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결국 그는 선을 넘어서고 말았다.
“…창궁약연(蒼穹躍鳶)!!”
“헉! 신룡유희(神龍遊戱)!”
남궁장천은 아직 완숙해지지 않은 창궁무애검법을 펼치고 말았다.
명문검가인 남궁세가가 보유한 수많은 검법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절학, 창궁무애검법이 발현되었다.
절학이라 불릴 정도로 위력도 강했고, 익히기 어려운 검법이었다.
반대로 제대로 익히지 못하면 적은 물론 자신까지 해할 수 있었다.
검(劍)이, 무학(武學)이 비인부전인 이유였다.
그릇된 자에게 전수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상대는 원수도 아닌 일개 비무 상대다.
그렇다고 이현성처럼 절대적 실력 차이를 보유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익숙하지 않은 창궁무애검법을 펼쳤다는 것은 크나큰 실책이었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유백은 신룡검법의 다섯 번째 검식인 신룡유희를 펼쳤다.
깨달음을 통해서 복원한 신룡유희였지만 아직 완벽하진 못했다.
그러나 그의 입장에선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때였다.
유백의 검이 평소와는 조금 다른 변화를 일으켰다.
실전에 가까운 상황에서 신룡유희의 진정한 묘리를 깨달은 것이다.
콰콰쾅!!!
남궁세가의 절학인 창궁무애검법과 신룡유가의 전부라는 신룡검법의 충돌이 가벼울 리 없었다.
주변에 끼친 여파도 대단했지만, 그 위력을 감당해야 하는 두 사람 또한 멀쩡할 리가 없었다.
“에엥! 어리석은 녀석…….”
“어르신, 그 친구에게 빚을 지신 겁니다.”
기절하긴 했으나 의외로 부상은 크지 않았다.
중간에 손을 쓴 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검왕 남궁무백, 바로 그였다.
가벼운 비무라면 몰라도 검기까지 일으켰다.
화경고수인 남궁무백의 기감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만이 아니었다.
제갈윤호와 이현성 역시 움직였다.
암월은 관심이 없는지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그들은 두 사람의 비무를 중단시키지 않았다.
제법 위험했지만 그들이 지켜보고 있는 이상 최악은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실도 모른 채 두 사람은 마지막 선을 넘어버렸다.
만약 검왕이 손을 쓰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무사할 수 없었다. 아니, 다시 검을 쥐지 못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을 지도 모른다.
“저 아이의 검을 봐주마. 그런데… 혹시 저 아이…….”
“…신룡유가군.”
“맞습니다. 유일한 후손입니다.”
지금이야 몰락했으나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천북운가와 견줄 수 있는 사천무림의 명가였다.
그런 신룡유가의 신룡검법을 남궁무백과 제갈윤호가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제 친구입니다. 남궁세가로 끌어들일 생각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끙… 알겠네.”
신룡유가의 마지막 후손이라면 세가로 끌어들일 가치가 충분했다.
남궁세가의 혈족 중 괜찮은 여아와 엮어주면 충분히 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현성이 이렇게 대놓고 말하니, 탐이 나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건 제갈윤호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유백의 입장에선 아찔한 순간이었으나 대신 꿈을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검왕 남궁무백의 가르침을 받을 기회를 얻었으니까.
이현성은 멀리서 그를 보며 응원했다.
‘유 형, 이건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부디 꿈을 이루십시오.’
신룡검객 유백, 그는 그렇게 날개를 펼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북로상회
“죄송합니다.”
“…아닐세. 수고했네.”
이가장을 떠난 경비대 전(前) 부대장인 적운이 황도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그가 모시는 태천광을 찾아갔다.
그가 돌아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에 내색하지 않았을 뿐, 태천광은 심기가 불편했다.
동시에 아쉬웠다.
악의(惡意)로 감시자를 남긴 것은 아니지만 당사자인 이현성 입장에선 불쾌할 수 있었다.
장원을 넘겨주면서까지 호의를 샀는데, 결국 소용없게 된 셈이었다.
“자네의 자리를 준비해둘 테니 쉬고 있게.”
“감사합니다.”
태천광은 더 이상 태가장주나 지휘사가 아니었다.
구룡검주인 주가려를 보좌하고 있었다.
다만 구룡검의 존재가 기밀사항인 만큼 어림군의 부군장이란 공식적인 관직을 맡았다.
어림군(御臨軍)은 황제를 수호하는 직속부대였다.
허나 황궁의 수비는 금의위와 금위군이 맡고 있기에 어림군은 예비대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어림군의 부군장은 직위에 비해 권한이나 권력에서는 먼 한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주가려를 은밀하게 보좌하는 그의 입장에선 오히려 적합한 관직이었다.
적운을 쉬게 한 후 태천광은 주가려를 찾아갔다.
“…성급한 판단이었네.”
“죄송합니다. 마마.”
주가려의 질책 아닌 질책에 태천광은 송구할 뿐이었다.
정주는 무림만 아니라 황실의 입장에서도 무척 중요한 지역이었다.
그렇기에 황실의 비밀거점인 태가장을 세웠던 것이다.
황실의 흔적을 철저하게 지운 후 이현성에게 넘겨주었지만, 그는 황실사람이 아니었다.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감시자들을 남겨두었다.
그만큼 황실을 향한 태천광의 충성심과 조심성은 뛰어났다.
문제는 심복인 적운이 발각된 상황이었다.
심어둔 다른 경비무사나 식솔들 역시 발각되지 않을 리 없었다.
실제로 이현성은 마 집사를 통해 식솔들의 흔들린 마음까지 추슬렀다.
더 이상 태천광의 지시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미 벌어진 일, 그댈 책해서 달라질 것은 없네.”
“죽여주십시오! 마마.”
“갈(喝)! 그대 목숨은 황제폐하의 것이다. 함부로 목을 내놓지 마라!”
주가려의 따끔한 호통에 태천광은 어깨가 들썩였다.
그의 충심은 믿을 수 있었다.
이런 사태가 결국 그의 충심에서 나온 행동임을 알기에 더욱 씁쓸했다.
‘앞일을 생각하면 그의 도움이 필요하거늘… 후… 이 일로 앙심을 품을 자는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더 좋은 연을 쌓아야 하는데, 오히려 안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으니 안타깝기만 한 그녀였다.
허나 이미 벌어진 일을 마음에 둬봤자 바뀔 것은 없었다.
“돌아가서 자중하시게.”
“소신은 이만 물러나겠사옵니다. 마마…….”
태천광이 돌아가자 주가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직하게 말했다.
“수련을 하고 있을 테니, 자네가 내 역할을 수행하고 있게.”
“예. 마마.”
주가려가 비밀통로로 들어가자 그녀와 꼭 닮은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주가려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역할을 대신하는 황실 여고수였다.
그녀 덕분에 주가려는 수련에 매진할 수 있었다.
구룡검주로서의 자격을 갖추려면 수련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주가려는 검을 쥔 채 비밀연공실로 향했다.
구룡검이 더 이상 무겁게 느껴지지 않아야 했다.
* * *
“흡흡… 하…하…….”
남궁장천과의 비무로 기절했던 유백은 깨어나자마자 운기행공을 했다.
다행히 내상을 입지는 않았다.
운기행공을 하는 것은 소모한 내공을 회복하기 위한 무인으로서의 본능적인 행위였다.
운기행공을 하던 그는 놀라고 있었다.
부상이 심하지 않은 것도 놀랍지만 그보다 기의 움직임이 예전과 많이 달라진 상태였다.
운기행공을 마친 유백의 눈이 서서히 떠졌다.
“후…….”
“…괜찮으십니까, 유 형.”
“제 호법을 서고 계셨군요. 감사합니다. 이 형.”
눈을 뜬 유백의 눈앞에 이현성이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호법을 서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 이현성에게서 느닷없이 축하의 말을 듣게 되었다.
“아닙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역시… 제가 벽을 넘은 것이 맞군요. 남궁 대협께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겠네요.”
“언제 넘었어도 넘을 벽입니다. 오히려 그의 억지 때문에 위험했습니다.”
놀랍게도 유백은 절정지경에 오르게 되었다.
물론 계기가 필요했을 뿐, 이미 그는 그 전부터 절정에 한발 걸치고 있었다.
그렇기에 검룡 남궁장천의 검을 무리 없이 받아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전화위복인 셈이었다.
물론 유백이 절정지경에 오른 것에 남궁장천의 덕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선을 넘은 그의 검을 상대한 것이 계기가 되어 신룡유희의 묘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결국 벽까지 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유 형, 편한 대로 하십시오. 참! 선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선물… 말입니까?”
어리둥절한 유백을 향해 이현성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어진 말에 유백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이번 일로 미안하다시며, 남궁 어른께서 유 형의 검을 봐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나, 남궁 어른이시라면… 검왕 님께서 말입니까! 어, 어찌…….”
“당황하지 마십시오. 유 형은 그분의 가르침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유백은 황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검왕이 누군가?
검을 쥔 이라면 모두 목표로 삼는 검의 절대자였다.
그런 검왕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은 영광이었다.
허나 유백은 아직 몰랐다.
이현성의 선물이 그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의 움직임이 예전과 달라진 것은 절정지경에 올랐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유백이 기절해 있을 때, 이현성이 추궁과혈(推宮過穴)의 수법으로 그의 막힌 혈을 풀어준 덕분이었다.
허나 이현성은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비록 나이 차이가 나지만, 마음을 나눈 진정한 친구였기에 생색을 내고 싶지 않아서였다.
또한 진심으로 그가 대성하길 응원하고 있었다.
오히려 추궁과혈밖에 해줄 수 없는 것이 미안할 뿐이었다.
그 시간 남궁장천은 조부인 남궁무백에게 호되게 혼나고 있었다.
* * *
“이게 무슨 추태더냐!”
“죄…송합니다. 조부님.”
남궁장천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대 남궁세가의 종손으로서 일개 호위무사조차 이기지 못했다.
가문의 이름에 먹칠한 셈이었다.
허나 남궁무백이 화를 내는 것은 그 점이 아니었다.
“뭐가 죄송하느냐. 뭘 잘못한 줄은 아느냐?”
“유 무사에게 패배를…….”
“갈! 아직도 잘못을 깨닫지 못했군!”
조부의 호통에 남궁장천은 움찔했다.
그런 손자를 남궁무백은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자신의 잘못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한 손자에게 적잖은 실망을 한 것이다.
“넌 상대를 경시했다. 상대가 누구냐가 뭐 그리 중요하더냐! 세 살짜리 아이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더냐! 하물며 상대는 평생 검을 익힌 검객이며, 명가의 후손이었다. 네 잘못은 패배한 것이 아니다. 그 오만한 점이다! 남궁의 검은 결코 오만하지 않다!”
“…죄송합니다.”
남궁장천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 손자를 보며 남궁무백은 이제 정신을 들었겠다 싶었는지 밖으로 나갔다.
그에게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테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사람이 찾아왔다.
어찌 보면 지금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죄송합니다. 남궁 대협…….”
“…그게 무슨 말입니까, 유 대협. 사과드릴 사람은 오히려 접니다.”
불청객은 바로 유백이었다. 감사의 인사를 드릴 겸 찾아왔다.
그로서는 남궁장천 덕분에 벽을 넘은 셈이었다.
허나 남궁장천의 입장에선 난감했다.
감사의 인사는커녕 사과를 받을 입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사과를 해야 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