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분명 최후의 한수가 있을 것이다.
“…환신야차(幻神夜叉)!”
그 순간 환야의 전신에서 흉폭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귀신을 몸에 담는다고 해서 환신야차라 불리게 된 사술이었다.
물론 실제로 야차를 빙의시키는 것이 아니라, 야차의 힘을 빌린 것처럼 순간적으로 내공을 증폭시키는 사술이었다.
다만 그 위력만큼이나 극심한 부작용 때문에 가급적이면 펼치지 않았다.
하지만 분노로 인해 결국 봉인을 풀고 말았다.
“죽. 어. 라!”
“큭!”
환신야차를 펼친 환야는 조금 전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정교함은 사라졌으나 그걸 무시해도 될 정도의 빠름과 강력함을 손에 넣었다.
덕분에 이현성의 입에서 처음으로 신음이 나왔다.
쾅! 쾅! 쾅!
진짜 야차가 된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강했다.
무지막지할 정도로.
“큭큭. 죽! 어! 라!”
“오냐! 누가 더 강한지 결판을 내자!”
정돈되었던 이현성의 옷매무새가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하지만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이현성, 그도 어쩔 수 없는 무광(武狂)이었다.
더욱 강해진 환야를 상대로 호승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쾅! 쾅! 콰쾅!!
수십 합을 더 나누었으나 승기를 잡긴 어려웠다.
스스로의 목숨을 불태워 강력한 힘을 갖게 된 환야 때문에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겐 암천살무가 있었다.
“일점혈(一點血)!”
“큭! 어. 림. 없. 다!”
환신야차를 펼치고 있었지만 절대쾌검인 일점혈을 피하진 못했다.
하지만 어마무시한 내공 때문에 일점혈에 적중되고도 멀쩡했다.
이현성 역시 일점혈만으로 그를 죽일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 일점혈은 그의 움직임을 일시적으로 봉하기 위함에 그치지 않았다.
이어질 검초를 펼치기 위함이었다.
“천중비화(千重飛花)!!”
“고. 작. 그. 것… 으아아악!!”
환야는 비웃었다.
화려하기만한 검초 따윈 환신야차를 펼친 자신을 해할 수 없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허나 그건 오만이었다.
그의 천환장과 달리 이현성의 천중비화는 눈속임이 아니었다.
일천 개의 꽃잎 하나하나가 모두 강기로 이루어진 사기적인 검술이었다.
야차가 된 듯한 무시무시한 내공을 뿜어내는 환야라도 일천 개의 강기에 적중되고 무사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처음에는 버티던 환야의 육신이 조금씩 베이고 부서지더니 결국 붕괴되기 시작했다.
콰쾅! 콰콰쾅!!
거대한 위력에 주변 전각들이 사라질 정도였다.
그 중심에 있는 환야가 무사할 리 없었다.
실제로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환신야차를 펼치지 않았다면 육편이라도 남았겠지만, 무지막지한 내공으로 막으려 하다가 오히려 흔적도 없이 소멸되고 만 것이다.
“헉… 헉… 헉…….”
폭음이 그친 곳에 한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 울려 퍼졌다.
거친 숨소리의 근원에는 한 청년이 검에 의지한 채 간신히 서 있었다.
혈영공(血影功), 포영심결(泡影心訣), 상청도량심결(上淸道場心訣)까지 포용하면서 새롭게 변한 혼원신공을 익혀 회복력 하나는 자신하는 이현성조차 기진맥진해질 정도로 지쳤다.
그만큼 환야, 그는 강했다.
사파무림의 거두 환야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최후였다.
“후… 형님을 도와야 하는데…….”
* * *
“큭!”
위지천은 입가에 흐른 피를 소매로 훔쳤다.
그 와중에도 검은 절대 놓치지 않았다.
환희요후, 그녀는 강했다.
칠사(七邪)를 제외하고 사파무림에서 열 손가락에 꼽히는 고수다웠다.
환희요후는 비전색공으로 수많은 고수의 내공과 사내들의 정기를 갈취했다.
덕분에 흡정마공을 익힌 흡정혈왕 석대환과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방대한 내공을 소유할 수 있었다.
다만 석대환처럼 부작용에 의해서 그 방대한 내공을 전부 사용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위지천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초절정고수라고 다 같은 초절정고수가 아니었다.
“호호호… 고작 그 실력으로 본녀와 본루를 모욕한 것이더냐!”
“강하군. 가랑이를 벌려서 강해진 계집치곤 말이야.”
사파출신이지만 위지천은 이렇게까지 입이 거칠지 않았다.
허나 그녀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흔들어야 승산이 있을 정도로 환희요후는 강했다.
그걸 알기 때문인지, 환희요후는 오히려 그의 도발에 코웃음을 쳤다.
“두려움에 떠는 개가 더 크게 짖는 법이지. 이 누이가 그리도 무섭더냐?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목숨을 구걸한다면 살려줄 생각이 있다.”
“누이? 다 늙어서 그러고 싶냐?”
울컥!
그 어떤 도발에도 의연하게 넘기던 환희요후가 처음으로 울컥했다.
여인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여인이었다.
특히 절정에 달한 색공과 방대한 내공 덕분에 젊음을 유지한 환희요후가 듣기에는 너무나 불쾌한 조롱이었다.
“아무리 소경이라 눈에 뵈는 것이 없다지만!!”
“흐흐흐… 찔리나 보군?”
환희요후의 심기가 흔들렸다고 생각했는지 위지천은 계속 조롱했다.
그녀는 위지천의 의도를 알면서도 흥분했다.
그렇다고 해도 충분히 그를 죽일 자신이 있었다.
“오냐! 네놈을 죽여주마!!”
그녀의 손에 쥐어진 백린이 위지천을 향했다.
흐물흐물한 채대지만, 강기조차 감당할 수 있는 환희루의 보물이 바로 백린이었다.
검강을 두른 위지천의 검을 간단히 막아낼 뿐만 아니라 그를 몰아세웠다.
위지천은 궁지에 몰린 와중에도 웃고 있었다.
죽게 된다 해도 강자의 손에 죽는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혼자 죽지 않겠다! 파천참사(破天斬邪)!”
“흥. 혼자 죽어라!!”
천사교주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위지천이 창안한 검초 파천참사.
위지천의 모든 것을 담은 파천참사의 위력은 단언 최고였다.
허나 상대는 환희요후였다.
백린으로 펼치는 극락환희무(極樂歡喜舞)는 그녀를 사파무림의 최고 여고수로 만들어주었다.
저급한 색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음양의 오묘한 이치가 담긴 신공이었다.
콰콰쾅!!!
환신야차를 펼친 환야와 천중비화를 펼친 이현성의 격돌만큼이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우웩!”
“루, 루주님!”
“죽…여! 기필코 죽여라!!”
“존명!!”
놀랍게도 환희요후는 피를 토하고 있었다.
분노한 그녀는 피를 토하면서도 선자들에게 위지천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바라 마지않았던 일인 만큼 선자들은 살기충천(殺氣衝天)한 상태로 위지천을 추적했다.
아니, 그를 빼돌린 자를 추적했다.
“빠드득…! 감히 내 먹이를 가로채다니!”
환희요후는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원래라면 맹검 위지천은 극락환희무에 죽어야 했다.
실제로 그는 극락환희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의식을 잃었다.
허나 죽이지는 못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누군가의 방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체불명의 훼방꾼은 환희요후를 암습하여 의식을 잃은 위지천을 낚아채고 도주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깊은 내상을 입은 환희요후는 추살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허나 이 정도로 쓰러질 그녀가 아니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기필코 죽여주마!!”
* * *
거대한 새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진짜 새가 아니었다.
한 사람을 어깨에 짊어진 누군가가 빠르게 경공술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한 사람을 어깨에 짊어졌음에도 상당히 빠른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그를 추적하고 있는 여인들이 쉽사리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을 정도였다.
“멈춰!!”
“결코 놓치지 않겠다!!”
분통이 터진 그녀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그자를 뒤쫓았다.
눈이 뒤집어진 채로.
덕분에 앞뒤를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실수인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한참을 도주하던 사내가 경공술을 중단하고 멈추었다.
그러자 그를 쫓던 여인들 역시 멈추었다.
“감히 그 개잡놈을 가지고 도망쳐!”
“죽여주마!!”
그녀들은 환희루의 호법인 환희팔선자 중 셋이었다.
막내의 복수를 하겠단 생각 때문에 그녀들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덕분에 그녀들은 현 상황을 냉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한 사내를 어깨에 짊어졌음에도 자신들이 따라잡지 못할 만큼의 엄청난 경공술을 펼친 자가 보통 고수일 리 없다는 사실을.
“…이쯤이면 요후가 오기 전에 정리할 수 있겠군.”
사내는 왼손으로 어깨에 짊어진 위지천을 잡고, 오른 손으로 검을 휘둘렀다.
선자들은 코웃음을 쳤다.
고작 살수나부랭이가 자신들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그녀들의 착각에 불과했다.
“거, 검… 컥!”
“마, 말도 안…….”
위지천을 어깨에 짊어진 살수의 검에 유형화된 빛이 둘러져 있었다.
그건 놀랍게도 검강이었다.
살수 주제에 초절정고수일 줄은 상상도 못 한 그녀들은 그의 검에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 중 둘이 일검에 죽고 오직 한 명만 살아남았다.
“나, 나는… 컥!”
“…누구인지 모르지만, 고맙소.”
환희이선자를 찌른 것은 위지천을 짊어진 살수가 아니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이현성이 그녀를 찔렀다.
살수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이현성은 경계심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악의를 가진 자라면 위지천의 목숨이 위험했다.
그때 이현성의 눈이 커졌다.
그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이다.
“그, 그대는 설마!”
“경계하지 마시오. 이자와 그대를 해할 생각은 없으니…….”
“암월영패, 그댈 어찌 믿으란 말이오?”
놀랍게도 위지천을 구한 살수는 천웅방의 팔패 중 일인인 암월영패였다.
석가장의 인근에서 천사교의 천살과 싸우는 모습을 지켜봤기에 암월영패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계약을 마친 그가 더 이상 천웅방의 팔패가 아님을 모르는 이현성으로서는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설사 더 이상 팔패가 아니더라도 그를 믿을 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다.
“이자를 넘겨주겠소. 내가 용무가 있는 사람은 바로 그대이니까. 물론 나쁜 일은 아니오.”
암월영패는 어깨에 짊어진 위지천을 살며시 바닥에 내려놓고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에 이현성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위지천의 신병을 확보한 이현성은 암월영패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무슨 의도인지 모르나 어쨌든 본인의 의형을 구해준 것에 감사드리오.”
“자세한 인사를 나누기 전에… 그녀의 일부터 처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만?”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환희요후의 시선을.
순간 그녀의 기척이 사라졌다.
숨은 것이 아니라 도망친 것이다.
환희요후는 자신을 암습한 살수의 정체가 천웅방의 암월영패라는 사실과 환야가 죽이기로 했던 이현성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순간 바로 결단을 내리고 도주했다.
내상을 입은 그녀로서는 두 사람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럼… 우리의 대화만 남은 것 같소.”
“나 역시 기다리고 있었소.”
“기다려줘서 고맙소.”
위지천을 의원에게 맡긴 이현성은 암월영패와 독대했다.
환신야차를 펼친 환야를 상대로 내상을 입은 이현성은 눈앞의 암월영패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사교만 아니라 천웅방 역시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으니까.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