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그래서 개발된 외공이 바로 외가기공(外家氣功)이었다.
육체뿐만 아니라 장기까지 보호하는 외공이었다.
물론 기공(氣功)이라 해도 내가기공(內家氣功)처럼 꼭 단전을 통해서 기운을 운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묵룡수는 외문무공처럼 육체의 능력을 끌어올리면서 피부를 단단하게 만든다. 게다가 외가기공처럼 장기까지 보호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상승 외공인 셈이었다.
소림의 금강불괴신공과 마교의 철혼대마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무림에서도 흔치 않은 수준의 외공이니 이현성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경비대에게 전수해도 되려나?”
내공심법을 익히지 않은 금군 출신의 경비대에게 이보다 좋은 선물은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고민이 되었다. 비록 이가장의 경비무사들이지만, 돈에 의해 고용된 이들이었다.
비인부전이라 할 수 있는 묵룡수를 호의만으로 전수하는 것은 위험했다.
이를 선물한 소림의 체면도 고려하면 더더욱 그러했다.
“뭐, 기대해보지. 허 대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묵룡수의 전수는 그 후에 결정하면 되니까.”
* * *
“…아셨습니까, 대장님.”
경비대 조장 중 한명인 형균은 허정의 호출을 받고 경비대장의 집무실로 왔다.
형균이 허정의 앞에 서자 누군가 문 앞에 섰다.
부대장 중 한 명인 적운이었다.
눈치 빠른 형균은 허정이 자신을 왜 호출한지 바로 알아차렸다. 그렇기에 변명하지 않고 실토했다.
“나만 아는 것이 아닐세. …그리고 이렇게 자넬 부른 것은 기회를 주기 위함일세.”
“…기회 말씀이십니까?”
팔다리 하나쯤은 부러질 것이라 예상했던 형균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허정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허정이 지금은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있으나 창을 쥐면 나찰처럼 변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오합지졸인 관병들과 다르다.
지옥과 같은 훈련, 수라장과 같은 사선 속에서 이십여 년이나 살아남은 사람이니 당연했다.
“원래는 자네… 아니, 자네들의 팔다리를 분지른 후 내쫓으려고 했네. 허나 장주님께서 그러시더군. 배신한 것이 아닌 이상 무조건 정리할 필요는 없다고 말일세.”
움찔.
형균은 움찔했다. 자네‘들’이란 말은 자신처럼 태천광의 지시를 받은 자들이 여럿 색출되었단 뜻이었다.
또한 그것이 이미 장주에게까지 보고된 상황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상관없네. 돈 때문인지, 권력 때문인지, 아니면 약점이 잡혔던지. 결국 태 대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함께 할 수 없네.”
“…제가 어쩌길 바라십니까, 대장님.”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본장을 떠나거나 태 대인과의 관계를 정리하게. 자네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똑같은 제안을 했네. 한 시진을 주겠네. 그때까지 결정해서 보고하게. 자네들의 결정을 존중해주겠네.”
형균은 허정과 적운에게 인사를 한 후 돌아갔다.
그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알 수 없었다.
한 가지는 확실한 것은 더 이상 경비대와 이가장의 화합을 흔들 수 없다는 것이다.
형균이 밖으로 나가자 허정이 나직하게 말했다.
“…자네에게도 하는 말일세.”
“…!! 어떻게 아셨습니까.”
평소 표정 변화가 없던 적운의 얼굴 표정에 균열이 생겼다. 그 모습에 허정은 한숨이 나왔다.
“솔직히 난 몰랐네. …장주님께서 말씀해주셨네.”
“……!!”
적운은 어째서 걸렸는지 알 수 없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허나 형균 등은 몰라도 적운의 정체는 진즉 걸렸다.
바로 적운의 무공 때문이었다. 그는 살수무공을 익히고 있었기에 이현성의 기감을 피할 수 없었다.
잠행과 추적이 주 임무인 첩보부대는 살수와 비슷한 면이 많다.
그러나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그가 동창 출신이라면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금군 출신이라면 아무리 첩보부대에 속해 있었다고 한들 살수무공을 익힌 것이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자네도 같네. 자네의 결정을 존중해주겠네.”
조장과 부대장은 다르다.
그 공백의 차이는 물론 그로 인한 여파 역시 크다.
그러나 무조건 피를 볼 생각은 없었다.
그것이 장주의 뜻이기 때문이다.
이현성이 정이 많아서 유화정책을 쓰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 피를 봐야 할 정도로 그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싫다면 떠나도 상관없다는 것이 그의 속내였다.
그걸 아는지 허정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결정은 그들만이 아닌 자신도 내려야 했다.
‘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나…….’
환희요후
“아미타불…! 점창과 곤륜은 회담의 결정에 따른다는 회답이 왔습니다.”
소림방장실에 13명의 노인들이 모였다.
그들 중 소림고승은 단 한 명, 소림방장인 반야신승 공심대사뿐이었다.
그 외에 착석한 자들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대표들이었다.
정확히 점창과 곤륜파는 참석하지 못했다.
운남성과 청해성이 거리상 먼 탓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사파사세인 지옥성(地獄城)과 사해련(四海聯)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지옥성과 사해련의 총단이 운남과 청해성에 있기 때문이다.
“신군과 비선을 뵐 수 없음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점창의 장문인 사일신군(射日神君)과 곤륜의 전대 장문인 태허비선(太虛飛仙)은 두 파를 대표하는 초절정고수였다.
사파사세의 견제만 아니라면 그들 역시 참석했을 테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두 파에 초절정고수가 그들밖에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초절정고수 1명만으로 견제하기에 사파사세는 너무 부담스러운 세력이었다.
그때 제갈세가의 대표인 신산 제갈윤호가 입을 열었다.
“제가 대신 회담을 진행해도 되겠습니다. 대사님.”
“물론입니다. 제갈 대협.”
이곳의 주인은 소림방장인 공심대사였지만, 보통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회담은 제갈세가의 대표가 맡았다.
천하제일지가인 제갈세가가 진행을 맡는 것이 가장 깔끔하기 때문이다.
공심대가의 동의를 얻은 제갈윤호가 회담을 진행했다.
“모두 아시겠지만 오늘 이 자리는 무림맹 결성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승 료굉대사님의 제안이었지만 실은 황실의 요청이라는 것 또한 모두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흠흠…….”
무림의 일에 황실의 입김이 닿은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특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정파무림를 영도하는 자들이니 더더욱 그러했다.
그렇다고 해서 불쾌감을 그대로 드러낼 사람은 없었다.
그만한 연륜을 갖춘 자들이기도 했고, 어디까지나 명분은 성승의 제안이었으니까.
무림의 살아 있는 전설, 성승의 제안에 불쾌감을 드러낼 어리석은 자는 없었다.
“제가 이 말을 언급한 것은 굳이 치부를 드러내려는 것이 아닙니다. 무림맹 결성에 있어서 황실의 방해가 없을 것이며, 오히려 어느 정도 지원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함입니다.”
쓸데없는 변명을 하지 말자는 뜻이었다.
그걸 아는지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윤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우선 모두에게 여쭙겠습니다. 무림맹 결성을 반대하거나 불참하실 분 계십니까?”
“…….”
아무도 손을 들거나 말을 하지 않았다.
반대할 분위기가 아니고, 불참한다면 자칫 정파무림에서 고립될 수 있으니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무림맹의 구성원으로서 떨어질 이득을 생각하면 반대는 물론이고, 불참 또한 할 수 없었다.
내가 싫다면 그 자리를 다른 누군가가 대신 채우게 될 테니까.
반대를 하면 자신이 도태될뿐더러 새로운 경쟁자를 키워주는 꼴이 된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협(俠)과 의(義)를 내세우고 있다지만 그들 역시 한 세력의 대표로서 현실적인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쉽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그럼 모두 무림맹 결성을 찬성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제갈윤호의 진행으로 깔끔하게 회담이 이어졌다.
그는 자연스러운 화술이 모두를 이해시켰다.
그때 사천당가의 독종(毒宗) 당철영이 물었다.
이에 제갈윤호 대신 공심대사가 대답했다.
“무림맹의 총단은 하남 정주부입니까?”
“아닙니다. 허창현에 세울 예정입니다. 당 대협.”
무조건은 아니지만 대부분 무림맹의 총단은 하남성의 성도인 정주에 세워졌다.
소림과 개방의 중간이며, 수많은 인력을 수용하기에 적합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주가 아닌 허창에 무림맹을 세운다는 공심대사의 대답에 당철영은 물론 좌중 역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미타불…! 아무래도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정주에 더 많은 무림인들이 몰리는 것이 신경 쓰였는지, 허창현의 외곽에 부지를 마련해주겠단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렇군요. 허창이라면…….”
정주보다 작을 뿐, 허창은 하남성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넓은 지역이었다.
무림맹 총단 부지로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전례와 달리 허창으로 선택된 것에 의문이 없지 않았으나 문제 삼지는 않았다.
그보다 중요한 부분이 얼마든지 많았고, 처음부터 신경을 쏟을 수도 없었다.
“정식 선포에 앞서, 몇 가지 사항을 조율하겠습니다.”
* * *
“그래서 싫다는 게야?”
“말투하곤… 사람들 알기 무섭다. 천하제일의 지자라는 녀석이… 에잉!”
무려 정파무림연합인 무림맹 결성에 대한 논의였다.
따라서 고작 하루 만에 끝날 리가 없었다.
첫날은 대략적인 큰 그림만 그리고, 며칠에 걸쳐서 서로 원하는 바를 조금씩 조율해 가는 것이 관례다.
하나같이 거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세력과 무위를 가진 만큼 서로 은원이 생기지 않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체면을 중시하는 풍조 때문에 당연했다.
한 사람의 독주를 막아주는 장점인 동시에 결정을 지연시키는 단점이기도 했다.
첫 회담을 마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대표사절단은 소림에서 내준 별당에서 휴식을 취했다.
오대세가의 수좌인 남궁세가의 별당에 손님이 찾아왔다. 제갈세가의 태상가주인 신산 제갈윤호였다.
그는 발이 넓었다.
강호칠기(江湖七奇)의 한 명인 제갈윤호의 진가는 무위가 아닌 방대한 지식과 혜안이었다.
명문정파의 기인답지 않게 스스럼없이 다가갈 줄 아는 친화력이야말로 진정한 제갈윤호의 힘이었다.
그것이 같은 강호칠기인 장강어옹(長江漁翁) 규염과 호형호제를 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규염만큼은 아니지만 남궁세가의 태상가주인 검왕 역시 제갈윤호와 친분이 두터웠다.
“누구랑 비교하기에 대답을 질질 끄는 거야? 내 손자가 그리도 부족한가?”
“흠흠… 누가 그렇대?”
제갈윤호는 검왕을 만난 김에 소가주 제갈현도와 남궁세가의 검화(劍花) 남궁설지의 혼사를 마무리 짓기 위해서 찾아왔던 것이다.
비록 구룡(九龍) 중에 속하지는 않았으나 제갈현도 역시 뛰어난 자였다.
제갈현도의 진가는 무위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제갈세가의 혈손답게 방대한 지식과 뛰어난 화술 그리고 친화력을 지니고 있는 그는 다음 대의 제갈세가를 이끌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게다가 신산인 자신의 손자이기도 했다.
그는 어딜 내놔도 빠지지 않는 일등신랑감이었다.
그럼에도 남궁세가에서 쉽게 승낙하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실제로 제갈윤호의 말이 정곡을 찌른 듯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