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태천광의 태가장 때문이다.
태가장은 흑도 혹은 사파방파들처럼 상인들의 보호비를 갈취하지 않았다.
정파문파들처럼 직접 사업장을 운영하기 때문에 상인들의 보호비를 탐낼 필요가 없었다.
그런 태가장의 사업장들이 중앙북로 한쪽에 모여 있었다.
독안귀도 전직 고관인 태가장이 운영하는 점포를 노릴 수 없었기에 절반만 차지했다.
그런데 지금 태가장의 점포들과 그 주변의 상권을 차지하자니 놀라는 것이다.
“우,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태 장주가 북경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게 정말이야? 잠깐 간 거겠지!”
“아, 아닙니다. 지금 장주는 어떤 애송이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태가객잔의 총관이 이현성에게 장주라고 부르는 것을 본 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덕분에 태가장주가 바뀌었다는 사실이 은근히 퍼진 상황이었다.
다만 다들 설마하며 반신반의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충분히 해볼 만했다.
낭인출신들답게 다들 한칼 하기에 태천광이라는 뒷배만 아니라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태천광이 돌아갔다면 고수들 역시 데려갔을 테니, 잔류한 쭉정이들 따위 처리 못 할 자신들이 아니었다.
“너는 조금 더 알아보고, 나머지는 움직일 준비를 해. 확인되는 대로 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그들은 몰랐다. 잠자고 있는 호랑이의 코털을 건드리고 있다는 것을.
* * *
“노야(老爺). 낭아파가 미끼를 물었습니다.”
중년 사내는 노인의 앞에 부복한 채로 보고를 했다.
특이한 점은 노인의 한쪽 눈이 없다는 점이었다.
“…왜? 놈들에게 기회를 준 것이 불만이더냐?”
“아, 아닙니다. 저는 다만… 낭아파가 옆에 있으면 성가실 수도 있기에…….”
태천광이 떠난다는 소식을 낭아파에 흘린 것은 놀랍게도 독안 노인의 지시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독안 노인은 정주 중앙북로의 절반을 지배하는 독안귀였다.
낭아파만 해도 제법 굵직한 흑도조직이었다.
게다가 그들의 뒤에는 대력보가 존재했다.
그런 낭아파가 중앙북로의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게 된다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언제 수작 부릴지 모르니 더욱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안귀는 직접 차지하는 대신 낭아파를 움직일 미끼를 던졌다.
“네가 보기엔 낭아파가 차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태가장주가 고수들을 빼간 이상 충분히…….”
독안귀는 태천광과 고수들이 떠난 사실에 대해 의심이 아닌 확신을 하고 있었다.
잔류한 전력은 그리 대단한 수준이 아님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직접 중앙북로를 일통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태천광 대신 애송이가 태가장주가 되었지.”
“그의 혈육이 아니니…….”
태가장의 신임 장주가 태천광의 혈육이라면 곤란했다.
전직 고관의 혈육을 건드린 셈이니까.
허나 남이라면 상황이 달랐다.
뒤탈 걱정이 없으니까.
“혈육도 아닌데, 장원을 넘겼다.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더냐?”
“그야 뭐… 그래봤자 애송이에 불과하니…….”
독안귀는 이 상황을 너무 쉽게 보는 부하가 못마땅한지 혀를 찼다.
“진짜 애송이인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그 말씀은 애송이가 아닐 수도 있단 말씀이십니까?”
독안귀의 말에 중년사내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보기엔 그저 애송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애송이일 수도 있지. 허나… 느낌이 좋지 않아.”
“…….”
중년인은 고작 느낌 때문에 중앙북로 전체를 차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친 독안귀가 늙어서 소심해졌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내진 않았다.
그의 잔혹한 손속은 전혀 소심해지지 않았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주에서 열 손가락에 꼽히는 고수이기도 했다.
그걸 망각한다면 당장 목이 떨어질 수 있었다.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독안귀는 단순히 예감이라고 했지만, 사실 예감만이 아니었다.
신임 태가장주와 함께 들어왔다는 맹인.
왠지 그가 자신이 아는 누군가를 연상케 했다.
아닐 수도 있었다. 세상에 맹인이 어디 한 명밖에 없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만약 그가 맞다면 문제가 커진다.
고작 중앙북로 전체를 장악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어야 해…….’
* * *
“장주님!”
“무슨 일인가?”
경비대장인 허정이 다급하게 이현성을 찾아왔다.
허나 이현성은 대수롭지 않게 되물었다.
“태가객잔의 철이가 왔습니다.”
“철이? 아, 점소이인 그 아이가 왜?”
철이는 태가객잔의 점소이 중 한 명이었다.
싹싹한 것이 마음에 들어서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낭아파 놈들이 중앙북로 일대를 뒤집고 있다고 합니다!”
“중앙북로라면 독안귀인가 하는 자가 관리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니던가?”
“맞습니다. 낭아파 놈들은 독안귀가 관리하지 않는 점포들을 노리고 있습니다.”
“…본장이 운영하는 점포를 말인가?”
태가장의 식객으로 지낼 때는 알 필요가 없던 부분이었지만, 장주가 된 이상 정주의 이권을 노리는 수많은 집단들에 대해 알기 싫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태천광의 인맥 때문에 건드린 자들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사라진 이상 언젠가 한 번은 터질 일이었다.
이현성 역시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허나 태가장의 사업장을 노린다면 독안귀일 거라 생각했지, 북문 쪽에 활동하는 낭아파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의아했다.
“아직 저희 객잔이나 포목점 등을 건드린 것은 아니나, 주변 점포들을…….”
“그럼 놔두게.”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일을 놔두면 본장을 우습게 볼 겁니다.”
“본장의 사업장이 아니라며?”
낭아파도 간을 볼 요령인지, 태가장의 사업장을 직접 건드리지 않고 인근 점포들만 건드리고 있었다.
태가장이 보호비를 받으며 중앙북로 일부를 관할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의 체면을 생각해서 독안귀도 그 일대는 건들이지 않았다.
낭아파는 그 점포들을 자신들의 관할로 만들고 있었다.
지금까지 태가장의 위세 덕분에 간접적으로 보호를 받았던 점포들로서는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그야 그렇지만…….”
“허 대장. 원래부터 그렇게 오지랖이 넓었나? 본장의 사업장이 아님에도 관여할 정도로 말이야.”
“아, 아닙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현성의 반응에 허정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굳이 태가장이 나설 일은 아니었다.
그들이 태가장의 사업장을 건드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낭아파의 행동은 분명 태가장을 향한 도발이었다.
너희는 예전과 다르다는 은유적인 표현이었다.
허나 그렇다 할지라도 직접적인 피해를 준 것이 아니었다.
즉, 움직일 명분으로는 부족했다.
하지만 이현성은 거기서 한 발 더 앞서 나갔다.
“본장은 정파가 아니다. 물론 사파도 아니지. 내가 표방하는 것은 협을 알지만 위선 떨지 않고 남에게 이용당하지 않는 정사지간일세.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예. 알겠습니다. 장주님.”
이현성은 굳이 흑도나 사파방파처럼 상계에 기생해 그들의 고혈을 뽑아 먹을 생각은 없었다.
현재 소유한 사업장만으로도 가솔들이 줄어든 태가장을 충분히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쾌활림만 정주로 이전한다면 장원의 인원을 확충한다 해도 재정적 압박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허나 받는 것 없이 남을 무조건적으로 도울 생각도 없었다.
처음에만 고마워할 뿐, 도움을 받는 것을 권리라고 생각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현성은 노리는 건 두 가지였다.
태가장의 위세를 이유 없이 베풀 생각이 없다는 것과 일벌백계를 통해 태가장의 위세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것을 위해서 아직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경비대의 힘으로 낭아파를 상대할 수 있는가?”
“쉽지 않겠지만 가능합니다. 다만…….”
낭아파가 전직 낭인들로 제법 칼에 피를 묻힌 자들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태가장의 경비대 역시 금군에서도 선별된 정예군사 출신들이었다.
낭인 한둘쯤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게다가 금군출신답게 조직력이 뛰어났다.
따라서 낭아파를 상대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낭아파 뒤에는 대력보가 있습니다. 보주인 대력괴곤(大力怪棍)은 정주에서 열 손가락에 꼽히는 고수로…….”
정주에서 손꼽히는 사파방파와 견줄 수 있는 대력보는 태가장의 경비대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특히 대력보주는 뛰어난 고수라서 조심스러웠다.
허나 그가 알고 있는 이현성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좋군. 대력보라면 제물로 적당하겠어.”
한 번쯤 정주를 뒤집을 생각이었다.
명분을 이쪽에서 만들기 전에 알아서 만들어줬으니 오히려 잘되었다.
다만 확실한 명분을 갖기 위해 조금 더 기다릴 셈이었다.
“허 대장은 그들이 본장의 사업장을 건드리기 전에는 움직이지 마. 단, 본장을 건드린다면 그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지. …이건 경비대의 시험이기도 하니, 날 실망시키지 말게.”
“맡겨주십시오.”
경비대는 태가장을 보호하기 위한 무사집단이었다.
그들이 보호할 곳은 태가장의 장원만이 아니었다.
태가장의 사업장들 역시 포함된다.
낭아파라면 제법 실력 있는 흑도집단이라 하지만, 그들도 감당 못 한다면 장원의 경비를 계속 믿고 맡길 수 없었다.
대놓고 경비대 역시 시험하겠다는 이현성의 말에 허정은 바짝 긴장했다.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할 때라는 것을 느꼈다.
“많은 피를 보지 않기 위해선 확실한 것이 좋으니까…….”
* * *
“흐흐흐… 역시 겁먹었군.”
막상 움직이긴 했으나 낭아파로서는 조심스러웠다.
태가장이 정주상계의 이권에 관여하지 않았으나 장주가 고관 출신이었기에 조심스러웠다.
중앙북로의 절반을 관리하는 독안귀가 움직이지 않은 이유도 그것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일대를 건드렸음에도 태가장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즉, 예전 같지 않다는 증거였다.
그러니 낭아파가 우쭐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럼 태가객잔을 접수해라.”
“예! 형님!”
결국 낭아파가 선을 넘었다.
태가장의 사업장인 태가객잔을 세력권에 넣으려고 나섰다.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태가객잔의 총관은 덜컥 겁을 먹었다.
진즉 태가장에 점소이를 보냈는데 아직까지도 무사들을 보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이곳에는 어인 일이십니까?”
“이미 들었을 텐데 시치미를 떼는 것은 날 우습게 본다는 뜻인가?”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 다만 저희 객잔은 태가장에서 운영하는…….”
총관은 태가장의 이름을 내세우며 허튼수작을 부리지 말라고 피력했다.
하지만 낭아파의 수장은 태천광이 떠난 태가장은 그야말로 종이 호랑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이제 호랑이도 아니라 판단한 상황이었다.
그런 태가장의 위세에 기대는 그들이 우스웠다.
“그래서? 태가장이 네 배때기에 들어갈 칼을 대신 맞아준대?”
“그, 그, 그러니까…….”
눈앞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으니 총관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당황했다.
하지만 쉽게 대답할 수도 없었다.
그는 객잔의 점주가 아니라 일개 총관이었다.
비록 객잔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권한을 인정받았다 한들, 낭아파에 세금을 낼 순 없었다.
그건 태가장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거절한다면 눈앞의 날카로운 비수가 자신의 배를 유린하게 된다.
그걸 알기에 총관은 덜컥 겁이 났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