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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104화 (104/314)

104화.

“성승께서 아실지 모르겠지만 황실…….”

주가려는 현 황실의 실태를 설명했다.

치부가 될 수 있으나 숨기면 성승을 설득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기에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으나 무림세력과 손을 잡은 정황 역시 포착되었습니다.”

“아미타불…….”

“황상께선 황실의 일은 황실에서, 무림의 일은 무림에서 해결하길 원하십니다. 백만금군을 움직인다면 많은 피가 흐르게 될 것입니다. 그로 인한 피해는 민초들의 눈물이 되겠지요.”

주가려는 자신의 뜻이자, 황제의 뜻을 밝히면서 한편으로 료굉대사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결단만 내려준다면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료굉대사의 지지가 필요했다.

“아미타불… 마마… 아니, 황제폐하의 뜻은 무엇이십니까?”

“무림맹을 결성해서 역천(逆天)을 노리는 불손한 무리를 무너트리길 원하십니다.”

무림맹(武林盟).

말 그대로 무림세력의 연합체를 말했다.

물론 정확히 전 무림의 연합은 아니었다.

정파무림의 연합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엄청난 힘을 가진 초월적인 집단이 탄생한다는 뜻이었다.

황실은 무림세력이 강성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렇기에 공공의 적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무림맹의 결성 및 유지를 반대해왔다.

이민족의 침입이나 마교의 창궐 등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주 황실만 아니라 그 이전의 황실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황실에서 무림맹의 결성을 종용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황실과 무림 등 천하를 노리는 세력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했다.

때문에 무림의 힘을 견제하고 경계할 때가 아니었다.

천하의 평강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할 때였다.

“마마, 빈승 홀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물론 그렇지요. 허나 성승께서 무림맹 결성의지와 불손한 무리를 타도하시겠단 의지만 밝히신다면 반대할 자는 없을 겁니다.”

“아미타불…….”

주가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성승의 의지가 소림의 의지였다.

소림의 의지는 구파일방의 의지가 되며, 이는 곧 정파무림의 의지가 된다.

천하의 안위를 위해 무림맹을 결성하고자 뜻을 밝힌다면 순식간에 의지가 모이게 된다.

그게 바로 살아 있는 전설 성승의 힘이었다.

다만 무림맹의 결성은 사파무림에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었다.

그럼 예상치 못한 피가 흐를 수 있다.

료굉대사가 쉽게 입을 열지 못하자 주가려는 자신의 검을 쥐었다.

물론 료굉대사를 위협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성승은 위협해서 될 존재도 아니었다.

“황실의 장공주로서가 아닌 황실의 수호검인 구룡검주로서의 요청입니다.”

“아미타불…….”

구룡검주(九龍劍主).

황실보검인 구룡검의 주인이란 뜻이었다.

이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구룡검의 다른 이름은 황실수호검이었다.

구룡검은 검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보검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황실수호검이란 거창한 별칭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건 바로 용이라 칭할 수 있는 거인 아홉 명이 구룡검에 맹세를 했기 때문이다.

무림 최고의 후기지수인 구룡(九龍)을 의미함이 아니었다. 무림에서 용(龍)의 의미와 황실에서 용(龍)의 의미는 전혀 달랐다.

구룡검에 맹세한 아홉 명은 바로 구대문파의 장문인들이었다.

과거 황제들은 무림을 마뜩잖게 여겼다.

그들의 힘이 황권을 위협할 수 있다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언제든 무림을 없애려고 했다.

그로 인해 황실과 무림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무림의 힘으로 명을 건국한 홍무제 역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억지로 무림을 누르려 한다면 안정되지 않은 명(明)만 더욱 혼란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홍무제는 구대문파의 장문인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무림이 황실을 위협하지 않는다면 무림의 영역을 인정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구대문파의 장문인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맹세를 했다.

무림이 황실을 위협한다면 구대문파가 나서서 막겠다는 맹세였다.

그 증거가 구룡검이었다.

그 후 관과 무림은 상호불가침 맹약을 맺게 되었다.

‘내 업보이거늘… 어쩔 수 없구나.’

구룡검이 탄생한 것은 오십 년 전이었다.

오십 년 전, 소림의 장문인은 료굉대사 바로 자신이었다. 즉, 구룡검에 맹세한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그였다.

주가려가 구룡검주로서 구룡검의 권위를 내세운 이상 선택권은 없었다.

“아미타불… 구룡검주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단, 무림맹의 결성을 지지할 뿐 무림맹의 행사에는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대사님!”

주가려는 당황했다.

무림맹주는 당연히 성승이 맡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더욱 결속될 것이고, 잡음 역시 적어진다.

그런데 성승이 무림맹의 행사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즉, 무림맹주가 되지 않겠단 말과 다르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그녀가 당황한 것은 당연했다.

입술을 깨문 주가려는 다시 한번 구룡검의 권위를 빌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료굉대사가 더 빨랐다.

“마마, 무림은 약하지 않습니다. 이 늙은 중의 미력한 힘을 보태야 할 정도로 약하지 않습니다.”

“…….”

“아미타불…….”

“약속해주십시오, 대사님. 만약 대사님의 힘이 필요한 상황이 된다면 반드시 도와주신다고요.”

“물론입니다. 마마.”

더 이상 료굉대사에게 강권할 수는 없었다.

구룡검의 권위를 빌어 억지를 부린다면 료굉대사도 어쩔 수 없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억지를 부리고 싶지는 않았다.

성승은 존경받아 마땅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료굉대사는 그녀가 자신의 뜻을 헤아려주자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공암아.”

“아미타불… 공암이 료굉 사백과 황실의 구룡검주를 뵙습니다.”

료굉대사의 말에 어둠 속의 노승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승이라고 해봤자 료굉대사에 비하면 한참 젊어보였다.

그는 소림 장문인 공심대사의 명으로, 사대금강을 이끌고 암중에서 료굉대사를 호위한 인물이었다.

“공암대사이시군요. 구룡검주인 주가려입니다.”

“앞으로 마마를 잘 모시거라.”

“예. 사백.”

공심대사가 공암대사를 하산시킨 이유는 성승의 호위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가 구룡검의 당대 맹약자이기 때문이다. 구룡검에 한 맹약을 위해 구대문파가 황실에 상주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각파에서 한 명씩 맹약자를 정했다.

아홉 맹약자는 구대문파를 대표해 구룡검의 권위를 지키는 임무를 맡았다.

다만 구룡검의 존재는 만약을 대비한 비밀이었다.

구룡검의 존재를 숨긴 상황에서 구대문파의 장로급 고수를 아홉이나 황실에 상주시킬 명분이 없었다.

결국 아홉 맹약자 중 한 명만 구룡검주의 호위이자 사부로서 황실에 상주하기로 결정했다. 나머지 여덟 맹약자는 구룡검주의 요청이 있을 때 합류하기로 했다.

당대 구룡검주는 여인이었기에 아미파의 혜원사태가 주가려의 사부가 되었다.

그렇다. 그녀 역시 당대 맹약자 중 한 명이었다.

‘만족스럽지 않으나 당장은 어쩔 수 없지.’

성승이 전면에 나서주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그의 말처럼 무림은 약하지 않았다.

힘을 합치지 못했기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도 못할 뿐이었다. 성승을 대신할 구심점만 형성된다면 무림맹은 충분히 역천의 무리를 막아줄 것이다.

물론 그게 끝이 아니다.

무림의 일을 무림에 맡겼을 뿐이었다.

이제 황실의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구룡검주로서 얕보이지 않기 위해 더욱 강해져야 해…….’

* * *

“허… 이로써 무림맹의 결성은 막을 수가 없겠군.”

서신을 읽은 노인은 혀를 찼다. 미리 정보를 흘려주었음에도 실패한 자들이 무척 못 마땅했다.

노인은 사례감장인태감(司禮監掌印太監)의 직책을 맡고 있는 황실 최고의 실력자 태태감이었다.

칩거하고 있으나 귀를 닫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황제가 누이를 궐 밖으로 보냈음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러한 사실은 몇몇만 알고 있는 기밀사항이었다.

그럼에도 태태감의 귀에 들어왔다.

황실 곳곳에 그의 귀가 얼마나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증거였다.

태태감은 자신이 직접 손을 쓰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대신 정보를 흘렸다. 무림맹의 결성을 원치 않는 자들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게다가 그녀의 죽음이 황제를 조금이라도 흔들 수 있다면 일석이조였다.

허나 결국 실패로 끝났다. 주가려는 무사히 태가장에 도착했고, 지금쯤 소림의 대표를 만나고 있을 테니까.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자들이었나?”

실망스러움에 그들과 손을 잡는 것이 과연 득일지 고민이 되었다.

허나 이미 결론은 정해졌다. 그들을 대체할 만한 곳이 없는 이상 손을 놓는 섣부른 판단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 일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설마 무영살이 이렇게 사라질 줄이야. 아깝군.”

살수집단인 무영살(無影殺)은 사실 태태감의 숨겨진 비수였다. 황제가 각 성에 태가장과 같은 비밀거점을 심어둔 것처럼 태태감 역시 자신만의 힘을 만들어두었다.

아니, 황제보다 태태감이 먼저였다.

무영살은 원래 동창의 암살요원들이었다.

정확히는 임무 중 사고로 위장해 따로 빼돌린 전직 동창요원인 셈이었다.

전원이 특급살수일 수 있던 비밀이 바로 그것이다.

무영살은 외부 공작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한편, 방해자를 제거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런 무영살이 예상치 못하게 지워졌으니 아까울 따름이었다. 물론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새로운 무영살을 만드는 것은 가능했다.

하지만 가능한 것이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예전과 달리 황제의 눈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으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설마 그자가 손을 쓴 건 아니겠지?”

무림세력과 손을 잡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 서로의 이득을 위해 잠시 협력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언제든 배신할 수 있기에 항상 보이지 않게 견제하고 있었다.

무영살이 자신의 비수란 사실을 그들이 알고 있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뒤통수를 친 대가를 치러야겠지.”

* * *

“설마 아버님께서 보내주신 손풍각마저 실패할 줄이야.”

중년인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혁련용후, 혈천 대호법인 혁련중광의 아들이자 혁련세가의 당대 가주였다. 혁련세가의 가주답게 뛰어난 무위와 기묘한 계략을 가진 인물이기도 했다.

안제명을 키운 것도 그의 작품이었다. 허나 그런 그도 이현성과 위지천이란 예상치 못한 변수를 알아차리지 못했기에 무림맹 결성 저지 계획을 실패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지. 계획을 변경하는 수밖에…….”

임무의 실패로 큰 문제가 발생했다.

황실이 무림맹 결성을 요구한 까닭은 역천의 무리가 무림세력과 손을 잡은 정황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역천의 무리와 손을 잡은 무림세력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암중세력이란 점이었다.

역천의 무리나 이민족 등 상대해야 할 적이 많은 황실로서는 암중세력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렇기에 무림의 일은 무림에서 처리하라는 의미로 무림맹 결성을 요구한 셈이었다. 즉, 혈천의 존재를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그럼에도 혁련용후는 당황하지 않고 계획을 변경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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