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살수-143화 (143/314)

143화.

다시 말하면 혁련용후에게 2년이란 시간이 남았단 뜻이었다.

그 안에 할 수 있는 포석은 최대한 깔아야 한다.

“무림맹에 들어갈 수 있게 위장해둬야겠어.”

원래라면 직접 무림맹의 일원이 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혁련세가의 텃밭인 허창현에 무림맹 총단이 세워진다면 말이 달라진다.

다소 위험하지만 이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

혈천천하를 위해? 아니었다.

혁련세가의 미래를 위해서였다.

혈천의 이름 아래 모였으나 결국 혈천십삼세는 각자의 이득을 위해 모인 것이다.

그렇기에 서로 협조하면서도 견제하고 있었다.

“짧지 않은 2년이 되겠어.”

* * *

“형님, 몸은 좀 어떠십니까?”

환희요후에게 입은 내상이 심각한지, 위지천은 몇 달째 내상치료에만 매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만큼 환희요후의 극락환희무가 지독했던 탓이었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조금씩 좋아지고 있네. …그보다 자네 이야기는 들었네. 축하하네.”

“운이 좋았습니다.”

위지천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두 사람의 입장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근소하지만 그가 이현성을 앞서고 있었다.

그런데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이제 이현성의 검을 따라잡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앞서고 있었다.

위지천의 마음이 무거운 것은 당연했다.

“그보다 어쩐 일인가?”

“장원도 슬슬 자리를 잡아가니 여유가 생겼습니다. 해서 형님, 저와 유람을 다녀오시지요.”

“유람?”

예상치 못한 이현성의 말에 위지천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유람이라니, 너무 뜬금없는 말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몸 상태는 여유롭게 유람을 다닐 때가 아니었다.

그걸 모를 이현성이 아니기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섬서에 좋은 온천이 있다고 하더군요.”

“…설마 여산을 말하는 겐가?”

이현성의 말에 위지천의 눈이 커졌다.

여산은 섬서성의 성도인 서안 인근에 있는 산이다.

상처회복에 좋은 온천이 있기에 예전부터 유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이유로 더 유명해졌다.

바로 무림 성지라고 불리는 성수의가(聖手醫家) 때문이다.

오래 전, 한 의원이 여산을 찾아왔다.

여산의 온천이 환자들의 치료에 도움이 되어서였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어느덧 성수의가로 불리게 되었다.

“겸사겸사 성수의가에서 치료받으면 좋겠네요.”

“…….”

성수(聖手) 백우종은 황실의 태의(太醫), 지옥성의 독왕(毒王)과 함께 천하 3대 신의라고 불리며, 모든 의원들의 정점에 선 자였다.

게다가 신분, 재산, 권력은 물론, 정사마를 불문하고 환자라면 누구나 치료를 해주었다.

그로 인해 비난하는 자도 있었으나 절대다수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라면 위지천의 내상 역시 치료해줄 것이다.

“고맙네.”

“그럼 그렇게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위지천의 말을 승낙으로 받아들인 이현성은 떠날 채비를 하려고 했다.

허나 위지천은 고개를 저었다.

“그분의 치료를 받는 것이 불편하십니까? 그럼 다른 의원을 알아보겠습니다.”

“그게 아닐세. 여산에 다녀오겠네. 허나 나 혼자 다녀오겠네.”

“형님. 위험합니다.”

비록 탈교했다고 해도 천사교의 호교사자였다는 꼬리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과거에 맺은 악연이나 명성을 원하는 자들은 수두룩했다.

그들에게 내상을 입고 홀로 여산으로 떠나는 위지천은 좋은 먹잇감이 된다.

그걸 알기에 이현성이 동행하려는 거였다.

“알고 있네. 허나 이런 일로 자네가 자리를 오래 비우는 것은 좋지 않네. 자네는 이가장의 장주일세.”

“…….”

위지천은 그의 배려를 거절했다.

물론 장주로서 자리를 오래 비우면 안 된다는 말은 핑계였다.

신세만 질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걸 알기에 이현성은 쉽게 결정하기 어려웠다.

결국 이현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저는 동행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다른 동행을 붙이겠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알겠네. 그게 자네 마음이 편하다면…….”

이현성이 한발 물러서자 위지천 역시 한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누가 좋을까?’

* * *

“거절하겠소. 장주.”

“왜 그러십니까, 암월 호법.”

이현성은 위지천의 동행으로 암월을 선택했다.

초절정고수인 그라면 믿고 맡길 수 있을 듯했다.

허나 예상과 달리 암월은 이현성의 청을 거절했다.

“24대 암월로서 장주의 곁을 장기간 비울 수는 없소. 그리고 맹검… 아니, 부장주 역시 본인과의 동행이 불편하실 거외다.”

“…….”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천사교의 호교사자 출신인 위지천이 천웅방의 팔패였던 암월과 단둘이 섬서로 향하는 것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생각해보면 사파거물인 두 사람만 섬서로 보내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성수의가는 정사마의 분쟁을 금하는 성지와 같다.

그러나 여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구파일방의 화산파가 있었고, 종남파 역시 그리 멀지 않았다.

때문에 두 사람의 존재가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몰랐다.

덕분에 이현성은 생각을 바꿔야 했다.

“알겠습니다. 암월 호법의 의견을 존중하겠습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하오, 장주.”

결국 이현성은 아무 소득 없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게 되었다.

“장주님, 괜찮으세요? 뭔가 고민이 있는 얼굴이시네요?”

“아, 소저… 별일 아닙니다.”

우연히 만난 사람은 식객인 제갈현지였다.

신산 제갈윤호를 위시한 제갈세가의 고수들이 본가로 돌아갔음에도 홀로 잔류한 그녀였다.

“그러시다면 다행이지만… 언제라도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 말씀하세요. 미력하지만 장주님의 힘이 되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제갈현지의 말에 이현성은 마음이 흔들렸다.

그녀가 누구인가.

지봉(智鳳) 제갈현지였다.

‘만 상회주 때처럼 좋은 의견을 주실지도 몰라.’

그녀를 자신과 맺어주려던 제갈윤호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녀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현성은 그런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반성하며 입을 열었다.

“후… 저, 소저…….”

“예? 말씀하세요.”

내색하지 않았으나 제갈현지는 속으로 득의(得意)의 미소를 지었다.

이현성이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지만 보이지 않는 벽을 두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속상하면서도 오히려 열의를 불태웠다.

그의 마음을 갖겠다는 결심으로.

제갈현지는 이현성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서서히 다가갔다.

만홍규를 품게 만든 것도 그 일환이었다.

우연을 가장한 이 만남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 그가 드디어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려고 한다.

그녀의 노력이 조금씩 빛을 보기 시작한 셈이었다.

“…소저께서 아시겠지만 본장의 부장주님께서…….”

이현성은 위지천에 대한 고민을 그녀에게 토로했다.

그녀에 대해서 어느 정도 마음의 문을 열어놨다는 뜻이었다.

사내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라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그것을 바꾸는 것은 그녀의 몫이었다.

사내는 여인 하기에 따라 변하는 법이었다.

이현성의 설명을 들은 제갈현지는 잠시 고민을 했다.

“그럼… 신룡대를 동행시키면 어떨까요?”

“신…룡대를 말입니까?”

절정지경에 오른 유백은 이현성, 위지천 그리고 암월을 제외하고 이가장 내에서 가장 강했다.

게다가 그가 맡고 있는 신룡대도 열 명이니 호위하는데 번잡스럽지 않을 것이다.

“신룡대주이신 유백 님께선 절정고수이자 명가인 신룡유가의 후예이니, 습격하려는 자들도 부담이 될 거예요. 게다가 부장주님을 호위하는 동안 부장주님께서 유백 님은 물론, 신룡대원들에게 가르침을 주신다면 그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아니겠어요?”

“그럴…수 있겠군요.”

아무리 절정지경에 올랐다고 하지만 유백 아직 검객으로 부족한 점이 많다.

그 부분을 선배 검객으로서 위지천이 채워줄지도 모른다.

내상을 입었다고 하지만 맹검 위지천은 검으로 일가를 이룰 수 있는 고수였다.

‘임무를 통해 신룡대 내부의 단합력을 키울 기회도 되겠어.’

이현성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제갈현지는 쇄기를 박았다.

“아, 그리고 설지도 동행시키면 좋을 것 같아요.”

“남궁 소저를 말입니까?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본장의 가솔도 아니고, 객인 남궁 소저를 어찌…….”

남궁설지의 동행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현성을 보며 제갈현지는 차분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아시는지 모르지만… 설지가 요즘 유백 님과 가깝게 지내고 있습니다.”

“예?”

“강자를 좋아하는 아이답게 유백 님께 끌리는 것 같더군요. 다만… 유백 님께선 남궁세가라는 배경 때문인지 약간 선을 그으려고 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해서 저는 두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물론 장주님과 설지가 허락한다면요.”

“…….”

남궁설지가 유백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던 이현성으로서는 머리가 복잡했다.

이현성이 그녀에게 이성적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녀가 강자를 좋아하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가장에 온 것이니까.

그러니 남궁설지가 유백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도 이해했다.

다만 두 사람이 가까워진다면 유백이 이가장을 떠날 수도 있었다.

남궁설지는 누가 뭐라고 해도 검왕의 손녀이자 창천검군의 여식이었다.

두 사람이 맺어진다면 데릴사위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과정 역시 험난했다.

아무리 유백이 명가의 후예라 해도 신룡유가는 몰락한 가문이었다.

아니, 이미 사라진 가문이었다.

과연 남궁세가가 그를 인정해줄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유백이 마음의 상처를 받지는 않을지를 생각하니 친구로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비록 이가장의 신룡대를 맡겼으나 그는 자신의 수하가 아니었다.

설사 수하라고 해도 함부로 미래를 결정할 수는 없었다.

결정과 그에 대한 책임 역시 본인이 져야 한다.

그렇기에 유백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다.

“남궁 소저께 의향을 물어봐주시겠습니까?”

“예. 제가 대신 물어볼게요.”

남궁설지의 동행이 꼭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존재만으로 외부의 시비를 막을 수 있었다.

대 남궁세가의 꽃이 동행하고 있는 무리를 습격할 간 큰 자는 무림에 몇 없었다.

최소한 하남에서 섬서로 가는 길목에는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곁에는 그들이 있으니까.’

남궁무백이 남궁세가의 고수들을 모두 이끌고 돌아갔지만 사실 그렇지만도 않았다.

남궁세가의 금지옥엽을 홀로 놔둘 리가 없었다.

암중에 고수를 배치해 은밀하게 보호하게끔 했다.

이현성과 암월은 눈치챘지만 문제 삼지 않았다.

남궁설지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이 독박 쓸 필요가 없게 되니까.

‘이 일로 남궁 어른이 노발대발하실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지.’

* * *

“유… 오라버니께서 떠나신다고요?”

“정확히는 임무로 장기간 자리를 비우시는 거지.”

제갈현지의 말에 남궁설지는 움찔했다.

그녀가 유백과 가까이 지낸다던 제갈현지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