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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124화 (124/314)

124화.

검왕은 시선을 돌리며 아닌 척했으나 제갈윤호의 눈치를 속일 수는 없었다.

“정말인가보네? 도대체 누구이기에 내 손자도 마다하는 겐가?”

“허… 알겠네. 사실대로 말하지. 신검(神劍)이라고 들어봤는가?”

검왕의 말에 제갈윤호의 눈이 커졌다.

신검을 왜 모르겠는가.

신검이란 별호를 처음 생각한 자가 그의 아들인 제갈인섭이며, 손녀가 그렇게 목을 매는 사내인데.

덕분에 신산 제갈윤호답지 않게 실수를 하고 말았다.

“설지, 그 아이도?”

“그 아이‘도’라니? 그럼 설마 현지 그 아이 역시?”

제갈윤호는 순간 아차 했다.

상황이 골치 아프게 되었다.

속내를 들키지 않는 것이 거래의 기본인데 실수를 했다.

제갈윤호는 화제를 바꾸기 위해서 운을 뗐다.

“설지가 그와 연이 있었나?”

“반년 전, 봉황지회에서 봤다고 하더군. 하북팽가에서 열렸던.”

제갈현지와 마찬가지로 남궁설지 역시 하북팽가에서 이현성을 처음 봤다.

다만 제갈현지는 잠시지만 연을 맺었고, 남궁설지는 아니었다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이현성은 남궁설지를 본 적도, 말을 섞은 적도 없었다.

다만 그녀는 그곳에서 오만한 독화 당령과 당가인들을 상대로 이현성이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는 모습을 봤다.

게다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무위.

평소 제 오라버니보다 강한 사내에게 시집을 가겠다는 높은 포부를 외친 그녀다.

그러므로 이현성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허나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녀가 말한 오라버니란 남궁세가의 소가주이자 구룡의 한 명인 검룡(劍龍)이었다.

구룡은 정파무림 최고의 후기지수로, 다음 대 정파무림을 이끌 자들이었다.

한 세대 위인 중견고수급을 제외하고, 같은 구룡이 아니면 사파무림의 신성(新星)들만 그들과 상대할 수 있었다.

오대세가인 남궁세가의 여식으로서 사파의 신성과 혼사를 맺을 수 없다면 결국 남은 자는 구룡뿐이었다.

구룡 중 절반은 구파일방 출신, 즉 출가인이었다.

그래서 하북팽가의 도룡, 황보세가의 권룡을 포함한 서너 명 중 하나만 고려했다.

물론 제갈현도는 부합되지 않았다.

‘에이~잉! 도대체 얼마나 끼를 부리고 다니는 거야?’

검왕의 말에 제갈윤호는 영 못마땅한 눈치였다.

허나 동시에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녀석이기에 손녀는 물론 콧대 높은 남궁설지까지 마음을 빼앗겼는지.

게다가 장손보다 더 손녀를 아낀다는 검왕이 반쯤 허락했다면 정말 보통 녀석이 아니란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떡할 생각인가?”

“흠흠… 뭐가 그렇게 급한가?”

검왕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고작 이 정도로 흔들려서 일을 틀어지게 만들 제갈윤호가 아니었다.

“내가 기다려줄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네. 정 싫다면 우린 다른 손자며느리를 찾겠네.”

“후… 조금만 더 시간을 주게. 아무리 내가 태상가주라 해도 아이들을 힘으로 누를 순 없지 않은가.”

검왕의 말에 제갈윤호도 조금은 화가 누그러졌다.

“알겠네. 날 너무 기다리게 하지는 말게.”

이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불똥을 맞게 되었다.

그 시각 어두운 구름이 정주로 몰려들고 있었다.

* * *

“형 조장 이하 2인은 잔류를 결정했습니다. 다만…….”

이가장의 경비대장인 허정은 태천광의 지시를 받고 있는 이들에 대한 처분을 이현성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의외로 형균과 두 명의 대원들은 태천광과의 관계를 끊고 경비대에 잔류하기로 했다.

애초에 그들은 용돈벌이로 정보를 물어주기로 한 것이지, 깊은 관계가 아니었다.

게다가 다시 한번 기회를 준 것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듯싶었다.

그러나 모두가 잔류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적 부대장… 아니, 적운은 본장을 나가겠다고 합니다.”

“그렇군. 알겠네.”

그뿐이었다. 이현성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떠나려는 이유조차 묻지 않았다.

어차피 떠나기로 마음먹은 이들을 붙잡을 생각이 없기에 이유가 궁금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줄 뿐이었다.

이런 단호함이 허정을 긴장시켰다.

“신임 부대장이 필요하다면 알아서 뽑아도 되지만, 굳이 필요 없다면 안 뽑아도 되네.”

“알겠습니다. 장주님.”

“특별히 할 말이 없다면 돌아가봐도 좋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현성의 축객령에도 허정은 돌아가지 않았다.

아직 용무를 마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이현성은 허정을 바라봤다.

허정의 굳은 얼굴을 보니, 더 중요한 용무가 남았음을 알 수 있었다.

“말해보게.”

“장주님의 수하가 되고 싶습니다.”

이현성은 그의 말뜻을 알아차렸으나 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 되물었다.

“지금도 내 수하가 아니던가?”

“…고용된 경비무사가 아닌 장주님을 주군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허정의 말에 이현성의 자세와 기세가 바뀌었다.

그것을 느낀 허정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후회하지 않는 인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장주님의 수하가 되고 싶습니다.”

“…….”

이현성은 그를 빤히 바라봤고, 허정 역시 이현성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덕분에 순간적으로 정적이 흘렀다.

“환영하네, 허정.”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겠습니다! 주군!”

결국 그를 수하로 받아들였다.

이현성이 나직하게 물었다.

“자네만의 생각인가?”

“부대장들은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고, 경비대에는 묻지 않았습니다.”

“모두 집합시키게. 내 직접 그들의 뜻을 묻지.”

“존명!”

이현성의 수하로서 첫 번째 명령을 받은 허정은 비장한 얼굴로 나갔다.

그런 그를 보며 이현성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어렸다.

“믿어도 되려나?”

“지난 싸움으로 다들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것은 보고받았다.”

연무장에 도열한 경비대원들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경비대 전원을 호출한 것은 첫날 이후 처음이었다.

“알 사람들은 알고, 모를 사람은 모르겠지만… 낭아파와의 싸움은 그대들에 대한 나의 시험이었다.”

“…….”

눈치 없는 몇몇을 제외하곤 모두 아는 듯 눈동자가 흔들렸다.

낭아파와 싸운지 한 달이 넘었다.

눈치 없다고 해도 귀동냥을 했다면 모를 수가 없었다.

“실망스럽지는 않지만 만족스럽지도 않은 결과였지.”

“…….”

이현성의 말에 고개를 숙인 자도 있고, 얼굴이 시뻘게진 자도 있었다.

몇몇은 이를 악무는 것도 보였다.

하지만 이현성은 그들의 그런 반응을 모두 무시했다.

“난 내 식구들이 맞고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해서 자네들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겠네. 첫 번째, 지금처럼 본장에 고용된 경비무사로서 있는 것이고… 두 번째는 본장… 아니, 본장주의 수하가 되어서 내게 목숨을 맡기는 것.”

“…그 외의 선택지는 없습니까, 장주님.”

경비대의 부대장 중 한 명인 적운이었다.

떠나기로 결정했으나 아직 장원을 떠나기 전이었기에 그 역시 이 자리에 도열한 상황이었다.

태천광의 지시를 받는 자들을 색출한 것에 대해서는 관련자를 제외하고 알리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현성은 그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없다. 물론 첫 번째를 선택한다면 고용된 입장이니 본장 혹은 본장주와 생각이 다르다면 떠나도 된다. 다르게 말한다면 두 번째 선택을 할 경우에는 그만한 대우를 해주겠지만 임의로 떠나는 것은 불허한다. 더 궁금한 것이 있나, 적 부대장.”

“…없습니다. 장주님.”

이현성의 말에 경비대는 말을 하지 않을 뿐 무척이나 혼란스러워했다.

태천광과 연관된 일을 모르는 그들로서는 이현성의 제안이 너무 뜬금없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그때 누군가 손을 들었다.

“한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장주님.”

“말해보게.”

“첫 번째를 선택할 경우, 두 번째 선택으로 전향하는 것이 불가능합니까?”

그의 말에 모두 귀가 쫑긋해졌다.

가능하다면 보다 신중하게 선택할 수 있었다.

장주의 수하가 되었는데, 막상 떠나고 싶어진다면 곤란해진다.

그렇기에 쉽게 두 번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그때 이현성의 입이 열렸다.

“불가능하지 않다. 허나 이후 본인의 수하가 되는 것은 그대들의 의지가 아닌 내 허락이 떨어져야 가능하다. 언제든 받아줄 생각은 없으니까. 내 마음을 바꾸게 만들 정도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보게.”

간 보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만한 능력이 없다면 허튼수작 부리지 말라는 말이었다.

이현성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 수하들에겐 무공을 전수할 걸세. 과연 이후 들어온 자가 먼저 들어온 자들의 진도를 따를 수 있을까?”

이는 단순히 늦게 무공을 전수받으면 그만큼 성장이 늦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먼저 들어온 자에겐 그만한 혜택을 주고, 후에 들어온 자들에겐 그만한 차별을 두겠단 말이었다.

당연했다. 처음부터 자신을 따르는 자와 간을 보고서야 따르는 자들이 같을 수는 없었다.

“물론 경비대원으로 남는다고 해서 불이익을 줄 생각은 없다. 지금처럼 경비무사로서 임무만 수행해준다면 말이야. 이상이다. 충분히 생각하고 허 대장에게 보고하도록.”

이현성은 뜻을 밝힌 후 돌아갔다.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결정은 이제 그들의 몫이었다.

그런 그들의 결정을 앞당기게 만든 일이 벌어졌다.

* * *

“…배치 끝났습니다. 요후 님.”

“모두 죽이게.”

천사교의 총단을 떠난 환야와 환희요후. 그리고 그 휘하의 고수들이 강소성을 지나서 하남성에 입성했다.

안휘성을 통하면 시간을 조금 단축할 수 있으나 남궁세가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천사교는 절대 남궁세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허나 백 명도 되지 않는 인원으로 상대할 수 있는 약한 무림세가도 아니었다.

특히 남궁세가의 태상가주는 십정의 검왕이었다.

때문에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환희요후의 말에 오십여 그림자가 사라졌다.

그들은 요도(妖刀)가 지원해준 시노비(닌자)들이었다.

하나같이 일급살수를 상회하는 자들이기에 이가장의 식솔들을 지우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 너무 과했다.

허나 지난번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동원한 시노비를 전부 투입시킨 것이다.

“칠선자와 팔선자는 환야 교령님을 보좌…….”

“되었소. 요후, 그대의 호의는 고마우나 필요 없소.”

“…환야 교령님의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지요.”

“그럼 먼저 가보겠소.”

수하를 대동하지 않은 환야와 달리 환희요후는 요도가 지원해준 시노비 외에도 환희팔선자 중 넷을 대동했다.

환희루의 호법인 환희팔선자(歡喜八仙子)는 개개인이 절정지경에 오른 고수들로, 장로인 음양쌍파(陰陽雙婆)와 함께 환희루를 대표하는 고수들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맹검보다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맹검과 이현성이 도주할 것을 대비해 환희팔선자를 대동했다.

“그놈의 자존심… 뭐, 거절한 것은 내가 아니니까. 그만 가자꾸나.”

환희요후는 환희팔선자의 호위를 받으며 이가장의 담을 넘어갔다.

“음? 뭐지?”

이가장의 담을 넘은 환야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코를 자극하는 혈향은 분명 먼저 잠입한 시노비들에 의해 이가장의 식솔들이 죽어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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