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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127화 (127/314)

127화.

“아니외다. 그리고 우선 한가지 밝히겠소. 본인은 더 이상 천웅방과 관계가 없소.”

“그게 무슨 말이오?”

예상치 못한 선언에 이현성은 깜짝 놀랐다.

천웅방을 대표하는 팔대고수인 팔패(八霸).

암월영패는 그 팔패의 하나였다.

그런 그가 천웅방과 관계가 없다고 하니 이해할 수 없었다.

믿지 못하는 이현성에게 암월영패가 나직하게 말했다.

“본인은 과거 천웅창제께 신세를 진 적이 있었소. 그 대가로 이십 년간 천웅방의 팔패로서 몸담고 있었던 것이오. 그 계약이 얼마 전에 끝났기에 더 이상 천웅방과는 무관한 관계가 되었소.”

“…….”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천웅창제와의 인연 때문에 천웅방의 팔패가 된 것까진 이해되지만 계약기간이 끝났다고 결별한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천웅방이 어딘가.

사파무림의 기둥인 사파사세이며, 그런 천웅방을 대표하는 자들이 바로 팔패였다.

그야말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를 계약기간이 끝났기에 박차고 나왔다는 말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 그를 향해 암월영패가 나직하게 말했다.

“맹검이 천사교를 나온 것은 말이 되고, 본인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은 모순이오. 장주.”

“…의심한 것을 사과하겠소.”

그의 말대로 암월영패가 천웅방을 나온 것이 말이 안 되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바로 사과를 했다.

그제야 암월영패는 자신이 이곳에 온 근본적인 이유를 밝혔다.

“장주의 사과, 받아들이겠소. 그리고 본인이 찾아온 것은 바로 장주 때문이오.”

“본인… 말이오?

이현성은 당황스러웠다.

그와는 직접적인 은원이 없었다.

암월영패의 시선이 이현성의 손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그의 검 암천(暗天)으로.

“정확히는 그 검을 가진 장주를 말하는 것이오.”

“이… 검에 대해서 알고 있소?”

이현성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암천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기에 경계심이 든 것이다.

그런 그를 보며 암월영패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의심이었소. 허나 암천살무의 천중비화를 보고 확신했소.”

“흐음…….”

이현성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암천에 대해서 알뿐만 아니라 암천살무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덕분에 경계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허나 암월영패는 여전히 긴장하지 않았다.

“그 검을 노리는 것이 아니요.”

“그럼 왜 이 검을 가진 본인을 만나려고 한 것이오?”

이현성의 물음에 암월영패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장주는… 암천회(暗天會)라고 들어보셨소?”

* * *

“이의 있으십니까?”

무림맹 결성을 위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회의는 제갈윤호의 주도 아래 큰 어려운 일 없이 진행되었다.

물론 불만이 없을 수는 없으나 제갈윤호가 잘 조율한 덕분에 비교적 잘 진행되었다.

“그럼 이것으로 회담은 마무리해도 될 것 같습니다. 대사님.”

“아미타불…! 수고 많으셨습니다. 제갈 대협 덕분에 회담이 수월하게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공심대사의 말처럼 제갈윤호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매끄러운 회담은 어려웠을지 모른다.

이래서 군사의 존재가 중요하고, 그 자리를 항상 제갈세가가 맡는 거였다.

“흠흠… 저는 이만…….”

“수고들 많으셨소이다.”

공심대사와 제갈윤호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각파의 대표들은 밖으로 나갔다.

무림맹은 정체불명의 적을 상대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정파무림의 연합이다.

동시에 거대한 권력과 이권을 동반한다.

그들 역시 인간인지라 그런 부분을 아예 외면할 순 없었다.

전쟁은 돈을 잡아먹는 괴물이며, 수많은 희생을 강요한다.

이를 조금이라도 보상받으려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심리였다.

그러므로 무림맹에 관한 세부사항 조율은 힘겨루기의 시작일 뿐이었다.

앞으로의 힘겨루기에서 조금이라도 더 이득을 보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서 연대를 형성해야 한다.

독불장군으로 나대기엔 경쟁자들이 너무 막강했다.

일전에 제갈윤호가 남궁세가의 검왕을 찾아가서 혼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것도 그런 일의 연장선인 셈이었다.

“아… 아미타불…! 제갈 대협께서 계셨군요.”

“범원 사질 무슨 일인가?”

그는 소림 삼대제자이자 소림 속가모임인 천불회(千佛會)와의 연락을 담당하는 범원이었다.

공심대사의 물음에 범원은 주저했다.

곁에 제갈윤호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눈치챈 제갈윤호가 나직하게 말했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나 보군요. 저는 이만 돌아가보겠습니다, 대사님.”

“아미타불… 아닙니다. 제갈 대협께도 숨겨야 할 이야기인가? 범원 사질.”

“그, 그게… 아미타불… 아닙니다. …정주의 능 사형께서 급보를 보내셨습니다.”

“금룡표국(擒龍鏢局)의 능광 사질을 말하는가?”

실력과 재능을 인정받아 속가제자임에도 십이금룡수(十二擒龍手)라는 금나수를 전수받은 인물이었다.

불심 역시 깊어 매년 많은 기부금을 본산에 보내기까지 한다.

그렇기에 방장인 공심대사 역시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예. 맞습니다. 장문사백. …처, 천사교의 고수들이 정주… 정확히는 이가장을 습격했다고 합니다.”

“……!!”

그의 말에 공심대사는 물론, 아직 자리에 남아 있던 제갈윤호도 경악했다.

아무리 천사교주가 오만해도 감히 소림과 개방의 앞마당인 정주에 고수를 보낼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무림맹 결성에 대해 알고 경고 차원의 시위일지도 모르겠군요.”

“아미타불…….”

무림맹 결정은 아직 정파무림에서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수뇌부만 알고 있는 기밀사항이었다.

그러나 천사교는 사파사세였기에 그들이 눈치채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이번 무림맹의 총단은 허창현으로 정해졌으나 전통적으로는 정주부에서 세워졌다.

그렇기에 제갈윤호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 각파의 대표들에게 양해를 구해서 그들의 호위대로 공격대를 편성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사님.”

“…그,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제갈 대협…….”

제갈윤호의 제안에 대답한 것은 공심대사가 아닌 범원이었다.

“벌써 도망쳤단 말인가? 하긴… 그렇다면 추격대로…….”

“그! 그게 아니라!! 아, 아미타불… 소승이 실례를 범했습니다.”

급히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제갈윤호를 보며 범원은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비록 소림의 선배가 아니라 할지라도 제갈윤호는 제갈세가의 태상가주인 무림원로였다.

아무리 범원이 소림 삼대제자라 해도 감히 언성을 높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흠흠… 괜찮네. 왜 그러는가?”

“아미타불… 이가장에서 막아냈다고 합니다.”

범양의 대답에 제갈윤호는 깜짝 놀랐다.

제갈세가의 특성상 그들은 방대한 정보를 갖고 있었다.

각 분야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경지에 오른 인물은 물론, 세력 역시 기억하고 있던 제갈윤호도 이가장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이가장은 현판을 단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이가장이 천사교의 습격을 막아냈다 하니 이해할 수 없었다.

“천사교의 명령을 받은 사파방파의 습격을 잘못 이야기한 겐가?”

“그게 아니라… 정주 능 사형의 서신에 의하면… 천사교의 교령인 환야가 죽고, 환희루의 환희요후가 도망쳤다고 합니다. 사실을 확인하는 중이지만… 거의 확실하다고…….”

“마, 말도 안 돼!”

제갈윤호는 다시 한번 경악했다.

그리고 동시에 의심했다.

무림맹 결성에 대한 시위가 아니라면 천사교의 환야와 환희루주가 정주의 일개 장원을 습격할 이유가 없었다.

설사 이유가 있다고 해도 그들을 상대했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신산이라 불리는 그조차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미타불… 알겠다. 사질은 그만 돌아가도 좋다.”

“소승은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제갈윤호의 뜨거운 시선이 두려웠는지 공심대사의 축객령에 범원을 도망치듯 방장실을 벗어났다.

그러자 제갈윤호의 시선이 공심대사에게 향할 수밖에 없었다.

공심대사는 합장을 하며 입을 열었다.

“…궁금하신 것 같으니 빈승이 설명하겠습니다.”

* * *

“설마… 그런 비밀이 있었을 줄이야…….”

내원의 본채가 무너진 관계로 이현성은 비교적 온전한 별채를 임시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는 애검이 된 암천(暗天)을 바라보며 놀라워했다.

그 역시 암천이 예사롭지 않은 검이라고 생각은 했다.

검 자체만 해도 그 어떤 보검에 부럽지 않게 뛰어났고, 암천살무라는 절대검법이 숨겨져 있었으니 평범하다고 할 수가 없었다.

허나 암천에는 그 이상의 비밀이 숨어져 있었다.

그것을 외인이자 이제 식객이 된 암월영패에게 듣게 되었다.

“그의 말을 믿어도 되려나.”

암월영패에게 들은 이야기는 너무나 놀라웠다.

그렇기에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워낙 상세히 말해주었기에 의심하는 것도 어려웠다.

결정적으로 오래된 연을 지금까지 이으려는 그의 저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위지천을 구해준 은혜를 생각해서 우선은 식객으로 받아들였다.

암월영패 역시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그의 목적은 암천의 주인(이현성)을 지켜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군, 허정입니다.”

“들어오게.”

경비대장이자 충성을 맹세한 허정이었다.

그의 빠른 판단으로 식솔들은 큰 피해 없이 피신할 수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무너진 전각들을 복구하는 데 두어 달은 걸릴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지. 그때까지 불편하겠지만 경비대를 나누어서 지내주게.”

“별거 아니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부장주님의 의식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형님이? 알겠네.”

환희요후와의 격돌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던 위지천은 늦지 않게 의원의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정주에서 제법 명의(名醫) 소리를 듣는 의원이었지만, 내상이 심해지는 것을 막고 외상을 치료하는 것이 한계였다.

일개 무인도 아니고 초절정고수가 의식을 잃을 정도로 심각한 내상이었다.

의술은 물론, 무학에 대한 지식 역시 갖춘 의원이 아니라면 치료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깨어났으니 운기행공을 통해 내상을 치료할 수 있었다.

이현성은 위지천이 쉬고 있는 별채로 걸음을 옮겼다.

“왔는…가.”

“몸은… 안 좋아 보이시는군요.”

몸은 좀 어떠냐고 물으려 했던 이현성은 위지천의 모습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누가 봐도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위지천은 미소 짓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건가. 자네가… 날… 구해…준 건가?”

의식을 되찾았고, 급한 불을 껐다고 해서 부상이 나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말이 중간중간 끊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닙니다. 암월영패, 그가 형님을 구했습니다.”

“……!!”

위지천은 너무 놀랐는지 눈이 커졌다.

이현성은 그간 있었던 일과 암월영패에게 들은 이야기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위지천은 놀라워했다.

천사교와 천웅방은 서로를 가장 위협하는 경쟁자였다.

그렇기에 팔패였던 암월영패와 호교사자였던 자신은 가까워질 수 없는 적이었다.

그런데 암월영패의 손에 구함을 얻었으니 어찌 놀랍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외의 얘기들도 하나같이 놀라웠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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