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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147화 (147/314)

147화.

하지만 다행히 수하의 어리석은 언행으로 인해 낭패를 볼 것 같지는 않았다. 좌보는 일이 커지기 전에 운검장 고수들을 이끌고 물러났다. 허나 유백을 상대하던 수월쌍걸은 아니었다.

“그대들은 뭐하는가!”

“닥쳐라! 한천마녀! 네년이 강하다고 한들, 우리 형제를 핍박할 수 없다!!”

그렇다.

두 여인의 정체는 화산파에서 하산한 한천마녀 화옥령과 그녀의 제자 이현영이었다.

섬서의 성도인 서안으로 향하던 그녀들은 우연히 싸움을 목격하게 되었다.

허나 남의 일에 함부로 끼어들어서 좋을 것이 없기에 모른 척했다.

아니, 모른 척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영아. 비록 저들은 무례하나 그들의 선친은 대협이니라. 허니 죽이지 말고 제압만 하거라.”

“예… 사부님.”

화옥령은 협객인 수월대협을 생각해서 수월쌍걸을 제압하란 지시만 내렸다. 그러나 수월쌍걸의 얼굴이 노기로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차라리 한천마녀라고 불리는 화옥령이 나섰다면 그나마 자존심이 덜 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묘령의 여인을 대신 내세우니 자존심이 상했다.

“감히 우릴 무시… 큭!”

“헉!!”

자존심을 상해하는 수월쌍걸과 달리 이현영의 검은 범상치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현영은 한천마녀 화옥령의 진전을 이었다.

남동생인 이현호 이상의 재능을 가진 이현영이 한천마녀에게 십여 년 간 무공을 전수받았다.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화산파의 영단인 자소단까지 복용했다. 때문에 그녀의 무위는 고작 여인의 수준에 국한되지 않았다.

무림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이현영은 현재 삼봉의 수준을 상회했다. 실제로 얼마 전, 화산파에서 검봉(劍鳳) 화소군과 가벼운 비무를 했다. 비록 승패를 가르지는 못했으나 만약 끝까지 갔다면 이현영이 이겼을지도 모른다.

검봉 화소군의 검이 약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부인 한천마녀를 따라다니며 수많은 실전을 치룬 이현영의 검은 더욱 무겁고 날카로웠다.

화소군은 사부의 조카이자 그녀의 사저이기도 했다.

때문에 이현영도 검을 독하게 쓰지 못한 탓에 승패를 가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연이 없는 수월쌍걸에게까지 손속에 사정을 둘 필요가 없었다.

사부의 지시는 제압이니 조금 거칠어도 괜찮을 것이다.

남동생을 눈앞에서 잃은 이현영은 나이에 비해 마음이 단단했다. 수많은 악인을 처단하면서 더욱 단호한 성품을 가지게 된 이유도 있었다.

“이쯤에서 물러나세요.”

“큭! 우릴…….”

“그만! 돌아가자…….”

“혀, 형님……!!”

고수는 고수를 알아볼 수 있다 했던가.

수월쌍걸은 불과 십여 합만으로 이현영이 고수임을 알 수 인정했다. 아니,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연했다.

검종(劍宗)이라고 불리는 화산파에 뿌리를 둔 화옥령이 크나큰 원한을 담아서 탄생시킨 한월검결(寒月劍訣)이었다. 무림에서 한월마검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 위력이 대단했다.

수월쌍걸은 상대가 묘령의 여인이라고 무시하며 평정심을 잃었다. 섣불리 칼을 휘둘러 낭패를 본것은 당연했다.

“어린 계집조차 꺾지 못한 우리의 칼로 악적을 어찌 베겠느냐. 돌아가자… 섬풍각 잡놈들이 악적을 벴다면 이미 우린 기회를 놓쳤고, 못 벴다면 나중을 기약하자구나.”

“크윽!!”

수월쌍걸은 이현영을 죽일 듯 노려보며 물러났다.

그녀는 본의 아니게 수월쌍걸과 악연을 맺고 말았다.

그들이 물러나자 유백은 그녀들에게 포권을 취해 감사의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은혜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보다 그대는 신룡검옹(神龍劍翁) 노선배와는 어떤 관계인가?”

화옥령의 물음에 유백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조부님이십니다. 혹시 그분을 아십니까?”

“역시 그분의 후예였군. 직접 뵌 적은 없으나 아버님께 들은 적이 있네.”

신룡검옹은 유백의 조부이자 신룡유가의 몰락의 원인이었다. 그의 죽음으로 신룡검법이 실전되었고, 신룡유가의 몰락으로 이어진 셈이었다.

“그러…셨군요.”

“얼핏 들으니 맹검을 호위하는 듯하더군. 그분의 후예가 어찌…….”

“부장주께선 알려진 것만큼 악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장주께서 절 믿고 부탁하시니,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자네의 뜻이 그렇다면 더 이상 묻지 않겠네. 허나 우리의 연은 여기까지인 듯싶네.”

화옥령은 신룡유가와 직접적인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그녀의 부친인 자하검제는 젊은 시절 신룡검옹과 연이 닿았다.

어린 시절 부친에게 들은 기억이 있기에 화옥령은 유백을 도와준 것이었다.

허나 그 이상 도움을 줄 생각은 없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화옥령은 떠났고, 이현영은 고개를 작게 숙여 인사를 한 후 사부의 뒤를 따랐다.

그녀들의 뒷모습을 보며 유백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단하구나. 저런 여협이 있을 줄이야.’

이십여 년 전부터 위명이 자자한 한천마녀의 무위야 당연했다.

헌데 그녀의 제자까지 저리 뛰어난 무위를 발휘하니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벽 여협. 빨리 가시죠.”

“부디 무사히 여산에 도착했어야 할 텐데…….”

호굴

“무복을 추가 주문했으니 곧 보급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소저.”

언제부터인지 이가장의 사람들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제갈현지를 찾았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흔쾌히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고착된 상황에 그 누구도 의문을 갖지 못할 정도였다.

“업무가 너무 중구난방인 것 같아. 분류할 필요가 있겠어.”

태가장의 총관이었던 황연이 태천광과 떠나면서 행정업무가 사실상 마비되었다. 급한 대로 장주가 된 이현성이 각종 업무를 처리하긴 했다. 하지만 그 역시 행정업무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는 만큼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났으니 여러 가지 문제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더 늦기 전에 제갈현지가 문제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차근차근 고쳐나간 덕분에 하나둘씩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서기를 한두 명 뽑으면 좋을 것 같은데…….”

이가장의 고질병인 인재 부족은 무인만이 아니라 문사 쪽에서도 겪고 있는 문제였다.

그나마 제갈현지가 워낙 뛰어났기에 홀로 감당하고 있었지만, 이가장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쓸 만한 인재를 발굴하고 업무를 가르쳐 놓아야 했다.

“장주님께 말씀드려 놓아야겠어.”

그때, 그녀는 알지 못했다.

행정업무를 보좌할 서기를 채용하려고 했던 일이 장차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었단 사실을.

자리에서 일어난 제갈현지는 바로 이현성의 집무실로 향했다.

“죄송합니다. 번거롭게 해드렸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걸요.”

제갈현지가 정리한 서류를 건네받으며 이현성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녀는 이가장의 식솔이 아니라 빈객이었다.

그럼에도 총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누가 부탁한 일도 아님에도 그리해줬다.

너무 자연스럽게 그리고 완벽하게 업무를 처리하니 이현성의 입장에서는 미안해하면서도 계속 일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총관을 맡을 만한 사람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총관 업무를 할 줄 아는 사람도 흔치 않지만, 믿을 수 있는 총관을 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요. …제게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답니다. 차라리 서기를 몇 명 알아보시는 것이 어떠세요?”

“으음… 알겠습니다. 우선 서기를 구해보겠습니다.”

빈객인 그녀를 부려 먹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그녀만한 인재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그만하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마음을 아는지 제갈현지는 서둘러 화제를 바꾸었다.

“그보다 부장주께서 화음현을 지났다고 합니다. 지금쯤 여산에 당도했을 거예요.”

“다행이군요. 후… 형님 아니, 부장주께서 거부하셨다고 해도 제가 함께 갔어야 했나 봅니다. 예상보다 더 위험했으니…….”

제갈현지는 무영대를 통해서 이런저런 정보를 얻고 있었다. 그녀의 안위를 위해서 제갈윤호가 무영대원 몇몇을 붙여둔 덕분이었다. 사실 비선조직인 무영대의 정보는 사사로이 이용해선 안 된다.

다행히 이현성에게 호의적인 제갈윤호가 묵과해준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현성은 위지천의 여산행이 평탄치 않을 것을 예상했다.

그렇기에 그는 위지천과 동행하려 했다.

그러나 위지천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이현성은 어쩔 수 없이 신룡대를 그의 호위로 붙어주는 것으로 물러났다. 절정고수인 유백이 대주인 점을 제외하면 신룡대는 무력집단으로선 다소 부족했다.

인원이 많은 것도 아니고, 소수 정예라고 말하기에는 개개인 무위가 높은 것도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이현성은 귀매를 은밀하게 지원했다. 그럼에도 신룡대와 위지천을 잃을 뻔할 정도로 위험했다.

빠드득!

‘마음 같아서는 놈들을 모두 쓸어버리고 싶지만…….’

처음 신룡대가 습격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현성은 바로 뛰쳐나갈 뻔했다.

위지천이 과거 맺은 악연의 고리라면 몰라도, 자신들의 명성만을 높이기 위해 불나방들이 너무 날뛰고 있었다.

문제는 그들이 정파에 적을 둔 세력들이란 점이었다.

이현성은 당장이라도 그들의 방파들을 쓸어내 보복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가장의 입장이 난처해질 수 있다는 제갈현지의 만류에 간신히 참는 중이었다.

‘참는 것은 이번뿐이다. 한 번만 더 내 사람을 건드린다면 정파라도 가만두지 않겠어.’

사파사세와 척을 져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던 이현성이었다. 그런 그가 정파의 방파들과 척을 지는 것을 두려워 할 리 없었다.

그들은 알까?

호랑이의 코털 아니, 용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것을.

“다행히 목숨을 잃은 분은 없었다고…….”

“장주님, 북경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이현성의 심기가 불편해 보이자 제갈현지는 그의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다.

그녀는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은 점을 강조하며 보고를 올렸다. 만에 하나, 사망자가 발생했다면 아무리 제갈현지가 만류했다고 해도 인내할 그가 아니었다.

때마침 손님이 찾아왔다는 경비대의 보고가 들어왔다.

그로 인해 제갈현지는 말을 잇지 못했다.

“북경? 객당으로 모시게. …소저.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예…….”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현성이 객당을 향하자 제갈현지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돌아서는 그녀의 발걸음이 왠지 무거웠다.

“뭐지? 예감이 좋지 않은데…….”

* * *

“제, 젠장!!”

위지천이 탄 마차를 쫓던 섬풍각의 무인들은 한탄했다.

지척까지 거리를 좁히는데 성공했으나 더 이상 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유백과 귀매가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신룡대는 위지천이 탄 마차를 호위하며 여산에 도달했다. 그 순간, 섬풍각주 연자흠의 눈동자에 광기가 번들거렸다.

“이렇게 포기할 순 없지! 쫓아라!”

“가, 각주님! 여산… 컥!!”

맹검을 베었다는 위명에 눈이 먼 연자흠은 이성이 마비되었다.

그는 무림성지인 성수의가의 권역에서 분쟁을 일으키면 안 된다는 묵계를 어기려 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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