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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108화 (108/314)

108화.

그가 지난 30년간 은거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현 무림은 당대 인물들이 이끌어야 하는 것이 순리라 생각했다.

“아미타불… 그럼 저희는 이만 떠나겠습니다.”

소림고수들은 주가려와 마중 나온 태가장 사람들에게 합장을 했다.

그들이 막 떠날 때였다.

―소림은… 그리고 빈승은 자넬 환영하네.

료굉대사의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뜻이 이현성에게로 향했다.

료굉대사가 한 수법은 혜광심어(慧光心語)였다.

전음입밀의 한 부류로 구분되지만, 전음입밀과는 격이 다른 수법이었다. 혜광심어를 펼칠 수 있는 사람은 현 무림에서 손에 꼽을 정도였다.

혜광심어는 그 정도로 고절한 수법이었다.

지난 밤 두 사람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실제로는 이현성이 본인의 고민을 이야기했고, 료굉대사는 인생 선배로서 대답해주었다.

육체의 단련보다 정신의 성장이 더욱 중요한 경지에 오른 이현성에게는 너무나 값진 시간이었다.

―언젠가… 언제가 찾아뵙겠습니다. 료굉 할아버지.

―허허… 기다리마. 소개시켜주고 싶은 녀석들이 참 많구나.

―찾아뵐 그날까지 부디 건강하십시오.

료굉대사는 지난 밤, 이현성을 소림에 초대했다.

그에게서 연을 느꼈던 것이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소림에 간다는 것은. 소림과 대칭되는 혈천의 혈살객이었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정파라고 할 수 없는 입장이었기에 선뜻 결정할 수 없었다.

결정적으로 위지천 때문에 소림에 동행할 수 없었다.

맹검 위지천의 검에 명을 달리한 정파고수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소림에 동행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었다.

‘소림이라…….’

* * *

그 시간 천사교는 발칵 뒤집어졌다.

“맹검이 살아 있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죽은 줄 알았던 맹검 위지천의 생존사실이 천사교에 전해졌다.

그의 죽음이 석가장의 소행인 줄 알고 소교주를 위시한 사절단이 석가장으로 떠났다.

석가장에선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발뺌을 했다.

그리고 성의라며 고작 중소 상단과 표국 하나를 내놓았을 뿐이었다.

그 일로 천사교주는 무척이나 분개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이 일을 주도했던 환요의 징계 및 석가장에 대한 징치 역시 거론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맹검의 생존이 밝혀졌다.

결국 천사교는 엉뚱한 석가장만 협박한 셈이었다.

이 일이 알려진다면 천사교의 명성에 먹칠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존심 강한 천사교주가 불같이 화를 내는 것도 당연했다.

“혀, 현재 확인 중이긴 한데…….”

“한데?”

“8할 이상이 맹검 호교사자가 맞는 것 같…….”

콰쾅!!

보고가 끝나기 전에 천사교주가 앉아 있던 태사의(太師椅)가 박살나고 말았다. 또한 그를 중심으로 바닥에 거미줄 모양으로 금이 갔다.

그의 분노는 살기가 되었다.

살기는 곧 유형화되어 주변을 파괴했다.

의지만으로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의형살인(意形殺人)의 경지는 아니었지만, 그에 근접한 어마어마한 신위였다.

그의 신위는 수뇌들에게 다시 한번 경각심을 주었다.

그의 분노를 산다면 다음에는 태사의 대신 자신들의 머리가 박살날 거라 느꼈다.

“살아 있음에도! 자취를 감추었단 것은! 본교를 배신한 것이라 봐도 무방하겠지!”

“…….”

“…….”

천사교주의 물음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의 말을 목숨을 걸고 부정할 정도로 맹검과 친분을 가진 자는 없었다.

그렇다고 맹검의 배신이 맞다고 대답할 수도 없었다.

자칫 배신자에 대한 처벌책을 요구한다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호교사자였지만 교령급의 강자인 맹검이었다.

그를 죽일 수 있는 강자는 이 자리에도 많지 않았다.

“…제 생각에는 맹검이 감히 주군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저버린 것 같습니다.”

“그렇지? 요도(妖刀).”

천사교주의 말에 대답한 자는 요도란 고수였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는 중원인이 아니었다.

동영출신의 무사였다. 자신의 실력을 시험하기 위해 중원으로 온 동영의 무사였다.

스스로의 자신감이 과하지 않음을 증명하듯 그의 요도에 수많은 무림고수가 쓰러졌다.

그중에는 거대문파의 주인도 있었다.

광분한 무림인들이 그를 추살하려 할 때였다.

천사교주가 친히 제압한 후 수하로 삼았다.

요도는 절대적인 신위를 보여준 천사교주를 주군으로 모시고 그의 곁을 지켰다. 비록 중원인은 아니었지만, 천사교주를 향한 충성심은 인정할 만했다.

실제로 천사교주가 제일 믿는 심복도 그였다.

“자네가 처리하겠나?”

“주군의 천명을 기쁜 마음으로 따르고 싶으나, 이번 일은 소장(小將)이 맡을 일이 아니라고 사료됩니다.”

요도는 일개 무사가 아니었다.

비천류라는 동영 유수의 유파의 계승자였다.

중원에서 무위를 떨친 후 동영에 돌아가서 권력을 쥘 예정이었으나, 그것을 포기하고 중원에 잔류했다.

“그럼 누가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맹검의 죽음을 보고하고 석가장을 지목한…….”

그의 말에 움찔하는 자가 있었다. 바로 한쪽 눈을 잃은 환야였다. 임무를 실패한 벌로 근신 중이었다.

“…환야 교령이나 석가장을 확신하게 한 환요 호교사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사료됩니다.”

“부상을 입은 환야나 복귀 중인 환요로서는 맹검을 처리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네만?”

“그렇기에 환요 효교사자의 조모인…….”

“…제가 맡아야 한단 말이시군요? 요도 교령.”

요도의 말에 한 중년 미부가 말을 가로챘다.

기품까지 느껴지는 아름다운 중년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실체를 안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3, 40대의 중년 미부로 보이나 실상은 일흔을 넘은 노파이며, 사파무림에서 칠사(七邪)를 제외하고 열 손가락에 꼽히는 여고수, 환희교의 교주인 환희요후가 바로 그녀였다. 현재 그녀는 천사교의 새로운 교령이 되었다.

“소장의 생각은 그렇소.”

“교주님. 손녀를 잘못 가르친 본녀의 잘못을 인정하겠습니다.”

환희요후로서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거부한다면 손녀가 징계를 받기 때문이다.

손녀를 끔찍이 생각하는 조모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환요는 소교주를 치마폭에 감싸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요후 자네가 내게 배신자의 목을 가져오게.”

“교주님의 명을 따르겠사옵니다.”

환희요후는 천사교주의 명을 받들었다.

그녀는 요도에게 전음을 보냈다.

―동영도왕. 한 식구끼리 이럴 건가요?

―환희요후. 내 영역에 침범한 건 그대가 먼저 아니오!

―제 탓이 아니라 흡정혈왕 때문임을 아시잖아요!

―…거래합시다. 날 지원하겠다고 약조한다면 시노비(忍者)를 지원하겠소.

놀랍게도 천사교 오대교령이자, 천사교주의 심복인 요도는 환희요후와 같은 혈천의 고수였다. 요도는 비천류의 계승자로서 동영의 패권을 차지하고 싶었다.

허나 안타깝게도 경쟁자들이 너무 막강했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외부의 힘이 필요했다.

그 때문에 선택한 것이 천사교였다.

사파사세의 하나인 천사교라면 대권을 쥐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허나 천사교주가 움직인 직후, 혈천주의 사자가 접촉해왔다.

혈천은 동영에 관심 없으니 협력한다면 그가 동영을 접수하는데 지원하겠단 내용이었다.

사파사세인 천사교보다 거대한 세력인 혈천에 대해 알게 된 그는 고민을 했다.

그리고 바로 결정했다.

요도는 천사교보다 혈천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혈천의 요구는 천사교에 입교해서 절강성을 혈천의 그늘 아래 두란 거였다.

어차피 천사교에 입교할 예정이었기에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그 후 천사교 내에 입지를 다지며 혈천십삼세의 하나로서 자리 잡았다.

그런데 강소성을 담당하는 환희루가 끼어드니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요. 대신 이후 본루를 견제하지 마세요. 본루는 강소의 장악이 목적이지, 절강은 아니니까요.

―그 말을 믿겠소.

두 사람의 밀약이 이루어졌다.

허나 서로 알고 있었다. 속내는 다르다는 사실을.

소주에 이어서 항주 역시 노리는 환희루.

물론 요도 역시 알고 있었다. 허나 그가 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동영인 만큼 혈천 내에서 입지를 다지고, 그들의 지원만 받을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다만 절강을 그녀에게 빼앗기면 혈천십삼세의 자리를 잃게 된다. 그렇게 되면 동영일통에 대한 지원을 받을 수 없기에 날을 세운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그런 밀약이 오갈 때, 천사교주의 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맹검이 ‘그’ 애송이 놈과 함께라고? 어이가 없군.”

“예. 교주님.”

맹검에 대해서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동행 중인 이현성에 대해서도 알려지게 되었다.

애초 혁련세가에서는 이현성에 대해 알리기 위해 맹검의 존재를 천사교에 흘린 것이다.

그러니 이현성에 대해서는 알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놈은 제가 맡겠습니다. 교주님.”

“부상이 회복되지 않았을 텐데, 괜찮겠는가. 환야.”

천사교주는 그를 지목하지 않았으나 환야는 자진해서 임무를 맡았다. 천웅방의 사자도패를 제거하는 임무를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동행한 천살 교령까지 죽었다.

게다가 세 호교사자들에게 맡겼으나 원래 이현성은 그의 몫이기도 했다.

근신 정도로 그쳤으나 이미 입지가 상당히 흔들린 상황이었다. 따라서 자진해서 이현성의 목을 가져오지 못한다면 교령의 위치를 부지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직 내상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음에도 임무를 자진해서 맡은 것이다.

물론 이현성의 실력을 당시 수준으로 생각했기에 한 실수였다.

“교주님의 이름에 더 이상 먹칠하지 않겠습니다.”

“…좋네. 회혼환(回魂丸)을 한 알 하사하지. 실망시키지 말게.”

성수의가의 회혼환은 천사교에서도 애용하고 있었다.

독자적인 영단을 제조하는 것보다 회혼환을 구입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었다.

허영 떠는 것을 좋아하는 천사교주는 천사신단(天邪神丹)이란 영약을 만들었다.

효과도 뛰어나긴 했지만 비슷한 수준의 영단을 제조하는 것의 몇 배나 많은 비용이 들었다.

때문에 천사신단은 사용하지 않고, 보관만 할 뿐이었다. 실제로는 성수의가에서 구입한 회혼단을 사용했다.

물론 회혼단은 값이 싸지 않았다.

그럼에도 회혼단을 하사한 것은 천사교주 입장에서 비록 자신을 실망시켰지만, 환야를 버릴 수 없어서였다.

초절정고수가 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그가 공을 세워야 자신의 체면도 산다. 그걸 생각하면 회혼단 하나는 별것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엄청 부담을 주는군.’

영단인 회혼단을 하사하고, 실망시키지 말라는 말까지 했다. 이는 일종의 경고인 셈이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자신의 분노를 감당해야 한다는 경고였다.

하지만 환야 입장에서도 손해 볼 것은 없었다.

회혼단이라면 내공이 늘진 않지만, 내상은 충분히 회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쪽 눈을 잃었으나 이제 제법 익숙해졌다.

이현성 정도는 충분히 벨 수 있었다.

“물론입니다. 교주님.”

그는 아직 몰랐다.

이 결정이 그의 일생 최악의 결정이었단 것을.

새로운 시작

“아무래도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형님.”

“그러는 것이 낫겠지. 황실과 엮이면 골치만 아프니까.”

이현성은 위지천의 거처로 건너왔다.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 위함이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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