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여산험로
“내 기대가 과했던가?”
“큭! 아…닙니다!”
한 청년이 실망감 어린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했다.
이에 수십의 사내들은 있는 힘껏 외쳤다.
사내들은 이가장의 무력대인 묵룡대(墨龍隊)였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다그치는 청년은 바로 이가장주 신검(神劍) 이현성이었다.
이가장의 일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그는 본격적으로 묵룡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이 수련을 게을리한 것은 아니었다.
허나 이현성의 눈에는 차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묵룡대가 강해지길 원했다.
그렇기에 이현성은 그들을 직접 가르친 것이다.
“그럼 증명하라! 나에게 너희의 가치를 증명하란 말이다!!”
“으아아악!!”
금군 출신인 묵룡대는 각기 칼(刀)과 창(槍)을 휘두르며 이현성에게 달려들었다.
실전보다 좋은 공부는 없는 법.
이현성은 실전에 가까운 비무를 통해서 묵룡대를 단련시켰다.
묵룡수를 익혀서인지 그들이 휘두르는 도격과 창격의 기세가 범상치 않았다.
챙! 챙! 챙!!
그렇다고 한들 이현성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자극했다.
“흑룡대(黑龍隊)는 지옥과 같은 수련을 하고 있으며, 신룡대(神龍隊)는 험로를 걷고 있다! …묵룡대는 그들보다 못하단 소릴 듣고 싶더냐!!”
“악! 악! 악!”
묵룡대는 대답할 힘도 없는지 ‘악’소리로 대답을 대신 했다.
그들의 눈에 서려 있는 독기를 보며 이현성은 내심 흡족했다.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열정에서 묵룡대의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다그침을 당하고 있지만, 결코 묵룡대는 약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간 두 수 이상 강해졌다.
허나 그것만으로 만족할 순 없기에 그들을 다그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들에게 전수한 묵룡수는 외문무공인 동시에 외가기공이었다.
열심히만 해준다면 일류고수는 물론 그 이상도 노려볼 수 있었다.
혈천의 목표는 천하일통. 피하려고 한들 피할 수 없다.
결국 언젠가는 그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즉, 앞으로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말이다.
살아남기 위해선 그들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그걸 알기에 이현성은 악역을 자처했다.
그들이 더 강해질 수만 있다면 악역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포기하지 마라! 꺾이지 마라! 적으로부터 도망치지 마라! 너희 묵룡대는 본장의 창(槍)이다!!”
“아악!!”
이현성의 외침이 그들의 마음속에 울림이 되었는지 묵룡대는 목이 쉬어라 악을 썼다. 그렇게 반 시진을 더 굴린 후에야 이현성은 검을 거두었다.
묵룡대에게 휴식을 허락한 그의 인상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묵룡대 때문이 아니었다.
이곳에 없는 위지천과 그를 호위하고 있는 신룡대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후… 모두 무사하려나…….’
* * *
“죽어라!!”
무기를 쥔 서른 명 가량의 무리가 달려들었다.
하나같이 흉흉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신룡대는 마차를 보호하며, 후퇴하라!!”
“어림없다!!”
챙!!
몇 배나 많은 적을 상대로 신룡대는 능숙하게 공격을 막아내며 물러났다.
습격을 당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가장 아니, 정주를 벗어난 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다.
그 사이 습격만 세 번째였다.
허둥지둥했던 첫 번째 습격과 달리 이젠 그들의 눈빛부터가 달라졌다.
세 번의 습격을 이겨내면서 신룡대 사이에 끈끈한 전우애가 생겨난 덕분이었다.
적들은 위지천의 마차를 잡기 위해서 달려들었다.
“자, 잡아!!”
“미안하지만, 그대들은 여기까지요!”
쾅!!
이를 두고 볼 유백이 아니었다.
그는 절정에 오른 검기를 휘둘러서 달려드는 적들을 위협했다.
그러면서도 부상을 입히되, 살인은 자제했다.
적이라고 하지만 그들에게서 마기(魔氣)나 사기(邪氣)가 느껴지지 않았다.
덕분에 유백은 그들이 정파출신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정파무림과의 악연은 이가장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만큼 유백은 손속에 사정을 둘 수밖에 없었다.
허나 저들은 맹검 위지천의 목을 노리는 자들이었다.
손속에 사정을 두면서 제압할 수 있는 만만한 자들이 아니었다.
또한 그들은 이대로 곱게 물러날 생각도 없어 보였다.
“크… 이놈! 본방을 방해하다니 가만두지 않겠다!”
“귀방을 방해한 것은 미안하나, 부장주님을 해하게 할 수는 없소!”
“정말이었군. 맹검이 천사교를 나왔다는 것이…! 흐흐흐… 호연방의 형제여! 악적 맹검을 베고, 본방의 의협을 만천하에 고하라!!”
호연방(浩然幇)은 낙양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정파의 방파였다.
개파한 지 오십 년만에 이룬 쾌거였다.
허나 그뿐이었다.
왜냐하면 낙양에는 낙양검문이라는 걸출한 대문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림 백대고수인 낙양비검(洛陽飛劍)의 낙양검문이 있는 이상 호연방은 낙양의 패자가 될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호연방의 이름을 알릴 기회를 얻게 되었다. 천사교 호교사자인 맹검이 낙양을 지나고 있단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아무리 호연방이 이름을 알릴 기회를 기다라고 있었다고 한들, 맹검 위지천의 목을 노릴 순 없었다.
맹검 위지천이 누구인가.
천사교의 호교사자로서 수많은 고수를 벤 초절정고수였다.
호연방이 낙양에서 제법 콧방귀를 뀌고 있다고 하지만 초절정고수는 어림도 없었다.
그럼에도 호연방은 욕심을 냈다.
맹검이 천사교를 탈교(脫敎)했다는 것과 극심한 내상을 입었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호연방은 이 기회를 다른 무림세력에게 빼앗기지 않으려 했다.
하여 맹검이 탄 마차가 낙양을 벗어나자마자 호연방의 정예만을 이끌고 습격한 것이다.
‘이번에는 쉽지 않겠어.’
앞서 두 번의 습격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절정고수인 유백이 적진에 뛰어들어 그들을 헤집어둔 후, 위지천이 탄 마차를 도주시키는 방식으로 습격자들을 떨칠 수 있었다.
허나 이번에는 그와 같은 방법이 통하지 않을 듯싶었다. 비록 대문파는 아니지만, 거의 대문파에 근접한 호연방이었다.
정예만 출정했기에 유백이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특히 호연방 사대고수 중 세 명이 동원되었다.
절정고수 셋, 일류고수만 수십이었다.
아무리 절정지경에 오르고, 검왕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들 아직은 무리였다.
챙! 챙!
“큭!”
“흐흐흐… 본방의 명성을 위해서… 헉!”
한 손이 열 손을 감당할 수 없는 법.
하물며 눈앞의 상대는 낙양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호연방의 고수들이었다.
결국 유백은 허벅지를 베이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신룡검법을 펼쳤다.
그를 조롱하던 호연방의 부방주는 고통을 참고 신룡검법을 펼치는 유백을 보며 기겁했다.
“신룡과… 큭!!”
“빌어먹을 자식!!”
유백이 상대해야 할 고수는 호연방의 부방주만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 온 호연방 삼대 고수인 회륜도가 부방주를 노린 유백의 검을 후려쳤다.
그 충격으로 유백은 나가떨어졌다.
“이 개잡놈이! 죽어라!!”
방심하다가 당할 뻔한 부방주는 씩씩거리며 칼을 들었다. 그리고 유백의 목을 베기 위해 칼을 강하게 휘둘렀다. 그의 분노가 담긴 도세는 강렬하기 그지없었다.
유백은 검을 들어 호연방 부방주의 칼을 막으려고 했다.
허나 급히 일어나며 막으려고 하니 검에 힘이 실릴 리가 없었다.
채~앵!!
“큭!”
유백의 검은 부방주의 칼을 감당치 못하고 튕겨나갔다.
이젠 더 이상 부방주의 공격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이를 악문 유백의 모습을 보며 부방주는 비열한 미소를 흘렸다.
“흐흐! 이제 진짜 죽… 컥!!”
콰쾅!!
어디선가 갑작스럽게 날아온 강기에 당한 것이다.
그것은 유백을 베려던 호연방의 부방주는 물론, 그 주변에 있던 고수들을 날려버렸다.
“우웩!!”
“같잖은 것들… 감히 본좌를 노려!”
“미, 미친! 맹검은 죽어가던 것이 아니었나!”
“후, 후퇴하라!!”
위기에서 유백을 구한 자는 바로 맹검 위지천이었다.
그는 초절정고수의 상징인 검강을 방출해서 호연방 고수들을 위협했다. 극심한 부상을 입어서 죽어간다고 들었던 맹검이 멀쩡히 검강을 휘둘렀다.
그걸 본 호연방의 정예들은 기겁하며 도망쳤다.
아무리 정예들이라도 초절정고수 앞에선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뭐, 하느냐… 유 대주를 데려오지 쿨럭… 우웩!!”
“조, 존명!”
호연방을 속이는데 성공했으나 그건 위지천의 허장성세에 불과했다. 환희요후에게 입은 내상으로 인해 강기를 운용할 상태가 아니었다.
위지천은 유백을 구하기 위해서 억지로 강기를 방출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약간이나마 호전되었던 내상이 다시 도졌다.
‘젠장… 천하의 맹검이… 이런 우스운 꼴이 되다니! 더욱 강해져야 해…….’
맹검 위지천은 약해진 스스로가 우습고 분했다.
그렇기에 부상을 회복하고 더 강해져야겠단 결심이 더욱 굳어졌다. 맹검 위지천과 신룡대의 섬서 여산행은 아직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 *
“…꼭 떠나야겠느냐.”
“죄송해요. 대사형 아니, 오라버니…….”
족히 지천명(知天命:50세)은 넘어 보이는 도사의 말에 중년 미부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 여인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도사가 나지막이 말했다.
“아버님께서 모질게 말씀하셨지만, 속마음을 다르시다는 것을 모르더냐.”
“…죄송해요.”
여인은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더 이상 사문에 돌아갈 수 없는 몸이었다.
설사 용서받는다 한들 아직은 돌아갈 수 없었다.
한(恨)을 풀지 못한다면 살아도 더 이상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사는 그런 여인이 그저 안타깝기만 했다.
“후… 령아… 잊지 말거라. 이 오라비는… 화산은 널 잊지 않고 있단다. 언제든 돌아오거라.”
“…죄송해요.”
도사의 소매에는 일곱 개의 매화 자수가 그려져 있었다.
도의(道衣)에 매화 자수가 있는 곳은 오직 단 한 곳.
구파일방의 하나인 화산파뿐이었다.
그런 화산파에서도 소매에 일곱 매화의 자수를 넣은 자 또한 단 한 명뿐이었다.
칠매신검(七梅神劍) 화천기.
화산 장문인 자하검제(紫霞劍帝)의 아들이자, 화산파 일대제자들의 대사형이었다.
그는 다음 대 화산 장문인으로 내정된 인물이었다.
화산파는 도문이지만, 제자들의 혼약을 금하지 않았다.
물론 혼약을 맺는 제자는 많지 않았다.
허나 현 장문인 자하검제는 화천기란 걸출한 인재를 낳았다.
물론 화천기가 다음 대 장문인으로 내정된 것은 자하검제의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인품은 물론, 화산파에 대한 애정 그리고 초절정에 오른 무위까지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화천기가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여인은 이십여 년전 화산의 품을 떠난 그의 누이였다.
“사질… 아니, 영아. 누이를 잘 부탁한다.”
“걱정 마셔요. 사부님은 제가 잘 모실게요. 사백님.”
화천기는 누이 옆을 지키고 있는 어여쁜 여인을 바라봤다. 자신의 딸보다 어리지만, 오히려 더 성숙해 보이는 여인이었다.
성숙하다는 것이 외형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정신적인 부분도 뜻했다.
‘다행이야. 저런 아이가 너의 곁에 있으니… 후. 못난 오라비를 용서하거라…….’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