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살수-119화 (119/314)

119화.

태가장은 현재 태천광이 아닌 자신의 소유이며, 그에 대한 여타 조건을 내건 것은 없기 때문이다.

“좋습니다. 장원의 이름을 바꾸지요. 이름은… 부장주님과 상의해보겠습니다.”

“제 소견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주님.”

“아닙니다. 제가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해주세요.”

* * *

“아미타불… 태가장이라면 ‘그곳’이 아니던가.”

“예. 장문사백.”

소림방장인 공심대사는 사질인 범원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범원은 소림 속가모임인 천불회(千佛會)와의 연락을 담당했다.

정확히는 그들이 보내오는 정보를 관리하는 인물이었다.

불자였지만 정파무림의 정신적인 지주라 불리는 소림의 입장에서 속세의 일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귀를 열어둘 수밖에 없었다.

‘스승님의 말씀이 있으셨기 때문인지… 더 신경이 쓰이는구나.’

성승 료굉대사는 속세에 다녀온 후 제자인 공심대사에게 스쳐가듯 말했다.

부처님께서 좋은 인연을 주셨다고.

공심대사는 스승인 료굉대사를 모시고 하산했던 자신의 제자 범천을 불러서 물었다.

이에 범천은 태가장에서 만난 한 청년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셨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자신의 사제인 공암이 그와 비무를 해서 승부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덕분에 공심은 자신도 모르게 불호를 연거푸 읊었다.

“범원, 공벽 사제를 불러와 주게나.”

“아미타불… 예. 장문사백.”

사제인 공암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소림삼신승에 비견되는 고수였다.

구룡검의 맹약자이자 소림의 수호자인 항마신승이니 당연했다.

그런 공암이 승부를 내지 못한 고수가 있는 태가장.

그곳에 천사교의 초절정고수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아무나 보낼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공심대사는 사제이자 소림삼신승의 한 명인 공벽을 보내려고 했다.

“아미타불… 공벽 사제라면 문제없겠지…….”

그날 소림의 승려 몇몇이 산문을 넘었다.

그로 인해 정주 실력자들의 시선은 더욱 태가장에 집중되었다.

* * *

“다녀왔습니다.”

소림의 고수들이 정주로 향하던 시간, 두 사내가 천중산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태가장에서 떠난 종리우와 이현호였다.

네다섯 달 만에 돌아왔으나 천중산장은 그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천중산장의 식구들은 두 사람을 반겼다.

“현아, 몸은 어때? 아픈데 없지?”

“은설 누이. 제가 얼마나 튼튼하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건강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천중산장의 주인 한승의 외동딸 한은설은 이현호의 두 손을 잡은 채로 울먹거렸다.

그 모습을 옆에서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중년 사내, 종리우가 있었다.

“넌 이 사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느냐?”

“사, 사부님이야 워낙 대단하신 분이니까.”

―늙은 사부 서러워서 살겠나. 제 낭군만 찾으니… 원.

―이러기예요, 사부님?

막역하다고 할 정도로 두 사람은 가까운 사제지간이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사이, 이현호는 사부인 한승에게 다가갔다.

“제자가 너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아니다. 너만 무사했으면 됐다. 그래, 네 형은 만났느냐?”

“예. 사부님. 다행히 형님을 만났습니다.”

이현호는 그간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애초 문가장에 그가 없었다는 것과 돌아오는 길에 정주에서 우연히 재회했음을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한승은 놀라워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주라… 그리 멀진 않구나.”

“예. 사부님. 형님께서 장원이 안정되면 한번 인사드리러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구나.”

한승은 이현호가 형을 만났다는 것을 함께 기뻐해 주었다.

허나 동시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들 형제의 누이 이현영의 일 때문이다.

두 사람은 누이인 이현영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한승이 사부이자 장인의 유언 때문에 갈등하는 사이에 정체불명의 여고수가 그녀를 구해갔다.

그 이후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최소한 당시에 죽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두 사람에게 사과해야 했다.

사부이자 장인의 유언도 중요하지만, 사람 목숨보다 중요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고민하다가 그녀가 죽을 뻔했다.

험한 일을 당할 뻔했다.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무거웠다.

‘그가 온다면 죄를 청해야겠구나.’

평생 정도(正道)를 걸어온 그였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는 그에게 유일한 마음의 짐이 바로 그때의 일이었다.

십여 년간 이현호를 돌봐준 것으로 죄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죄에 대한 처벌을 받을 때가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다만 제자인 이현호보다는 그들 남매의 첫째인 이현성에게 먼저 용서를 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때 이현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부님. 강해지고 싶습니다.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오냐. 이 사부가 널 강해지게 해주마.”

제자인 이현호에게 천검비록의 천검을 전수해줄 생각을 했을 때부터 한승은 준비하고 있었다.

그 준비의 하나가 의숙이자 의독선생의 사부인 독의(毒醫)였다.

천검은 광세절학이었다.

이를 익히기 위해서는 타고난 재능과 뼈를 깎는 노력은 물론, 심후한 내공 역시 필요했다.

이제 열일곱인 이현호의 내공이 부족한 것은 당연했다.

그 당연한 것을 해결해주기 위해 독의의 도움이 필요했다.

독은 사용하기에 따라 어떤 약보다 큰 도움이 된다.

하물며 독술과 의술을 겸비한 독의라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 * *

“합! 합! 합!”

어린 소년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가장의 시동이자 장주의 지도를 받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이 익히고 있는 무공은 사실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육합검법(六合劍法)과 풍운심법(風雲心法).

저잣거리에서 은 두 냥이면 살 수 있는 흔한 무공이었다.

아니, 무공이라 하기에도 부끄럽다.

하지만 아이들은 흡사 신공절학이라도 익히듯 열성적으로 익히고 있었다.

“열심히들 하는군.”

“그러게. 고작 육합검법과 풍운심법이거늘…….”

태가장 경비대원들은 내공심법을 익힌 적은 없으나 육합검법과 풍운심법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들은 금군 중에서도 정예인 금위군(禁衛軍) 혹은 북부, 동부군 출신들이었다.

그들이 익힌 격창십팔세(擊槍十八勢)나 육참도법(六斬刀法) 등은 간단하지만 효율적인 실전무공이었다.

게다가 동공(動功)의 무리(武理)가 담겨 있어서 오래 익힐수록 위력이 강력해진다.

실제로 허정은 이십 년간 격창십팔세를 익힌 덕분에 일류고수가 되었다.

그렇기에 육합검법과 풍운심법을 평생 익힌다 해도 자신들보다 강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들의 수련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허나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고작? 그딴 정신 상태이니 낭인 놈들에게 당하지! 너희가 진심으로 수련하는 아이들을 무시할 때냐!”

“헉! 죄, 죄송합니다! 부대장님!”

경비대원들은 순찰 중이었던 부대장에게 호되게 혼이 났다.

말이 낭아파를 상대로 승리한 것이지, 그들의 뒷배인 대력보가 무너졌단 소식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금군 정예출신이란 자존심에 먹칠을 한 셈이니, 부대장은 물론 경비대원들 역시 창피한 일이었다.

대원들을 훈육한 부대장은 성난 얼굴로 경비대장 허정을 찾아갔다.

“대장님. 이대론 안 될 것 같습니다.”

“임 부대장. 그게 무슨 말인가?”

뜬금없는 임천기 부대장의 말에 허정은 어리둥절했다.

임천기 부대장이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 그럼 자네의 생각은 뭔가?”

“장주님과 부장주님께선 대단한 고수이시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래서 그분들께 무공을 가르쳐달라고 하잔 말인가? 아니네. 우린 무림인들과 다르네. 이제 와서 무림의 무공을 배운다고 해서 제대로 익힐 수 있을 것 같은가?”

“…….”

임천기 부대장의 생각도 다르지 않은지 부정하지 못했다.

군부의 실전무공은 육체의 힘을 발휘하는 외문무공(외공)에 속했다.

내가기공을 기반으로 둔 무림의 무공과는 그 궤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짧게는 7~8년 길게는 20년 이상 군부의 실전무공을 익힌 그들이 이제 와서 무림인들처럼 내공을 익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 혈맥이 막혀서 익히기가 어려웠다.

“허나 그렇다 해도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저도 같은 생각이우. 솔직히 쪽팔리우. 대장.”

그때 거구의 중년 사내가 들어왔다.

험상궂은 인상에 부슬부슬한 수염이 촉의 장비를 연상케 했다.

임천기와 함께 경비대의 부대장인 장무열이었다.

허정은 장무열이 아닌 다른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적 부대장도 같은 생각인가?”

“…예.”

임천기, 장무열 그리고 적운.

태가장 경비대 3대 부대장이 모두 모였다.

그리고 그들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허나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장주님과 부장주님께서 우리에게, 경비대원들에게 무공을 전수해줄 거라 생각하는가?”

“그, 그야…….”

당연하지 않냐 말하려 했으나 선뜻 내뱉을 수 없었다.

솔직히 자신할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는 태가장의 경비무사들인 자신들이 강해지는 것이 태가장이 강해지는 것이니, 당연히 무공을 전수해줄 것이다.

허나 무공은 비인부전이라고 했다.

그들이 무공을 전수해줄 거라고 단언하는 것은 어리석었다.

허정은 경비대장으로서 그들 중에 이현성을 가장 자주 만났다.

그렇기에 그나마 이현성에 대해서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자네들도 알고 있겠지만 경비대 중 일부는 전(前) 장주의 명령으로 잔류했을 것이네.”

“그야 뭐…….”

다들 군부의 밥을 제법 먹은 자들이었다.

따라서 윗대가리(?)들의 생리쯤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것이 악의가 아니라도, 현(現) 장주 입장에선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장주님은 우리를 신뢰하지 않네. 시험이었던 낭아파와의 싸움도 솔직히 통과했다고 보기 어렵고 말이야.”

“…….”

허정의 말에 세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그들이라고 이 상황이 마음 편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 임천기가 입을 열었다.

“지금 이대로 있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장주님께서 우릴 신뢰할 수 있게 우리 스스로 뭔가를 보여줘야 합니다.”

“방법이 있나?”

“솎아내죠. 진심으로 태가장 사람이 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임천기 부대장의 말은 태천광의 지시를 받는 자를 색출하자는 뜻이었다.

그것으로 자신들의 능력은 물론, 태가장의 사람이란 것을 증명하잔 뜻이었다.

하지만 허정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그 말씀은…….”

“태가장의 사람 역시 나누어야 한다. 그냥 태가장의 무사로 남을지, 장주님을 모실지.”

“……!!”

허정의 말에 세 부대장의 눈이 커졌다.

태가장의 무사가 되는 것과 이현성을 모시는 것은 같으나 달랐다.

장주의 명령(지휘권)을 받는 것과 목숨(생사여탈권)을 맡기는 차이였다.

“대장… 아니, 형님. 형님은 그를 주군으로 모실 생각이십니까?”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네. 허나 한 가지는 확실하네. 어중간한 결정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단 걸 말이야. 장주님은 어중간한 걸 그리 좋아하시지 않네.”

세 사람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허정은 다그치지 않았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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