다. 먼 길을 온 문교교였다. 그녀가 당장 내일 돌아갈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 당분간 오라버니께 신세를 지려고… 아, 안 되나요?”
“그럴 리가? 네가 남도 아니고, 신세라니… 당치 않다.”
자신의 존재가 이현성에게 부담이 될까, 문교교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그런 그녀를 보며 이현성은 환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제야 문교교의 표정이 풀리며 안도했다.
이현성은 고생한 북궁세가의 고수들에게 편히 쉴 수 있게 별채를 내주었다.
또한 술과 각종 음식들을 준비해두라고 지시했다.
그 후 문교교에게 내어준 별채로 향했다.
“유 형에게 이야기 들었는데, 잘 지냈느냐?”
“오라버니 너무 하셔요. 어찌 서신 한통 없으세요?”
불안감이 사라진 문교교는 평소의 그녀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미모에 물이 올라서 꽃이 핀 문교교이지만 이현성의 눈에는 그저 귀여운 동생이었다.
“그러게 말이다. 내가 잘못했다.”
“잘못을 아셨다면 다행히에요.”
“허허… 녀석! 안 그래도 한번 다녀올 생각이긴 했는데, 이렇게 먼 길을 와도 되더냐? 괜히 네게 안 좋은 소문이 돌까 봐 두렵구나.”
무림여협조차 행동에 제약이 있다. 하물며 고관댁 여식으로서 오래 자리를 비우는 것은 험담의 소재가 되기에 충분했다. 이현성이 오라버니와 같다고 한들, 피가 섞인 것도 아니었으니 더욱 그랬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