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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129화 (129/314)

129화.

살기를 뿜어낸 것은 아니지만 제법 강렬한 시선들이 집중되었음에도 태연한 모습을 보이는 이현성.

오히려 제갈윤호는 그 배포가 마음에 들었다.

“만나서 반갑네. 주변에 잠시 일이 있어서 지나다가 들렸네. 실례가 되는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제갈 소협의 조부님이시니 충분히 감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현성은 그가 무림맹 결성 때문에 소림에 다녀오는 길임을 알 수 있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제갈윤호는 이현성을 보며 실소했다.

누가 감히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을까?

이현성의 말이 제갈세가 고수들의 시선이 불편하다고 지적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덕분에 제갈세가 고수들은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들은 울컥했으나 곧 분노를 가라앉혔다.

이현성은 알 수 있었다.

제갈윤호가 전음으로 별도의 지시를 내렸다는 사실을.

아니, 애초 그들의 무례를 저지하지 않은 것도 이현성의 반응을 보기 위함이었다.

그걸 이현성 역시 알고 있었다.

덕분에 중간의 입장인 제갈현도만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제갈 소협, 왜 그렇게 안절부절못하십니까?”

“아… 그, 그게…….”

“앉거라. 자리도 많은데… 그리고 금검대주는 대원들과 자리를 비켜주게.”

“…존명…….”

놀랍게도 그들은 금검대(金劍隊)였다.

제갈세가는 여러 집단을 보유하고 있으나 그중 두 개의 집단이 유명했다.

하나는 비선조직인 무영대였고, 나머지 하나는 무력대인 금검대였다.

남궁세가의 제왕검대, 하북팽가의 벽력십팔도에 비교할 수는 없으나 제갈세가 제일의 무력대가 바로 금검대였다.

또한 금검대주인 금검은 제갈세가의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수이기도 했다.

가주의 명에만 움직이는 그들이지만 태상가주와 제갈현도의 호위를 위해서 움직인 것이다.

“‘우연히’ 재미있는 소문을 들었네.”

“재미있는 소문이란 뭘 말씀하십니까? 노선배님.”

이현성은 제갈윤호가 뭘 말하려는지 알았으니 모른 척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제갈윤호는 이현성이 보통내기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허나 그 모습이 싫지 않은지 미소를 지었다.

“자네의 장원에 천사교의 고수가 있다고 하더군.”

“그렇습니까? 본장에 천사교의 고수가 있는 줄은 몰랐군요.”

“그 말은 귀장에 맹검(盲劍)이 없다는 말인가?”

“저희 부장주님의 별호가 맹검은 맞습니다.”

이현성의 말장난(?)에 제갈윤호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이현성의 반응은 바뀌지 않았다.

제갈윤호는 조금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노부와 장난을 치려는 겐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언제 노선배님과 장난을 치려고 했다는 말씀이신지요?”

순간 제갈윤호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세가 흘러나왔다.

허나 이현성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을 뿐, 겁을 먹은 반응은 아니었다.

덕분에 제갈현도는 더욱 안절부절못했다.

“맹검이 부장주라면서 어찌 천사교의 고수가 없단 말인가!!”

“오히려 제가 묻고 싶은 말씀입니다. 이미 부장주… 아니, 형님께서 탈교하셨음을 아실 텐데 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순간 제갈윤호의 기세가 사라졌다.

제갈윤호는 이현성의 대답을 듣고 피식거릴 뿐이었다.

생각보다 더 당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제갈윤호는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이현성을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화를 낸 것이다.

“건방진 녀석이군. 맹검을 믿는 겐가? 아니면 원래 그렇게 건방진 겐가?”

“둘 다 아닙니다. 저는 당당한 것뿐이고, 상대의 태도에 따라서 행동이 달라지는 것뿐입니다. 건방지게 보였다면 제가 실례를 했군요.”

“허…! 정말이었군. 자네가 천사교의 환야를 죽인 것이 사실이었군. 그것도 맹검이 아닌 자네에게…….”

이현성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사천당가의 호법조차 누른 이현성에게 신검이란 별호를 주었으나, 실제 무공수위는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소림에서 들은 말대로 환야가 이가장을 습격했다가 목숨을 잃었다면, 당연히 맹검에 의해 벌어진 일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자신이 착각했음을 알게 되었다.

맹검이 아닌 이현성, 그의 검에 의해 환야가 죽었음을.

곁에 있던 제갈현도는 기겁했다.

조부의 말을 믿기가 어려웠다.

물론 이현성이 구룡조차 아래로 보는 신성임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천사교의 오대 교령인 환야를 베었다는 것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후기지수 수준의 일이 아니었다.

“형님과 은원이 있으십니까? 그것 때문에 방문하신 겁니까, 노선배님.”

“은원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문제를 일으킬 정도는 아닐세.”

사파사세인 천사교의 호교사자인 만큼 정파무림과 마찰이 없을 순 없었다.

다행히 제갈세가와 직접적인 마찰은 없으나 간접적인 마찰은 있었다.

다만 제갈윤호의 말처럼 지금 당장 싸워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노부가 귀장에 방문한 것은 자네 때문일세.”

“저… 때문입니까? 전 제갈세가에 원한을 진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원한은 없지만, 은혜를 입었지. 내 손녀가 말일세.”

사실 이현성은 제갈현도보다 여동생인 제갈현지와 연이 깊었다.

진주언가에서 여인으로서 차마 받아들이기 힘든 치욕을 당할 뻔한 그녀를 이현성이 구해줬다.

그 이후, 제갈현지는 이현성에 대한 감정이 호감에서 사모로 바뀌었다.

“…그런 적이 있었지요.”

“그래서 자네가 좀 궁금했네. 어떤 사람인지 말이야.”

“그러셨군요.”

이현성도 그가 적의를 가진 것은 아님을 느끼고 있기에 경계하진 않았다.

설사 적의를 가졌다 해도 상대할 자신이 있다는 자신감 덕분이기도 했다.

제갈윤호가 강호칠기에 속한 것은 뛰어난 지략 덕분이지, 무위 때문은 아니었다.

무림 백대고수의 상위고수와 견줄 수 있는 이현성으로서는 굳이 그를 두려할 이유가 없었다.

“못 들었나보군. 본가에서 북경에 사람을 보낸 것을…….”

“북경이라면 문가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무슨 일로…….”

여러 세력으로부터 영입제안을 받았던 것처럼 제갈세가 역시 그런 목적으로 사람을 보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매파였네. 자넬 손녀사위로 삼기 위해서 말일세.”

“……!!”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이현성은 처음으로 당황했다.

그 모습을 제갈윤호는 흥미롭게 바라봤다.

그도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흔들린 그를 공략할 기회라 생각했는지 의사를 밀어붙였다.

“그건 지금도 유효하네.”

“…제안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

이번에는 제갈윤호 그리고 제갈현도가 깜짝 놀랐다.

거절할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제갈현지가 누군가.

삼봉오화사미 중의 지봉(智鳳)이었다.

외모, 배경 그리고 능력까지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무림 최고의 여인이 바로 그녀였다.

모든 사내가 원하는 그녀의 부군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단번에 발로 찼다.

두 사람은 당황을 넘어 기가 막혔다.

아니, 화까지 났다.

“검화 때문인가? 아니면 얼마나 대단한 아이가 있기에 노부의 손녀를 거절하는 겐가?”

“검화? 남궁 소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녀가 왜……?”

제갈윤호는 아차 했다.

눈치를 보니 검왕의 말과 달리 아직 매파를 보낸 것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이다.

“흠흠…! 그럼 왜 노부의 손녀를 거절하는 겐가?”

“아직 혼사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도, 그럴 여유도 없습니다. 게다가 제갈 소저와는 아무런 사이가 아닙니다. 혼사를 거론할 정도의 관계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의 대답에 제갈윤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전혀 기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차라리 제갈현지를 거부할 정도의 대단한 대상이 있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저 깊은 관계가 아니란 대답은 적합한 대답이 아니었다, 최소한 그에게는.

“노부의 손녀사위가 된다는 말은 본가의 사위가 된다는 말일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설사 혼사를 치르더라도 정략을 위한 방책으로 이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자네… 생각이 어리군.”

제갈윤호 역시 정략결혼을 옹호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렇다 할 배경이 없는 이현성을 손녀인 제갈현지가 원할 때 허락해준 것이다.

허나 이현성의 반응은 한 세력의 수장답지 않았다.

정략결혼을 무작정 거부하는 태도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저는 처가에 기대야 할 정도로 약하지 않습니다.”

“…대단한 배경을 가진 세력과는 혼사를 치르지 않겠다는 말로 이해해도 되겠는가?”

“제 말을 오해하셨군요. 제가 혼사를 치른다면 사랑하는 여인과 하겠다는 겁니다. 배경과 상관없이 말입니다. 노선배님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제갈 소저에게 애정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지, 제갈세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제 말로 오해하게 해드렸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제갈현도는 이현성의 말에 불쾌한 마음이 들었지만, 동시에 조부가 분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하지만 제갈윤호의 마음은 제갈현도의 생각과는 좀 달랐다.

‘이래서 현지와 설지 고것들이 애달프게 된 건가.’

제갈윤호는 이현성의 당당함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그렇기에 더욱 탐이 났다.

“노부의 손녀를 거부한 것이 별다른 애정이 없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럼 애정이 생긴다면?”

“그야… 뭐…….”

예상치 못한 제갈윤호의 반응에 이현성은 당황했다.

이 상황을 놓칠 제갈윤호가 아니었다.

“확실하게 말하게.”

“제갈 소저에게 애정이 생긴다면… 제가 먼저 청혼을 하겠지요.”

“좋네. 자네가 노부의 손녀에게 애정을 가지지 못한 것은 아직 그 아이의 매력을 못 느꼈기 때문이겠지. 현도, 너는 당장 본가에 연락해서 현지를 이곳으로 보내라고 전하거라. 한솥밥을 먹다 보면 마음이 바뀌겠지.”

“예?”

“예?”

제갈윤호의 말에 두 사람, 제갈현도와 이현성은 순간적으로 얼이 나갔다.

화를 냈으면 냈지, 이런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제갈현도의 반응은 기겁에 가까웠다.

자신이 아는 조부는 절대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제갈윤호는 두 사람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쯧…! 젊은 녀석들이 왜 말귀를 못 알아먹어? 다시 말해줘야겠느냐?”

“아, 아닙니다. 조부님. 다, 당장 본가에 연락하겠습니다.”

제갈현도는 허겁지겁 밖으로 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현성은 붙잡기도, 그렇다고 그냥 두기도 어려운지 어정쩡한 자세를 보였다.

그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불편한 자리가 어서 끝나길 바랐다.

그런 이현성을 보며 제갈윤호가 헛기침을 했다.

“잠시 신세를 좀 지세. 괜찮겠지?”

“…장원을 복구 중이라서 불편하실 수도 있습니다.”

“괜찮네.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네. 허락하는 겐가?”

“…알겠습니다.”

전략을 바꿨는지 뻔뻔하게 나오는 제갈윤호의 모습에 이현성은 헛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사실 무림맹의 총군사가 될 제갈윤호와 친분을 쌓는 일은 꼭 나쁜 것도 아니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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