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아무에게나 전수해선 안 되고, 자칫 유출된다면 화근 덩어리가 될 수도 있었다.
그가 전수할 풍운심법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평범한 풍운심법이 아니었다.
그의 손에서 개량된 기공이었다.
이현성의 입장에서는 대단할 것은 없지만, 이렇다 할 배경이 없는 무림인들의 입장에선 아니었다.
그리고 위험한 일이 생긴다면 그건 이현성이 아닌 아이들에게 생길 것임을 알기에 당부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현성의 말에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런데 한 아이의 대답이 이상했다.
마구간지기 마 노인의 손자 마승평이었다.
“승평아. 약속을 지킬 수 없다면 너에겐 내공심법을 가르쳐줄 수 없구나.”
“스, 승평아. 뭐, 뭐해. 장주님께 약속한다고 대답해!”
“마, 맞아. 승평아!”
아이들의 다그침에 마승평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현성은 한쪽 무릎을 꿇고 마승평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리고 그가 겁먹지 않게 나직하게 말했다.
“약속을 지킬 자신이 없는 것이더냐?”
“내, 내공심법을 이, 익히면… 건강해진다고 하셔서…….”
“그랬지. 그게 왜?”
“하, 할아버지께도 알려드리고 싶어서…….”
결국 마승평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순간 이현성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착한 아이의 속 깊은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했다.
마승평의 눈물을 닦아주며 자상하게 말해주었다.
“내가 가르치는 대로 열심히 익히면 너흰 건강해지고 힘이 세질 거란다. 허나 잘못 익힌다면 오히려 병이 날 수도 있단다. 그래서 내가 직접 내공심법을 가르치는 거야. 승평이의 할아버지는 나이가 많으신데, 병이라도 나시면 어떡할래?”
“시, 싫어요! 할아버지가 아프신 거는 싫어요!”
이현성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할아버지에겐 다른 걸 가르쳐드릴 테니까 내가 가르쳐줄 내공심법은 할아버지는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주면 안 된다. 너희도.”
“저, 정말요!”
“네~에!!”
내공의 축기가 목적이 아닌 건강이라면 굳이 내공심법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바르게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건강해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현성은 마승평과 약속한 대로 마 노인에게 호흡법을 가르쳐줄 생각이었다.
어설프게 내공심법을 익히는 것보다 훨씬 안전할 테니까.
“그럼 오늘부터 가르쳐줄 테니까 열심히 익혀야 한다.”
“예!!”
* * *
“결정…하셨습니까?”
아이들에게 풍운심법의 기본을 가르친 이현성은 집무실로 돌아왔다.
얼마가 지났을까? 누군가 그의 집무실로 찾아왔다.
마승평의 조부인 마 노인이었다.
그가 찾아왔다는 것은 결정을 내렸다는 뜻이었다.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거절할지를.
이현성의 물음에 마 노인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쇤네가 아는 것은 없지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하하하… 잘 생각하셨습니다. 마 노인. 아니, 마 집사님.”
다행히 마 노인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기뻐하는 이현성을 보며 그는 너무 송구스러워했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기뻐해 주시다니…….’
여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내를 위해 목숨을 걸고, 사내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주군을 위해 목숨을 건다고 했다.
마 노인… 아니, 마 집사 역시 다르지 않았다.
손자인 마승평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인정해준 이현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저… 장주님.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뭡니까, 마 집사님.”
“마구간은 그대로 제가 맡고 싶습니다.”
예상치 못한 마 집사의 청에 이현성은 난색을 표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러다가 탈이 나실 수도 있습니다.”
“평생 해오던 일인지라… 오히려 안 하면 그게 더 힘들 것 같습니다. 장주님.”
“으음… 알겠습니다. 대신 도울 사람을 붙여드리겠습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장주님.”
말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허나 그것 때문만이 아니었다.
집사라는 감투를 쓴 자신이 변할까봐 두려웠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경험이 많다는 것이다.
그 역시 다르지 않았다.
갑자기 능력 이상으로 많은 것을 쥐게 된 자들이 어떻게 변했고, 어떤 말로를 걸었는지 여럿 봐온 그로서 집사라는 직분에 경계심을 가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자신을 인정해준 이현성에게, 사랑하는 손자 마승평에게 자신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남기고 싶었다.
“아, 그리고 가르쳐드릴 것이 있습니다. 제가 가르쳐드린 대로 하면 조금이라도 더 건강해지실 수 있을 겁니다.”
그는 마승평과 약속한 대로 간단한 호흡법을 가르쳐줄 생각이었다.
이미 늦고 노쇠한 그도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그런 호흡법을.
태가장은 집사의 임명으로 조금 더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정주는 그와 달리 혼란 속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 * *
“무, 무슨 짓이…오!”
중년 사내는 당황했다.
갑자기 도검을 쥔 수십 명의 사내들이 들이닥쳤으니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그럼에도 믿는 구석이 있는지 이 와중에도 언성을 높였다.
그런 그를 보며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나직하게 말했다.
“아직 사태 파악이 안 되나?”
“우, 우리 가게는…….”
“구화당은 더 이상 이 바닥에 없다. 이제 좀 이해가 되나?”
“아, 알겠소. 아악!!”
하남성의 성도 정주(鄭州).
역사적 가치나 규모는 낙양이나 개봉보다 못하지만, 정주는 하남성의 성도다.
외부에서 유입되는 상단의 물건들이 이곳 정주에서 사방으로 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만큼 이권은 오히려 낙양이나 개봉보다 크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권을 노린 무리가 수두룩하게 많았다.
그들은 더 많은 이권을 차지하고 싶었으나 서로의 견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사달이 나고 말았다.
균형에 틈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정주에서도 제법 큰 이권을 쥔 가문 하나가 사라졌다.
그래서 정주안가의 공백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졌다.
“앞으로 여긴 흑사당의 영역이란 것을 잊지 말라고.”
“아, 알겠습니다!”
흑사당주의 강한 경고(?)를 받은 점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흑도집단 수십이 난립한 정주에서도 흑사당은 손에 꼽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알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정주 사파 중 세 손가락에 꼽히는 흑혈방이 내세운 하위집단이 바로 그들이라는 것을.
흑사당만이 아니었다.
정주 흑도집단은 대부분 뒷배가 있었다.
사파나 정사지간의 방파이며, 극히 일부는 관리나 정파세력의 비호를 받았다.
그런 흑사당이 이곳을 침범했다는 것은 정주안가의 비호를 받았던 구화당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동한다!”
“예! 당주님!”
정주안가의 공백을 차지하기 위해 여러 집단이 움직였다.
큰 힘 안 들이고 세력을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알기 때문이다.
허나 그보다 더 많은 집단은 숨을 죽였다.
아직 더 눈치를 보거나 힘이 없어서였다.
이런 흑도 집단들의 움직임은 정주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 * *
“젠장! 벌써 서로(西路)를 차지했단 말이지! 그럼 우린 남로(南路)를!”
정주는 크게 다섯 구역으로 나뉜다.
동서남북 네 개의 문(門)과 중앙로(路).
중앙로는 다시 동서남북 네 개의 길로 나뉜다.
정주안가는 그 중 중앙서로와 남로를 꽉 잡고 있었다.
하나의 길(路)에 작게는 노점(露店)이, 크게는 기루나 도박장 등 수십의 점포가 존재하는 중앙로는 제법 큰 이권이었다.
그렇기에 보통 하나의 길을 서너 흑도집단이 나눠먹었다.
그럼에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재화(財貨)가 발생하는 곳이었다
정주안가는 그런 길을 두 개나 쥐고 있었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정주안가를 대신해서 구화당이 중앙서로를 관리하고 있었고, 중앙남로 역시 다른 흑도집단이 정주안가를 대신해 관리하고 있었다.
그중 구화당이 맡고 있던 중앙서로를 몇몇 흑도집단이 나눠먹었다.
정주안가라는 뒷배를 잃은 구화당으로서는 중앙서로를 지켜내지 못한 탓이다.
“거긴… 야도문과 백귀놈들이…….”
“이 머저리들아! 왜 이렇게 느려 터졌어!!”
한발 늦었다. 중앙서로만 아니라 중앙남로 역시 잽싸게 차지한 것이다.
중앙남로를 차지한 야도문(夜刀門)은 살수집단이고, 백귀(百鬼)는 귀문(鬼門)이라는 사파문파의 돌격대였다.
흑혈방과 비견되는 귀문은 그들과 달리 아예 직접 구역을 관리했다.
“죄, 죄송합니다.”
“보주님께서 이 일을 아시면 날… 아니, 우릴 가만두실 것 같아?!”
정주 사대문 중 북문(北門)에서 제법 큰 성세를 이루고 있는 대력보(大力堡)는 정파인 척했지만 사파에 가까운 정사지간의 문파였다.
게다가 낭아파(狼牙派)라는 흑도집단을 휘하에 둬서 지저분한 일을 대신 맡겼다.
전직 낭인출신들로 구성된 낭아파는 흑사당과 비교되는 성세를 유지했다.
그런데 흑사당이 중앙서로의 한쪽을 선점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당연히 이는 대력보주에게 호출 당할 일이었다.
흑혈방과 귀문 등이 정주사파를 대표한다면, 대력보는 정주 정사지간을 대표하는 방파 중 하나였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움직임을 많이 의식하고 있었다.
재수 없으면 이번 일로 대력보주에게 끌려가 팔다리 한두 개가 부러질 판이었다.
그러니 낭아파의 수장이 화를 내는 것도 당연했다.
그때 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 아직 차지할 만한 곳이 있습니다!!”
“거기가 어디야!”
낭아파 수장의 불같은 눈빛에 사내는 움찔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중앙북로를…….”
“이런 병신! 독안귀 늙은이가 만만해 보여?! 아무리 늙었어도 절정고수야! 괜히 보주님의 분노를 피하려다가 죽고 싶어?!!”
과거 망나니처럼 날뛰던 사파고수가 있었다.
그의 꿈은 자신의 이름을 단 문파를 세우는 것이다.
허나 그는 젊은 혈기에 실수를 하고 말았다.
아니, 당시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고작 거지 한 명을 불구로 만든 것뿐이었으니까.
문제는 그 이후였다.
거지를 불구로 만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중년 거지 한 명이 그를 찾아왔다.
그는 어이없어하며 중년 거지에게 검을 휘둘렀다가 오히려 눈 하나를 잃었다.
알고 보니 일전에 불구로 만든 거지가 개방도였고, 정식으로 무공을 익히지 못한 백의개였기에 개방도란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개방고수에게 한쪽 눈을 잃었다고 해서 그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 개방고수가 훗날 태상호법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의 후개 중 한 명이었다.
즉, 그는 개방의 후개를 상대해 눈 하나로 그칠 정도의 실력이 뛰어난 고수란 뜻이었다.
그렇게 한쪽 눈과 함께 희망을 잃은 그는 정주 흑도 바닥으로 왔다.
사파문파 대신 흑도집단을 가진 셈이었다.
손속이 잔혹하기로 유명한 독안귀의 중앙북로를 노리자고 하니, 낭아파의 수장이 기겁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 그게 아니라… 중앙북로를 독안귀 늙은이가 다 차지한 게 아니잖습니까…….”
“그게 무슨… 설마… 미친놈아! 태가장을 노리자는 거야?! 아무리 물러났어도 전직 지휘사야! 아직도 여기저기 입김이 닿는다는데 그렇게 죽고 싶어?!!”
사파고수 출신인 독안귀도 중앙북로를 완전히 차지하지 못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