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살수-139화 (139/314)

139화.

“살…려…줘…….”

“네놈은 살려달라는 말에 살려준 적이 있더냐!”

푸욱!!

그녀의 검이 흑혈방주의 심장에 박혔다.

순간 그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리더니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철푸덕.

양부와 친부의 원수를 갚은 귀매는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더 이상 삶에 미련이 없는 귀매는 옆에 떨어져 있는 독안귀의 검, 귀검을 쥐었다.

그리곤 스스로의 심장을 노렸다.

허나 귀검은 움직이지 않았다.

언제 다가왔는지 이현성이 귀검을 잡았기 때문이다.

“당신의 목숨은 이제 제 겁니다. 그러므로 제 허락 없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금하겠습니다.”

“…….”

독안귀는 흑혈방주를 죽이는 대가로 자신의 모든 것을 이현성에게 양도했다.

중앙북로의 나머지 절반과 더불어 축적한 재산 등을 모두.

억지에 가깝지만 독안귀의 양녀이자 수하인 그녀의 목숨도 이제 이현성의 것이 된 셈이었다.

“…존명.”

“좋습니다. 첫 번째 명령을 내리죠. 3일 드리겠습니다. 귀 노사에 대한 예의와 지난 감정을 정리하고 오세요.”

“존명!”

이현성의 명령을 가장한 배려에 귀매는 독안귀의 시체를 조심스럽게 챙겨서 사라졌다.

그 후, 이현성이 나직하게 말했다.

“허 대주는 귀면이란 자와 그 수하들을 정리하고 오게.”

“존명!”

허정을 필두로 묵룡대가 은밀하게 이가장을 빠져나갔다.

묵룡수의 수련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그들의 기세는 예전과 많이 달려져 있었다.

이현성은 구경꾼들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밤이 늦었는데 그만 주무실까요?”

* * *

“북로상회에 가입하고 싶소!”

“나, 나도 가입시켜주시오!”

아침 해가 뜨기 무섭게 정주가 발칵 뒤집어졌다.

지난밤 이가장에서 있었던 일이 빠르게 퍼졌기 때문이다.

중앙북로의 절반을 관리하던 독안귀가 죽고, 실질적으로 관리하던 귀면과 수하들이 이가장의 무사들에게 잡혀갔다.

그들에게 보호비를 내던 점주들은 더 이상 눈치 볼 필요도 없이 곧바로 북로상회에 가입했다.

다른 흑도 무리가 움직이기 전에 이가장의 그늘에 숨기 위함이었다.

“저희 북로상회에 가입하게 되면…….”

“상관없소! 만 상회주, 가입만 시켜주시오!”

“이미 다 듣고 왔습니다!”

만홍규는 북로상회주로서 상회의 회칙을 설명하려고 했으나 이미 정주의 상인이라면 그에 대해 모두 알고 있었다.

덕분에 다시 설명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물밀듯이 몰려드는 점주들을 북로상회의 일원으로 가입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의외로 글을 모르는 자가 많아서였다.

장부를 관리하기 위해 글은 필수였다.

허나 모든 상인이 글을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규모가 작은 소상의 경우는 장부를 쓸 정도로 규모 있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글을 몰라도 상관이 없었다.

그런 소상들이 제법 많았다.

그러다 보니 계약서를 읽어주는 번거로운 작업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상회주로서 회원들이 늘어나는 것은 기쁜 일이기에 전혀 힘든 티를 내지 않았다.

“축하합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북로상회의 식구입니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상회주님.”

북로상회에 새롭게 가입한 점주들은 만홍규를 어려워했다.

자신들을 대표할 상회주이기도 했으나 이가장의 가신이란 사실을 모두 알기 때문이다.

만홍규로서는 아쉬우면서 동시에 뿌듯했다.

‘이제 진짜 시작이야.’

북로상회의 원래 목적은 이가장의 보호를 받기 위함이었으나 이제는 조금 다르다.

회원들의 보호는 물론, 상회 본연의 역할 역시 시작해야 했다.

회원들의 점포에서 사용될 물자공급도 해야 했다.

어찌 보면 북로상회의 가장 큰 힘인 셈이었다.

‘공급계약 맺을 상단을 알아보고, 창고도 알아봐야겠어.’

아직 북로상회의 힘만으로 여타 상단처럼 직접 물자를 구입 및 유통을 하긴 어려웠다.

그렇기에 우선은 기존 상단과의 대량 계약을 통해서 물자의 단가를 낮추고, 회원들의 점포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방식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임시로 물자를 보관할 창고와 이를 관리할 관리자 등 많은 비용이 소요되겠지만, 다행히 회원들이 지급한 상회 운영비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만홍규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날벼락을 맞은 곳이 있었다.

* * *

“이가장에서 왔다. 책임자를 데려와라.”

이가장의 호법 암월은 이현성을 대신해 묵룡대를 이끌고 정주 서문(西門)을 대표하는 흑혈방에 방문했다.

이미 정주가 떠들썩한데 흑혈방만 상황을 모를 리가 없었다.

반신반의하고 있던 흑혈방의 방도들은 이가장 고수들의 방문에 그제야 소문이 사실이란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그들의 뒤에는 눈에 익은 자들이 줄줄이 묶여 있었다.

전날 이가장을 습격한 흑혈대 중 생존자 십여 명이었다.

그 외에 죽어서 관에 실려 있는 이들도 있었다.

덕분에 흑혈방도는 무척 긴장하는 눈치였다.

“저… 그, 그게…….”

“본장, 호법님을 무시하느냐!”

“아, 아닙니다!”

쭈뼛거리는 흑혈방의 방도를 보며 암월 대신 허정이 호통을 쳤다.

그때 문이 열리며 몇몇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눈에 봐도 고수들임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그들 너머 족히 이백여 명은 되어 보이는 장한들이 보였다.

덕분에 묵룡대는 긴장을 했다.

허나 그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암월은 그저 평이한 어조로 말했다.

“이가장의 호법 암월이오. 장주님을 대신해서 귀방의 책임자를 만나러 왔소.”

“…흑혈방의 부방주인 흑풍이라고 합니다.”

암월을 맞이한 자들은 흑혈방의 부방주 및 호법들이었다.

즉, 죽은 방주를 제외한 흑혈방의 수뇌들이었다.

부방주인 흑풍은 절정고수였고, 호법들 역시 절정에 육박한 고수들이었다.

대문파라 칭하긴 어렵지만, 그에 근접한 전력이었다.

묵룡대만으로는 절대 감당할 수 없는 전력이었다.

허나 그건 묵룡대만일 때의 이야기였다.

초절정고수인 암월에겐 아무 위협조차 되지 않았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현재 흑혈방 최고수인 부방주 흑풍은 암월이 예사고수가 아님을 알아차리고 조심스럽게 대했다.

“본방에 오신 용무를 말씀해주십시오.”

“…귀방의 방주 예하 흑혈방 고수들의 시신과 포로들을 인계하기 위함이오.”

암월의 말에 흑풍은 물론, 흑혈방 고수들의 눈에 낭패감이 어려 있었다.

흑혈방주가 얼마나 대단한 고수인지 알고 있으며, 최고의 무력대인 흑혈대의 실력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흑혈방주의 시신과 포로가 된 흑혈대를 인계하러 왔단 말은 흑혈방은 이가장의 상대가 아니며, 빌미까지 제공했단 뜻이었다.

즉, 이가장의 대표로 온 암월이 어떤 보상을 제시하건 흑혈방은 거부할 수 없었다.

물론 이제는 거부할 힘도 없었다.

“허 대주, 넘겨줘라.”

“예! 호법님.”

암월의 말에 허정은 죽은 흑혈방주의 시신 및 포로들을 넘겨주었다.

그들의 얼굴을 본 흑풍과 흑혈방 고수들은 모두 착잡한 표정이었다.

이제 암월의 조건을 들을 때였다.

“그럼 우린 이만 돌아가겠소.”

“자, 잠깐만! …본방이 어떤 보상을 치르면 됩니까…….”

흑풍을 되돌아가려는 암월에게 다급히 물었다.

그는 이가장의 태도를 선전포고로 봤다.

비록 자신과 호법들 그리고 이백여 명의 수하들이 있으나 이가장의 습격을 막을 수 없단 것을 알았다.

때문에 전쟁만은 무조건 막아야 했다.

흑풍의 물음에 암월은 뒤를 돌아봤다.

“보상? 장주님께선 그에 관한 말씀이 없으셨소.”

“보, 본방의 죄를 인정하겠습니다! 부디, 부디 멸문만은 면하게 해주십시오!”

무릎을 꿇은 부방주의 흑풍의 행동에 호법들 역시 급히 무릎을 꿇었다.

맹인 검객 한 명에게 대력괴곤(大力怪棍)이 죽고, 대력보가 해산되었다.

이가장의 힘은 진짜였다.

흑혈방 역시 같은 절차를 겪을 순 없었다.

치욕스럽지만 흑풍은 무릎을 꿇었다.

그런 그를 향해 암월은 여전히 평이한 어조로 말했다.

“오해를 한 것 같소. 본장은 귀방을 멸문시킬 생각이 없소. 본장을 침범한 자들만 벌했을 뿐, 장주께선 그 죄를 그대들 모두에게 전가시킬 생각이 없으시오. 물론 본장의 식솔이 다쳤다면 뿌리를 뽑으셨겠지만…….”

오싹!

암월의 말에 좌중은 감당키 힘든 오싹함을 느꼈다.

경고나 위협과는 조금 달랐다.

이건 선언이었다.

이가장에 도전할 수는 있으나 그에 따른 대가는 알아서 감당하라는 선언.

“두, 두 번 다시 이가장의 식솔들을 위협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당연하오. 그럼 이만…….”

암월이 움직이자 그 뒤를 허정과 묵룡대가 따랐다.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존재감은 흑혈방은 물론, 흑혈방의 멸문을 지켜보려고 모였던 이들의 뇌리에 깊게 각인되었다.

이로써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정주의 진정한 패자가 누구인지를.

무릎을 꿇었던 흑풍이 일어났다.

“외부에 나가 있는 방도를 모두 소집해라.”

“서, 설마… 이가장을!”

“아, 안 됩니다!”

호법들은 기겁하며 흑풍을 만류했다.

이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상상을 하는 겐가! 방주님과 흑혈대의 부재로 인해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하려는 건데…….”

“아… 알겠습니다.”

다행히 흑풍은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실을 다지며 자리보전하는 것을 택했다.

옳은 선택을 한 것이다.

허나 언제나 불가항력이란 것이 존재한다.

그것을 지금의 흑풍과 흑혈방은 알지 못했다.

신룡대

“예정대로 오십 명을 본장의 경비대원으로 고용했습니다만…….”

“북로상회의 경비까지 감당하려면 부족하겠지. 수고스럽겠지만 허 대주가 조금 더 알아봐 주게. 우선 일백 명까지로 하세.”

장원 경비 및 사업장 순찰만이라면 새로 고용한 경비대와 묵룡대로 충분했다.

허나 북로상회의 본부 및 창고 역시 보호해야 한다.

게다가 묵룡대는 묵룡수 수련에 집중해야 할 때다.

잠깐씩 순찰을 도는 것은 몰라도 많은 시간을 빼는 것은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어차피 북로상회로부터 경비대 운영비를 지급받고 있으니, 경비대를 늘리는 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경비대를 둘로 나누어서 본장과 상회를 번갈아가며 담당하게끔 하게. 장 부대주와 임 부대주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테니까.”

“물론입니다. 주군. 그리고 본장에 의탁하고 싶다는 무림인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으음… 본장은 식객을 받을 생각이 없네. 본장의 무인이 되고 싶은 자만 추리게. 그중 면담을 통해서 일부만 받도록 하지.”

제법 힘을 가진 가문은 식객을 받는다.

그들은 가문에 종속된 것은 아니지만, 가문으로부터 편의를 제공받는 대신 필요에 따라서 힘을 보태준다.

무림인이라면 무력을, 학사라면 학문을, 기인이라면 기예를.

이는 무림세가만 아니라 상가나 고관의 가문 역시 그렇다.

한때는 식객의 수로 그 집안의 성세를 판단하던 시기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현성은 그런 식객을 받지 않겠다고 한다.

식객이란 어중간한 관계는 필요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남궁무백과 제갈윤호 그리고 유백의 경우는 예외였다.

귀환살수

— 문지기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