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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113화 (113/314)

113화.

아니, 오히려 빠르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현성의 눈에는 너무도 많이 부족했다.

자신을 도와서 혈천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후… 밖으로 나와라. 네게 현실을 알려주마.”

이현호는 의외로 고집이 셌다.

말로 설득하기 어렵다면 몸으로 이해시킬 생각으로 동생을 연공실로 데려왔다.

장주 전용 연공실인만큼 외부의 시선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자, 와라.”

“형님… 검집을…….”

이현성은 검집 채로 검을 쥐었다.

그 모습에 이현호는 당황했다.

동시에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 십여 년간의 노력은 물론, 존경하는 사부님까지 무시당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왜? 내가 널 무시하는 것 같으냐? 내가 널 무시한다면 검을 잡지도 않았을 거다.”

“…좋습니다. 그 검집… 반드시 빼게끔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이를 악문 이현호는 검을 휘둘렀다.

검을 휘두름에 있어서 흔들림이 없는 매우 깔끔한 동작이었다.

기초가 탄탄한 것이 검을 제대로 배웠단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이현성은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피해버렸다.

“좋은 사부님께 배웠구나.”

“물론입니다, 형님!”

이현호는 베고 찌르고 후려치는 등 검으로 펼칠 수 있는 모든 동작을 펼쳤으나, 여전히 형의 털끝 하나도 건드릴 수 없었다.

덕분에 형은 자신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전력을 다 해보거라.”

“하합!!”

순간 이현호의 검이 바뀌었다.

호쾌하면서 단호한 검이었다.

천중검법(天中劍法).

바로 천중산장의 독문검법이었다.

수년에 걸친 기초수련을 탄탄히 쌓은 후 처음으로 사사받은 검법이었다.

이현호는 사부인 한승에게 천중검법을 사사받고 7년간 익혀왔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익혔다.

북경을 다녀오는 와중에도 틈틈이 수련을 할 정도로 수련광이었다.

그 덕분인지 7년간 익힌 천중검법은 완벽하진 않아도 무척 자연스러웠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현성이 검을 쓰게 만들지는 못했다.

이현성이 호통을 쳤다.

“전력을 다하라는 내 말뜻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느냐!”

“우드득…! 다칠 수도 있습니다!”

순간 이현호의 검이 빛나기 시작했다.

검기(劍氣)였다.

그것도 제법 밝은 것이 어리숙한 수준이 아니었다.

형이 원하는 대로 전력을 다한 셈이었다.

그제야 이현성이 검을 움직였다.

물론 검집째로 움직였다.

서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현호의 검기가 베였다.

그저 검집째로 휘둘렀음에도 벌어진 일이었다.

너무도 허무한 결말에 이현호는 믿을 수 없는지 자신의 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때 이현성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이게 너의 실력이다.”

“…….”

“네 나이를 생각하면 훌륭한 실력이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무림은 나이가 어리단 핑계가 먹히는 곳이 아니다.”

“…….”

이현성은 얼이 나간 동생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를 연공실에 놔둔 채 홀로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위지천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던가? 나이에 비하면 훌륭하던데…….”

“형님도 아시잖습니까. 나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초절정고수답게 연공실 안에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안에서 벌어진 일을 알고 있었다.

이현성의 행동이 매정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달랐다.

고수도 하수에게 죽을 수 있는 곳이 무림이었다.

하물며 하수는 언제든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그런 무림에서 나이에 비해 뛰어나다는 말은 변명거리도 안 된다.

특히 혈천과 같은 무자비한 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이현성으로서는 동생에게 현실을 일깨워줄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이 위험한 싸움에 동생을 휘말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위험한 것은 자신 하나로 족했다.

하지만 문제는 동생의 자존심을 너무 짓밟았다는 점이었다.

“이겨내야 할 텐데…….”

높이 날던 새가 하늘에서 떨어지면 큰 상처를 입고 다신 날지 못하는 법이다.

허나 상처를 이겨낸다면 더욱 높은 창공을 활활 날 수 있었다.

문제는 이겨내지 못하는 자가 훨씬 많다는 점이다.

허나 이현성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현호는 이겨낼 겁니다. 제 동생이니까요.’

* * *

“후… 날 반겨주려나.”

장원을 지척에 두고 한 사내가 긴장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수상한지 장원의 경비무사들이 그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걸 알아차렸는지 사내는 머쓱해 하며 장원에 다가왔다.

그리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사천에서 온 유백이라고 합니다. 이현성, 그를 만나러 왔습니다.”

“하…! 아직도 교두님을 찾아오는 자가 있다니…….”

그렇다.

사내는 바로 신룡유가의 유백이었다.

사천당가와의 연을 마무리 지은 그가 하북팽가에서 친우지연을 맺은 이현성을 찾아온 것이다.

“교두님께서 장원을 떠나신 지 넉 달은 되었소. 무슨 일인지 모르나 그만 돌아가시오.”

“그, 그런… 혹시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 친구를 만나기 위해 사천에서 왔습니다.”

문가장의 정문을 지키던 금의위사들은 사내를 내치려고 하다가 이현호의 일이 생각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교두님과는 어떤 사이오?”

“이현성, 그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친우입니다. 비록 교분을 나눈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설마 했는데 이현성과 친우라는 말에 금의위사들의 태도가 바뀌었다.

“…!! 교두님의 친우셨군요. 실례했습니다.”

“아닙니다. 혹시 그 친구를 만나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안타깝게도 저희 역시 교두님께서 어디로 가셨는지 알지 못합니다. 일전에 교두님의 동생분께서도 만나 뵙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금의위사의 말에 유백은 허탈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떠나왔다.

이제 와서 연을 끊은 사천당가로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갈 생각도 없었다.

그렇기에 이현성을 꼭 만나야 했다.

“이 형에게 동생이 있었군요. 그를 만나려면 어디로 가면 됩니까?”

“그건…….”

금의위사는 이걸 말해도 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본인이 친우라고 했지만, 당사자인 이현성이 없는 이상 그의 말이 맞는지 확인할 방도가 없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의심할 수도 없었다.

진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금의위사는 입을 열었다.

“실례인 줄 아오나 귀하께서 교두님의 친우라는 것을 증명하실 수 없다면 그분의 동생분에 대해서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그런…….”

유백은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친우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비무사(금의위사)의 말도 옳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이, 있습니다! 제가 그의 친우란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그게 누굽니까?”

“아… 그러니까… 누이가 있었는데… 하북팽가에 동행했던…….”

그의 중얼거림에 어리둥절하던 금의위사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유백이 누굴 지칭하는지 깨달은 것이다.

“혹시 문교교 아가씨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 그런 이름의 소저였던 것 같습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제 얼굴을 기억하실지도 모릅니다!”

그의 말에 금의위사들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문교교가 누군가, 내각대학사인 문종학 대인의 여식이었다.

금의위사인 자신들이 파견된 이유이자, 호위 대상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에게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유백을 데려가도 될지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만약 일련의 상황이 그녀를 노린 수작이 아니란 보장이 없었다.

허나 자신들이 마음대로 판단할 부분이 아니라 생각했는지 그들 중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갔다.

문교교에게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들어갔던 금의위사가 돌아왔다.

“아가씨께서 만나보신다고 합니다. 허나 검은 우리에게 맡겨야 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유백은 순순히 검을 맡겼다.

검객에게 검은 분신이라 할 수 있지만,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금의위사들의 안내(감시)를 받으며 장원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전각 앞에 도착했다.

문교교가 기거하는 곳이었다.

“아가씨. 조금 전에 말씀드린 유백이란 자입니다.”

“들어오셔도 됩니다.”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 금의위사는 유백과 함께 들어갔다.

독대를 시키는 것은 위험했다.

“사천에서 온 유백입니다. 하북팽가에서 뵌 적이 있는데,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그분이 맞군요. ‘그녀’를 감싸셨던…….”

유백을 바라보는 문교교는 무척 불편한 기색이 엿보였다.

유백이 불편하다기보다는 그를 본 순간 떠오른 한 여인 때문이다.

사천당가의 꽃, 독화(毒花) 당령.

그녀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챘는지 유백은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그땐 실례했습니다. 당시에는 그녀의 호위무사였기에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지금은 아니란 말인가요?”

“예. 사천당가를 나왔습니다.”

문교교는 어리석지 않았다.

오히려 명석했다.

그날 본 사천당가인들은 오만하고 표독스러웠다.

당령만 아니라 그녀를 보호하던 호법과 그녀의 오라버니 역시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 그들이 유백과 이현성이 친우란 사실을 알았다면 곱게 놔뒀을 리가 없다.

유백이 사천당가를 나온 것도 그와 연관이 있음을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다.

“팽가에서 연을 맺었을 때, 그 친구가 제게 말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북경으로 오라고… 해서…….”

“…무슨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오라버니 대신 제가 도와드리죠.”

그에게서 연민을 느꼈는지 유백을 꺼리던 문교교의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유백은 고개를 저었다.

“소저께서 대신 도와주실 수 없으실 겁니다. 저는 그저 마음이 맞는 그와 함께 지내며 마음껏 검론(劍論)을 나누고 싶었을 뿐이니까요.”

신룡검법을 복원하고 완성하는 것이 선친의 유언이자 그의 꿈이었다.

이현성과 함께라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생각만으로 이곳까지 왔다.

물론 정을 느낄 수 없는 사천당가를 떠나고 싶었던 것 역시 하나의 이유였다.

“저 역시 오라버니를 뵙고 싶어요.”

“그 친구의 동생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곳이 어딘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그곳에서 그 친구를 기다릴 생각입니다.”

“…소개장을 써드릴게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잠시 고민하던 문교교의 입이 열렸다.

조건이란 단서가 붙자 유백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조건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조건이 뭡니까?”

“오라버니를 만나게 되면 제가 기다리고 있단 말을 전해주세요. 그리고 어디에 계신지 제게 꼭 알려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약속은 꼭… 지키겠습니다.”

그렇게 문교교의 소개장을 받은 유백은 발걸음을 돌렸다.

하남의 천중산장을 향해서…….

* * *

“보고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경비대를 맡긴 허정이 찾아왔다. 경비대의 재편을 일임했기에 결과를 보고하기 위함이었다.

원래는 재편을 마친 전날에 찾아왔어야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 헤어졌던 친동생과의 재회로 정신이 없어서 보고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보고 드리겠습니다. 경비대는 7인 7조를 편성했으며…….”

허정은 금군 총기 출신에 경비대 부대장까지 맡았던 덕분인지 일처리가 깔끔했다. 덕분에 이현성은 경비대를 그대로 그에게 일임해도 되겠단 생각을 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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