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그 역시 아직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선 적 부대장이 태 대인의 사람을 색출해주게. 은밀하게…….”
“맡겨주십시오.”
적운은 첩보부대 출신이었다.
이쪽 분야의 전문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적운이 직접 맡는다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색출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물론 적운 역시 자신했다.
“임 부대장은 이번 일로 동요하지 않게 내부를 단속해주고, 장 부대장은…….”
“힘 좋은 놈들을 정문에 배치하겠습니다. 아무도 본장을 우습게 보지 못하게.”
장무열은 무식하게 생겼으나 의외로 눈치가 빨랐다.
허정이 뭘 원하는지 말하기 전에 알아차릴 정도였다.
그렇게 경비대의 책임자들이 자신들의 거취를 놔두고 논의하고 있을 때, 한 무리가 정주에 발을 딛고 있었다.
* * *
“확실하냐, 소림의 땡중이?!”
“예. 문주님. 확실합니다!”
맹검의 존재를 눈치챈 자는 중앙북로의 절반을 차지한 독안귀만이 아니었다.
정주 사대문 중 남문과 중앙남로 일부를 차지한 귀문의 주인 역시 맹검의 존재를 눈치챘다.
덕분에 숨죽이고 있었다.
당하기 전에 움직여야 하지만 상대는 맹검이었다.
섣부른 판단이 통할 자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잠시 사태를 살펴보고 있었다.
천사교의 맹검이 하남에 나타났다면 소림이 침묵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 한 행동이었다.
그의 생각이 맞았는지 소림이 움직였다.
“좋아. 소림이 움직였다면 어떤 식이든 결과가 나오겠지. 애들 준비시켜. 여차하면 북로를 먹는다.”
“예! 문주님!”
중앙로는 무척이나 탐이 나는 상권이었다.
그곳에서 떨어지는 이익은 상당했다.
태가장은 모두가 그들의 관할이라고 생각했던 중앙북로의 절반을 부정했다.
그럼에도 감히 중앙북로 절반을 차지하려는 세력은 없었다.
중앙북로의 절반.
정확히는 태가장의 사업장을 건드렸다가 낭아파가 무너졌다.
아니, 대력보가 사라졌다.
그 과정에서 무시무시한 고수가 태가장에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눈치 빠른 일부는 그가 맹검임을 추측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탐이 남에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더군다나 지금 소림의 고수가 정주에 도착했다.
그들의 목적지가 태가장임을 모를 수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맹검은 소림에 의해서 해결될 것이다.
그럼 중앙북로의 절반은 다시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다.
즉, 발 빠른 자가 임자인 셈이었다.
“정주를 본문이 먹어보자!”
이런 생각을 한 자가 귀문주만은 아니었다.
이미 많은 세력이 움직이고 있었다.
덕분에 모두의 눈은 태가장으로, 칼은 중앙북로로 향했다.
정주안가로 인해 깨어진 균형이 이제 태가장에 의해서 다시 깨지기 직전이었다.
* * *
“아미타불… 혹시 빈승의 방문을 예상하고 계셨습니까?”
“오시지 않을 수 있다고도 생각했지만…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소림의 장로인 공벽은 삼대제자 1명과 사대제자 2명만 대동한 채 산문을 나섰다.
삼대제자인 범양은 그의 두 제자 중 한 명으로 달마당(達磨堂)의 부당주였다.
그리고 사대제자인 지광과 지송은 사손으로 뛰어난 무승들이었다.
금강신승이라고 불리는 공벽이 움직인 이상, 과한 인원이 움직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제자와 사손들만 대동했다.
물론 하남에서 감히 소림제자를 해하려는 자가 있을 리 없다는 강한 자신감이기도 했다.
공벽대사는 그들을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이현성과 독대했다.
공벽대사는 눈앞의 젊은 청년을 보며 묘한 느낌을 받았다.
소림 사대제자인 사손들보다 어린 청년임에도 전혀 미숙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백인 료굉대사를 보는 듯한 여유가 느껴졌다.
물론 료굉대사만큼 강한 기운이 느껴지진 않았다.
인간 본연의 그릇이 강하다고 느꼈다.
덕분에 공벽대사는 이현성에게 호기심을 느끼게 되었다.
“그럼에도 어찌 그리 태연할 수 있습니까? 아미타불… 물론 나쁜 의미로 묻는 것은 아닙니다. 태가장주님.”
“죄를 지은 것이 없으니 태연하지 못 할 일이 없지요. 소림이 죄 없는 자를 핍박할 곳이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편히 말씀하셔도 됩니다. 제가 생각보다 어립니다.”
듣기에 따라 소림을 비꼬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공벽대사는 이현성이 그런 의미로 이야기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이런 태연자약한 태도를 보일 수 있는 이유가 더 궁금했다.
“아미타불… 그럼 편하게 묻겠습니다. 아니, 묻겠네. 소림이 움직일 것을 어찌 알았는가?”
“정주에서 제법 성세를 자랑하던 문파 하나가 사라졌으니까요.”
“그걸로는 설명이 부족하네만?”
“본장의 부장주님이라면 소림도 관심을 보일 거라 생각은 했습니다.”
이현성은 현재 문파 하나를 없앴다는 것을 시인했다.
그것도 부장주라는 고수를 움직여서.
그 문파가 비록 소림의 분원(分院)이나 속가문파(俗家門派)가 아니라 해도 소림의 장로를 앞에 두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는 것은 보통 배포가 아니었다.
공벽은 사제인 공암과 비무를 해서 승부를 내지 못한 이현성의 무위에 대해서 언질을 받았다.
허나 이런 배포가 무위 때문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릇 자체가 크기 때문이란 느낌을 받았다.
“귀장의 부장주가 역시 ‘그’인가?”
“이미 눈치채셨을 테니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의 의형이자 본장의 부장주께선 무림에서 맹검(盲劍)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소림이 예측한대로 태가장에 있는 고수는 바로 맹검이었다.
확답을 받은 공벽대사는 불호를 읊었다.
그때 그의 안광이 반짝였다.
“그럼 장주 역시 천사교의 제자란 말인가?”
“아, 오해를 하셨군요. 물론 충분히 오해하실 수 있는 부분입니다.”
천사교는 사파무림의 네 기둥 중 하나였다.
정파무림의 정신적 지주인 소림과는 상극이라 할 수 있었다.
공벽대사는 그런 소림의 장로였다.
경계심이 생기는 건 당연한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이현성은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았다.
경계심을 가진 공벽대사가 무안할 정도였다.
“…아직 빈승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았네.”
“제 대답은… ‘아니요’입니다. 그리고 형님 역시 천사교의 호교사자가 아닙니다. 천사교를 떠나셨으니까요.”
이현성의 말에 공벽대사는 깜짝 놀랐다.
맹검의 탈교(脫敎)는 천사교 내부에서도 수뇌급만 알고 있는 기밀사항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직 소림에는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때문에 그가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그, 그게 정말인가!”
“물론입니다. 제가 대사님을 속일 이유가 있겠습니까? 속이려 한들 속일 수 있는 일이 아니잖습니까?”
“아미타불…….”
맹검은 천사교의 호교사자였다.
그것도 교령에 버금가는 고수였다.
그런 그가 천사교를 탈교했다는 것은 소림의 입장에서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소림이 강하다고 하지만 천사교의 강함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천사교는 사파사세였으니까.
“이제 대사님의 볼일은 끝이 난 겁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네만… 한 가지만 더 묻겠네. 귀장은 사도(邪道)를 표방하는가?”
천사교의 고수가 소림의 앞마당인 하남에 자리를 잡았다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허나 일개 사파고수라면 큰 문제는 아니었다.
아무리 맹검이 강해도 홀로 소림을 노릴 순 없을 테니까.
“아닙니다. 허나 정도(正道)를 지향하는 것도 아닙니다. 협을 알지만 이익 역시 추구하는 정사지간(正邪之間). 그게 본장의 길입니다.”
“아미타불…….”
공암대사와 비견되는 고수라는 장주와 맹검 부장주가 몸담고 있는 태가장이 정도를 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그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천사교를 탈교했다고 한들 맹검은 사파무림의 고수였다.
이제 와서 정파고수가 되는 것은 어렵다.
아니, 인정할 자가 없었다.
그렇기에 정사지간이 최선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사님께서 떠나시기 전에 드릴 선물이 있습니다.”
“아미타불…….”
물욕을 탐해선 안 되는 불자였다.
공벽대사 역시 물욕은 없었다.
허나 불자 역시 인간이었기에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재물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시주(施主)하려는 것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현성이 준비한 선물은 예상과 달리 한 권의 서책이었다.
그것을 본 공벽대사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동시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이건…….”
“맞습니다. 괴력난신이라고 불린 마교의 철마, 그의 무공서입니다.”
“……!!”
이현성의 대답에 공벽대사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무승(武僧)인 동시에 수십 년간 수양을 한 고승(高僧)이기도 한 공벽대사였다.
그답지 않게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채 분노를 불태웠다.
그때 이현성이 손을 휘둘렀다.
수도(手刀)로 그의 분노를 벤 것이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자신의 추태를 깨달은 공벽대사는 불호를 연거푸 읊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장주의 집무실에서 엄청난 기운이 퍼지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소림제자들은 깜짝 놀랐다.
“사부님! 무슨 일이십니까!”
“아미타불… 아무것도 아니다. 들어오지 말고 기다리거라.”
공벽대사의 제자인 범양과 사손들은 안절부절못했으나, 감히 기사멸조(欺師滅祖)의 죄를 범할 수 없기에 그대로 대기했다.
공벽대사는 이현성을 향해 합장(合掌)하며 사과를 했다.
“아미타불… 빈승이 추태를 보였네.”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이 마물이 어찌 장주의 손에 있는가?”
이현성은 사실대로 설명했다.
대력보의 하위집단이 낭아파가 태가장의 사업장을 공격했다는 사실부터.
뒤 구린 소문을 가진 대력보를 일벌백계해 또 다른 시비를 피하려고 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철혼대마력의 비급을 회수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가감 없이 얘기했다.
“그럼 대력보주가 철마의 후예란 말인가!”
“그건 아닐 겁니다. 철마의 후예치곤 너무 허술했으니까요. 아마 천마대전 당시 유실되었던 비급을 손에 넣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그가 죽은 이상 확신은 못합니다.”
“아미타불… 고맙네.”
괴력난신 철마의 손에 죽은 소림의 제자가 수십이었다.
특히 철마의 목숨을 취했으나 그 과정에서 입은 내상으로 인해 끝내 입적한 료료대사가 바로 공벽대사의 사부였다.
철혼대마력의 마공서를 본 후 극도로 흥분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공벽대사는 이현성에게 무척이나 큰 감사를 느끼게 되었다.
“혹 빈승에게 원하는 것이 있는가? 빈승의 능력이 되는 한 들어주겠네.”
“음… 딱히 대가를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말해보게나.”
“…외문무공 하나만 주실 수 있습니까?”
예상치 못한 이현성의 대답에 공벽대사는 어리둥절했다.
철혼대마력을 내놓고 요구하는 것이 고작 외문무공이었다.
물론 금강불괴신공과 같은 소림 72절예에 속한 외문무공이라면 상황이 달랐다.
“외문무공이라… 어떤 무공을 원하는가? 본사의 무공을 원하는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조금 전에 말씀드린 낭아파와의 싸움에서 본장의 무사들이 제법 다쳤습니다. 그러니 그들을 어찌 믿고 본장의 경비를 맡기겠습니까? 문제는 그들이 금군 출신이라서 내가기공을 전수하기에 여의치 않습니다. 해서 외문무공을 가르쳤으면 합니다. 가능하겠습니까?”
“그렇군. 본사 장경각에는 장주가 원하는 외문무공이 몇 개 있을 것이네. 허나 빈승이 독단으로 결정할 수는 없으니, 장문사형께 말씀드려보겠네.”
“알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분명 뛰어난 외문무공을 전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철혼대마력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 시간, 소림고수에게 태가장이 박살나길 기다리던 정주의 실력자들은 경악하고 말았다.
* * *
“그, 그게 무슨 말이더냐!”
“태, 태가장… 아니, 이가장의 현판을 소림의 땡중이 직접 바꿔줬다고 합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장주가 바뀌면서 장원의 이름 역시 바꿀 예정임을 알게 된 공벽은 새 현판에 직접 이름을 적어주었다.
그것도 무려 소림의 절학인 금강지(金剛指)로.
철마의 마공서를 선물한 약발(?)이 생각보다 대단했던 것이다.
태가장의 동태를 살피는 정주의 실력자들은 공벽대사의 신분을 알지 못했지만, 소림의 고수임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런 그가 예상과 달리 태가장… 아니, 이가장의 현판을 직접 달아주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소림 고수가 이가장에 적의(敵意)가 아닌 호의(好意)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출전 준비하는 수하들은 어떡할까요?”
“뭐 어떡해! 출전은 당연히 취소지!”
멍청한 소리를 하는 수하를 보며 귀문주는 짜증이 치솟았다.
“그럼 그자가 맹검이 아니란 말인가?”
대력보를 무너트린 정체불명의 고수.
대력보의 잔당을 통해 알아본 결과 분명 무시무시한 검객이었다.
맹검 이외에 그런 맹인인 검객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정주의 실력자들은 그를 맹검으로 유추하게 된 것이다.
“설마 맹검이 아니라 해도 대력괴곤의 목을 간단히 쳐낸 괴물이다. 욕심 때문에 모험을 할 수는 없지.”
귀문주만이 아니었다.
중앙북로의 절반을 노리던 정주의 실력자들은 출전 준비를 하던 수하들을 물리며 아쉬워했다.
자신들의 목이 대력괴곤보다 질기지 못하니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들끓었던 정주는 차갑게 식어버렸다.
동시에 폭풍의 눈인 이가장이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